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통합에 빠진 것

2026-02-25     정형준

이재명 정부의 지방균형발전론에 따른 전략 지원으로 행정통합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우선 광주·전남은 통합 법안이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해 통합이 목전에 있고, 대구·경북, 충남·대전도 통합법 통과를 시도하고 있다. 이렇게 빠른 진전을 보인 이유는 정부가 통합을 할 경우 4년간 최대 20조 원의 파격적인 재정 지원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현 정부의 ‘5극 3특’으로 불리는 지방 분권 전략은 수도권과 같은 5곳의 초광역권을 거점으로 삼아 수도권 ‘1극’ 체계를 극복하고, 특별자치도 3개를 둬 균형 발전하겠다는 계획을 기본으로 한다. 이 전략에 따르면 수도권과 같은 메가시티가 대전·충청, 부울경, 대구·경북, 광주·전남에 만들어져야 한다. 한데 이번 통합 시도는 실제로 여러 부작용을 낳고 있다. 우선 이번 지방 선거를 노린 빠른 정책 집행으로 통합 법안 속 독소 조항이 산재한다.

대구·경북을 보면 지금은 삭제됐으나 최초 제안 법안에는 ‘글로벌미래특구’에서 최저 임금과 주 40시간 초과 근무 관련 예외 적용을 명문화했었다. 근로기준법을 무력화해 극단적 노동유연화를 추진하는 것과 지방 분권이 무슨 관련이냐고 반문할 만하다. 저임금 산업을 우선 유치하겠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여기에 대구·경북, 전남·광주 모두 경제특구에 영리 병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을 통합법에 실었다. 특수 목적고, 국제고, 영재 학교 등은 초중등교육법의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예외 조항도 포함됐다.

즉 행정통합 법안은 표면으로는 지방 분권과 이재명 정부의 막대한 재정 지원 약속이 배경이지만, 내용에는 친자본적 규제 완화와 시장친화적 조치들이 포함돼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 행정통합이 노리는 핵심 전략이 민간 기업 유치이기 때문이다.

지방 소멸의 이유

많은 사람은 지방 소멸의 이유를 일자리 부족에서 찾는다. 맞는 말이다. 실제로 한국은 농업 국가에서 산업 국가로 전환하면서 농어촌 일자리가 줄고 도시의 일자리는 늘어 왔다. 농업은 자동화되고 산업화되면서 과거와 같은 가족 농업이나 소규모 농업은 축소됐다. 여기에 중앙 정부가 계획을 수립해 국가 주도로 수행한 한국의 산업화 전략 덕에 지방이 주도해 산업화를 추진하지 않았고, 그 수혜를 거의 받지도 못했다.

울산, 창원, 마산, 여수, 거제 같은 항구 기반의 산업화 도시들은 인구가 집중되고 아직 상대적으로 건재하지만, 이조차 산업 본사와 실제 기업의 경영 부서는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이는 주요 선진 산업 국가에 비해 현저히 지역에 기반한 산업체가 없는 이유다.

여기다 빈약한 지역 기반의 금융 자본(지방 은행 등)이나 건설 회사조차 이런 중앙집중화에 편승해 수도권으로 진출하면서 자신의 기반 지역을 외면하는 악순환도 가중됐다. 지역은 거대 산업화 공장과 발전소 및 생산 기지가 생겨난 곳도 있지만, 이를 통제하고 운영하는 기업 본부는 모조리 수도권으로 집중했다.

이렇게 수도권으로 집중이 가중되면서 수도권의 자산 가치가 상승했다. 대표적으로 부동산 가격의 격차는 지역과 비교가 되지 않게 가파르게 올랐고, 주요 기업들은 수도권을 개발하고 본사 건물을 수도권으로 옮기면서 자산 수익도 키우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일자리는 결국 수도권에 만들어졌다.

다시 정리하면 산업 개발을 중앙집중적으로 하고, 이를 더 가속화하면서 금융, 산업, 서비스 등 전반의 수도권 집중이 발생했다. 문제는 이를 해결할 방법을 여전히 지방의 기업 투자에서 찾았다는 점이다.

지난해 11월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제9회 중앙지방협력회의를 열어 재정 분권, 지방 정부 권한 확대 등을 논의했다. (사진 출처 = 청와대 누리집)

기업은 지방을 살릴 수 있을까?

지방의 공동화가 심화되자 25년 전부터 지방으로 자본을 유치하기 위한 규제 완화 조치가 시작됐다. 경제자유구역이 그 대표적 예다. 무려 25년 전인 2002년 시작된 경제자유구역은 인천, 부산, 광양만, 경기, 대구·경북으로 확대됐고, 이제는 10곳에 이르러 전국에 경제자유구역이 없는 곳이 없다. 2008년 지정된 새만금경제자유구역은 개발 난맥상으로 아직도 제대로 된 기업을 유치하기는커녕, 환경 오염만 가중돼 지역에서는 생태 위기를 더 걱정하는 상황이다.

지역개발론자들은 25년간 경제특구가 수도권보다 각종 규제를 완화했음에도 자본 유치가 안되는 이유를 규제가 충분히 완화되지 않아서라고 주장해 왔다. 규제를 더 완화하면 자본이 유치된다는 논리다. 하지만 앞서 봤듯이 수도권에 금융, 산업, 서비스, 부동산 등 대부분의 자본이 집중돼 있는데, 규제완화만으로 경제특구로 이동할 산업체는 없었다. 혹여나 경제특구에서 일정 규모로 성장하면 이들 기업도 수도권으로 본사를 이전하고, 수도권에서 자산 투자를 동반한 본사 건립을 하곤 했다.

벤처 기업을 유치해 경제특구를 살리겠다는 시도의 보건의료판이 제주도에서 시도된 영리 병원 설립시도다. 중국 자본이 투입되어 국내에서 최초로 허가받은 ‘녹지병원’은 외국인 정주 시설이니 첨단 의료 시설이니 하는 영리 병원 도입 명분과는 달리 피부미용 전문 병원으로 기획됐다. 하지만 이조차도 중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려 했으나 의사를 비롯한 의료진 구인이 어려워 개원이 미뤄졌다. 결국 녹지 그룹은 개원을 하지 않고 진료 범위를 내국인으로 확대해 달라고 소송만 걸었다. 영리 병원의 내국인 진료 허가가 주목적이었던 셈이다.

이 과정을 보면 경제특구 등 규제 완화에 기반한 자본이 실제 노린 부분은 사업의 내실화와 성공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규제 완화에 눈독을 들이는 자본의 특성은 지역 경제 활성화도 아니고, 그 지역에서의 성공이 아니었다. 단지 지역의 규제 완화에 기대어 수도권에서의 규제 완화도 확보하려는 시도다.

녹지병원의 경우를 보면, 일 단계로 내국인 진료를 하면서 건강보험 진료의 예외를 두는 병원을 제주도에는 작게 설립하고, 이 모델을 수도권의 경쟁력 있는 큰 병원으로 성공시키겠다는 단계별 전략이었다. 결국 수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기업들이 지방에서 규제 완화로 일시적으로 성공 혹은 진출하더라도 이는 지역에 도움을 주진 않는다. 도리어 지방의 규제 완화책은 수도권 진출의 발판일 뿐이다.

지방 분권과 지역 소멸 극복은 공공 서비스 확대에서

결국 규제 완화, 기업 유치로 지방을 살리겠다는 주장은 수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자본의 속성에 위배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대다수 선진국은 지방 분권과 지방 살리기의 핵심을 기업 유치가 아니고 공공 서비스의 내실화와 확대에 둔다. 한국은 법률, 교육, 사회복지, 의료 등 핵심 서비스 산업 모두 민간 주도로 돼 있다. 이들 서비스 산업은 사람이 직접 하는 사업들로 큰 고용이 뒷받침되는 관계로 지방에 기본 인적 연결망과 고용 구조를 만들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은 이런 서비스 사업조차 지방에서 이탈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방 병원을 보면 민간 종합병원이 폐원하고 있고, 고용율이 낮은 요양 병원만 일부 남고 있다. 요양 서비스도 요양원, 주간보호센터가 지역의 높은 고령율에도 인력 고용을 할 수 없어 수도권에 집중되면서, 지역 노인들이 자녀들이 사는 수도권의 요양 시설로 옮기는 추세다. 결국 이들 서비스사업에 고용할 인력이 축소되어 지역에서 사업을 영위할 수 없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애초에 병원과 요양 시설, 학교를 경찰서, 소방서처럼 국가가 필수 서비스로 운영했다면 생기지 않았을 문제다. 가까운 일본은 학교, 병원, 요양 시설이 공공 서비스로 지역에 최소한으로 자리 잡고 있어 지방 소멸을 막고, 청년 세대가 이런 서비스 사업에 고용되어 지역 경제가 유지되는 기본적인 선순환을 만들고 있다. 이는 독일, 프랑스 모두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한국에서 지방 소멸의 핵심 이유는 지방에 남아 있는 공공 서비스가 극히 적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재명 정부가 ‘5극 3특’을 성공시키려면 이는 민간 기업 유치가 아니라 공공 병원, 국공립 학교(대학교를 포함) 건실화, 공공 요양 시설 확대로 전략이 바뀌어야 한다. 한동안 수익이 없어도 이들 서비스 산업이 유지돼야 한다. 공공 서비스가 기본 고용과 지역 사회 선순환를 가져와야 최소한 지역 유지의 토대가 마련된다.

끝으로 민간 기업이 유치되고 이들이 모종의 경제적 선순환을 마련하기 위해서도 경제특구에서 핵심 정주 시설인 학교, 병원이 구비돼 있어야 한다. 경제특구에도 학교와 병원, 공공 시설이 없는데 누가 투자하겠는가? 충분한 정주 인구가 없는 곳에서 구인이 안 될 텐데 민간 자본이 투자할 리가 없다. 결국 공공 서비스 확대는 민간 자본 유치를 위해서도 필요 조건이다.

따라서 이미 25년간 실패한 규제 완화와 민간 자본 유치 중심의 지방균형발전론은 이제 전면 전환해야 한다. 행정통합 법안은 지방에 부족한 공공 서비스 시설과 인력을 어떻게 확대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부터 세우고, 지방에 지원하는 막대한 지원금은 기본 공공 기반 시설부터 재건하는 데 투입돼야 마땅하다. 공자 말씀처럼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이 진정한 잘못이다.”

정형준

재활의학과 전문의,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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