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훈 신부, 용산참사 해결 촉구하며 삭발례 및 단식 선언

-"진짜 강도떼 누군지 보여줘야.."..선한 사람들의 침묵이 더 큰 비극이다.
- 12차 천주교전국사제시국기도회가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열려..

2009-10-13     배은주 기자

▲시국기도회를 마무리하며 문규현 신부가 전종훈 신부의 머리를 깍고 있다. 전 신부는 이후 단식에 돌입한다고 선언했다.(사진/김용길 기자)

용산참사 266일 째 되는 날인 10월 12일 오후 7시,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이 주최한 시국기도회와 미사가 봉헌됐다. 전국에서 모인 2백 여명의 사제를 비롯, 2천 여명의 수도자와 신자들이 모인 가운데 열린 이날 시국기도회에서는 사제단 대표 전종훈 신부가 삭발례를 하면서 단식을 선언했다.

또한 사제단은 시국기도회를 마치면서 성명서를 발표, 용산참사에 대한 진상 규명과 정부의 사과를 다시 촉구했다. 전종훈 신부는 '눈 먼 자본'과 '탐욕의 정권'에 죽임당한 용산참사 희생자들을 다시한번 기억할 것을 천명했다.

사제단기도회에는 수배를 피해 명동성당에 있는 용산범대위공동집행위원장 박래군씨와 이종회씨도 참석해 관심을 끌었다. 이들은 한달 전부터 명동성당 울타리 안에서 안전하게 머물며 일을 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는 바벨탑을 넘어뜨릴 때까지, 철거민들의 눈물과 한숨을 걷어낼 때까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고, 가난한 사람들이 착취당하지 않는 민주사회를 이루어낼 때까지 투쟁할 것"을 다짐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공연으로 시작된 전국사제기도회는 미사로 이어졌는데, 미사를 주례한 전종훈 신부는 "이명박정권이 추구하는 것은 잇속을 둘러싼 싸움 뿐"이라고 전제, "중도실용, 서민행보 등 호들갑만 떨지 말고 견리사의(見利思義)를 생각하라"고  주문했다. 견리사의란 안중근 의사가 남긴 말로 "이익을 볼 때 먼저 의를 생각하라"는 뜻이다.

이어 전 신부는  “가난한 사람이 안정되게 살도록, 용산참사 열사들이 영원한 안식을 얻고 유가족이 따뜻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반민주, 반민족, 반서민 정책을 일삼는 이명박정권의 역주행을 멈추게 하자”며 미사를 시작했다.

이날 미사 중 강론을 통해 문규현 신부(전주교구)는 “우리는 용산참사 열사들이 참극으로 이승을 떠난 그 시간에 멈춰있다”고 말하면서, "용산참사가 일어난 그날은 '초죽음이 된 하느님을 보여준 날'이며, 동시에 “하느님의 마음과 손길이 철저히 배신당한 날, 하느님의 외침과 통곡을 외면하고 피해간 날”이라고 규정했다. 

“용산 참사가 일어난 1월 20일은 강도 떼에게 죽어가는 이들을 돌보라고 하느님이 말씀하신 날이고, 정의와 평화를 구하기 위해선 ‘아니오’ 해야 할 때는 절대 그렇게 해야 함을 절절하게 깨우쳐 준 날"이라고 지적한 문신부는 "진짜 강도 떼가 누군지 분명하게 보여주었고, 공범자는 자신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돈에 눈 먼 개발주의자, 투기꾼, 건설자본 등이 그 앞잡이고, 정권과 법원, 검찰, 언론, 경찰, 죽어가는 이웃을 외면하고 돌아가는 종교인, 내 일이 아니라고 외면하는 우리들의 탐욕, 무관심, 이기주의가 바로 강도 떼의 앞잡이며 공범자다.”라고 말했다.

이어 "용산에 죽은 사람은 있는데 죽인 사람이 없다면,결국 돌아가신 분들은 분신자살했거나 가족이 불태워 죽인 것인가?”라고 되물은 문신부는  “사회에 무슨 짓을 해도 외면하는 우리 모두가 공범이며 진짜 범인”이라고 성찰했다.

▲사진/김용길 기자

▲사진/김용길 기자

문규현 신부는 “1월 20일부터 우리가 만들어 낸 시간은 반전의 시간으로, 회개와 참회, 낮춤의 시간이며 새로운 역사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우리들 자신이  "깊은 어둠 속에서 희망이 펼쳐질 수 있도록 망루를 세워 서로 나누고 연대하고 행동할 것"을 요청했다. 

미사 후에는 '제 12차 천주교전국사제시국기도회를 마치며'란 제목으로 성명서를 발표했다. 사제단을 대표해 나승구 신부(서울대교구)가 낭독한 성명서에는  용산참사를 "어제의 일이 아니라 오늘과 내일의 일로, 서민 중산층에게 닥칠 무서운 재앙"으로 규명짓고 참사에 책임을 지지 않는 정부를 질타하는 내용이담겨져 있다. 또한 검찰의 수사기록 3 천쪽 공개와, 의문투성이의 주검상태 등을 고려해 법원이 공정하고 엄정하게 시비를 가려줄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사제단 홍보위원장 김영식 신부(안동교구)는 "오는 10월 29일이 용산참사 재판 1심 만료일이며, 그전에 1심 결정선고가 있을 것 같다"면서 정황상, 예정된 수순으로 재판을 진행하고 결정된 판결을 내릴 것으로 내다봤다. 김영식 신부는 또 "사제단은 "세상과 언론과 권력을 향해, 그리고 종교의 뼈아픈 현실을 반성하고 아파하며 삭발과 단식을 하느님께 제물로 내놓겠다”고 말하며 전종훈 신부의 삭발례 의식을 공지했다.

이어 진행된 사제단 대표 전종훈 신부의 삭발례를 지켜보며 유가족들은 눈물로 그 뜻에 부응하며 현실의 아픔을 함께 나누었다.

▲사진/김용길 기자

이날 기도회에 참석한 안충남씨(서울대교구 한강성당)는 "낮은 곳에서 세상을 향해,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드리는 이 미사에 감격했다"고 말하면서, 본당과 가까운 곳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애써 외면하고 냉정한 태도를 보이는 본당과 신자들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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