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공동체로 살아가는가?
[산위의 마을 취화당-박기호]
2012-08-13 박기호
우리에게는 능력이 있습니다. 친절하고 배려할 수 있는 능력,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는 능력, 도울 수 있는 능력, 노동하고 만들고 청소할 수 있는 능력, 지식을 말하고 침묵할 수 있는 능력... 모두가 은사이며 주님의 도구로 쓰일 대상입니다.
내 능력이 도구로 쓰임 받으면 치유와 구마의 행적, 물질적 정신적 관계적 수혜자가 나타나고 누군가에게 행복과 평화가 일어납니다. 굶주린 이가 먹기도 하고 전쟁을 결정하는 이가 폭격을 멈추게 하고 슬픔에 처한 이가 희망을 얻습니다. 그것이 하느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입니다. 인간의 삶에 기쁨을 제조하는 일입니다.
나에게서 은사의 능력이 나타났다는 것은 내가 주님의 도구로 부르심 받는 중에 있다는 현상입니다. 은사의 능력이 일어나는 조건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하느님의 개입이 필요한 환경입니다. 고통과 슬픔은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는 탄원과 간청의 처지가 되는 그런 것입니다.
둘째는 주님께서 하고자 하실 때입니다. 사람은 필요해서 간청한다지만 정말 그 결과도 좋은 것일까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하느님만이 아십니다.
셋째는 일에 쓰일 도구입니다. 하느님의 일에 쓰일 도구로는 자연과 사람인데 선택하여 부르십니다. “I need you!(나 좀 도와다오)" 자연은 질서와 법칙으로 응답하고 인간은 믿음과 투신으로 응답합니다. “주님의 종입니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
누군가의 응답으로 하느님의 일이 모사되고 놀라운 능력이 나타납니다. 은사란 하느님께서 일정 분량의 능력 덩어리를 주시고 그 중에 조금씩 덜어내서 베풀고, 큰 일에는 큰 덩어리를 투입해 써먹는 그런 것이 아니라 오로지 주님께서 주도하시는 능력이 드러나는 순간일 뿐입니다.
아들에게 붙은 악귀를 추방해 달라고 간청하는 아버지가 제자들 수준으론 어림없고 고수나 달인이어야 한다는 계산 자체가 하느님의 주도권보다 인간의 능력을 믿는 태도입니다.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로구나!” 제자들 역시 주님의 도구로 충실할 때만 은사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부족했다고 합니다.
공동체로 부르심을 받은 것은 큰 은사입니다. 은사가 아니라면 아주 많은 사람이 공동체로 살아가겠지요. 나는 왜 공동체로 살아가고 있는가? 이런저런 이유와 배경을 나름 생각하겠지만, ‘부르심’에 응답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를 도구로 쓰시고자 부르셨다는 믿음과 나를 통해 하고자 하신 일이 무엇인가를 알 때에 비로소 내가 왜 공동체로 살아가고 있는가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무소유, 대가족, 생태주의 생활, 원안의 삶, 자녀교육, 예술과 성사의 삶, 기품있는 죽음... 그런 것들이 왜 공동체 영성이 되는지를 비로소 알게 될 것입니다.
오늘 새벽에 올림픽 축구에서 한국이 일본을 이겼다는구만...! (2012. 8. 11)
박기호 신부(예수살이 공동체 산위의 마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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