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을 시험하지 말라
[산위의 마을 취화당]
우리 산위의 마을 방문자들은 마을 건너편으로 소백산 구봉팔문과 연화봉 줄기로 어우러진 풍광을 한결같이 좋아하면서 속이 후련해서 치유가 되는 것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구인사에서 넘어오는 길에서는 약 3km 멀리 해발 500m 눈높이에 우리 마을이 보입니다. 뒤쪽 북서쪽으로 930m의 용봉산이 둘러있어 마치 소쿠리에 담겨 있는 듯 포근한 마을로 느껴집니다. 성모 어머니께서 팔을 벌려 우리 마을을 안고 있는 듯한 용봉산(930m)의 자태 또한 소박하면서도 대자연의 보호 속에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용봉이 병풍처럼 북서풍을 가려주어 겨울에도 북풍한설이 없고 따뜻한 지형입니다.
방문자들은 모두 입을 모아 산위의 마을이 명당이라고 하지요. 어떻게 이런 곳을 얻게 되었는가? 어떤 연고가 있었는가 묻습니다. 저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남겨두신 땅이었다!" 고 대답하지요. 남들에겐 버려졌지만 우리에겐 하느님께서 주신 땅입니다.
2002년 1월 1일부터 저희는 산위의 마을 건립을 주님께 의탁하면서 우리가 공동체 마을을 건설할 땅을 하느님께서 직접 마련해 주시도록 청원하는 1,000일 기도를 바치기 시작하였습니다. 돈도 없고 막연함 속에서 시작한 기도였고 우리가 하는 일이 좋은 일이고 주님의 일이 될 수 있다면 들어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1,000일 목표의 기도를 하게 된 것입니다.
한편으로 기도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마을 터를 물색하기 위해서 경북권까지 돌아다녔습니다. 여길까? 저길까? 수십 곳을 다녔습니다. 원주 강림의 치악산에 좋은 임야가 있었습니다. 북향이지만 여기저기 옹달샘이 있는 원시림이 있고 평지에다 밭도 많아서 여기다 싶었습니다. 꼭 사고 싶은 마음으로 찾아가고 매달리기 10여 차례 이상이었을 만큼 애착이 가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주인의 요구가 너무 달라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옛날 어떤 성인이 수도원을 지으려고 하는데 주인이 땅을 내놓지 않아서 그 땅에 십자가를 묻어 두고 기도하였더니 소원대로 얻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도 그렇게 해보자! 하고 십자가를 들고 그곳에 가서 나무에 걸어놓고 “주님, 우리에게 보여주실 땅이 이곳인가요? 그렇다면 주인의 마음을 바꾸게 해주십시오!” 기도한 후에 산을 내려왔습니다.
치악산에서 고속도로 쪽으로 나오는데 “네가 나를 못 믿는구나!” 하는 마음의 울림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내게 맡긴다고 해 놓구선, 십자가를 걸고 기도하는 걸 보니, 내게 맡긴 게 아니였구나?” 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갑자기 슬퍼졌습니다. “아, 내가 하느님을 시험했구나!”
차를 돌려 그 곳으로 가서 나무에 걸었던 십자가를 가슴에 안고, ‘이래가지고서야 주님과 동업을 할 수 있겠나?’ 어련히 알아서 하실 일인데... 믿음이 약한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하고 참담하게 느껴졌습니다. “다시는 이따위 십자가로 주님을 시험하지 않겠습니다. 주 예수님, 자비를 베푸소서! 주 예수님, 자비를 베푸소서!”
트라피스트 수도사들이 노동하면서 드리는 ‘주님을 부르는 기도’ 를 한없이 바치면서 운전을 하는데 통회의 서러움이 복받쳤습니다. 울면서울면서 서울로 돌아왔어요.
1,000일 기도를 하고 있으니 기도가 끝나기 전에 뭔가 일이 터질 것으로 생각하면서도 아직은 우리가 서두르지 않아도 하느님께서 준비하시는 일이 있을 것이고 우리를 위해 아껴두신 약속의 땅이 있을 것임을 믿었습니다. 그렇게 회한의 2003년 여름이 지나고 겨울이 왔습니다. 성탄절을 앞두고 지금의 단양 보발리를 안내받게 되었습니다. 마당에는 콩 타작을 하고 남은 콩깍지가 하얀 눈으로 덮여 있을 뿐 사람은 보이지 않은 적막한 암자였습니다. 굿당에는 천연색 옷감으로 된 제의들과 굿에 쓰는 칼과 방울 등이 있었습니다. 그 때 함께 갔던 형제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여긴 거 같다! 참 좋다!”
암자의 주인인 스님을 만나 우리 것으로 삼기로 했습니다. 2004년 1월 4일 이었습니다. 산위의 마을 건립 청원 천일기도가 채 끝나기도 전 만 2년 만에 주님께서 움직이셨던 겁니다.
동네와 약간 떨어져 있지만 학교도 적당히 가깝고, 풍광 좋고, 숲도 좋고, 따뜻하고 땅 값도 싸고 좋은 것이 많은 곳이었습니다. 다만 물이 귀하여 길어다 먹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습니다(지금은 간이 상수도가 오지요). 처음부터 다 좋은 것만 가득하고 완벽한 땅은 우리 차지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곳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리고, 금방 펜션이 들어서고 그럴 겁니다. 도시인들이 어떤 사람들인데요.
주님의 기도에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라는 문장을 개신교 성경에서는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고”로 번역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시험에 넣지 마시도록 기도하라고 했는데, 하물며 우리가 하느님을 시험하려 든다면 우리는 ‘죽음’을 청원하는 것입니다. 시험은 믿음이 없다는 징표이니 서로가 시험해서도 흥정해서도 아니 됩니다.
그냥 주님께서 주도하시게 자리와 역할을 내어드려야 합니다. 그분이 마을을 준비하시게 합니다. 우리는 그곳에로 가서 잘 살면 되는 겁니다. 이것이 공동체 건설의 가장 빠른 성공의 비결입니다. 하느님 친히 움직이게 하시고. 우리는 조역만 하는 겁니다.
다시 생각건대 제가 만약에 십자가를 묻어두었던 강림 치악산을 마침내 구입해서 마을을 시작했다고 해봅니다. 나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산위의 마을 같은 명당을 얻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하느님을 시험하고 불굴의 의지를 앞세워 하는 방식이 아니어도 우리는 이곳 단양에 충분히 좋은 마을을 건립해 가고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한다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그렇지요?
박기호 신부 (다미아노, 예수살이공동체 산위의 마을 대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