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 아웃사이더!

[청소년 글쓰기]

2010-08-08     안은초

사실 저는 정기적으로 글을 올린다는 것은 처음 해보는 경험이기에,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아직 감이 잡히질 않습니다. 제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어떤 글을 좋아하실지, 내 글이 답답하다 느끼지는 않으실지, 나는 이런 곳에 글을 쓸 만큼 실력이 되는지…… 머릿속이 여러 가지 걱정으로 가득 차 무거워졌습니다.

그런 제가 잠시 고민을 하다 내린 결론은 ‘나의 이야기를 하자!’입니다. 제가 할 줄 아는 것이라곤 그것밖에 없기도 하고, 그것이 가장 맞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가 생각한 것, 본 것과 느낀 것을 차근차근 글로 풀어나갈 생각입니다. 지루하거나 재미없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여전히 되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저는 현재 중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졸업한 16살 어린 백수입니다. 조금은 게으른 성격이라 집에서 뒹구는 것을 가장 좋아하고, 가족들 모두가 방학인지라 같이 퍼져 지내다 보니 최근 백수라는 명칭이 딱 맞는 사람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누군가 저 하나만 놓고 본다면 학교를 다니지 않는 평범한(?) 백수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저는 단순히 평범한 소녀는 아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실 ‘평범하다’의 정의는 조금 애매한 것이니까 말입니다.

16살, 어린 백수.. 행복한 이산가족

저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면 우선 가족 소개는 빠질 수 없기에 저희 집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써 볼까 합니다. 저희 부모님은 사회복지를 하시는 아동 그룹 홈 복지 원장이십니다. 사람들은 그룹 홈이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저의 설명이 절실하지만, 저도 사실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그냥 단순하게 이야기 하자면 가정집 분위기가 나는 작은 보육원이고, 좀 더 아름답게 이야기 하자면 '마음으로 낳은 아이들의 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 물론 저희 부모님의 아이들이지요. 제가 낳았다고 하기에는 여러모로 우스운 감이 있으니까 말입니다. 저는 그들의 형제 정도가 맞는 것 같습니다.

저희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그룹 홈은 총 4집이 있습니다. 서울에 ‘은총의 집’이 두 집 있고, 영월에 ‘은총의 집’하나, ‘요셉의 집’하나로 총 4집인 것입니다. 덕분에 저희 어머니는 서울에, 아버지는 영월에 사시게 되어 두 분과 함께 생활할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자주 만나러 가니 아쉬움이나 섭섭함은 없죠.

아버지께서 ‘요셉의 집’, 어머니께서 ‘은총의 집’을 하나씩 맡으시면 두 집이 남게 되는데, 그 집은 함께 봉사를 하시는 이모님들이 맡게 되셨습니다. 친 이모는 아니지만, 친 이모 이상으로 제가 사랑하는 분들입니다.

피가 섞인(?) 가족 구성원은 고등학생인 오빠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공부를 하는 동생, 검정고시 로 중학교를 졸업한 저, 엄마, 아빠로 총 다섯 사람입니다. 저희 오빠는 산청, 엄마는 서울, 아빠와 저는 영월, 동생은 나그네와 같은 생활을 즐겨 이산가족을 연상케 하지만, 사실 그 어떤 집보다도 따듯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 가족들은 현제 온 가족이 다 영월에 모여 즐거운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는 중입니다.

대안학교를 전전하며.. 

다음은 제가 다녔던 학교와 학창생활에 대해 이야기할까 합니다. 어쩌면 학창생활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저는 중학교 1학년 때 김제에 위치한 대안학교에 들어가 그곳에서 일년이 좀 안되는 생활을 했습니다. 처음 해보는 기숙 생활은 즐거웠지만 힘든 아리송한 기분이었죠. 그 학교의 교육 방침이라던가, 시스템이 저와 맞지 않다고 느껴 그 학교를 나왔지만, 나름대로 저를 단단하게 만들어 준 계기가 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곤 합니다.

그 후에 저는 홈 스쿨을 하였습니다. 말 그대로 집에서 공부를 하는 것인데, 개인적으로 초반엔 저와 맞지 않는 부분들로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월요일에만 다니는 ‘월요학교’라는 곳도 들어가 보았으나, 역시 저와는 맞지 않았던 것 같았습니다. 저는 떨어지는 자신감과 더해가는 외로움을 이기지 못한 채 아버지께 학교를 다시 다니겠노라 이야기 했습니다.

 

▲대안학교에서는 황토염색 등을 하며 나름 재미를 느낄 수 있었는데, 그마저 지금은 인연이 없다.(사진/안은초)

그래서 다닌 곳이 간디 여행학교. 이 학교는 담당 선생님의 뚫린 생각과, 즐거운 교우 관계로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지만, 옆 자매학교와 의견 충돌이 생겨 어찌하다 사라지게 되었고, 저는 또다시 아웃사이더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 뒤로 한동안 백수의 생활을 즐겼으나, 아버지의 못마땅한 시선으로 다시 학교를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서울에 위치한 비인가 도시형 대안학교. 저는 이 학교에서 공부를 해 검정고시에 통과했습니다. 여러 가지 경험을 많이 쌓을 수 있었지만, 검정고시도 통과한데다 저와 부모님, 같이 다니던 동생까지도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학교에서 나와 현제는 다시 홈 스쿨러의 인생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쭉 돌아보니 제법 파란만장한 기분이 들어옵니다.

나름 파란만장한 생애..백수 또는 아웃사이더 

지금 저는 백수. 색다르게 말하면 아웃사이더가 되어있습니다. 이 표현은 저희 아버지께서 사용하신 표현인데, 이상하게 저는 기분이 나쁘지 않습니다. 차라리 백수보다는 멋있기라도 하다는 생각이 드는 게…… 역시 제가 철이 좀 덜 든 것이겠지요.

저는 이제부터 아웃사이더로 살아온 제가 보고 느끼고 생각했던 일들을 쓰려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이 모든 일들이 제게 소중한 경험으로 다가와 저를 성숙시켜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저를 아웃사이더가 될 때까지 믿고 지원해 주신 부모님께 감사를 드려야겠지요. 쉽지 않은 결정을 저를 위해 해주시고, 저의 뇌와 생각이 뚫려 있도록 도와주신 부모님께는 언제나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장녀가 좀 철이 없어 여러모로 속을 썩였지만, 저는 지금 저의 길이 틀린 길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 역시 부모님 덕이겠지만 말입니다.

저는 이제부터 저의 이야기를 2주일에 한 번 정도로 올릴 생각입니다. 글 자체는 서툴고 어리지만, 최대한 나의 생각과 경험을 살려 열심히 쓸 것이니 즐겁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Yo! 나는 아웃사이더! Your mc스나이퍼!
(이것은 전에 저의 핸드폰으로 걸려왔던 장난전화의 한 부분이었는데 랩퍼를 따라하는 어설픈 장난이 재미있었습니다. 또 안 오려나……)

안은초/ 16살 아웃사이더. 몇몇 대안학교를 다니다가 지금은 홈 스쿨을 하고 있어요. 주로 영월에 살면서 가끔 서울에 올라옵니다.

   이번 주부터 16살 '백수'를 자처하는 안은초의 글을 격주로 연재합니다. 올해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재익과 더불어 청소년 칼럼을 이어갈 것입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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