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 지옥
[청소년칼럼-안은초]
우리 학교 등굣길은 기숙사에서 학교까지 1.5km를 걸은 후에야 도착하는 힘든 여정의 길입니다. 아스팔트와 보행자용 블록이 깔려있는 산길. 그나마 등굣길은 내리막이라 좀 낫지만, 하굣길은 갖은 짜증을 다 내게 되는 험난한 코스가 되고는 합니다.
그 둘 중, 오늘 제가 소개하고 싶은 길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친구들과 함께 하는 즐거운 등굣길. 그곳에서 벌어지는 아무도 모르는 저 혼자만의 사투에 관해서입니다.
사실 제가 그 존재에 대하여 이렇게 크게 느낀 것은 극히 최근이고, 그 이전에 그 존재는 제가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정도의 미미한 존재감을 뿜어냈었지만, 저는 요즘 그 존재감을 100% 아니, 200%는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존재는 다름 아닌, 정말 다름 아닌 아스팔트 위에서 방황하다 말려 죽거나, 깔려 죽어가는 분홍빛 생명. 그렇습니다. 바로 ‘지렁이’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지렁이를 징그럽다 느끼고, 싫어한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사실 저에게 있어 지렁이는 미워하기가 더 힘든 존재입니다. 개인적으로 지렁이를 생각하면 위로 세살 차이 나는 우리 오빠가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 함께 놀 또래친구가 없었던 우리 오빠는 유난히 길바닥을 기어 다니던 지렁이에 그렇게 애착을 가졌다고 합니다. 자신의 친구들이라며 열 손가락 모두 지렁이를 칭칭 감아 소개시켜주던 우리 오빠의 어린 시절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던 우리 엄마. 확실히 오빠는 제가 봐도 좀 유별난 아이였지 싶습니다.
“난 진짜 지렁이가 내 친구라고 생각했어. 정말 내 친구라고는 지렁이 밖에 없었거든. 그런데 어느 날 지렁이 친구밖에 없던 우리 집에 닭 친구가 온 거야. 나는 이제 이 두 친구를 소개시켜줘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지렁이 친구들과 함께 닭장으로 갔어. 그리고 닭 친구에게 지렁이를 보여주면서, 얘가 내 친구 지렁이야. 하고 소개했는데 갑자기 닭 친구가 손가락에 감겨 있던 지렁이 친구를 뜯어 먹는 거야. 손가락에 반 토막 남겨진 지렁이 친구를 보고는 깜짝 놀라서 제지하려고 손으로 닭을 밀면서, 그러면 안돼! 라고 했는데 그러자마자 이번엔 내 손가락을 물더라고. 너무 충격적이었어.”
아무튼, 지렁이 친구를 잡아먹은 닭을 제외하면 오빠와 지렁이 친구의 사이는 꽤나 훈훈하였기 때문에 저는 지렁이가 오빠와 연관 검색어처럼 떠오르면서 그 분홍빛 친구가 친근하게 느껴지는 편입니다.
하지만, 등굣길 지렁이는 전혀 반갑지 않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등굣길에 보이는 지렁이의 80%가 죽은 사체이기 때문입니다. 차에 깔려서, 태양에 말려서 죽어간 지렁이들의 시체가 늘 지나다니는 도로에 즐비하다는 점은 썩 유쾌하지 않은 기분입니다. 여기도 마른 지렁이, 저기도 마른 지렁이……, 촉촉하고 아늑한 흙속에서 나와 하필이면 아스팔트 길바닥으로 빠져나오게 된 지렁이들에 모습은 볼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아 속이 울렁거리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막 흙 속에서 나와 아스팔트 위에서 꾸물거리고 있는 지렁이들도 문제입니다.
처음엔 작은 지렁이나마 나무로 젓가락을 만들어 흙 쪽으로 옮겨주었는데, 그 수가 너무 많다는 것을 체감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그 운반도 포기하게 되어버렸습니다. 아무리 작은 지렁이라도 상처내지 않고 나무로 옮기려면 시간이 좀 드는데, 하필 학교 주변 땅이 좋은지 이 지렁이들은 지렁이 중에서도 특히 알차고 덩치 큰 놈들만 태반이라 작업할 엄두가 안 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꿈틀거리는 지렁이들을 그냥 지나칠 때마다 드는 죄책감은 생각보다 컸습니다. 저 지렁이도 곧 제 친구들처럼 말라가겠지 생각하면 그 지렁이가 마치 내 뱃속에서 꿈틀거리듯 속이 안 좋고 기분도 다운됩니다.
그래서 지렁이들에게 미안합니다.
아스팔트를 너희가 다니는 길목에 깔아서,
아무 예고도 없이 죽게 만들어서 너무 미안합니다.
저는 오늘도 아무런 생각 없이 지렁이들의 지옥 위를 걸어 내려갑니다.
안은초/ 17살 아웃사이더. 몇몇 대안학교와 홈 스쿨을 하다가, 올해 간디학교에 입학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