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쟤네 싸우나봐!
[청소년 이야기-안은초]
2010년 11월 27일 토요일 새벽. 많은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드디어 네팔 아이들이 한국에 왔었습니다. 아이들은 전혀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모습으로 한국에서의 추억을 안고 돌아갔고, 한국의 정과 아이들이 받은 사랑을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모든 추억이 아름답기만 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은 마음에 담아두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분명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안 좋은 모습을 보게 된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일은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보기 위해 버스를 타고 영화관으로 이동하던 중 일어났습니다.
저는 한 아이의 손을 잡고 버스에 올라탔는데, 사람이 많아 노약자석 의자 손잡이를 잡고 서 있었습니다. 아이는 그런 경험도 처음인 듯 서 있다는 사실을 전혀 불평하지 않고 즐거운 얼굴을 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그때, 등산을 하신 듯 등산 가방을 맨 할아버지께서 큰 소리로 무어라 말씀하시고 계셨습니다.
“요즘 젊은 것들은 노인이 와도 비킬 줄을 모른다니까! 어디서 어른이 계시는데 노약자석에 떡하니 앉아있어?!”
아마 노약자석에 어린 학생이 앉아 있으리라 짐작한 저는 영문을 모르고 눈을 동그랗게 뜬 아이를 힐끔 보고는 신경 쓰지 말라는 듯 어색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아마 요즘 학생이라면, 소란스러운 것을 싫어할 테니 자리를 양보하겠거니 생각했습니다.
“요즘 젊은 놈들은 정말이지 말이야!”
할아버지께서는 한참동안 그 학생에게 계속 면박을 주었습니다. 물론 양보를 하지 않은 학생도 잘못이지만, 저렇게 오랫동안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면 많이 창피할 텐데 싶어 불쌍한 마음이 드려는 찰나.
“이보시오.”
학생이 앉았다고 생각했던 그 자리에서 웬 점잖은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저는 이상하다는 생각에 고개를 쑥 빼어 그 곳을 쳐다보았습니다.
“사람들도 많은데 왜 계속 행패요?”
“뭐?! 행패?! 말 잘했다! 새파랗게 어린놈이 어른이 왔는데도 떡하니 노약자석에 앉아서 뭐하는 짓이야?!”
“이보시오. 나도 예순 여덟이라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인데……”
“예순 여덟이면 한창때지! 나는 일흔이야!!”
알고 보니, 젊은 학생인줄로만 알았던 그 사람은 사실 예순 아홉이 넘은 점잖으신 할아버지로, 정정하시긴 하나 노약자석에 앉더라도 시비 걸사람 없을만한 분이셨던 것입니다. 두 할아버지들의 언성은 점점 높아져만 가고, 저는 황당한 마음에 아이의 귀를 손으로 막았습니다.
“그럼 앉으시오.”
“앉기는 누가 앉아! 됐어! 좀 있으면 내릴 거니까!”
“그럼 행패를 부리지를 말던가!”
“시퍼렇게 젊은 놈이 자리에 앉아있으니까 그렇지!”
“아 그럼 앉으라니까? 어디 대낮부터 술을 먹고 와서.”
“그래! 나 술 먹었다! 그래서! 뭐! 한판 붙자고?!”
“이봐. 참고는 있지만, 자네는 내 한 주먹 거리도 안 돼.”
“그러니까 붙어보자고! 따라 나오라니까?!”
할아버지들끼리는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제가 보기에는 예순 여덟이나 일흔이나 똑같은 할아버지로 보였기에 아이들만 없었다면 재미있는 소재로 여겼을지도 모르겠지만, 역시 애들이 있으니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렇게 아이의 귀를 막고 서 있는데, 앞에 계시던 할머니께서 조용히 중얼거리시더군요.
“나이 먹은 게 자랑인줄 아나. 애들 보는데 시끄러워서 정말……”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더니…… 만약 다른 사람이 이 상황을 내게 말해줬으면 배꼽을 잡고 웃었을지도 모르는 일이 어찌나 답답하게 느껴지던지…… 정말로 슈퍼맨이 존재한다면 할아버지들의 싸움부터 말려달라고 빌게 될 판이었습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잠잠해지겠지……’라고 속으로 기도하며, 할아버지들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그 순간, 버스가 한 정류장에서 멈춰서더니 기타를 둘러맨 학생들이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어? 야. 쟤네 싸우나보다. 완전 잘 탔는데?”
싸움 났다는데 잘 탔다니…… 저는 괜히 아이가 그 말을 들었을까봐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말을 전혀 모르는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쟤네는 절대 먼저 못 때릴 거야. 깽값을 내야 되거든.”
할아버지한테 ‘쟤네’라니? 그리고 깽값이라니? 아무리 버스 안에서 소란을 피웠어도 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인데, 학생들은 옳다구나 좋아라하며 할아버지들의 싸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이야기해댔습니다. 할아버지들의 싸움보다, 학생들의 말버릇이 더욱 제 얼굴을 달아오르게 만들었습니다. 분명 알아듣지는 못했겠지만, 이 무슨 국제 망신인지…… 저희는 더 이상 버스에서 버티지를 못하고 내려버렸습니다.
하지만 버스에서 내린다고 해서 부끄러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괜히 아이들에게 미안해져 아이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고 다음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다행이도 아이들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꽤나 자리가 비어있는 버스 의자에 자리를 잡고 신나라 하며 좋아해 주었습니다.
저도 제가 맡고 있는 아이를 자리에 앉히고, 그 아이가 편하게 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질 때 쯤, 저는 아까와는 조금 다른 부끄러움에 부딪치게 되었습니다. 정류장에서 멈춘 버스에 타신 한 할머니 때문입니다.
그 할머니는 아이의 옆에서 버스 손잡이를 잡으시더니 힘든 내색을 하셨습니다. 아이는 할머니가 신경 쓰이는 듯, 저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어찌할 줄 몰라 하였지요.
“가네스. 할머니께 자리 양보해 드릴까?”
다행이 아이가 제 말을 알아들은 듯 밝게 웃으며 할머니께 자리를 양보해 드리고는 제 옆으로 왔습니다. 한국 아이들의 도덕책에 나오는 아이처럼, 밝게 웃으며 양보해 드리는 아이를 보니 마음이 조금씩 따뜻해져 왔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조금씩 잊어가고 있는 양보의 예절을 네팔에서 온 아이가 우리나라 어른께 양보해드리는 모습을 보며 왠지 모를 부끄러움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버스 사건이 모두 잠잠해져도, 아이들과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마음이 편치 못했습니다.
아마 우리가 점점 잊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두고 동방예의지국이라 부른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안은초/ 16살 아웃사이더. 몇몇 대안학교를 다니다가 지금은 홈 스쿨을 하고 있어요. 주로 영월에 살면서 가끔 서울에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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