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창문을 열 때가 되었어
[박정은의 신학 오디세이아]
우리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린 지 50주년을 기념하고 있다. 공의회가 개최되었을 때 태어난 나는 그 이전 교회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경험하지 못했다. 내가 기억하는 첫 미사는 연두색 제의를 입은 신부님이 신자들에게 무언가를 설명하는 모습이다. 아마도 연중시기의 어느 주일 미사를 기억하는 것 같다. 어머니가 이전에 신부님은 신자들이 아니라 벽만 보고 라틴어로 미사를 드렸다는 이야기, 새벽 미사에 갈 때 물도 마시지 않고 침도 삼키지 않았다는 이야기들을 들려주실 때, 나는 마치 먼 옛날이야기인 듯 신기하기만 했다.
기타 반주에 부르던 공동체 성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결과로 얻어진 '새로운 시도들'
내 마음속에 남아있는 미사는 기타 반주 소리와 함께한다. 미사 시작 전에 우리는 모두 함께 성가를 배웠었다. 나는“서산에 노을이 고우나, 누리는 어둠에 잠겼사오니, 우리와 함께 주여 오시어, 이 밤을 쉬어 가시옵소서”라는 노랫말의 <엠마우스>나 <보았나, 십자가의 주님을>이라는 흑인영가를 참 좋아했었다. 감수성이 예민하던 중고등학교 시절 배운 공동체 성가는 아직도 잊히지 않은 채 내 귀에 생생하다. 나는 원래 가톨릭 전례는 그런 것인 줄로만 알았고 그후에 나온 가톨릭 성가를 부르면서도 마음으론 늘 공동체 성가를 그리워했다.
그후 80년대 한국교회에서는 국악 성가 등을 비롯해 우리 가락과 심성에 맞는 토착화 전례가 시도되었는데, 이도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각 지역교회가 토착화 차원에서 심혈을 기울인 부분이라는 맥락에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가장 성공적이고 아름다운 토착화의 예는 연도라고 생각한다. 연도의 구성진 가락도 좋고, 옛스럽게 안드레아를 안당으로, 요한을 요왕으로 부르는 시도도 좋다. 더구나 연도는 교우 간에 어려움을 나누고 함께 한다는 데 아름다움이 있다. 삼오 미사나 연미사도 조상께 예를 갖추는 우리 전통이 잘 접목된 경우다. 물론 성당에 미사 예물만 내고, 향만 드리면 그만인가 하는 의문도 들고, 추석이나 설에 수북이 쌓이는 미사예물 봉투는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건가 하는 거룩하지 못한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뿐 만 아니라 “하느님이 우리말을 하시다”라는 문구는 아직도 설레는 감동으로 다가온다. 우리말로 다가오시는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 나는 참 많이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가져온 코페르니쿠스적 변화는 누가 뭐라 해도 교회를 이해하는 관점의 변화일 것이다. 16세기 종교개혁에 대한 대응으로 개최된 트리엔트 공의회에서는 교회의 권위와 위계질서를 강조했고 그간 많은 공의회는 교회 교의에 치중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와 사회와의 거리를 좁히고, 세상을 향해 다가가고자 교회의 가르침과 입지를 재해석한 공의회였다. 그러기에 이 공의회에서는 교회가 하느님의 백성이며 모든 신자가 사제직, 예언직, 왕직에 부르심 받았다고 천명했다. 그 정신에 따라 많은 평신도 지도자가 배출됐고, 교회 안에 여성신학이 태동했으며, 해방신학이 탄생했다.
젋은 교구, 오클랜드의 사랑받았던 주교님,
가는 곳마다 소수 민족이 들끓고 진보 신학자들과 정답게 우정을 나누다
내가 사는 오클랜드 교구는 올해로 교구 설정 50주년을 맞이했다. 그러니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한 이 젊은 교구는 수구나 전통과 같은 개념과는 잘 맞지 않는다. 이 개방적이고 젊은 교구에는 교구와 한 생을 같이한 그야말로 사랑받는 주교님이 계신다. 그분은 바티칸에서 들으면 깜짝 놀랄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해대는 진보 과격 신학자들과 아주 정답게 우정을 나누신다. 그분이 가시는 곳은 이상하게 온갖 소수 민족, 그러니까 한국, 베트남, 멕시칸 같이 평소 앞에 나서기 어려운 사람들이 들끓는다.
몇 년 전 미국에 만연한 ‘반(反) 가톨릭주의’에 대해 책을 쓴 말크 마사가 강의를 하고 내가 논찬을 한 적이 있었다. 큰 신학자를 비판하는 역할에 주눅이 든 내게 슬쩍 다가와서는 “우리 교회의 대담하지만, 지혜로운 아가씨”라며 어깨를 다독여주시고 자리에 앉으셨다. 물론 그날도 그 주교님이 곁에는 많은 아시아계 젊은이들이 앉아 있었다.
그 주교님이 은퇴하신 후, 오클랜드 교구를 맡으신 주교님들과 이곳의 신자들과는 불행히도 궁합이 잘 맞지 않았다. 그래서 교회일로 속상한 사람들은 여전히 오클랜드 시내 빈민가에 사는 그 주교님을 찾아간다. “우리 교구의 쇄신을 위해 이러저러한 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새내기 신학자들에게 “실은 다 옛날에 했었는데…” 하고 그저 웃으시며 지금은 인자한 할아버지로 남아 계신 주교님. 주교님과 신자가 궁합이 잘 맞는 교회는 행복하다. 지금도 그분이 나타나면 신자들은 현재 주교님이 누구시든, 현 주교님을 제치고 그 주교님께 달려간다. ‘양들은 목자들의 목소리를 안다’는 복음서 말씀처럼 말이다. 내가 사랑하는 한국교회의 주교님들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신자들의 모습도 떠올려본다. 어느 교구와 주교님이 가장 잘 맞는 짝일까?
새로운 교황, 교회를 사랑하면서 비판하는 신자들과 '쿵짝이 잘 맞는' 목자이기를!
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교황의 선출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번 교황님은 아프리카에서 나오기를 기도하고, 어떤 사람들은 아시아에서 나오기를 기도하는데, 나는 지역과 상관없이 현대 사회의 가톨릭 신자들과 가장 잘 맞는 교황님이 선출되었으면 좋겠다. 사실 2차 바티칸 공의회를 개최하신 교황 요한 23세는 나이도 많으셨고, 도무지 그런 혁명적인 일을 하실 분 같이 보이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분은 기도하시는 분이었고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가셨다. “아, 답답하다, 교회의 창을 열어야 할 때가 되었다”는 말씀을 하셨다. 창을 열면, 세상이 교회로 들어오고, 생활하는 신학이 들어오고, 사람들의 삶이 들어오는 것이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사퇴’라는 아주 드문 예를 남기셨다. 교회사에서 교황이 사퇴한 예는 14세기 아비뇽 유수 때에서 찾아볼 수 있다. 프랑스에 머무는 교황을 무시하고 로마에 새로운 교황이 등극했는데 중재 과정에서 결국 로마의 교황이 사퇴를 한 것이다. (단테는 그의 저서 <신곡>에서 이 교황을 지옥에 넣었다). 그러니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사퇴는 600년 만에 일어난 특별한 사건이다. 물론 이 일을 좋다 나쁘다 한마디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성령의 새로운 개입’으로 해석하면 어떤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대한 해석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기도와 식별 속에서 계속 진행되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새로운 교황님도 이 바티칸 정신을 재해석하는 이 시대의 표징을 잘 읽어내는, 그래서 교회를 사랑하고 비판하는 좋은 신자들과 쿵짝이 잘 맞는 분이 선출되면 정말 좋겠다. 그래서 그분이 양들의 이름을 친밀한 애정으로 부르면, 양들은 그 목소리를 알아서 따라가는 그럴 교회를 꿈꾼다. 꼭 꿈은 아니기를 소망하면서 기도한다. 오소서 성령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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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은 수녀 (소피아, 홀리 네임즈 수녀회)
199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서 연구하며, 이방인이자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신학적으로 해석하고자 시도했고, 지구화된 세상에서의 '이주' 문제, 동양 종교의 몸 수행에 관한 책을 써 왔다. 현재는 캘리포니아 소재 홀리 네임즈 대학의 영성학 교수이며, '여성의 원'이라는 피정도 지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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