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병을 거부하라!
궁지에 몰린 트럼프가 5개국에 군함 파견을 강요하고 있다. 이 5개국에 한국이 포함되었다. 자기가 엎지른 물을 우리 보러 치우라는 격이다. 되지 않을 일이다. 나는 트럼프의 요청을 다음 논거로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범국 미국·이스라엘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모든 전쟁이 초래하는 불행과 불의 때문에 우리는 전쟁을 피하고자 가능한 모든 합리적인 방법들을 다 강구해야 한다.”(2327항)고 권고하고 있다. 이 교리에 비춰 보면 이 전쟁은 사전에 충분히 합리적인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미국은 이러한 노력 대신 협상조차 기만 전술로 이용하였다. 우리 교회는 이처럼 “국제법과 그 보편적 원칙을 일부러 어기는 행위들은 범죄”(2328항)로 본다. 그리고 “국제법과 그 원칙에 어긋나는 고의적 행동과 그것을 지시하는 명령들”(2313항)도 단죄한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국제법을 어긴 침략자라는 데 동의한다면 같은 잣대로 ‘미국·이스라엘’도 침략자라고 말해야 한다. 당연히 이러한 침략 전쟁에 가담하는 것은 같이 전범국이 되는 길이다.
정당성 없는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침략
신자라면 누구나 우리 교회가 ‘정당한 전쟁’ 교리를 가지고 있음을 알 것이다. 이 교리는 한마디로 전쟁이 도덕적 정당성을 갖는 조건들을 가리킨다. 특히 침략(공격)을 당한 나라가 무력으로 정당 방위를 할 수 있는, 즉 도덕적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엄정한 조건을 가리킨다. 다음 네 가지다.
공격자가 국가나 국제 공동체에 가한 피해가 계속적이고 심각하며 확실해야 한다.
- 이를 제지할 다른 모든 방법이 실행 불가능하거나 효력이 없다는 것이 드러나야 한다.
- 성공 조건들이 수립되어야 한다.
- 제거되어야 할 악보다 더 큰 악과 폐해가 무력 사용으로 초래되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상황 판단에서 현대 무기의 파괴력을 신중하게 고려하여야 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309항)
이 조건은 공격을 당한 나라가 따져야 할 조건이다. 이란 입장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에 들이대야 할 조건이다. 백번 양보해 이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침공할 만한 이유로 본다고 치자. 미국과 이스라엘은 정당성이 있다고 우겨도 이를 국제 사회가 동의할까?
적어도 내가 알기에 국제 사회는 이번 공격이 명분 없는 침략이라 보고 있다. 정당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이란에 대해 각자 가진 입장과 별개로 국제법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정당한 명분 없이 선제 공격을 했고 다른 가능한 방법들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성공 조건도 치밀하지 않았고 더 큰 악과 폐해만 초래했다. 따라서 이런 전쟁에 참여를 종용하는 것은 범죄에 가담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우리의 안보를 위협할 파병
미국이 최근 국내 미군 기지에 배치돼 있던 요격 미사일들을 미국을 거쳐 중동 지역으로 이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국민 모두는 미국이 이 무기들을 북한의 남한 위협 억지용으로 배치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를 임의로(동의를 구하는 형식을 취하긴 했지만) 이전했다. 이는 주한 미군이 대북 억지를 위해 주둔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 주는 사례였다. 미국은 주한 미군이 동맹의 이익이 아니라 대중 견제라는 자국 이익을 위해 주둔하고 있음을 이번 기회에 드러낸 셈이다. 늘 그랬지만 처음으로 드러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대북 억지를 명분으로 주둔비를 인상하고 관세 인하 명목으로 용도 불명의 비용도 청구하였다.
문제는 주한 미군의 용도가 대중 견제라는 사실이 분명해질수록 우리가 더 위험해진다는 점이다. 이란은 이번에 미국의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미군 기지가 있는 주변국들을 공격했다. 미·중 대결이 벌어지면 우리가 이란의 주변국 처지가 된다. 중국이 우리를 공격할 것이다. 이는 주한 미군이 우리를 안전하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험하게 만든다는 것을 뜻한다. 전문가들이 말하듯 연루(連累) 위험을 크게 만드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가 자국 이익을 위해 벌이는 이 명분 없는 전쟁에 왜 끌려 들어가야 하는가?
한국이 최근 국제 사회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많은 나라가 우리와 친하려 한다. 내가 보기에 가장 큰 이유는 ‘잘사는 데 위협적이지 않아서’인 것 같다. 강대국들은 친해도 위험하고 안 친해도 위험한데, 우리는 대부분의 나라에 위협적이지 않아서라는 것이다. 우리가 중견국으로서 세계 평화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좋은 위치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시기에 미국이 벌인 전쟁에 협조하게 되면 영국이 미국의 푸들 노릇을 하다 국제 사회에서 희화화되고 미움을 받았던 일이 우리 모습이 되고 말 것이다.
이번 전쟁이 주는 교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대부분은 러시아의 손쉬운 승리를 예상했다. 그런데 이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뒤에 나토(미국 포함)가 있어서다. 나토의 지원이 없었으면 지금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점령하고 괴뢰 정부를 세웠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란 뒤에 러시아와 중국이 있다. 쉽게 끝나지 않을 전쟁이다. 물론 강대국의 지원만으로 전쟁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당사국 역할도 중요하다. 이란은 성전(聖戰)의 각오로 임하고 있다. 체제 생존을 위해 무엇이든 감행할 태세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들은 무정부적 국제 질서에서 어느 국가든 ‘생존(안보)’이 제일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만일 북한이 이란의 처지라면 우리에게 어떻게 할까? 체제의 생존을 위해 무엇이든 하지 않을까?
이란과 북한은 베네수엘라가 아니다. 중국은 더더욱 아니다. 자칫하면 동북아 전체가 공멸한다. 더 불행한 일은 두 진영이 한반도에서 충돌하는 경우다. 이 경우 우리만 망한다. 따라서 미국이 부른다고 냉큼 따라가선 안 된다. 머잖은 미래에 우리에게 닥칠 일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가 살기 위해서라도 파병은 하지 말아야 한다. 더욱이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교회는 앞장서 파병을 막아야 한다.
박문수
가톨릭 신학자이자 평화학 연구자
우리신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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