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버렸는가?

[산위의 마을 취화당-박기호]

2012-08-22     박기호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마태 19,23~30)
부자 청년은 예수를 따르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재물이라는 위력을 가졌음에도 그것이 추종의 생에 불리하게 작동되었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베드로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시 배와 그물을 버리고 따라나서던 순간을 회상했고 자부심도 느껴졌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무엇을 보상받게 됩니까?”

‘정말 온전히 버렸는가?’는 버린 다음의 문제이고, 우선 버릴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행위하고 결정하는 내용은 단 두 가지인데 ‘얻는 것과 버리는 것’ 입니다. 태어나고 젖을 먹고 공부하고 직업을 갖고 결혼하고 자녀를 기르는 것은 얻는 것이요 배설하고 즐기고 자식을 출가시키고 병들고 이별하는 일은 버리는 것이지요.

돈 재물 음식을 포함해서 버리지 않고 모을 수만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뱃속도 근심도 제 때에 잘 버려야 건강한 것이니 그래서 화장실을 ‘해우소’(근심을 푸는 곳: 풀고 벗길 解, 근심 憂, 곳 所) 라고 합니다. 천상적 가치를 얻으려면 지상의 것들을 버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속세의 공부는 ‘一日一益(일일일익)’이라 하고, 수행자의 정진은 ‘一日一損(일일일손) 한다.’ 고 표현합니다. "얻고자 하는 것이 있는가? 그릇이 필요하니 먼저 비우라!"(마을 비목)

복음적 이상의 삶과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서 지상의 가치들을 부차적으로 여기는 것이 무소유(無所有), 혹은 ‘비움, 버림’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동생활은 비움이고 버림의 삶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소유욕, 지배욕, 공명심, 자존심, 자유자재, 먹고 자고 유희하는(식욕, 수면욕, 성욕) 본능적인 것들은 버리기 위해 애써야 하는 대상이겠지요.

자아(自我)와 자기(自己)와 자신(自身)을 넘어 세계의 행복과 더불어 행복을 누리는 삶이 공동체가 추구하는 수행의 목표 입니다. 세계와의 결합, 진리와의 한 몸됨에서 자기를 얻고 존재의 의미를 찾는 것입니다. 그런 생을 사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와 행위는 나에게 뿌리를 둔 것이 있고, 타자에게 뿌리를 둔 것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은 내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믿음, 기도, 이해, 용서, 사랑, 미움, 선택, 희생, 투표.., 이런 것들은 내 결정대로 즉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건강, 태생, 소유, 명예, 인정받거나 선택받는 것, 오해, 명예, 상대방의 태도, 이런 것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다른 것에서 결정되어 오는 것이지요.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을 좋은 결정으로 실행하고, 할 수 없는 것은 내 생각과 손길 밖에 있기 때문에 단념해야 행복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안하거나 잘못 결정해서 고통 당하고, 할 수 없는 것은 애써 하려고 안달해서 고통을 받습니다. 지혜가 필요합니다.

공동체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비움과 버림’ ‘무소유’는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대상입니다. 그러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을 누구 탓하고 어떤 가족과의 갈등 때문이라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찾아봅시다.

내가 내 마음만 가지고도 버릴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실제로는 무엇을 버렸는가? 내 마음과는 무관한 대상인데도 어떻게 해볼려고 애쓴 것은 무엇인가? (2012. 8. 21)

박기호 신부(예수살이 공동체 산위의 마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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