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문기본영어

[김유철의 짱똘]

2010-06-09     김유철

이해하시라. 참고서 이야기다. 그것도 특정상호가 나오는 참고서 이야기다. 요즘처럼 학습을 도와주는 참고서가 다양한 세상을 살지 못한 것이 불행인지, 행운이었는지는 가름하기가 쉽지 않지만, 필자의 알량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영어 학습 참고서는 <성문> 시리즈가 유일하다. 얼마 전 아이의 책꽂이에서 만난 그 책을 펼치다 피식 웃고 말았다. <성문> 시리즈 중 가장 처음-당시로는 거의 필수코스로-만나는 것이 <성문기본영어>였다. 그때나 이때나 목차는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책의 시작은 ‘부정사’로 시작되었다.

필자는 아이를 앞에 놓고 눈을 감고 외웠다. “부정사란 영어 따위에서 인칭‧ 수‧ 시제에 대하여 제약을 받지 아니하는 동사형이다.”라고 하자 아이는 “와!”하고 환호성을 올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필자는 <기본영어>의 3장까지, 즉 부정사‧ 분사‧ 동명사까지는 그렇게 줄줄이 외워댔지만, 시제 편에서 늘 좌절했다. 그리고 다시 1장부터 수도 없이 시도했던 기억이 새롭다. 자유로운 영문해석을 위해서는 더 열심히 공부했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외국어를 우리말로 옮기는 것은 해석보다는 번역이라고 해야 온당한 일이다.

지금 시중에서는 해석하기에 따라 여러 형태로 나타날 일들을 마주하고 있다. 얼마 전 끝난 6.2 지방선거 결과에 대한 내용이다. 한나라당이 전국 16개 광역 시‧도지사 중 12곳을 차지하였던 2006년의 결과에 비해 6.2선거에서는 6곳으로 줄어들었으며, 서울 구청장 25곳 모두를 독차지하고 있던 것이 이번에는 겨우 4곳에서 생존했을 뿐이다.

필자가 살고 있는 한나라당의 텃밭이라 불리던 경남은 어떠한가? 1995년 민선 1기 이후 16년 동안 한나라당(민자당 포함)의 고정 몫처럼 되어 있던 도지사 자리를 비한나라당에게 내어주고 말았다. 자, 이제 이번 선거 결과를 권력의 핵심인 청와대와 각 정당은 어떻게 해석하고 있으며, 언론을 포함해 시민단체들과 주권의 당사자인 유권자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번역이거나 숫자에 불과한 선거 성적표가 아니라 올바른 해석이 필요할 것이다.

선거 결과가 발표되자 정부와 집권여당은 그들의 국정 운영방법에 대하여 “민심의 호된 평가로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라고 했지만, 선거 전에 보였던 그들의 여론 수렴 형태로 보아 그 마음은 청와대 뒷산의 경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장 비폭력적인 의사표현 방법인 ‘촛불’에 대하여 어떻게 대해왔고 앞으로는 어떻게 대할 것인가? 시민단체의 기자회견을 집회로 몰아세우고 연행을 했던 관행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이미 강바닥에 들어간 삽질과 파헤쳐진 강변의 자연은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회복하기는커녕 벌써 “이제부터는 경제발전에 몰두” 운운하며 모르쇠로 일관하는 위정자들의 모습을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 대화단절이 아니라 전쟁의 위기까지 치닫는 남북의 현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모든 일에 대하여 많은 국민들이 그들의 표로 말해준 “동의할 수 없다” “소통하라”는 묵언의 표현을 어떻게 해석해 나갈 것인가?

<성문기본영어>에 보면 이렇게 적혀 있다. “기본문법사항을 정리하고 그 문법사항이 실제 적용되는 독해지문을 해석해 보도록 하였다.” 외국어의 단순한 번역을 위해서도 차분한 공부와 정리가 필요하고 그것을 토대로 긴 문장의 독해가 가능한 것이다. 하물며 정치를 포함한 세상일이야 말해 무엇할 것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라. 이번 선거 결과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패자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승자까지 포함하여 모두 등이 서늘함을 느껴야 한다. 해석은 결국 우리 모두에 관한 이야기다. 선거결과에 대하여 제 논에 물 대기로 생각하거나, 너는 말해라 나는 강바닥 파러 간다고 하면 짱똘 피할 방법이 없다.


김유철 /시인. 경남민언련 이사. 창원민예총 지부장.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
교회비평집 <깨물지 못한 혀>(2008 우리신학연구소). 포토포엠에세이 <그림자숨소리>(2009 리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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