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을 가리는 게 그리도 중요한가?

[정양모 신부의 복음과 세상 이야기]

2012-04-26     정양모

독일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시사주간지 <슈피겔>(1998년 7월 20일)에 희한한 사건이 특집으로 실려 있다. 회교도 부인이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가리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교사 발령을 받지 못한 사건이다. 구체적으로 독일 가톨릭 중앙위원회 부회장 겸 바덴 비르템베르크 주 교육부 장관인 안네테 샤반(기독교 민주당)여사가 아프가니스탄 출신 회교도로서 독일 국적을 가진 프레슈타 루딘(25세)부인을 교사로 발령 하지 않은 사건이다.

루딘은 1978년부터 주 서독 대사를 지낸 아버지를 따라서 독일에서 공부하다가, 이듬해 소련이 조국을 강점하자 실직한 아버지를 따라서 한동안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지냈다. 1986년 독일로 돌아와서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호흐베르크 학교에서 교생실습까지 마친 상태였다. 그 학교 교장 선생은 루딘을 높이 평가했다. “루딘 부인은 부지런하고 매력적이며 늘 협조적이었다. 우리 학교에 기꺼이 교사로 모시고 싶은 사람이다. 교사는 모름지기 원만한 인품으로 학생들의 모범이 될 수 있어야 하는 법인데, 루딘 부인은 확실히 원만한 인품을 지닌 분이다.”

문제는 루딘 부인이 이슬람 계율에 따라 노상 두건으로 머리카락을 가린데서 발생했다. 골수 가톨릭 문교부 장관이 두건을 빌미로 교사 발령을 거부했던 것이다. 독일은 게르만 민족으로 형성된 단일 민족 나라인데다가 가톨릭 또는 개신교를 신봉하는 기독교 국가인지라 타민족 타종교를 배척하는 기질이 있다. 두건 사건으로 관용과는 거리가 먼 게르만적 기질이 생생하게 드러났다 하겠다. 이제 <슈피겔> 기자와 루딘 부인과의 대담을 간추려 소개한다.

기자 : 머리를 가리우는 게 무슨 뜻이 있습니까?
루딘 : 머리 수건은 이슬람을 믿는 부인의 복장입니다. 여자의 매력을 감추는 것입니다. 여자의 머리카락은 매력적이니까요. 이슬람에는 복장 계율이 있습니다. 저는 제 생활 전반에 걸쳐 이슬람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복장 계율도 지킵니다. 복장 계율도 이슬람의 일부이니까요.

기자 : 이란의 회교 근본주의자들인 물라, 아프카니스탄의 회교 근본주의자들인 탈리반이 복장 계율을 엄격히 강요하는 것은 관용이 부족하고 여성들을 억누르는 처사 아닙니까?
루딘 : 물라와 탈리반 같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태도는 이슬람이 존중하는 신앙의 자유와 다양성을 거스르는 짓입니다. 코란에 따르면 어느 누구에게도 이슬람 신앙이나 복장 계율을 강요해선 안 됩니다. 강요는 신앙의 자유를 해치는 짓거리입니다. 제 나름대로 이슬람에 관해 심사숙고했습니다만 두건을 쓰게 하는 것은 결코 여성을 억 누르려는 것이 아닙니다...

기자 : 두건은 이슬람 종교를 과시하는 건 아닙니까?
루딘 : 제 개인의 신앙을 드러낼 뿐입니다. 다른 사람을 설득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전도할 생각은 없습니다. 제가 선택한 종교적 결단을 그러낼 뿐입니다.

기자 : 두건은 당신 개인의 신앙고백이란 말이군요. 그렇다면 독일처럼 종교 중립적인 세속 국가에서 교사로 일할 때 두건을 포기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루딘 : 두건을 벗는 것은 외투를 벗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러나 두건은 무슬림 여자로서의 품위와 관련되는 문제입니다. 저의 근본적이며 인간적인 품위와 관련된단 말입니다. 제 경우 두건을 벗는 것은 알몸을 드러내는 것과 같습니다. 품위를 저버리는 짓이란 말입니다. 학교는 사회와 사회의 다양성을 반영합니다. 저 같은 사람을 학교에서 용 납 하지 않는다면 관용을 가르치는 일이 허사 아니겠습니까?

기자 : 무슬림 여학생 자신은 두건을 싫어하는데 그 부모가 두건을 강요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루딘 : 저는 그 부모와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딸을 설득하지 않고 무조건 두건을 강요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신앙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게 이슬람의 기본 입장입니다. 딸에게 두건 착용 결정권을 맡겨야 합니다. 결정권을 박탈해선 안 됩니다.

기자 : 여학생이 두건 착용을 거절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루딘 : 저는 근본적으로 강요를 배격하므로 답을 한 셈입니다. 신앙문제에서도 강요는 금물입니다. 저는 다른 여성에게 머리카락을 가리우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또한 누가 저더러 두건을 쓰라, 말아라 하는 것도 저는 용납하지 않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에 한국교회에서도 미사참례 시 머릿수건을 강요하지 않았으나, 최근 들어 머릿수건을 쓰라고 요구하는 사제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기이한 사건을 보고 이슬람의 보수성도 독일인들의 획일적인 사고도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려 이 사건과 관련하여 고린토 1서 11장 1-16절이 떠오른다. 사도 바오로는 여자들이 두건으로 머리카락을 가리고 사는 유대인 가정에서 자란지라, 맨 머리로 성만찬에 오는 고린토 여교우들에게 두건을 씌우려고 백방으로 애쓴다. 그렇지만 별로 성공하지 못한 것 같은 여운을 남긴다. 사도 바오로는 여교우들이 수건으로 머리를 가리지 않고 성만찬에 오는 것을 큰 잘못으로 보았다. 여자들의 두건을 두고 이처럼 신경을 곤두세우다니 한심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세상에 그보다 중요한 일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사도 바오로가 여교우들에게 두건을 강요한 것은 오늘날 별 의미가 없다. 전 세계 개신교계 여교우들은 두건을 쓰지 않고 예배나 성만찬에 참석한다. 한국 가톨릭을 빼고 나머지 전 세계 가톨릭 여교우들은 미사 수건을 쓰지 않는다.

두건 착용 문제와 달리, 애찬(agape)을 미리 들지 말고 교우들이 다 모인 다음 함께 들라는 훈계(1고린 11,17-34)는 예나 이제나 그리스도인이라면 명심해야 한다. 그 내용을 간추리면 이렇다. 서기 55년경 고린토 교우들은 토요일 저녁마다 모여 먼저 애찬을 먹고 이어서 성만찬을 거행했다. 그런데 경제적·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중상층 교우들은 맛깔스런 음식을 마련하여 일찌감치 모여서는 먹고 마시곤 했다. 반면, 노예, 머슴, 식모, 빈자 교우들은 온종일 일하고 토요일 저녁 때 빈손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하층 교우들, 가난한 교우들은 배가 고파서도 서러웠거니와 그보다는 업신여김 때문에 더욱 서러웠다.

사도 바오로는 이런 비리를 전해 듣고 분개했다. 이따위 애찬과 성만찬은 도저히 주님의 잔치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는 고린토 교우들에게, 제발 애찬을 미리 들지 말고 교우들이 다 모인 다음 함께 들라고 타일렀다. 만일 어느 누가 배고픔을 참을 수 없다면 자기 집에서 먹고 올 것이지, 애찬 음식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고 지시했다.

고린토 1서 11장에 나오는 두 가지 훈계 가운데서 성만찬 때 여교우들이 머리카락을 가려야 한다는 훈계는 오늘날 소용이 없는 골동품이 되고 말았다. 사실 여자들이 머리나 얼굴을 가리는 계율은 이슬람 종교 문화권에선 아직도 매우 중요시 되고 있지만 기타 문화권에선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이와는 달리, 성만찬 때 중상층 교우들이 애찬을 미리 들지 말고 교우들이 모두 모인 다음 다 함께 들라는 훈계는 자구적(字句的)으로는 별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요즘 기독자(基督者)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성만찬은 모름지기 이웃 사랑의 분위기 아래 거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못 배운 사람들, 못 가진 사람들, 출세 못한 사람들 등 밑바닥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성만찬은 결코 주님의 성찬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성경에 씌여져 있다고 다 같은 진리가 아니다. 성경 말씀에도 서열이 있다. 어떤 말씀은 시공을 넘어 큰 뜻을 지닌 불변적 진리이고, 어떤 말씀은 작가의 발상이나 문화의 반영에 지나지 않는 가변적 현상이다. 복되어라, 두 가지를 식별하는 그리스도인은!

정양모 신부

   
1935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성신대학(지금의 가톨릭 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1960년부터 1970년까지 프랑스, 독일, 이스라엘에서 유학을 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1970년부터 2002년까지 광주 가톨릭대학교, 서강대학교, 성공회대학교 등에서 교수로 지냈다. 2005년부터는 다석학회 회장을 맡아 다석사상을 널리 알리는데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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