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밍아웃이라는 선물

2026-03-24     정동렬

이글은 <가톨릭평론> 51호(2026년 봄, 우리신학연구소)에 실린 글입니다.

효도의 역설

누구나 기억하는 날짜가 있고, 그날들이 우리를 구성한다. 3월 1일 만세를 불렀기에 이 글은 한글이고, 12월 25일 예수님이 오셨기에 이 책이 있다. 사람마다 기억하는 날짜가 있고, 그날들이 그를 구성한다. 2016년 6월 16일 내 아들은 자신이 남성 동성애자라고 나에게 커밍아웃을 해 주었고, 그날 이후 지금까지 10년 동안 나는 성소수자의 아빠로 살고 있다.

당시에는 내가 얼마나 선택받은 아빠인지 잘 몰랐다. 성소수자의 82퍼센트는 평생 자신의 부모에게 커밍아웃하지 않는다. 부모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를 좋아하고 존경하며 사랑할지라도 신뢰하지 않으면 커밍아웃하지 않는다.

그날 이후 성소수자부모모임에 나가고 있다. 그곳에서 요즘 보기 드문 효자들을 만난다.

“아빠는 제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잘 받아들이셨어요. 감사하고 좋았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저는 이렇게 후련해졌는데, 막상 아버지는 이 이야기를 아무와도 소통하지 못하시는 거예요. 너무 답답하실 거 같아서 오늘 이렇게 아빠를 모시고 왔어요.”

“엄마에게 커밍아웃하고 싶어서 준비하고 있어요. 내년에 어머니 건강 검진을 해 드리고, 어딘가 안 좋으면 다 고쳐 드릴 수 있게 보험도 들어 놨어요. 검진 결과가 좋으면 그때 커밍아웃할 계획이에요.”

너무나 아름답고 갸륵한 이야기들이다.

반면 이제 막 커밍아웃을 받고 충격받은 부모님들도 오신다. 지금껏 행복하다가 갑자기 불행에 빠진 분들을 만난다.

“저희 아이는 공부도 잘했고, 전교 회장이었고, 뭐 하나 나무랄 데가 없는 아이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그리고 지금 아이가 잠깐 혼란스러운 거니 좀 더 잘 생각해 보라는 제 이야기에 왜 반항하는지 모르겠어요.”

“제 아이는 어릴 때부터 정말 엄마에게 다정한 아이였어요. 지금껏 부모가 하라는 대로 다 따랐고, 마침내 이번에 제가 원하는 대학에도 갔어요. 그렇게 효자였던 아이가 갑자기 왜 이런 커밍아웃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눈치챘겠지만, ‘효도의 역설’이다.

성소수자들은 소년기 혹은 청소년기에 자신의 정체성을 알기 시작한다. 그리고 충격과 수용의 힘든 시기를 보낸다. 물론 이 시기를 제대로 통과하지 못하고 삶을 마감하는 아이들도 있다. 어쨌든 그들은 성장해서 언젠가는 자기 부모에게 커밍아웃해야겠다고 꿈꾼다. 그래서 미리 마일리지를 적립하기 시작한다. 공부를 잘하고, 말 잘 듣고, 부모가 원하는 진로에 따르고, 부모가 원하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 그렇게 적립한 마일리지가 언젠가 자신의 커밍아웃 시점에 효용을 발휘하리라 기대한다.

그런데 부모는 자녀의 바람과는 반대의 양육 경험을 쌓아 간다. 자기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잘 자라고 있다는 효능감에 충만하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내가 원하는 배우자감과 결혼해, 내가 원하는 손자를 품에 안겨 줄 것으로 기대에 부푼다.

그러다가 커밍아웃이라는 사건을 만나게 된다. 이때 부모는 그동안의 관성에 따라, 이번에도 자신의 뜻이 관철될 것으로 생각하고, 자식을 수용하지 않거나 거부하면서 자기 훈육의 틀 안에 가두려고만 한다. 반면 자식은 그동안의 효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거부하는 부모를 마주하며 낙담한다.

이 순간 부모는 어떻게든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고자 한다. 이때 성경 말씀이 등장한다. 그리고 마침내 믿음이 믿음을 배반하는 막막한 벽을 마주한다. 이렇게 위험한데 아이들은 왜 부모에게 커밍아웃하고 싶어 할까? 그냥 조용히 숨기고 살면 될 텐데, 그럼 그냥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편안하지 않을까?

여기서 ‘생존을 위한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등장한다. 부모에게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기는 데 드는 에너지는 엄청나다. 단순히 비밀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존재 앞에서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연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모와 대화할 때마다 여과를 거쳐야 하고, 무의식중에라도 들키지 않기 위해 항상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또한 부모님을 속인다는 죄책감이 에너지 소모를 가중한다. 이렇게 에너지를 쓰면 쓸수록 부모님과의 거리는 오히려 멀어진다. 이 에너지는 관계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 ‘가짜 평화’를 위장하는 데 쓰이기 때문이다.

반면 커밍아웃 후 겪게 될 갈등의 에너지는 폭발적이고 두렵기만 하다. 부모님의 실망, 분노, 부정 등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에너지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숨기는 에너지는 죽을 때까지 할부로 갚아야 하는 빚이라면, 커밍아웃은 일시불로 큰 비용을 치르는 것과 같다. 비록 고통스럽더라도, 거짓이 없는 상태로 나아가기 위한 에너지다. 결국 손익 분기점을 넘기는 순간이 온다.

“평생 이 가면을 쓰고 사느라 내 영혼이 갉아먹히는 고통(A)이, 당장 부모님과 겪을 전쟁 같은 갈등(B)보다 더 크다.”

이렇게 판단되는 순간, 즉 ‘A > B’가 되는 순간 입을 떼게 된다. 더는 숨길 연료가 바닥났거나, 숨기는 것이 내 삶을 너무 피폐하게 만든다고 느끼는 한계점일 것이다. 그 계산을 하게 만드는 근본적 동력은 결국 관계에 대한 희망이다.

부모님과 영원히 남남처럼 살 것이라면 에너지를 계산할 필요도 없이 그냥 숨기고 멀어지면 그만이다. 하지만 ‘진짜 내 모습으로 부모님과 연결되고 싶다’는 욕망이 있기에, 그 힘든 계산을 하고 커밍아웃이라는 모험을 감행한다. 결국 내 아들의 커밍아웃은 나를 향한 가장 간절한 대화였다. 그 용기를 내어 준 아들이 더없이 고맙고 대견하다.

(그림 생성 = 챗지피티)

아빠의 커밍아웃

그런데 정작 나에게 중요한 과제는 그다음에 찾아왔다. 아들의 커밍아웃을 수용하고, 성소수자부모모임에 나가면서 차츰 안정을 되찾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 나 또한 숨기는 에너지를 사용해야 함을 알았다. 정말 무언가를 숨기는 건 어려운 일인가 보다. 오죽하면 목숨을 걸고 임금님 귀의 형상을 발설했을까?

아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집 안의 나’와 사회적 통념에 맞춰 침묵하는 ‘집 밖의 나’ 사이의 괴리감이 나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내가 밖에서 아들의 정체성을 숨기는 것이, 혹시라도 내 아들을 부끄러워한다는 뜻으로 비치지는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숨기는 데 드는 에너지는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자식에 대한 미안함’이라는 견디기 힘든 고통으로 다가왔다.

마침내 아들의 커밍아웃 이후, 나에게도 ‘커밍아웃의 순간’이 찾아왔다. 일단 맨 먼저 한 일은 주변 지인을 선별하는 것이었다. 어떤 친구가 이 이야기를 받아줄까? 결국 나는 커밍아웃할 ‘상대’를 골랐다. 그런데 중요한 건 ‘상대’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똑같은 사실을 전하는데도, 내가 어떤 마음 상태냐에 따라 상대의 반응이 극과 극으로 갈렸다.

처음에 주변 친한 친구들에게 아들의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내 마음의 근육은 아직 단단하지 못했다. 머리로는 아들을 받아들였지만, 가슴 한 구석에는 여전히 ‘남들이 우리를 어떻게 볼까?’ 하는 두려움과, 아들이 겪을 가시밭길에 대한 연민이 짙은 그늘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술잔을 기울이다 뜸을 들이고, 한숨을 섞어 가며 어렵게 입을 뗐다. 마치 고해 성사를 하는 죄인이나, 큰 불행을 당한 사람처럼 어두운 표정이었다. “사실은... 내 아들이 동성애자라더라.”

그러자 친구들의 반응은 일제히 ‘위로’였다. “아이고, 어쩌냐. 네가 마음고생이 심했겠구나.”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데, 힘내라.” 어떤 친구는 눈물을 글썽이며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그들은 나의 이야기를 ‘불행’으로 받아들였다. 내가 불행한 표정으로 그 사실을 전시했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잠시 위로를 받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오히려 더 처참하고 슬펐다. 친구들의 위로가 역설적으로 “너는 지금 불행한 일을 겪고 있어”라고 확인 사살을 하는 것 같았다.

시간이 흘러, 성소수자부모모임 활동을 하며 아들을 온전히 긍정하고, 스스로 ‘성소수자 부모’라는 정체성이 단단해진 후의 일이다. 오랜만에 만난 다른 지인에게 아들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이번엔 달랐다. 뜸 들이지도, 한숨을 쉬지도 않았다. 그저 아들이 어느 학교에 갔는지, 요즘 무슨 일을 하는지 이야기하듯 담백하고 쿨하게 말했다. 그때 내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었고, 목소리에는 아들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 있었다.

“내 아들은 남자를 좋아하는 게이야. 자기 삶을 아주 멋지게 잘 살고 있어.”

잠시 정적이 흘렀지만, 반응은 놀라웠다. “어? 그래? 하하, 야 요즘 그런 친구들 많더라.” “아들 멋지네. 너도 참 깨어 있는 아빠다.” 그게 끝이었다. 눈물도 과도한 위로도 없었다. 그저 ‘아, 그렇구나’ 하고 다음 화제로 넘어갔다. 내가 그 사실을 ‘아무렇지 않은 일’, 아니 ‘자연스러운 일’로 대하자, 세상도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때 깨달았다. 세상은 나의 거울이구나. 내가 내 자식을 ‘숨겨야 할 부끄러움’이나 ‘슬픈 일’로 여기면 세상은 나를 동정하고, 내가 내 자식을 ‘당당한 존재’로 여기면 세상은 나를 존중하는구나. 결국 에너지를 낭비하게 했던 것은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흔들리는 나 자신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단단해지면, 세상의 편견이라는 벽도 생각보다 쉽게 허물어지는 모래성일지 모른다.

서로에게 대나무 숲이 되어 주기

이와 같은 커밍아웃의 확산은 나에게서 멈추지 않았다. ‘내 아들은 게이야’라고 세상에 깃발을 꽂고 나니, 예상치 못한 연쇄 반응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내가 횃불을 드니 그들도 응답했다.

얼마 전, 시끌벅적했던 동창회가 끝난 뒤였다. 친구들이 하나둘 자리를 뜨고 어수선한 틈을 타, 평소 말수가 적던 한 친구가 내 곁으로 조용히 다가왔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내 소매를 끌며 낮게 속삭였다. “사실은... 내 딸도 레즈비언이라고 커밍아웃했어.” 그 친구의 눈빛은 복잡해 보였다. 반가움과 두려움이 뒤섞인 눈빛.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네가 당당하게 말하는 것을 보니 정말 부럽더라. 난 아직 다른 애들에겐 얘기 못 하겠어. 입이 안 떨어져.” 그는 여전히 그 막대한 ‘숨기는 에너지’를 쓰는 중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털어놓는 그 짧은 순간만큼은, 그 무거운 짐을 잠시 내려놓고 숨을 쉬는 듯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느 날은 오랫동안 연락이 없던 전 직장 동료가 찾아왔다. 수소문 끝에 내가 성소수자 인권 활동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것이었다. “선배님, 제 딸아이가 자기가 퀴어라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지, 제가 아빠로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막막해 하는 그의 얼굴에서 10년 전 내 모습을 보았다. 혼란과 공포 그리고 자식을 사랑하기에 겪는 고통. 나는 그에게 먼저 길을 걸어간 선배이자, 마음놓고 물어볼 수 있는 유일한 대나무 숲이 되어 줄 수 있었다.

커밍아웃을 하고 광장에 나서며 알게 되었다. 내 주변엔 이미 수많은 성소수자의 부모가 숨죽여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들은 내가 낸 용기에 기대어 비로소 “나도 사실은...”이라며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나의 커밍아웃은 “여기 안전한 사람이 있어요. 여기 당신과 같은 고민을 하는 아빠가 있어요”라고 보내는 구조 신호이자 초대장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비밀이 아니라, 서로의 용기를 나누는 든든한 연대가 되어 갔다.

퀴어 명문가

그렇게 아내와 함께 성소수자 인권 활동을 시작해 이제 나름 퀴어 명문가를 이루었다. 그리고 보다 넓은 세상을 만났다. 이전엔 몰랐던 수많은 소수자, 장애인, 자살 유가족, 친족 성폭력 피해자, 이주민, 이태원 참사 유족 등.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나는 원래 소수자였다. 세상에는 아주 극소수의 ‘다수자’를 제외하고, 엄청난 숫자의 ‘소수자’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모든 시작은 아들의 커밍아웃이었다. 그래서 아들에게 감사한다. ‘고마워 아들.’

정동렬

활동명 ‘지미.’ 기업 교육을 하는 프리랜서 노동자다. 남들 앞에서는 직업과 달리, 내성적이고 낯가림이 심하다. 그래서 힘든 강의를 마친 후 혼술 하길 좋아한다. 특별한 날의 이벤트를 챙기기보다 일상의 소소한 재미를 나누며 살고 싶어 한다. 아들의 커밍아웃 이후 ‘성소수자 부모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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