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가난하고 억눌린 자를 위한 해방의 요람

[격동의 한국현대교회사-20]

2010-10-13     한상봉 기자

감옥에서 해방된 주교, 지학순

지학순 주교를 위한 기도회와 모금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던 주교가 대통령긴급조치 위반자 석방조치로 수감된 지 226일 만에 1975년 2월 17일 밤 8시 57분 800여 신자들의 열광적인 환성과 대낮같이 밝히는 카메라 프레쉬 세례를 받으며 출감하였다. 이 날 오후 6시 20분 경부터 구치소 소장실에서 대기 중이던 김수환 추기경과 함께 구치소 미결감 쪽 철창문에 나선 지 주교는 연한 옥색 한복 차림에다 백발과 텁수룩한 수염으로 형언할 수 없는 감동과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김수환 추기경의 주교관 방으로 안내된 지 주교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나는 종교인이기에 하느님의 뜻에 따라 태산같이 의연한 자세로 의를 위해 살고 의를 위해 죽겠으며, 불의를 물리치기 위해 목숨바쳐 노력하면서 하느님의 뜻대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인류와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겠다”고 말했다.

2월 18일, 지학순 주교는 명동대성당에서 재구속된 뒤 처음으로 미사를 드리면서 강론하기를 교회가 진리의 성전이 될 것과 모든 신자들이 하느님의 진리 안에서 자유를 찾는 참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독려하였다.:

"...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명동성당이 웅대하게 세워진 지 70여년이 되지만 그동안 과연 얼마만큼 진리의 교회로서, 진리를 가르치고, 진리의 지표를 주는 행위를 했는가를 생각할 때 부족한 점도 있었지만 이제 서울과 한국에서 전체 국민에 대해 “이것이 진리의 성전이다”는 뚜렷한 등대의 역할을 했다고 나는 봅니다...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교우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진리를 바로 깨닫고 진리를 자기 생활로서 실천하고 그 진리를 위해서 어떠한 희생이라도 감당할 수 있는 각오를 하고 세상에 봉사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요 참다운 교우인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행하는데 있어서 언제나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고 희생이 있기 마련입니다. 희생이나 어려움도 당하지 않고 세상의 모든 복은 자기 혼자 갖고 그러고도 내가 천당 가겠다고 하는 것은 너무 욕심이 많은 생각입니다."


자선남비에서 해방의 요람으로

한국교회가 민족의 아픔에 동참하고 민주화와 인권회복을 위한 투쟁을 전개하는 가운데 보다 성숙된 모습을 보인 것은, 197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가난한 이들에 대한 복음적 선택”을 분명히 선언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사실상 중남미 교회에서는 이미 수년 전에 메델린에서 공적으로 선언한 바 있지만, 한국교회에서는 아직 민중적 관점이 별로 투철하지 못한게 사실이다. 즉, 분단현실이 강요한 냉전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막강한 설득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해방운동에서 가난한 이들을 분명히 선택한다는 것은 무척 힘든 것이었다. 여전히 교회 안에는 반공이데올로기가 건재한 가운데 비록 일부 진보적인 사제층에서 나온 것이지만 장기적 안목에서 한국 가톨릭운동이 새로운 전망을 얻어갈 수 있는 토대로 작용하였다.

1975년 3월 10일 근로자의 날을 맞이하여 명동대성당에서는 근로자들의 권익과 민주회복을 위한 기도회가 열렸다. 당시 명동 주임신부였던 김몽은 신부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교회’라는 주제로 “근로자는 우리 주님과 가장 가까운 벗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목수일을 하신 노동자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 교회는 항상 가난하고 성실한 근로자의 교회이며, 버림받은 사람들을 위한 희망의 교회”라고 강론하였다.

한편 이 날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보다 근본적으로 교회가 민중적 선택을 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민주 민생을 위한 복음운동을 선포한다>는 선언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이 문헌은 개신교의 민중신학 발전에도 기여한 바가 있는 것이므로 장황하지만 좀 길게 발췌하기로 한다:

"우리는 이제까지 이 땅의 인권회복, 인간회복, 민주회복을 위하여 기도하여 왔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며,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어야 할 교회의 사명을 다함께 자각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자각하면 할수록 현실이 갖는 모순의 크기와 질은 더욱 더 큰 심연으로서 우리 앞에 제시되었다. 보이는 것은 단지 외형과 형식일 뿐, 진리의 길은 그를 거부하는 사람과 집단에 의하여 신경질적으로 거부되고 제도적으로 봉쇄되어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법이나 그것을 운영하는 현세의 권력집단은 극소수의 안전과 독버섯의 번영을 보장하고 대다수 민중을 그 안전과 번영을 위해 동원하고 희생시키는 것이다.

민생문제를 제쳐 놓고는 민주주의를 말할 수 없다. 민주회복, 인간회복은 국민의 인간다운 삶을 전제로 하여야 한다. 민주주의는 독재권력과 그것에 기생하는 부패특권층만을 위한 강요된 민주주의로서는 존립할 수 없다. 민중이 주체로 참여하는 민주주의로서만 비로서 진정한 민주주의가 건설될 수 있다...

민생운동은 소외되고 버림받은 민중의 조직확대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가톨릭노동청년회가 추진하고 있는 바와 같이 미조직 근로자의 조직, 산업별 및 직업별 근로조직의 확충, 어용노조에 대치할 민주노조를 조직할 수 있는 자유를 획득하여야 하며, 단결권 및 쟁의권에 대한 모든 제약을 철폐하고 외국인 투자 기업체, 교원, 공무원, 언론인 등에 있어서의 노조결성이 이루어져야 한다.

교회는 억압에 찌들은 근로자와 농민을 위하여 중요한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민중권익의 압살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모든 악법의 철폐에 교회는 앞장서야 하며 사회의 기초를 흔드는 부정, 부패의 척결에 솔선해야 한다. 잘사는 사람들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빵부스러기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연장케 해서는 안된다. 민중의 인간다운 삶을 저해하고 있는 근본원인은 민중의 게으름이나 경제성장의 불충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억압과 착취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현세의 문제는 빈곤평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빈부불평등에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여기 우리는 우리 교회의 사명에 따라 우리 사회에 누적된 비극을 청산하기 위한 민주, 민생을 위한 복음운동을 선포한다. 우리가 선포하는 복음은 이미 죽은 자를 천당으로 인도하기만 하는 복음이 아니며, 구호물자의 도착을 알리는 자선남비의 복음도 아니다. 고통받는 이웃을 하느님이 창조하신 인간다운 모습으로 되살리기 위한 복음이다. 가난하고 억눌린 자를 위해 우리 교회가 해방의 요람이 되기 위한 복음이다."

뜨거운 영혼을 해방하는 교회의 그릇에 담아

<민주 민생을 위한 복음운동을 선포한다>는 선언문에서 단순한 인권차원의 운동을 넘어서서 정의구현사제단은 교회가 “민중이 주체가 되는 민주주의”를 건설하기 위해 민중의 조직화를 확대하고, 착취와 억압을 철폐하여 빈부불평등을 해소하는 해방의 요람이 되기를 갈망하였다. 이는 당시 가톨릭운동을 한층 발전된 형태로 담을 수 있는 신학적, 이념적 명제이다. 그결과 민주당 정권하에서는 교회마저 단죄하였던 교원노조를 인정할 수 있었으며, 교리에 얽매이기 보다 복음에 사로잡힌 예언자적 그룹으로 교회가 설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1975년 4월 1일 연세대 학생들은 ‘구국 양심선언’을 발표하고 데모를 벌였으며, 4월 11일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4학년생 김상진 군이 박대통령의 부정과 불의, 독재와 탄압을 고발하는 ‘공개장’과 ‘양심선언’을 발표하고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러자 가톨릭 교회에서는 예전에 없던 추도식을 성당에서 거행하였다. 즉, 전태일 열사가 분신자살 하였을 때, 교회는 그가 자살한 죄인이기 때문에 성당에서 예식을 행할 수 없다고 거절한 적이 있다. 그러나 교회는 김상진군의 죽음을 의인의 죽음이라는 차원에서 깊이 공감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4월 18일 명동대성당에서는 가톨릭학생 지도신부단 주관으로 고(故) 김상진 군 추도미사가 열려 함석헌 옹이 “죽음으로써 말을 대신하고자 하였다”, 안충석 신부가 “4.19 정신 부활로 민주, 인간, 인권회복 이룩하자”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였다. 그 날 공개된 김상진 군의 양심선언(유서)은 이렇다. 

"탄압과 기만의 검은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보라. 우리는 이제 자유와 평등의 민주사회를 향한 결단의 깃발을 내걸어 일체의 정치적 자유를 질식시키는 공포의 병영(兵營)국가가 도래했음을 민족과 역사 앞에 고발코자 한다. 이것이 민족과 역사를 위하는 길이고, 이것이 우리의 사랑스런 조국의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길이며, 이것이 영원한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길이라면 이 보잘 것 없는 생명 바치기에 아까움이 없노라"

4월 22일 명동대성당 가톨릭문화관에서는 ‘민주회복국민회의’ 주최로 추도식이 거행되었다. 오태순 신부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추도식에서는 그가 애송하던 윤동주의 서시(序詩)가 낭독되었고, 선구자가 불리웠다. 이후 23일, 동대문 성당 주임이던 안충석 신부가 괴한들에게 불법 납치연행되었다.

한편 24일에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22일에 자행된 경찰의 명동성당 점거에 항의하는 ‘우리의 결의’와 ‘고 김상진 군의 죽음에 답하라’를 발표하였다. 이날 기도회에서는 대전교구 이계창 신부의 강론에 이어 조시(弔詩) ‘아아, 김상진’이 낭독되었다.

기인 겨울
얼음 뚫고 흐르는 맑은 한줄기
시냇물 소리여
그대 죽음이여

여윈 나무가지마다
눈보라에도 움트는 저 애잔한
푸르름이여
검은 총구에 꽂혀진
한 떨기 철쭉꽃의 눈부심이여
그대 죽음이여 ... (중략)

버림으로써 얻음이여
결단함으로써 자유에 이름이여
땅에 더불어 하늘을 모심이여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인간과 더불어 삶이여
우리 모두 삶의 외줄기 저 쌔하얀 외로운 길이여
불꽃이여
그대의 죽음이여 ... (중략)

이 어둡고 가난한 나라 곳곳에 이 힘없고
의지할 곳 없는 우리들 가슴가슴에, 손과 손에
파도로! 함성으로! 해방의 불기둥으로
부디 부디
아하! 님아 돌아오소서.

▲ 김수환 추기경은 장준하 선생의 영결미사를 집전하며, "장준하 선생의 죽음은 별이 떨어진것이 아니라 더 새로운 빛이 되어 앞길을 밝혀주기 위해 잠시 숨은 것 뿐"이라고 말했다.

또한 8월 21일 오전 10시에는 명동대성당에서 <사상계>를 발간냈던 장준하(루수)의 추도미사가 김수환 추기경 주례로 열렸다.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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