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회장 직선제 이후의 삶을 묻다
동두천 성당이 마주한 ‘진짜’ 시노달리타스
'시노달리타스, 다시 걷는 교회' 기획은 한국 교회 안에 깊이 뿌리내린 '비시노드적' 문화와 관행들을 구체적으로 드러냅니다. 여기서 비시노드적이란 평신도가 배제되고, 소통보다 일방적 지시가 우선되며, 함께 결정하기보다 소수가 독단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이러한 현실을 복음적 관점에서 성찰하고 대안을 모색함으로써, 진정한 '함께 걷는 교회'로 나아가기 위한 대화의 장을 열고자 합니다.
지난해 말, 의정부교구 동두천 성당의 ‘사목회장 직접 선거’ 소식은 한국 가톨릭교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사목회장 선거를 통해 본 본당의 시노달리타스', <가톨릭평론> 50호) “본당 신부가 전권을 내려놓겠다”는 선언과 함께 시작된 이 파격적 실험은 시노드 교회를 꿈꾸는 많은 이에게 울림을 주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멜로드라마의 결말처럼 ‘우여곡절 끝에 결혼해, 그 뒤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이야기는 아니다. 결혼식이 끝난 뒤 진짜 일상이 시작되듯, 선거 이후 동두천 성당이 마주한 것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치열한 고군분투였다. ‘진짜’ 시노달리타스(함께 걷기)가 시작된 것이다. 설 연휴 전이던 지난 2월 13일, 동두천 성당 사제 집무실에서 선거로 뽑힌 김영근 프란치스코 사목회장, 황 운동 유스티노 사목회 총무, 이종원 주임 신부와 김 보니파시오 수녀, 이렇게 넷이 모여 선거 이후의 ‘날 것 그대로의 현실’을 나누는 좌담회를 가졌다.
우리가 뽑은 사목회장? 자부심과 무관심의 경계
“신자들의 선거를 통해 사목회장이 선출되었을 때 신자들의 반응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사목위원들이 느끼기에 ‘우리가 선출한 사목회장’이라는 자부심과 ‘어디 잘하나 보자’라는 냉소, 무관심 등 현장에서는 어느 쪽이 더 크게 체감되었나?”
신자들의 반응은 복합적이었다. 김 회장은 신자들 사이에서 “내가 뽑았다”는 주인 의식이 강하게 느껴졌고, “많은 어르신이 응원을 보내 주어 신자들이 느끼는 자부심이 크다는 걸 새삼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이러한 자부심은 본당 공동체에 대한 기대를 반영한 면도 있기에, 이 기대가 관망과 냉소로 변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부담도 크게 안고 있다고 했다. 선거 과정을 주관한 황 총무는 처음엔 신자들이 별 관심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투표 과정에서 많은 의견이 모이는 걸 보고 놀랐다고 했다.
반면 이 신부와 김 수녀는 좀 더 냉정한 진단을 내놓았다. 이 신부는 “선거를 교중 미사에 참여한 신자들 대상으로만 실시했는데, 평일 미사에 나오시는 분들은 관심과 반응이 있었지만, 주일에만 나오는 더 많은 수의 신자도 관심이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김 수녀도 신자들에게서 '신부님이 일할 사람을 뽑으면 되지, 왜 이런 걸 하느냐'는 이야기가 많았고, 짧은 홍보 기간으로 인해 체계적인 의미 전달이 부족했던 점을 아쉬움으로 꼽았다. 이는 교회가 시노달리타스를 외치지만, 신자들의 마음속엔 여전히 ‘구경꾼’의 정서가 뿌리 깊다는 점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정당성’이라는 이름의 무거운 중압감
“투표로 뽑힌 리더라는 사실이 본당 내에서 ‘정당성’을 부여해 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모든 결정에 신자들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부담감’으로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한다. 그 괴리에서 오는 어려움은 없었나?”
투표로 얻은 정당성은 김 회장에게 오히려 독이 든 성배와도 같았다. 그는 “이전처럼 신부님의 의지에만 기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 뜻대로만 할 수도 없는 처지”라며, 특히 사목위원을 구성하고 자리를 채우는 과정에서 겪은 고충을 토로했다. 아직도 채워지지 않은 자리가 있다고도 했다. 그는 이 과정이 상명하달식 의사소통이 몸에 밴 자신의 부족함을 가장 크게 느끼는 시간이라고 고백했다. 정당성과 부담감 사이에 내린 그의 결론은 부족한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하느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점,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을 피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라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이 신부는 사목회장의 역할과 관련해, 신부 10명이 모여 이야기를 나눠 봐도 사목회장이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으면 10개의 답이 나올 것이라며, 정해진 역할이 없는 현실과 사목회장이 겪은 어려움에 공감을 표했다. 나아가 “우리 본당의 실험이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겠지만, 실패했다고 해서 우리가 틀렸다거나 잘못한 건 아니”라고 했다.
민주주의와 시노달리타스 사이의 ‘혼란스러움’
“다수결로 뽑힌 사목회장과 ‘성령의 인도’를 찾는 사목 방식이 본당 사목회의 현장에서 충돌할 때는 없었나? ‘표의 힘’과 ‘성령의 목소리’를 구분하는 것이 실제로는 얼마나 모호하고 어려운 일이었는지 듣고 싶다.”
좌담회 내내 많이 언급된 단어 중 하나는 ‘혼란’이었다. 기존의 상명 하달식 문화에 익숙한 집단과 수평적 소통을 원하는 집단 사이에 갈등이 생겼기 때문이다. 사목회장은 회의 진행 방식이나 봉사자 지명 과정에서 우왕좌왕하며 갈등이 생기기도 했으나, 이를 통해 “급하게 처리하면 문제가 생긴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했다. 사목회 총무는 “회장 선출 과정에서 경청 모임을 하기도 했지만, 경청 모임을 하며 의견을 듣다 보니 일이 진행되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등, 작년보다 훨씬 힘들고 삐걱거렸다”며 ‘경청’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는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 총회 최종 문서'(이하 '최종 문서')가 경계한 지점과 맞닿아 있다. 시노달리타스는 단순하게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며, “성령 안에서의 대화”를 통해 합의를 이루어 가는 영적 식별 과정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표의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유혹과 ‘경청’과 ‘기다림’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타기를 해야 했다. 이 신부는 “우리가 다수인데 왜 불편하고 더딘 방식으로 해야 하느냐는 불만이 표출되기도 했다”며, “그렇지만 이 혼란은 우리 본당이 겪어야 할 필연적 과정”이라고 보았다.
사제의 자리: ‘결정권자’와 ‘동반자’ 사이의 딜레마
“주임 사제가 전권을 내려놓겠다고 하셨지만, 본당 사목회의에서 갈등이 생기거나 결정이 지체될 때 다시 ‘결정권자’로 돌아가고 싶은 유혹이나 사목적 조급함은 없었나? 이를 바라보는 사목위원들은 어떤 마음이었는지도 궁금하다.”
이 실험의 핵심은 사제의 권한 내려놓기였다. 이 신부는 매월 사목 회의 자리 배치도 상석을 사목회장단에게 내어 주고 자신은 옆으로 물러앉았다. 하지만 본당 공동체가 우왕좌왕할 때, 사제는 다시 ‘해결사’로 등판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지 않았을까. 김 수녀는 “처음 두 번의 회의를 하는 동안 사목회가 방향을 못 잡고 혼란스러워할 때, 신부님께 ‘빨리 개입해서 교육 좀 시키시라’고 요청했다”고 했다. 배가 산으로 가기 전에, 결국 신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이 신부는 “오히려 저는 조급함이 없어서 문제였다”며 웃었다. “제가 개입해서 정리해 주면 편하겠지만, 그러면 그들은 다시 입을 다물게 됩니다. 실패하더라도 스스로 부딪히며 길을 찾아야 다음 신부가 와도 이 체계가 무너지지 않습니다.” 이는 '시노드 이행 단계를 위한 길잡이'가 강조하는 사목자의 역할, 즉 “권위를 약화시키지 않으면서 공동 책임성을 증진하는” 어려운 균형 잡기를 보여 준다. 권위주의를 내려놓는 것은 방임이 아니라, 공동체가 스스로 설 수 있도록 인내하며 기다려 주는 ‘고통스러운 동반’인 셈이다.
2028년, 시노드 이행 단계를 향한 제언
“한국 천주교회뿐 아니라 보편 교회는 2028년까지 이어지는 시노드 이행 단계 여정에 있다. 시노드 교회를 위해 지역 교회, 교구, 본당 차원에서 뭐라도 해 보고 평가한 결과를 취합해야 하는 과제가 놓였다. 만약 오늘 당장 다른 본당에서 ‘우리도 사목회장 선거를 해 보려 한다’고 조언을 구한다면, 아름다운 취지 외에 ‘현실적인 쓴 소리’로서 어떤 주의사항을 가장 먼저 말해 주고 싶은가?”
참석자들은 입을 모아 ‘충분한 시간’과 ‘교육(양성)’을 강조했다. “선거로 사람을 뽑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수용할 수 있는 구조와 교육이 우선돼야 합니다. 투표의 의미와 시노달리타스의 가치를 신자들 이 충분히 이해하는 과정 없이는 후유증이 큽니다. 선거 기간도 4주로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사목회 황 총무 역시 “단순한 회장 선거를 한다는 주보 홍보가 아니라, 왜 우리가 이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이 선행됐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이는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 '최종 문서'가 “선교하는 제자들의 백성으로 양성하기”를 제5부 전체에 할애해 강조한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통합적이고 지속적이며 함께하는 양성” 없이는 제도만 바뀔 뿐 문화는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동두천 성당의 고군분투는 한 본당 차원의 실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 보편 교회가 당면한 제도적 과제를 정면으로 관통한다. 현행 교회법 제536조는 사목평의회를 ‘건의 투표권만 갖는 자문 기구’로 규정하는데, 이는 사목자가 평신도의 목소리를 언제든 배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 총회 '최종 문서'는 이러한 법적 모호함이 시노달리타스 정신을 가로막는 장애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하며 교회법 개정을 권고했다.('최종 문서' 92항) 이 과정에서 책임 있는 설명과 투명성은 필수며, 이는 교회가 하느님 백성과 맺는 신뢰의 토대이자, 직무자 권위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핵심 요소라고 보았다.(93-94항) 나아가 단시일 내 구체적 변화가 없다면,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의 전망은 신뢰를 얻지 못하고, 시노드 여정에서 힘과 희망을 길어 올린 하느님 백성의 지체들을 멀어지게 할 것이라고 보았다.(94항)
현재 한국 교회의 시노드 여정은 ‘성령 안에서의 대화’를 통한 경청 문화 확산에 큰 역량을 쏟고 있다. 이는 분명 고무적인 일이지만, 자칫 시노달리타스를 개인의 태도나 영성 차원의 문제로만 한정 지을 위험도 내포한다. 동두천 성당의 사례가 특별한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서 ‘문화적 변화’와 ‘구조적 변화’를 동시에 밀어붙이는 실험을 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교회 앞에 놓인 시급한 과제는, 경청 문화의 확산으로 고조되어 가는 대화의 열기가 실질적인 의사 결정의 구조적 변화로 이어지도록 이 두 영역을 다시 연결하는 일이다. 동두천의 도전과 노력은 결국 ‘잘 듣는 사제’나 ‘열성적인 평신도’라는 개인의 선의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누가 오더라도 함께 듣고 함께 결정할 수밖에 없는 제도적 토대를 닦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멈춘 시간을 지나, 비틀거려도 다시 걷기
동두천 성당의 실험은 성패를 논하기엔 아직 이르다. 오히려 혼란과 갈등, 비효율이라는 ‘실패’의 요소가 더 많이 보인다. 하지만 이 신부는 “실패했다고 해서 우리가 틀린 건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우리가 조금 고군분투하는 것뿐이지, 방향이 틀린 건 아닙니다. 서로 부딪히고 깨지면서 자갈처럼 둥글어지는 과정, 그것이 바로 시노달리타스 아닐까요?” 나아가 이 신부는 신앙에서 ‘공동체적 차원’이 사라지고 개인의 영역으로 축소되는 현실을 우려했다. 그는 나를 복수형으로만 바꾼 ‘가짜 우리’가 아닌, 상대방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경청의 훈련’을 통해 진짜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 한국 교회에 필요한 것은 매끄러운 성공 사례가 아니다. '최종 문서'가 고백하듯 “피로감과 변화에 대한 저항감, 생각보다 우리의 생각을 앞세우려는 유혹”을 솔직히 인정하고, 그럼에도 “배 위에서 함께” 그물을 던지는 용기다.
동두천 성당 신자들은 지금, 교회가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 ‘손님’이 아니라, 밥상을 차리기 위해 서로 언성을 높이고 화해하며 땀 흘리는 ‘가족’이 되어 가고 있다. 멈춘 시간을 지나 다시 걷는 시노드 교회는, 이렇게 비틀거리는 걸음 속에 이미 와 있는지도 모른다.
* <가톨릭평론> 51호에 함께 실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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