여성에 대한 예수의 시각 "참된 제자는 누구?"
[정양모 신부의 복음과 세상 이야기]
"저를 여자로 만들지 않으신 하느님, 찬양받으소서"..그러나..
예수의 여성관을 거론하기 전에 우선 유다교의 여성관이 확연히 드러나는 전거 둘을 인용해 보겠다.
“(기원전 150년경에 활약한) 예루살렘의 요세 벤 요하난은 이렇게 말했다. ‘너의 집은 활짝 열어놓고 가난한 사람들을 가족인양 받아들여라. 그러나 여자들과는 말을 많이 하지 말라.’ 자기 아내와도 말을 많이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물며 남의 아내와 말하는 경우에 있어서랴! 따라서 현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여자들과 말을 많이 하는 남자는 불행을 자초하고, 율법공부를 소홀히 하며, 마침내 지옥을 물려받게 된다.’”(<조상들의 어록> 1,5참조. 요한 4,27).
“랍비 여후다는 말했다. 매일 찬양기도 세편을 바쳐야 한다. 저를 이방인으로 만들지 않으신 하느님, 찬양받으소서. 왜냐하면 ‘그분 앞에서는 모든 이방 민족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이사 40,17). 저를 여자로 만들지 않으신 하느님, 찬양받으소서. 왜냐하면 ‘여자는 율법을 지킬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저를 무식쟁이(Bur = am ha aretz: 요한 7,49)로 만들지 않으신 하느님, 찬양받으소서. 왜냐하면 ‘무식쟁이는 죄를 부끄러워하지 않기 때문이다’”(토세프타 브라코트 7,18 = 예루살렘 탈무드 브라코트 9,13ㄴ.38).
200년경 갈릴래아 우샤에서 미슈나 법전을 편찬한 여후다 하 나지 율사가 만든 기도문이다. 바빌론 탈무드 므나호트 43ㄴ항에도 같은 기도문이 있는데, 이것은 메이르 율사가 만든 기도문이라고 한다.
유다교의 입장에서 볼 때 예수께서 여자를 가까이 하신 처신은 매우 파격적이다. 왜 그러셨을까? 아무래도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 곧 하느님의 돌보심, 특히 소외자들을 돌보시는 하느님을 의식한 나머지 소외자 부류에 속하는 여자들을 가까이 하시고 아끼셨다 하겠다. 12년 동안 늘 불결 상태에 있었던, 하혈하는 부인(마르 5,25-34), 가련한 과부(마르 12,38-40. 41-44; 루카 7,11-17; 18,1-18), 시로페니키아 부인(마르 7,24-30), 기름 바른 여자(마르 14,3-9), 창녀(마태 21,31ㄴ-32), 사마리아 여자(요한 4,1-42), 간음한 여자(요한 7,53-8,11)를 칭송하고 우대하고 변호하고 고쳐주셨다. 또한 이혼논쟁(마르 10,1-13), 마르타와 마리아 단화(루카 10,38-42), 곱사등이 부인 치유이적사화(루카 13,10-17)에는 남녀 평등사상이 환히 드러난다.
예수님의 이런 처신에 영향을 받아 원시교회 안에서 여성이 차지한 지위는 상당했다. 그 지위는 유다교의 네 종파나 로마 · 그리스 문화계에서 여성들이 누린 지위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았다. 열두 제자보다 예수를 따라다닌 갈릴래아의 여자들이 참된 제자였다는 느낌이 든다. 예수께서는 섬김을 받기보다 섬기러 왔노라고 하셨다(마르 10,42-45). 저 여자들은 예수님을 따르면서(마르 15,41) 예수 일행을 섬겼다(루카 8,1-3). 예수 수난 때 열두 제자들은 예수님을 배신하거나 갈릴래아로 달아났지만, 저 여자들은 예수의 임종과 장례를 끝까지 곁에서 지켜보았다(마르 15,40-47). 또한 저들은 예수의 무덤이 빈 것을 맨 먼저 목격했으며(마르 16,1-8), 부활하신 예수의 발현을 가장 먼저 체험했다(마태 28,9-10; 요한 20,14-18).
교황청, 여성 사제직 불허 선언..
"예수도 여자에겐 사도 직무 안 맡겨"
"마리아도 사제직 안 맡아"
교황청은 여성사제직 허용을 거부하면서 그 근거로 예수께서 남자들 가운데서 열두 제자를 뽑은 사실과 가톨릭 교회의 유구한 전통을 내세우곤 한다. 이런 취지로 신앙교리성은 1977년 1월 <여성 교역 사제직 불허 선언>을 발표했다(<사목> 50호, 1977년 3월호, 104-107쪽 ). 선언문의 3-4항은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세태와는 대조되는 태도로 여성들을 대하셨다. 혼인의 인연에 있어서 남녀의 권리와 의무가 평등함을 확인하시기 위해서 모세 율법까지도 주저 않고 결별하셨다. 그분이 봉사직무를 행하실 때에 일단의 여인들이 그분을 모셨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맨 처음 뵙는 특전을 받은 것도 여인들이었다. 이러한 사실들은 예수께서 여인들에게 열두 사도의 직무를 맡기지 않으셨다는 사실에 더욱 강한 인상을 준다. 교부들은 성자의 신비에 그토록 밀접히 결합되신 마리아께서 사제직을 받지 않으셨다는 의미심장한 사실을 지적하였다”(3항)
“사도들의 공동체는 예수님의 태도를 충실히 간직하였다. 사도들이 유다 세계의 테두리를 벗어나고 때로는 서운하지만 모세의 관습을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되었을 때에, 사도행전과 성 바오로의 서간들에 나오듯이 복음 선포의 과업에 여성들을 가담시키면서도 그들은 여성에게 서품을 주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4항).
이 선언문에 대해 미국의 가톨릭 활동가와 성서학자와 신학자 44명은 합동으로 반론을 제기했다(Leonard, Arlene Swidler 편, Women Priests : A Catholic Commentary on the Vatican Declaration, New York, 1977).
같은 맥락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4년 5월 22일자로 <남성에게만 유보된 사제서품에 관하여>라는 교서를 발표했다(<한국천주교주교회의 회보> 82호, 1994.7.1, 18-19쪽) . 교서에서 중요한 단락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교황 교서 <여성의 존엄>에서 본인은 이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남자들을 당신의 사도를 뽑으실 때 완전한 자유와 권위를 행사하였다. 이때 그분은 당시의 관습이나 법적 전통의 제한에 구애받지 않으시고 여러 가지 행동을 통하여 여성들의 존엄과 소명을 강조하시면서 쓰셨던 똑같은 자유를 행사하셨다.’
사실, 복음서와 사도행전은 그리스도의 이러한 선택이 하느님의 영원한 계획에 따라 이루어졌음을 증거합니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원하신 사람들을 뽑으시되(마르 3,13-14; 요한 6,70 참조), 그 일은 산에 들어가 밤을 새워 기도하신 후(루카 6,12) ‘성령의 힘으로’(사도 1,2), 아버지와의 일치 안에서 행하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직무 사제직을 허가할 때, 교회는 주님께서 열두 남자를 골라 교회의 기초로 삼으셨던(묵시 21,14 참조) 방식을 항구한 규범으로 언제나 인정해 왔습니다.”
또한 신앙교리성은 이 교서를 지지하는 뜻으로 1995년 10월 28일자로 <Responsun adsubium> 이란 문헌을 돌렸다. 그러자 미국 가톨릭 신학연구회는 1997년 6월 5-8일 시카고에서 열린 전국 모임에서 교황 교서와 신앙교리성 문헌을 비판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Catolic Theological Society of America, Commitee's Paper on Tradition and Ordination of Women: 참조 <Orientierung> 1997.8.15, pp.172-173).
신앙교리성은 1997년 1월 2일자로 스리랑카 신학자 티사 발라수리야(Tissa Balasuriya) 신부를 파문했는데, 그 가장 큰 사유는 발라수리야가 여성사제직을 주장했기 때문이라고 한다(<The Tablet> 1997.1.11, pp.50-51).
여성사제 서품보다..
성직자들의 비복음적 권위주의가 훨씬 더 심각한 문제..
자칫 남녀 성직자 합작 권위주의 될 수도..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오로지 남자들 가운데서 뽑으신 것은 분명하나, 이를 근거로 여성사제직을 배척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게 신약학계의 통설이다 그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발탁하신 데는 이스라엘 백성 전부를, 곧 열두 지파를 재건하고 포용하시겠다는 뜻이 들어 있다. 그런데 열두지파의 조상이 야곱의 열두 아들이었으므로 예수께서도 열두 남자를 택하셨다. 곧 열두 남자는 야곱의 열두 아들을 가리키는 상징이다.
둘째, 또한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를 교육하여 이스라엘 각지로 보내면서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케 하셨다. 그런데 당시 사회 실정으로는 여자들이 낯선 고장으로 파견되어 전도하는 것은 전적으로 불가능하였다. 예수님은 그 시대의 문화적 실정을 고려하여 남자들 가운데서 열두 제자를 발탁하셨던 것이다. 열두 제자 문제에 관심이 있는 이는 쉬슬러 피오렌자의 <동등한 제자직>(김상분 · 황종렬 역, 분도출판사)의 128-137쪽을 보라.
서공석은 여성사제직 주장과는 관점을 달리하여 색다른 견해를 표명했다(<종교신학연구> 제 10집, 분도출판사, 1997, 279쪽). “성령강림에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비롯하여 여인들이 사도들과 베드로와 함께 있었다. 이 여인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먼저 만난 사람들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사제직 봉사직무가 다른 모든 봉사직무들을 점차적으로 흡수하여 독점해버렸다. 서품된 자들만이 교회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들도 서품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제직의 이런 흡수 독점 사실을 추인(追認)하고 정당화하는 것 뿐 아니라 오히려 이 독점을 강화해주는 것이다.”
여성사제 서품보다 성직자들의 비복음적 권위주의가 훨씬 더 심각한 문제라고 보는 것 같다. 성직자들의 권위주의는 그대로 있는 채 여성 성직자가 생겨난다면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남녀 성직자 합작 권위주의가 아니겠는가?
정양모 신부
1935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성신대학(지금의 가톨릭 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1960년부터 1970년까지 프랑스, 독일, 이스라엘에서 유학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1970년부터 2002년까지 광주 가톨릭대학교, 서강대학교, 성공회대학교 등에서 교수로 지냈다. 2005년부터는 다석학회 회장을 맡아 다석사상을 널리 알리는데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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