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사람이라면 내 생각을 해'반
[청소년 칼럼-안은초]
눈 깜짝한 사이에 어느새 제가 고등학생이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저희 오빠가 다니고 있었던 학교인 ‘산청 간디 고등학교’에 들어가 학교에 조금씩 적응해 나가고 있는 새내기인데, 간디학교에서 시간은 빠르고도 빡빡합니다.
무엇보다 학교에 있으면서 크게 와 닿았던 점은 바로 세상과의 단절(?)이었습니다. 워낙에 산 속 깊은 곳에서 텔레비전 하나 없이 살다 보니, 시간을 내서 전산실에 따로 가 보지 않으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조차 제대로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덕분에 지금 떠들썩하고 있는 일본의 대지진과 원전 폭발 사고조차 저는 한 박자 늦게 들고 있지요.
그렇게 지내다 보니 시간은 빠르고, 컴퓨터와는 멀어지는 나날 덕분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글을 보내는 것조차 이렇게 더뎌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집 가족들은 왜 글을 올리지 않느냐고 재촉하는데, 저는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고…… 어찌 어찌 시간이 조금 남아 글을 올릴 수 있게 되었지만, 언제 또 들쭉날쭉 제 멋대로 글을 올릴지 알 수 없는 형편입니다.
간디 학교 새내기가 되었으니 이것저것 쓸 말은 정말 많지만, 오늘은 반 이름과, 그 이름을 정하게 되기까지의 해프닝을 쓰려고 합니다. 미운지 고운지도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일년 동안 내가 잘 적응해 살아가야할 저의 반이니 저는 굉장히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간디 학교에서 저는 1학년 2반에 배정되었습니다. 저는 지금껏 살면서 1반만 되어 왔기 때문에 아직도 1학년 1반과 2반 중 어떤 반이 제 반인지 헷갈리곤 합니다. 다행히 우리 학교는 학생들의 마음대로 반 이름을 바꿀 수 있다더군요. 물론 선생님들은 아직도 반 이름보다는 1반, 2반이라고 더 많이 부르지만, 그래도 저희는 나름대로 열심히 머리를 쥐어짜 반 이름을 완성시켰습니다.
처음 저희 반에서 낙찰되었던 이름은 ‘강력반’이었습니다. 형사들이 있는 그 강력반이라는 뜻도 있지만, 숨은 뜻은 ‘강추! 역시 우리 반’의 줄인 말입니다. 1반의 이름은 ‘탈레반’이었는데, ‘탈레반’과 같이 강력한 후보였던 ‘허허, 그 양반’을 왜 하지 않았는지 저로서는 조금 의문이 들었습니다.
다른 학년들의 반 이름도 정말 창의력이 솟아나는 이름이었는데, 우리 학년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았던 이름은 3학년 우리 오빠가 있는 반인 ‘내가 너를 사랑하긴 했나반’인데, 학생들이 전부 모여 총회를 여는 ‘식구 총회’시간 때, 학생 부회장 오빠가 그 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느낌 있게 불러달라고 학생들이 놀려대고는 합니다.
그렇게 반 이름을 정한 후, 반 이름을 뭐로 정했냐고 물어보는 언니들에게 ‘강력반’이라는 이름을 자랑스럽게 들이밀던 우리들. 그러나……
“에이, 식상하다. 그거 전에 있었던 이름인데”라는 충격적인 평가밖에 들을 수 없었습니다. 나름 머리를 맞대어 고생 고생해 지었던 이름이 전에 있었던 이름이었다니! 저희뿐만이 아니라 ‘탈레반’ 역시 전에 있었던 이름이었다는 것을 전해들은 우리는 과감히 다시 반 이름을 선정하기로 했습니다.
그 후보로 처음 나왔던 것은 반장 석영이의 강력한 추천이었던 ‘병아리’반. 옆 반은 ‘참새’반으로 해서 귀여움을 더욱 어필하자는 의도였지만, 반응은 그냥 저냥 보통이었습니다. 두 번째 후보는 '믿음, 소망, 사랑반'. 반 안에서 분위기 메이커와도 같은 나은이의 추천으로 꽤 많은 사람들이 찬성을 했으나, 아슬아슬하게 떨어진 아쉬운 이름입니다.
그런데 나은이가 낸 세 번째 반 이름! ‘너도 사람이라면 내 생각을 해’반’!
이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는 웃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드라마 대사같은 반 이름은 사실 신입생들이 동아리 면접을 볼 때 연극 동아리 ‘여우하품(여기 우리들의 하늘을 품다)’에서 나눠 준 대본에 있던 ‘너도 사람이라면 내 생각을 해봐’라는 대사였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찬성. 말 많고, 탈 많았던 우리 1학년 2반의 이름은 ‘너도 사람이라면 내 생각을 해반’이 되었습니다. ‘탈레반’이었던 1반 역시 이름을 고쳐 ‘넌 나만 바라반’이 되었다더군요.
반 이름 하나마저 창의적이어야 했던 간디학교에서의 생활. 아직은 정신이 없어 뭐라 말씀드릴 수 없지만, 여러모로 적응해나가 즐겁고 후회 없는 학교생활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야 아웃사이더의 생활에서 벗어나 평범하지만 범상치 않은(?)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워낙에 떠돌이 생활을 했던 터라 잘 생활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제 나름에 목표를 가지고 이 간디 학교에 정착하려고 합니다.
정신없지만, 즐거운 하루하루. 어쩌면 이제부터 간디 학교에서의 생활을 많이많이 쓰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안은초/ 17살 아웃사이더. 몇몇 대안학교와 홈 스쿨을 하다가, 최근 간디학교에 입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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