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규현 신부 "핵 문제는 중간이 없다"

핵 없는 세상을 위한 탈핵 원년미사 강론-문규현 신부

2012-03-20     문규현

찬미예수님. 반갑습니다.

이토록 뜻 깊은 자리에 초대해주신 박홍표 신부님을 비롯한, 원주교구, 삼척 교우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2003년 2004년 전북 부안에서 핵폐기장 유치반대운동을 했던 전주 사람, 은퇴신부 문규현 바오로입니다.

요새 많이들 얘기하죠. “살다 살다, 비행기까지 타고 가서 시위하게 만드는 정권은 처음 본다.”

맞는 말입니다. 지난 해 12월에는 대구를, 1월부터는 경북 영덕과 경남 밀양을 갔습니다. 핵발전소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살다 살다, 이렇게 남쪽 끝 제주 강정에서부터 부산 고리를 거쳐 동해안을 따라 북쪽 끄트머리 강원 삼척까지 다니며 기도하게 만드는 정권은 처음 봅니다.

저는 1989년에 북녘 땅도 밟아봤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지랖 넓게, 한반도 지도의 남과 북, 동과 서를 다 찍고 다니는 셈입니다.

마음은 뜨끈해도, 육신은 속일 수 없어 사실 고단합니다. 그러나 지금 제 생명은 주님께서 덤으로 주신 것이니, 남은 생을 뭐 하나라도 더 살리기 위해 애써야 한다, 그런 각오로 기꺼이 다니고 있습니다.

강정마을에 있는데 ‘부산 기장군 고리원전 1호기 사고 한 달 간 은폐’.. 이런 소식이 들려왔어요. 단단히 미쳤구나.... 싶더군요. 육지고 섬이고 간에, 정상적이고 상식적으로 작동되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이번 고리원전 은폐 사건은, 후쿠시마 원전 재앙 원인하고 비슷해요. 이번에는 천운으로 폭발 안하고 넘어갔다지만, 앞으로도 그럴까요.

후쿠시마의 강제 피난 구역인 30킬로 반경을 고리원전에 적용하면, 해운대 등 부산 전체를 포함해서 주민 330만 명이 삽니다. 조금 더 넓히면 500만 명입니다.

사고관계자들은 완전범죄를 시도해서, 아예 기록도, 보고도 안했습니다. 더욱 가관인 건 그 와중에, 은폐를 주도한 현장 관리자가 위기관리실장에 임명되었고, 사고가 난 고리원전에 외신기자들을 불러다, 한국원전의 안전성과 우수성을 홍보 했다는 겁니다.

이런 대형사고가 있었다는 게 한 달 뒤에나 알려진 것도, 식당에서 한수원 직원들끼리 수근 거리는 걸 우연히 들어서였습니다. 고리원전만 속였을까요. 고리원전만 위험 할까요. 저는 절대 아니라고 봅니다. 전체 원전을 다시 점검 한다 어쩐다 호들갑을 떱니다.

이런 정부가 ‘핵 안보 정상회의’를 한답니다. 핵무기, 핵발전소 장사꾼들을 위한 회의에 불과합니다. 지난해에는 국정원이 후쿠시마 방사능이 한국에서도 검출되었다는 보고서를 발표를 못하게 막았다고 합니다. 이명박 씨가 주도하는 원전 수출 홍보효과가 반감될까봐 그랬답니다. 국민의 안전, 국민의 생명 따위는 애초부터 관심 없던 사람들입니다.

삼척과 영덕에 신규원전 후보지 발표일이 지난 해 12월 23일입니다. 성탄절 직전, 금요일이었습니다. 성탄 선물 한 번 기막히죠.

해군기지든, 핵발전소든 그 무슨 일이든, 정책이 자신 있고 떳떳하면 꼼수가 필요 없습니다. 정당하고 정의로운 일이라면, 시간이 걸려도 결국은 국민의 마음을 얻기 마련입니다. 당당하지 못하고, 진실하지 못하니까, 물리력으로 누르고, 조작과 술수를 쓰고 폭력에 의존합니다. 공의로운 일이라면, 하느님께서 “참 좋다”며 기뻐하실 것이고, 사랑이 드러날 일이라면, 예수님께서 환호하실 겁니다.

그러나 핵발전소를 두고 과연 그러실까요? 원전이 들어서면 가동되는 30, 40년 동안 불안합니다. 수명이 다하면 이제 폐로를 위해 방사능 영향력이 줄어들기를 또 30, 40년 기다려야 합니다. 짧게 잡아 기본적으로 60년, 80년, 원전하고 살아야겠죠.

그리고 그 뒤에는 핵폐기물을 처분해야 하는데, 국민들이 계속 똑똑해지고 있기 때문에 안전한 처분장 찾기는 갈수록 더욱더 어려워질 겁니다. 고농도 방사능은 반감기가 10만 년입니다. 백 만년 가야 독성이 줄어드는 플루토늄도 있습니다. 핵발전소 지역 자체가 영구 핵폐기물 처분장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은 미국, 프랑스, 러시아, 일본에 이어 23기로 원전보유국 세계5위입니다. 원전 밀집도는 1등입니다. 1등에 집착하는 나라답습니다. 이미 핵발전소가 너무 많습니다.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한다 해도, 이미 쓰고 있는 핵발전소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두고두고 세세대대 후손들에게 큰 죄를 짓고 있습니다.

핵발전소가 바로 핵무기입니다. 핵무기 발사보다 쉬운 게 원전 테러예요. 원전을 테러 하고, 원전 사고 나면 그게 핵 테러지 뭡니까. 후쿠시마 원전 재앙은, 히로시마에 떨어진 핵무기 한발보다 168.5배 더 강력한 걸로 드러났습니다. 핵발전소가 있으면 핵무기를 언제든 만들 수 있습니다. 핵 테러로부터 안전한 세상 운운하는데, 세상 어디에도 안전한 핵은 없습니다. 오직 핵 없는 세상만이 안전합니다.

미국 스리마일, 러시아 체르노빌, 일본 후쿠시마가 세계 3대 원전참사입니다. 프랑스도 지난해에 핵폐기물 처분장에서 사고가 있었습니다. 이제 한국이 대기명단 1순위입니다. 순번도 순번이지만, 무엇보다 정부나 원전 마피아들의 부패와 부도덕함을 볼 때, 우리도 핵 재앙을 피해가지 못할 것 같아, 정말로 불안하고 걱정스럽습니다. 해외에서는 일본 원전 사고는 곧 한국에서 일어난 사고로 봅니다. 그러니 이 좁은 국토에서 원전사고가 나면 그걸로 끝, 파국입니다.

전쟁 없는 세상, 핵 공포 없는 세상은 인류문명이 나가야 할 궁극적인 진행방향입니다. 이를 향한 인간의 헌신 속에서 하느님의 의로움과 그리스도의 사랑이 최상으로 표현될 것입니다.

지역경제 운운하며 당장 돈 몇 푼으로 미끼 삼고 흥정해대는 이들에게 양심과 운명, 후손들의 미래를 팔아넘기지 맙시다. 비루하고 초라하게 살지 맙시다. 배고프다고 청산가리 넘길 순 없지 않습니까.

어제 그제는 경남 밀양에서 탈핵 희망버스 행사가 있었습니다. ‘핵발전소 필요 없다. 송전탑을 막아내자’는 게 구호입니다. 76만5천킬로볼트 밀양 송전탑은 울진 신고리원전 5, 6호기에서 생산될 전력을 도시로 수송하기 위한 것입니다. 지난 1월 16일, 밀양 촌로 74세 이치우 어르신이 마을을 관통하는 송전탑을 막다막다, 어찌 방법이 없으니 ‘오늘 내가 죽어야 이 문제가 해결되겠다.’며 분신 사망하셨습니다. 참가자들과 주민들은 한국전력이 송전탑 세우려고 나무를 베어난 자리에 생명의 나무를 심었습니다.

죽음의 산업을 통해, 먹고 살 길을 찾는 사회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도시 사람들의 편리와 소비를 위해 시골사람들, 지방 사람들에게 전적인 희생과 부당함을 강요하는, 그런 불평등하고 불의한 사회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삼척과 영덕에서 신규 원전 유치를 막고, 밀양에서 송전탑 건설과 신고리원전 5,6호기 건설을 막는 일은 내 지역, 내 자신, 나 자신 생존과 생명을 지키려는 당연한 자위권 행사이고 정당방위입이다. 그러나 그 의미는 그보다 크고 위대합니다. 한반도 전체와 국민 모두의 생존과 안전, 후손들의 생명과 앞날을 향한 결정적인 이정표를 세우는 것입니다. 나아가 동북아시아와 지구공동체 전체에 새로운 패러다임과 문명 시대를 선언하는 것입니다. 참된 인간의 품격과 국격은 이런 겁니다.

체르노빌 참사를 증언한 책을 보니, 방사능에 피폭된 아이들은 커서 무엇이 될까를 얘기하지 않고, 자기가 언제쯤 죽을까에 대해 주고받더군요. 비극도 이런 비극이 없습니다. 죄도 이런 죄가 없습니다. 핵 없는 세상이야말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과 헌신이며, 가장 고귀한 유산입니다. 삼척시민들은 이미 이십년 전에 그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눈앞의 이익과 돈이 우상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지금 다시금 도전받습니다만, 삼척이고 영덕이고, 절대 신규 원전 못 들어선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더 이상 핵 마피아들의 거짓에 속지 않을 것이고, 그 길은 결코 들어서서는 안 된다는 진실을,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알아버렸습니다. 우리는 지금 딱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미래인가 퇴보인가, 생명인가 죽음인가, 평화인가 공포인가. 둘 중 하나입니다. 핵 문제에는 대충 중간이 없습니다. 2012년을 기필코 대한민국 탈핵 원년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사제단 신부님들과 저는 오래도록 소외된 곳, 힘없고 미약한 사람들의 아픔을 봐왔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또한 목격해온 놀라운 사실은, 하느님께서는 바로 이 숱한 눈물을 통해 하느님 나라를 세우시고, 그 주인공으로 만들고 계시다는 겁니다. 겨자씨가 거목으로 자랍니다. 누룩이 큰 빵을 빚습니다.

세상눈에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불의하고 부당한 것들을 바로 잡고, 하느님의 의로움과 사랑을 증거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약자들이 보여주는 엄청난 생명력과 숭고함을 통해 하느님 나라가 다만 꿈이 아니라, 죽어서 갈 수 있는 그 어떤 멀고 먼 곳이 아니라 이 지상에서, 모두에게 가능한 현실임을 보여주십니다.

제주 강정에서 부산 고리, 경남 밀양, 경북 영덕, 강원 삼척까지 십자가의 길입니다. 전례 없이 아주 길어졌습니다. 전례 없이 넓고 뜨거워진 생명의 고리입니다. 더욱 크고 강해지고 있는 평화의 길입니다. 하느님의 선물과 축복이 더 많이 쏟아지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리스도의 수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따르는 일이 말처첨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길을 통과해야만 부활할 수 있음을,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음을 우리는 압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생명과 희망의 담지자입니다. 공동선과 평화의 증거자입니다. 임마누엘, 그리스도께서 세상 끝까지 우리와 함께 하겠다고 하시잖습니까. 누구보다 용기 내고, 서로 힘주면서, 믿으면서, 기쁘게 이 여정을 갑시다. 고맙습니다.

문규현 신부 (전주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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