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MC 해고자 문제, 서울대교구는 응답해야 한다
[기고] 권오광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상임대표
일요일 저녁에 모처럼 가족들이 다 모여서 함께 보는 TV프로그램이 ‘개그콘서트’다. 이 중에서 특히 재미있어서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는 ‘불편한 진실’이라는 코너가 있다. 이 코너는 ‘우리가 살면서 수많은 사실 앞에 놓여 있는데 과연 이 모든 게 진실일까’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가 진실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거짓이거나 과장된 사실임을 몇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과연 우리 교회의 모습은 어떨까?’, 특히 최근의 사회문제를 보는 교회의 이중적인 모습이 이러한 불편한 진실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제266대 교황 프란치스코의 즉위 미사가 성 요셉 대축일인 3월 19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거행되었다. 이날 즉위미사에서 교황은 “가장 가난한 사람을 보호하는 것이 로마 주교의 소명”이라면서 사람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 특히 가난한 이들의 목자로 살아갈 것을 약속했다.
강론에서 교황은 “우리는 자연을 보호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과 자애로 봉사해야 하고, 우리의 삶을 더럽히는 증오와 시기와 자만이라는 파괴의 조짐을 용납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특히 경제 · 정치 · 사회 분야에서 책임 있는 지위에 있는 모든 선의의 사람들에게 “피조물의 보호자, 자연 안에 새겨진 하느님 계획의 보호자, 인간과 자연의 보호자가 되도록 하자”고 당부했다.
이에 답하는 모습으로 교황 프란치스코의 선출에 대해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님이 축하 메시지를 내놓았다. 강 주교님은 “교황께서 선택하신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은 그분이 원하시는 단순함과 청빈을 잘 드러내고 있다”면서 “새 교황께서는 선출 직후 성 베드로 광장에 운집한 교우들과의 첫 대면에서 교황 강복을 주시기 전에 먼저 교우 공동체가 당신을 위해 하느님의 강복을 청원해 주도록 요청하시고 당신이 먼저 허리를 깊이 숙이고 침묵 중에 머물러 계셨다”고 전했다. 이어 “교황께서 가난한 이에게 기쁜 소식을, 억압받는 이에게 해방을 선포하시는 평화의 사도가 되어 주실 것을 믿는다”면서 “새 교황 프란치스코를 중심으로 가톨릭교회가 새로운 열정으로 거듭나는 교회, 겸허한 마음으로 세상과 대화하는 교회,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고 말했다.
이어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이용훈 주교님이 대한문 쌍용자동차 분향소를 방문하여 해고 노동자들을 격려하고 정동 프란치스코회관 성당에서 쌍용차 해고자 및 이 땅의 해고 노동자들을 위한 미사를 집전하시면서 “교회는 가난한 해고 노동자들의 문제 해결을 위해 관심과 애정을 갖고 이를 해결해나가기 위해 함께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교회 안의 해고 노동자들에 대한 교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CMC(가톨릭중앙의료원) 노조의 파업투쟁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1년이 지났다. 그런데 그 투쟁으로 해고되었던 5명의 해고 노동자들에게는 엊그제가 아니라 일 년이 십 년 같은 날들이었을 것이다. 11년이 지난 지금 교회는 왜 그들을 복직시키지 않고 있는가? 비슷한 시기에 파업을 했던 경희의료원 해고자들은 2년 만에 모두 복직되었고, 지하철노조 해고자들도 12년 만에 복직이 모두 이루어졌다. 특히 그때 부당해고의 근거가 되었던 직권중재제도도 이미 폐지되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이하 천정연)은 이러한 불편한 진실에 대해 서울대교구의 답을 듣기 위해 2012년에 ‘CMC 해고 노동자 복직을 위한 가톨릭공동대책위원회’를 발족하고 신부님, 수녀님과 함께 4인의 면담대표를 구성하여 2012년 9월 24일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님에게 면담을 요청하는 첫 공문을 발송하였다. 그런데 주교 비서실에서는 “이 문제는 주교님보다는 학교법인의 책임이기 때문에 가톨릭학교법인장 박신언 몬시뇰에게 면담 요청을 하라”는 답변을 보냈고, 그래서 우리는 가톨릭학교법인에 면담을 요청하는 공문을 2012년 11월 8일과 2013년 1월 4일 2차례 보냈으나, 아무런 답변도 들을 수 없었다.
재차 염수정 대주교님에게 2013년 3월 20일 면담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더니 주교 비서실에서는 “학교법인에 연락을 해놓을 테니 다시 학교법인에 면담 요청을 하라”는 답을 보내와서 2013년 5월 3일 가톨릭학교법인에 3번째 공문을 발송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아무런 응답이 없어 박신언 몬시뇰 비서실에 확인해 보니 몬시뇰님께 오는 우편물들을 한꺼번에 전달하였는데, 그 가운데 공문이 들어있을 것이라고 비서가 답을 했다. 그리고 이 공문 건에 대하여 몬시뇰님께서 따로 말씀이 없으셨다고 전했다.
박신언 몬시뇰님께서 아무리 바쁘고 높으신 분이라 하더라도 3차례나 공문을 보냈으면 가타부타 답변을 주셔야 하는 것이 아닌지 답답한 심경이다. 천정연이 교회의 인가된 단체가 아니라 할지라도 교회 내 문제에 대해 면담 요청을 하면 교회는 어떤 방식으로든 응답해야 하는게 상식 아닌가. 더군다나 신부님과 수녀님들의 면담 요청까지 무시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가톨릭교회가 우리 사회의 해고 노동자 문제에는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면서, 교회 안의 해고 노동자 문제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이러한 불편한 진실에 대해 이제는 서울대교구가 응답할 차례다.
내가 천주교 세례를 받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노동자이신 예수님의 삶을 따라 “사회를 복음화시키면서, 교회 역시 늘 새롭게 쇄신하는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CMC 소속 병원 역시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다른 병원과 경쟁하면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톨릭 병원이라면 영리만 추구하는 일반 병원들과 다른 점이 있어야 한다. 복음 정신에 맞는 차별화된 운영원칙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운영할 마음이 없다면 교회는 병원 운영에서 손을 떼어야 한다.
가톨릭중앙의료원이 이처럼 일반 영리병원들과 차별화된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 서울대교구는 가장 먼저 교회 안에서 11년째 정신적 · 물질적으로 고통받고, 경제적으로 어려워 가정이 파괴되고 있는 해고 노동자들의 복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보다 마음을 쏟아야 한다. 일반 병원도 해결하는 문제를 가톨릭 병원이 해결하지 못하면서 교회가 사회문제를 두고 예언자적 발언을 할 수 있는지 묻고 싶을 뿐이다.
권오광 (모이세)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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