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의 한복판에서 길을 잃다

[청소년칼럼-안은초]

2011-07-14     안은초

중간고사가 끝나고 저희 학교의 학사 일정에는 학년 별 이동학습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일학년은 제주도 도보, 이학년은 필리핀 이동학습, 삼학년은 인턴쉽을 하는데, 떡하니 일학년 새내기(이젠 새내기라 할 시기도 지났지만)인 저는 제주도 도보의 일주일 여정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그룹 홈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 올레 길 탐방을 한 적이 있어 무언가 마음은 놓였지만, 제주도 올레와는 전혀 다르다는 선배들의 증언 덕택에 불안한 마음 반, 설렘 반이었습니다. 이미 도보 내내 함께 다닐 조도 다 나누고, 돈도 내고, 제주도 도보를 위한 강의도 들은 후라서 빼도 박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니 별 수 없이 즐겨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제주도 도보를 가기에 앞서, 저희는 우리 도보의 주제를 정해야 했습니다. 우리가 걷는 것에 대한 주제를 정해야 한다는 말인데, ‘느리게 걷자’나 ‘갈 때까지 가 보자’등의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젊음의 한복판에서 길을 잃다’가 저희 도보의 주제가 되었습니다. 길을 찾으러 나서도 되는 상태이지만, 길을 잃어버린 그대로도 나쁘지 않다는 느낌이라나? 우리는 인생에 17년째 되는 날 외딴 섬 제주도에서 길을 잃게 되었습니다.

▲ 제주 앞바다.(사진/한상봉 기자)

제주도는 저희가 길을 잃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컸습니다. 비가 오는 듯 안 오는 듯 구름 덮인 날씨는 도보에 안성맞춤이었고, 우리가 걸어갈 도로 옆에는 제주도의 깨끗하고 돌 많은 바다가 끝 없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짠 조원들과 함께 움직였습니다. 저희 조는 조장인 임 모양과 귀여운 다 모양, 즐거운 빈 모양, 진지한 진 모양, 장난스런 동 모군, 재간둥이 정 모군, 엄마 같은 성 모양, 키다리 황 모군, 또라이 건 모군과 저, 담당 선생님 상수 쌤까지 11명. 뜬 건지 가라앉은 건지 알 수 없을 정도의 강한 개성들의 조합이라 걱정이 되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들뜬 마음을 안고 제주도에서의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제주도 도보를 먼저 갔던 선배의 조언이 떠올랐습니다.
‘제주도에서는 자신의 인생에 있던 모든 노래들을 다 부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을 거야’
저는 그 조언을 아낌없이 조원들과 공유했고, 곧 우리는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제주도가 떠나가라 노래를 불러댔습니다. 가요, 동요, 트로트, 애니메이션 주제곡에 심지어 교가까지……, 교가를 좋아하는 학생들은 꽤 드물다고들 하지만 우리 학교 사람들은 교가를 꽤 좋아하는 편이라 부르는데 큰 위화감은 없었습니다.

노래를 부르고 걷고, 또 노래 부르고 또 걷고……, 발바닥에 잡힌 물집이 터지고, 생기고를 반복하다 결국 굳은 살로 바뀔 때 까지 우리는 걸었습니다.
“소대는 본 조교의 말을 듣습니다!”
“예……,”
“대답은 항상 짧고 굵게! 알았습니까?!”
항상 에너지가 넘치는 에너자이저 다 모양의 힘찬 구령을 들으면서……,
“어머니 기다리세요! 꿈의 파라다이스가 눈앞에 있어요! 그러니 아들아?! 조금만 더 힘을 내렴.”
자문자답의 경지에 오른 또라이 건 모군이 모래사장을 파헤치는 모습을 보면서……,
“당신이 어떻게 내게 이럴 수 있어?!”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어요!”
“결국 그거야? 날 버리는 이유가 고작 그 남자야?!”
동 모군과 함께 어느 아침 드라마와 같은 상황극을 연출하다 서로 어의가 없단 듯 폭소를 터트리면서 우리는 걷고 또 걸었습니다.

평소 할 기회가 별로 없었던 친구들과의 수다와, 간간히 천국을 선물해주던 휴식시간은 정말 달콤했습니다. 선생님들이 말려도 분수대에 뛰어들어 옷이 쫄딱 젖었고, 비가 오다 말다 제 멋대로 오락가락하는 날씨를 불평하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머리 위를 뜨겁게 내리 쬐는 태양을 원망하며 다시 그 비를 그리워하기도 하였습니다. 즐거워서 미친 듯이 웃다가, 힘들어서 말을 하지 않고 이것저것 생각하다 혼자 진지해져 보기도 하고, 힘들어 몸이 축축 늘어지던 때 친구들의 에너지를 받고 힘을 내기도 했습니다.

즐거운 일만 있던 건 아니었습니다. 가족들과의 올레 이후 두 번 다시 오르고 싶지 않았던 지옥의 성산 일출봉 계단을 올라야 했고, 아침이 얹혔는지 아픈 바람에 한라산을 오르지 못했고, 피곤한 몸으로 여러 명의 사람들이 부대끼며 지냈기 때문에 사소한 트러블들이 간혹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친구들과 함께 오른 성산 일출봉의 공기는 달았고, 오르지 못한 한라산은 제주도의 여운을 남겨 주었으며, 사소한 트러블들은 친구들 간의 이해를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가 되어주었습니다.

전쟁 같은 일주일은 금방 지나가 저를 지금 학교 전산실 앞에서 키보드를 두드리게 인도했지만, 끝이 없을 줄 알며 걸었던 젊은 우리들의 ‘길 찾기’는 마음 속 한 편에서 아직도 끝을 모른 체 걸어가고 있습니다. 학교에 다시 적응해가고 있는 지금 역시 힘들게 느껴졌었던 그 시간이 자꾸만 생각나고 그리워지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제주는 정말 아름다운 섬입니다. 미니미니 랜드도 있고, 미로 공원도 있고, 초콜릿 박물관도 있어 체험할 것도 많습니다. 그것도 분명 좋은 여행이 되겠지만, 저는 용기를 내 일주일 정도 해안가를 걸어가는 제주도 도보도 꼭 추천하고 싶습니다. 새카맣게 타버린 살들만큼 얻어가는 무언가 하나쯤은 꼭 있을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그렇게 또 하나를 배워가며 새내기라 불렸던 일학년 일 학기를 무사히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이 학기에 우리들은 마냥 새내기가 아닌, 학교에 조금씩 물들어가는 어엿한 간디인이 되어가겠지요. 또 설렘과 두려움이 함께 공존해 갑니다.

꿈꾸지 않으면 - 간디학교 교가

꿈꾸지 않으면 사는게 아니라고
별헤는 맘으로 없는길 가려네
사랑하지 않으면 사는게 아니라고
설레는 마음으로 낯선길 가려 하네

아름다운 꿈꾸며 사랑하는 우리
아무도 가지않는 길가는 우리들
누구도 꿈꾸지 못한 우리들의 세상 만들어 가네

배운다는건 [배운다는건]꿈을꾸는것
가르친다는건 [가르친다는건] 희망을 노래하는것
배운다는건 [배운다는건]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건 [가르친다는건] 희망을 노래하는것
우리 알고 있네 우리 알고 있네
배운다는건 가르친다는건
희망을 노래하는것

안은초/ 17살 아웃사이더. 몇몇 대안학교와 홈 스쿨을 하다가, 올해 간디학교에 입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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