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생활의 정의와 배려
[산위의 마을 취화당-박기호]
2012-08-23 박기호
(마태 20,1~16)
“하늘나라는 ...에 비유할 수 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하느님 나라의 비유가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유는 하느님 나라 방식을 모델로 삼으라는 것이고 죽은 다음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지상에서부터 하느님 나라의 방식을 몸에 익혀 살라는 것입니다.
영국의 미술가이며 비평가인 존·러스킨은 경제를 예술가의 시각으로 본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라는 비평서를 썼습니다. 예술이 인간의 삶을 향기롭게 하는 목적을 가진 것처럼 경제도 인격을 고상하게 만들고 창조의 목적에 협력하는 관계의 삶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저서가 톨스토이와 간디의 사상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존·러스킨은 아침에 온 사람이나 저녁 때 온 사람이나 모두에게 같은 품삯을 준 포도원 주인의 사랑과 배려가 바로 하느님 나라의 경제원리 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노동을 상품으로 보지 않으시고, 누구의 가족이나 밥은 먹어야 한다는 것을 아시니까요.
하느님은 당신의 자녀들 누구에게나 먹을 것을 챙겨서 제 먹을 것은 가지고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입이란 입이 당신을 바라보면 제 때에 먹을 것을 주시나이다.” 그런데 악마는 그 빵을 부자의 손에서 관리되게 했습니다.
아침부터 일한 사람은 식구들과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마음으로 하루를 행복하게 일했고 한 데나리온을 받았습니다. 감사할 뿐입니다. 일거리를 찾지 못한 사람도 고맙게도 한 데나리온을 받았습니다. 너무너무 고마울 뿐입니다.
일자리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지만 사람은 입 숫자대로 먹어야 합니다. 주인은 그것을 배려했습니다. 먼저 온 사람이 불평했다는 것은 ‘상품주의 혹은 자본주의 가치관’의 의인화라고 봅니다.
경제는 생산과 분배의 문제인데요. 자본주의 경제 원리는 ‘기회에 따라 일하고 능력에 따라 분배받자’ 이고,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 경제 원리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자’입니다. 자본주의는 능력에 따른 분배의 격차를 심화되니까 ‘사회복지’로 보완하고 사회주의는 능력에 따른 생산력이 문제되니까 부분적 시장경제로 보완합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자본주의다 공산주의 사회주의다 그런 게 없었으니까 우리는 복음정신의 경제방식, 즉 하느님 나라의 경제원리만을 생각합니다. 공산주의와 공산당을 구분 못하는 사람들 하고는 대화한다는 게 좀 거시기 하지요.
칼·마르크스나 레닌도 크리스챤으로 성장한 사람이니까 복음서의 포도원 주인의 비유에서 공산주의 이론을 창안했는지도 모르지요. 암튼 누가 말하길 공산주의 원조는 예수님이고 하느님이라고 주장한다면, ‘그렇게 볼 수도 있지’ 생각하면 그만입니다.
우리 마을의 수덕생활의 5행의 ‘배려’는 하느님의 의(義)이며 사랑의 다른 말입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께서 의롭게 여기는 것을 구하여라!” 할 때의 의롭다는 것이 배려이고 사랑입니다. 배려의 실행이 인정이 되고 조화로움과 평화가 됩니다.
그렇지만 공동체는 종종 배려보다는 정의를 요구할 때가 많습니다. 어떤 가족의 사정을 볼 때 규칙을 넘어서 배려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고 나면 다른 가족도 자신에게 필요하다면 그것을 하나의 선례로 삼고 요구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관성이 없다거나 공평하지 않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 결정을 일반화 관례화 시킵니다.
공동체의 정의를 요구하는 것인데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나중에 온 사람에게’ 배려한 것을 법으로 해석하거나 관례화 시킬 수 없는 일이니까요. 우리는 사람의 가치를 ‘얼마 짜리’로 계산하고 또 일방적 약관으로 복종시키는 소비주의 세계를 버리고 온 사람들입니다. 공동체는 하느님의 사랑과 배려로 서로 공유하면서 살아가더라도, 결코 굶어죽지 않고 자식들 교육도 잘 시키고 근심 없고 평화롭고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증거하는 삶입니다.
내가 산위의 마을 사람이 되고 공동체인이 되어 간다는 것은 내 정신과 영혼 깊숙이에 자동 센서처럼 되어 있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주의, 상품주의 의식이 정화되어 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2012. 8. 22)
박기호 신부(예수살이 공동체 산위의 마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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