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정난주 마리아', 가장 낮은 곳에서 피어난 연대와 구원의 모성
제주 관비로 37년, 고통을 ‘봉헌의 기쁨’으로 승화한 신앙의 증인 4월 4일 영종 성당서 첫선
한국 천주교회사에서 박해와 유배의 고통을 오롯이 살아내며, 가장 낮은 곳에서 신앙의 꽃을 피운 평신도 여성 정난주 마리아의 삶이 4월 4일 부활 성야에 영종 성당에서 첫 무대에 오른다.
이번 작품은 명문 사대부가의 여인에서 ‘대역부도’ 죄인의 아내로 추락해, 제주 대정현의 관비가 된 정난주의 극적인 일생을 다룬다. 연출은 방은미 씨(전작 ‘여걸 강완숙 골롬바’)가 맡았으며, 명동 성당 가톨릭합창단 출신 배우 이영주 스텔라가 호소력 짙은 1인극으로 무대를 꾸몄다. ‘축제’, ‘하늘의 태양은 못 되더라도’, ‘천년도 당신 눈에는’로 널리 알려진 김태진 신부(베난시오)가 작곡한 10곡의 아름다운 선율이 극 전반에 흐르며, 정난주의 생애를 묵주 기도의 ‘환희, 빛, 고통, 영광’이라는 네 가지 신비로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16살 소녀 명련(정난주)의 세례와 설렘부터 아들 황경한을 추자도에 떼어 놓는 절규, 그리고 이웃을 섬기는 제주의 ‘서울 할망’으로 거듭나기까지의 여정은 관객을 고통을 넘어선 ‘봉헌의 기쁨’으로 초대한다.
'제주의 천주교 여성 유배자, 정난주의 문학화'(김윤선, 고려대 문화창의학부 교수) 연구 논문에 따르면, 그동안 정난주는 주로 순교자 황사영의 아내이자 추자도의 아들을 버리고 떠나야 했던 비극적인 어머니로만 단편적으로 기억돼 왔다. 그러나 문학적 상상력과 역사적 성찰을 통해 복원한 그의 진짜 모습은 혈연에 매인 모성을 넘어, 세상의 버림받고 고통받는 이들을 품어 안은 ‘구원의 어머니’다.
정난주는 1801년 신유박해로 연좌제에 얽혀 제주로 유배되고, 사회적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노비(관비)의 신분으로 37년을 살아야 했다. 남편은 처형당하고, 젖먹이 아들과는 생이별을 했으며, 스스로는 복종과 노동을 강요당하는 비참한 처지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고통과 신세 한탄에만 매몰되지 않았다. 가혹한 공물과 노역에 시달리는 제주 잠부(해녀)들과 하층민들의 고통을 직면하며, 그 아픔 속에서 사람들과 연대하는 삶을 선택했다. 가장 천한 신분 속에서도 그는 뇌물을 쓰고 협박을 해서라도 자신의 아들이 노비로 전락하는 것을 막고자 했으며, 나아가 제주의 버려진 아이들을 거둬 기르고 병자와 굶주린 이웃을 돌봤다. 이는 그가 혈육만이 아닌 세상의 더 가난하고 약한 자들의 어머니로 살아갔음을 의미한다.
정난주는 권력과 신분 질서로 짓밟힌 변방의 땅 제주를 형벌의 장소가 아닌, 생명을 살리고 은총을 나누는 축복의 땅으로 변화시켰다. 그의 서사가 오늘날 한국 사회와 교회에 주는 울림은 매우 예언자적이다. 그는 위대한 권력자나 순결한 동정녀로만 추앙받은 것이 아니라, 시대의 가장 밑바닥인 노비 신분으로 이웃과 연대하며 그들의 상처를 치유한 인물이었다. 아이를 잃고 슬퍼하는 이 시대의 수많은 어머니, 무한 경쟁 사회의 안전망 밖으로 밀려나 고통받는 소외된 이들에게 정난주는 여전히 생명과 부활의 메시지를 전하는 ‘어머니들의 어머니’인 셈이다.
모노 뮤지컬 '정난주 마리아'는 죽음보다 깊은 고통을 기도로 버텨 낸 ‘순명’의 위대함을 보여 준다. 오는 부활 성야에 첫 막을 올리는 이 무대는 오늘날 우리 교회가 시선을 둬야 할 곳이 어디인지 묻는 죽비 소리로 다가올 것이다.
제주교구 성지개발위원회가 주최하는 '정난주 마리아'는 오는 4일 오후 8시, 영종 성당 부활 성야 미사 중 첫선을 보인 뒤, 전국 순회 공연의 대장정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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