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물장어의 꿈
[일상에서 호흡처럼, 이 노래처럼]
11월 위령성월이 되면 자연스럽게 삶과 죽음에 대해 묵상하게 된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절기 때문인지 어르신들의 별세 소식도 많이 들리고 교회 전례력으로도 돌아가신 분들을 기억하는 시기라서 그런 모양이다.
대부분 우리는 학창 시절에 ‘인간은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죽음 이후엔 어떻게 되는가?’라는 꽤 진지한 질문을 자신에게 던진다. 그러다 그 시절이 훅 지나가고 눈앞에 놓인 일들을 좇아 정신없이 살다가 어느 날 문득 다시 그 질문을 기억한다.
세상에 오는 것은 순서가 있지만 이 세상의 여정을 마치는 날은 차례가 없다고 하지 않는가? 주님이 언제 우리를 부르실지 모르는 일이다.
얼마 전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신해철 씨의 죽음은 많은 이에게 안타까움을 안겨 주었다. 그를 사랑한 팬들과 그의 노래를 좋아한 많은 이들이 그의 죽음을 아파했다. 아마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었기에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그를 추모하는 분위기 속에서 그가 부른 노래들이 다시 부각되었고 덕분에 나도 그의 노래를 모두 들어보았다. 익숙한 곡들도 있고 새로운 곡들도 있었다. 특히 노래가 나온 때는 큰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그가 자신의 장례식에 울려 퍼질 곡이라고 말한 바 있는 ‘민물장어의 꿈’은 그가 평생 살아온 삶을 이야기해 주는 것 같았다.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뿐
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
두고 온 고향 보고픈 얼굴 따뜻한 저녁과 웃음소리 고갤 흔들어 지워버리며
소리를 듣네 나를 부르는 쉬지 말고 가라 하는
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다가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익숙해 가는 거친 잠자리도 또 다른 안식을 빚어 그마저 두려울 뿐인데
부끄러운 게으름 자잘한 욕심들아 얼마나 나일 먹어야 마음의 안식을 얻을까
하루 또 하루 무거워지는 고독의 무게를 참는 것은 그보다 힘든 그보다
슬픈 의미도 없이 잊혀지긴 싫은 두려움 때문이지만
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으며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아무도 내게 말해 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그의 죽음 이후 음원 차트를 휩쓸어 1위를 차지한 이 노래는 그의 말대로 장례식장에 울려 퍼졌다. 독창성 있는 음악을 추구해 온 그의 노래들은 시간이 지나도 많은 이의 마음에 남아 있는 듯하다. 나 역시 그가 가톨릭 신자라는 점과 그의 노랫말에 담긴 인생에 대한 고민과 철학적 성찰이 남다르게 다가왔다.
그 삶이 어떠했든지 인간이면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며 죽음 앞에서야 그의 삶의 진가가 드러난다. 그러기에 죽음을 떠올리는 것은 두려움이나 어둠만을 느끼게 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자신을 겸허하게 비추어 보게 하는 거울이 된다.
이 노랫말에서 표현하는 것처럼 우리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 가는 여행을 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도전하며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고자 하며 ‘저 강들이 모여 드는 곳, 파도 아래’에 이르고자 하는 것이다. 진리를 추구하며 나아가려는 이의 인생은 험난하지만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마태 7,13-14)라는 성경 말씀처럼 자신을 깎고 작아져 좁은 문으로 들어가면 생명을 얻는다. 하지만 그 길은 쉬지 않고 욕심을 버리면서 가는 길이며 고독의 무게를 참으며 가는 길인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누군지 찾아가는 여정의 끝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 삶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내 안에 살아 계시며 함께하셨던 주님이시다. 그분을 만나게 되면 참으로 나 자신을 알게 된다. 그것을 깨닫게 되기까지, 참된 길이요 진리이며 생명이신 그분을 가슴으로 느낄 때까지 우리는 이렇게 목마름을 느끼며 걸어가는 것이 아닐까?
황난영 수녀 (율리아나)
성바오로딸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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