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장수’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주말영화] 조치언 감독, 2014년
‘약장수’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제작한 대명문화공장이 두 번째로 내놓은 작품이다. 한국영화 평균 제작비가 50-60억 원인 현실에서 유명 배우를 캐스팅하고도 4억 원의 제작비로 완성되었다. 그러나 영화의 울림은 결코 작지 않다.
코미디의 겉모습을 하고 있지만, 서늘하고 날카로운 리얼리즘 영화이며, 슬프고도 애잔한 가족 드라마다. 최근 영화뿐만 아니라 TV에서도 흥행코드로 자리한 부성애로 시작하지만 모성애까지 아우르며, 자식이란 무엇인지, 가족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척박한 이 세상에서 어떻게 현명하게 살아가야 하는지 등에 대한 복잡한 질문을 던진다.
불치병을 앓고 있는 아이의 병원비를 감당해야 하는, 앞날이 보이지 않는 젊은 아빠의 처절한 생존 투쟁이 전투상황 같다. 영화는 고군분투하는 서민의 가련함을 부각시키기 위해 상황을 극단화한다. 젊은 여자 손님을 상대하다가 봉변을 당하는 대리기사라든지, 감당치 못할 빚을 떠안은 노인을 닦달하는 어린 여자 직원이라든지, 평생을 아들을 위해 희생한 시모를 냉대하는 부자 며느리 등. 평소 으레 들어봤음직한 막장 같은 이야기들이 영화의 에피소드로 자잘하게 삽입되어 상상력의 빈곤을 드러낸다. 드라마의 신파적 표현법은 호소력을 반감시킨다. 하지만 영화의 미덕까지 폄하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노인들은 외로움과 가난함 때문에 홍보관을 찾게 되고, 홍보관 직원들은 그들의 동정심과 죄책감을 자극하여 물건을 팔아야 한다. 이들이 서로 빚지고 살아야만 하는 심리적 메커니즘을 지켜보는 것은 못내 서글프다. 영화에서는 돈 때문에 벌어지는 온갖 비인간적인 일들이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철중이 돈다발로 꿇어앉아 있는 일범의 뺨을 때리는 장면은 영화가 고발하고자 하는 돈 중심주의의 비열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세트가 아닌 실제 인천의 한 홍보관에서 촬영을 했고, 그곳을 드나드는 실제 할머니들이 출연한다. 현실감을 살리기 위해 감독과 스태프들은 전국의 수많은 홍보관을 방문하여 현장 조사를 거쳐서 영화를 완성했다고 한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관객은 홍보관에 실제로 참여하고 있다는 생생한 느낌을 받는다. 우리 주위에 이런 공간과 이런 사업이 현실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 그곳에서 웃음과 애정을 찾고, 또 서로가 서로를 할퀴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저려 온다.
영화는 웃고 있어서 더욱 슬픈 현실, 그리고 그 웃음 뒤에 감춰진 눈물을 깨닫게 해 주는 희비극이다. 투박하고 거칠지만 만만치 않은 묵직한 데뷔작이다. 완벽한 생활인 연기를 펼치는 코미디 배우 김인권을 다시 보게 하는 영화다.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용인대학교 영화영상학과 초빙교수. 옛날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스러운 코미디 영화를 편애하며, 영화와 사회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합니다. 삶과 세상에 대한 사유의 도구인 영화를 함께 보고 소통하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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