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입식운동, 생명 살리는 선순환 고리

안동교구와 서울대교구가 진행하는 자급퇴비 마련을 위한 암송아지 입식자금 지원운동

2011-04-18     정현진 기자

'한강이', '행신이'. 안동교구 온혜공동체 농민 이기환 씨의 축사에서 지난 해 12월 구제역으로 살처분 된 소들의 이름이다. 한강이는 서울 한강성당, 행신이는 일산 행신동 성당에서 ‘자급퇴비를 위한 암송아지 입식 지원운동’으로 보내 준 소들이었다. 이기환 씨는 1월 출산을 앞둔 입식소 3 마리를 포함한 8 마리의 소를 살처분 해야 했다.

구제역이 발생한 온혜로부터 살처분 반경 내에 들었던 쌍호 공동체에서도 입식소 10 마리와 자가소 20 마리가 고스란히 살처분 당했다. 안동교구 내 12개 공동체에 입식되어 있던 68마리의 소 중에서 13마리는 살처분, 17 마리는 백신을 접종했다.

작년 말 일어난 구제역 사태의 충격은 공장형 축산과 식생활 문화에 대한 본질적 성찰과 변화를 요청하고 있다. 그런 중에 이미 우리 곁에서 실현되고 있는 대안이 있다. 안동교구와 서울대교구가 함께 해 온 ‘자급퇴비를 위한 암송아지 입식 지원운동’이다. 이 운동은 10여 년의 시간을 통해, 도시와 농촌, 사람과 땅, 교구와 교구간의 상생을 추구해 왔다.

유기농사를 지으며 생명농업을 고수하던 안동교구 농민 공동체와 서울대교구의 도시 생활 공동체는 ‘소’를 매개로 도시와 농촌, 그리고 교구 간에 협력과 결속의 길을 텄다. 입식소는 단순히 유기축산으로 얻어진 좋은 고기가 아니라 사람과 땅, 가축들이 공생하는 생명의 선순환을 만드는 중심이다.

단순히 농민을 지원하고 깨끗한 먹을거리를 얻는다는 것 이상으로 소 입식운동은, 자급퇴비를 통해 땅을 살리고 유기농사와 유기축산을 지속시킨다. 또 명절에 맞춰 소 나눔을 하면서 명절에만 고기를 먹고 육식을 줄이자는 밥상문화의 변화를 이끌었다. ‘생명 농산물’이라 부르는 퇴비로 지은 유기농산물의 직거래는 농민과 도시 소비자들이 직접 만나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를 쌓는 계기가 되었다.

2001년부터 서울대교구 목동 성당과 안동교구 쌍호 공동체 농민들이 땅을 되살리는 자급 퇴비를 위해 맺었던 약속은 소 입식 운동과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의 우리농 매장 운영이 맞물려, 벌써 서울교구의 75개 본당과 안동교구의 12개 공동체가 함께한다.  그동안 이 운동을 위한  ‘도.농간의 약속’이라는 운영방침도 생겨났다.

이 운동에 또 하나의 기반이 된 것은 그 전부터 진행되었던 ‘명절 소나눔’이었다. ‘유기농 지역의 청정한 소’라는 인식으로 목동과 양천 성당에서는 명절마다 안동의 농민들과 소고기 직거래를 하고 있었다. 깨끗한 고기를 저렴하게 먹는다는 것에 앞서, 예전에 명절에만 고기를 먹었던 것처럼 육식을 줄여보자는 목적이 있었고 이러한 공감대의 확산과 생명농업에 대한 이해가 입식운동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세월이 갈수록 성과를 쌓으며 이어지는 이 아름다운 약속에 대한 이야기를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의 이순일 씨에게 들었다.

▲ 지난 2010년 9월, 문정동성당에서 봉헌된 추수감사미사와 입식자금 전달식.(사진제공/안동가톨릭농민회)

입식의 1차 순환은 약 4년 정도 걸린다. 우선 6~7개월 된 송아지를 구매한다. 예전에는 우량 송아지를 얻기까지 몇 개월이 걸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안동 농민들에게서 자체적으로 우량소가 나오기 때문에 우시장을 통하지 않고 바로 입식을 하기도 한다. 송아지가 정해지면, 농민 대표와 도시 대표가 운영위원장으로서 어느 공동체의 누구에게 맡길 것인지 선정하고 우사와 먹일 사료도 검토한다. 축사는 재래식이어야 하고 사료도 유기농산물에서 얻는다. 이렇게 키워진 소가 도축되기까지 약 45개월에서 50개월이 걸린다. 소가 크는 동안 두 번째 송아지까지는 농민의 몫이다. 사육비인 셈이다. 새끼를 낳고 비육기간을 거쳐 470kg 이상이 되면 설과 추석을 즈음해 도축하고, 성당에서 나눔을 한다. 설과 추석에 시기를 맞추지 못한 소는 ‘터울소’로 중간에 한 번 씩 도축하기도 한다.

처음 시작할 당시의 송아지 값은 350만 원. 송아지 값은 변화가 있지만 아직도 그 금액을 유지하고 있다. 1년에 두 번 내려보내는 송아지 값의 차액은 성당 공동체와 농민이 함께 소 나눔을 통한 이익금을 일정 부분 불입하는 자조금과 함께 특별 기금으로 조성되어 유사시를 대비한다. 이렇게 조성된 기금은 소 사육 때 일어나는 사망, 불임 등의 사고와 자급 퇴비 생산, 소나눔 활동, 협력모임 운영 등에 사용된다. 

성당에서 직거래를 하는 고기는 1kg당 13000원. 한 마리를 부위별로 1kg씩 포장해서 제공하는데, 소의 내장은 처리과정에서 약품이 들어가기 때문에 제외한다. 직거래되는 소 한 마리 분의 고기를 현금으로 환산하면 800~900만 원 정도다. 이렇게 해서 소비자들은 좋은 고기를 먹고, 이익금은 다시 송아지를 입식하는데 쓰인다.

▲ 홍은 3동 성당의 설 소고기 나눔. (사진제공/안동가톨릭농민회)

소입식-자급퇴비-유기농산물-생명농산물의 유기순환적 관계

안동교구는 소 입식으로 분회마다 공동 퇴비장을 마련했고, 해마다 그 거름을 똑같이 나누어 유기농사를 짓는다. 이렇게 거두어진 생명농산물은 자매결연을 맺은 성당에 우선적으로 공급된다. 소 입식으로 시작된 자급퇴비 마련은 유기농사와 생명농산물로 유기적 순환을 형성한다. 이 과정에서 도시 소비자들은 농민과 농업 그리고 먹을거리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게 된다. 

“유기농 자체도 힘든데, 유기축산은 정말로 선택하기 힘든 일이죠. 우선 안동의 농민들이 굉장히 애를 썼고, 지금은 그 모습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이해하면서 이루어진 일들입니다. 서로가 성실하게 해왔던 결과죠. 이제는 안동과 서울만의 일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서 다른 교구에서도 이런 운동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숙제입니다. 구제역 때문에 미뤄지기는 했지만, 원주교구와 광주, 전주교구에서도 검토를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힘든 일들이 많지만 이런 성과들이 있을 때, 많은 보람을 느낍니다.”

사제들의 일방적 결정과 소 입식 운동 의미전달에 어려움
봉사자, 판매자 아닌 환경 활동가

성당에서 우리농 매장을 운영하고 입식운동을 이끄는 활동가들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성당의 운영 구조다. 몇 년씩 애써서 일궈온 일들이 본당 사제의 말 한 마디로 끝나는 일도 있고, 사목회와 의사소통도 어렵다. 농민과 농업, 그리고 소입식 운동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한계다.

물론 적극적으로 호응해주고, 다른 성당으로 부임했을 때 확산의 동기를 마련해주는 사제들도 있고, 나중에 신자들의 설득으로 이 운동을 이해하게 된 사제들도 있지만, 성당 안에서 농산물을 판매한다는 것에 반대해 하루 아침에 매장 문을 닫는 경우도 있다. 활동가부터 안동교구의 실무자, 심지어 환경사목 담당 사제가 설득에 나서기도 하지만, 상황을 이해했다고 해서 찬성으로 돌아서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사제들의 이해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을 함께 성실히 해왔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백신을 맞은 소들에 대한 우려가 있어서 식약청의 검증을 받아오는 과정이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많은 이들이 안동 농민들의 상황을 공감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 가농소(입식소)도농협력모임.(사진제공/안동교구가톨릭농민회)

다시 새로운 2011년이 시작된다 

구제역 발생과 살처분을 감당하지 못해, 잠시 마을을 떠났던 쌍호 공동체 농민들은 지난 3월 다시 농사를 지어야 한다면서 마을로 돌아왔고, 교류하던 성당의 신자들을 만나 앞으로의 일정을 공유했다.
환경사목위원회에서도 다시 입식을 위한 논의를 준비 중이다. 소를 다시 키울 수 있는 여력이 남아 있을까 걱정스럽지만 이 일의 원래 목적을 위해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또 이런 저런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우리농 매장의 개장을 비롯해 우리농촌살리기운동과 입식운동은 지속된다. 곧 번동 성당에서 우리농 매장을 열고, 구파발 성당에서는 매장 운영을 앞두고 활동가 의무 교육을 시작한다.

“15년 동안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이 만들어놓은 성과는 조금씩이라도 나아가면서 물러서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매장도 꾸준히 늘고 있고 한 번 만들어 놓은 성과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 암송아지 입식운동은 세계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우리가 만든 첫 사례입니다. 많은 주목을 받고 있어요. 이것은 우리 모두가 함께 한 일입니다.”

현재 서울대교구의 총 210개 성당 중 75개 성당에서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와 연계돼 있고, 활동가들은 약 850명이다. 이들은 봉사자나 판매자가 아닌 활동가다. 나름대로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스스로의 활동을 먹을거리와 도농교류를 위한 운동, 결국 생명운동이라는 것에 동의하면서 자신의 문제로 인식해가고 있다.

안동교구 가톨릭농민회 권기찬 간사는 소 입식 운동이 교구간 협력 모임의 큰 본보기가 되고 있다면서 “소를 매개로 시작된 활동이 안동과 서울, 대표적인 농촌과 도시 교구 간의 단단한 결연을 맺게 했다. 무엇보다 소, 퇴비, 농산물 직거래라는 순환구조를 만들었다는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밝혔다. 그리고 살처분 되었지만 안동 공동체의 소들은 양성반응이 없었다는 것도 큰 희망이 될 수 있다고 긍정적 견해를 보였다.

‘퇴비 자급’을 위해 시작된 목동성당과 쌍호공동체의 만남은 이제 12개 공동체와 20여 개 성당의 만남이 되었고 자급퇴비 생산 체계, 공장형 축산과 축산유통 체계의 탈피, 건강한 먹을거리 생산과 식문화 형성 등을 지향하며 점점 더 많은 동심원을 그려가고 있다.

목3동 성당에서 4년 째 활동가로 일하는 유미영(세실리아)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입식은 농민을 살리고 도시에서도 좋은 먹을거리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본래 의도를 위해서 꼭 해야만 합니다. 그동안의 노력으로 신자들 사이에서도 반응이 좋고, 도-농간의 충분한 신뢰 관계가 형성되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먹을거리를 지켜야 합니다. 적은 양이 생산되면 그만큼 적게 먹으면 됩니다. 과식을 피하면서 함께 나누면, 더 많은 이들이 건강하게 먹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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