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는 성장으로 극복할 수 없다

2026-01-22     정형준

이재명 대통령이 신년 기자 회견에서 한국이 K자형 성장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스타트업, 벤처 열풍 시대로 이를 극복하겠다고 밝혔다. K자형 성장이란 일부는 성장하고 나머지는 하락하는 구조를 말한다. 주로 선진국, 대기업, 고학력, 정규직은 흐름을 타고 중진국, 중소기업, 저학력, 비정규직은 하방 경로에 놓인다고 하여 K자형이라 부른다.

이재명 대통령의 주장은 하방 경로에 놓인 중소기업, 저학력층, 비정규직도 성장해서 같이 성장하자는 해법이다. 모두 성장하면 된다고 이야기하는 셈인데, 내용 자체가 틀렸다고 볼 수는 없으나, 자본주의에서 모두가 성장한 사례는 없다. 시장 경제는 기본적으로 경쟁과 축적으로 경쟁력 있는 기업만 살아남는 구조고, 도태된 기업과 집단은 배제된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해결코자 복지 국가 등이 고안된 것이다.

즉 현재 한국의 K자형 성장이 단순히 모두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한국의 성장 경로를 봐도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미 IMF 외환 위기 이후 수출 주도의 경쟁력 있는 산업을 중심으로 양성해 왔다. 그 결과 비정규직이 늘어났고, 내수경제는 어려워졌다. 역설적으로 이런 구조 조정으로 한국의 대기업들은 국제 시장에서 나름 우위를 누려 왔다.

이런 문제가 누적되면서 2017년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심화된 양극화를 해결하고자 ‘소득 주도 성장’을 제시했다. 유효 수요를 늘려 양극화를 최소화하겠다는 발상은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주로 케인즈주의 경제학자들이 제시해 온 접근으로, 국가의 대규모 투자를 통해 유효 수요를 창출하는 방식은 뉴딜로 불리며, 과거에는 일부 성공도 거둬 왔다. 그런데 이런 ‘소득 주도 성장’도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최저임금은 일부 인상됐고, 비정규·비숙련 노동자들의 소득은 정규직화가 일부 되면서 늘어났으나, 자본가나 고소득 노동자의 소득 증가를 따라잡지 못했다. 더구나 자본가나 고소득층은 더 늘어난 소득을 주로 부동산과 금융자산에 투자했는데,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부동산 가격 폭등의 원인이기도 하다. 그 결과 평범한 노동자, 서민과 부자들의 자산 격차는 더 벌어졌다. 소득 증가만으로는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걸 보여 준 사례다.

이런 한계 때문에 서구 선진국들은 부유층에게 세금을 많이 매기고, 이를 사회 서비스나 복지 제도의 형태로 노동자와 서민에게 재분배해 왔다. 유동성 확대가 낳은 자산 가치 상승의 혜택을 평범한 대중에게 돌려주려면, 현금이 아니라 공공 서비스로 제공하는 수밖에 없다. 복지 국가 체계는 바로 ‘같이 잘 살자’는 이념을 현실 정책으로 구현해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성장만으로 양극화를 막을 순 없다는 건 디킨스의 소설들이 보여 준 초기 자본주의의 무한 경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복지도, 소득도 아니고 성장으로

기본 소득이나 기본 사회를 내세운 이재명 정부의 지난 6개월을 보면, ‘기본’ 수준의 소득을 보장해 생활 수준을 유지하거나 향상하겠다는 계획도 철회된 듯하다. 기본 사회 계획도 '인공지능 기본 사회'로 방향이 전환됐는데, 이는 명백하게 미·중 경쟁의 핵심 전선인 인공지능 산업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총력전이 됐다. 성장과 기본적인 사회 서비스를 연결하겠다는 주장인데, 앞서 봤듯이 ‘성장 후 분배’는 분배가 성장의 걸림돌이 되는 순간 후순위로 밀려난다.

구체적으로는 경쟁력이 있는 기업에 자원을 몰아주겠다는 것도 분명해졌다. 국제 인공지능 경쟁의 핵심 요소로 꼽히는 반도체 클러스터(산업 거점), 데이터센터, 에너지 공급망 등은 모두 한국이 미국과 중국 다음을 선점해야 한다는 담론 속에서 무비판적 지원을 받고 있다. 결국 인공지능 산업 기반과 직접 관련된 분야들은 일 순위 산업 지원 대상이 되었다. 이는 모두 대기업이 주도할 수밖에 없는 영역이다. 여기다 무기 생산도 군비도 증강하겠다고 한다. 이 역시 주요 거대 중공업 기업만이 할 수 있는 사업들이다.

즉 인공지능 산업이나 무기 산업은 구조적으로 스타트업이나 벤처 기업이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이러다 보니 일부 생성형 인공지능 응용 분야나 초기 자본 부담이 적은 바이오, 뷰티 산업 정도만 남게 되었다. 반면 소재, 부품, 장비 같은 중소기업이 집중할 수 있는 영역에 대한 투자는 수요 부족이라는 난관에 부딪히고 있고, 대기업 하청 외에는 활로가 막혀 있다.

결국 대기업 중심의 수출 산업 지원은 더 선명해지고 있다. 이미 지난해 전체 수출의 30퍼센트가량이 반도체에 집중돼 있다. 20여 년 전 10퍼센트 수준일 때도 반도체가 먹여 살리는 한국이란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제는 반도체만으로 전체 수출이 좌우될 만큼 대기업 의존도가 심해졌단 뜻이다. 무엇보다 이런 편중된 성장 계획으로 거둔 이윤을 어떻게 나누냐에 있다. 과거에는 그나마 노동 소득으로 분배하려 한 데 비해, 이재명 정부는 주식시장 활성화를 통해 금융 소득으로 이를 나눠 가지도록 독려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목표로 한 코스피 5000을 넘어섰고, 실제 주가 지수 상승 폭도 상당하다. 요즘 직장인들의 대화는 대부분 어떤 주식에 투자해야 되냐는 내용들이다.

그런데 이런 금융 부분의 팽창 역시 K자형 구조를 강화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우선 주가 상승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비롯한 반도체 기업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그 외 방산 산업, 에너지 산업, 조선 산업 등 수혜 업종도 모두 대기업이다. 두 번째로, 이 상승 국면에서 얻은 소득도 대부분 대형 투자사, 일부 부자에게 돌아갔다. 코스피 5000 시대의 이익을 부자들과 일부 똘똘한 정규직, 전문직이 독식하면서, 작은 낙전 수준의 투자 수익에 다수 국민이 집중하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만약 금융으로 이런 이익을 사회 전체에 나누려고 한다면, 공적 금융 투자로 거둔 이익이 공공의 현금이나 현물 서비스로 환원돼야 하는데, 아쉽게도 한국의 사회 서비스 공급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이다.

여기에 금과 은 같은 현물 자산 가치도 함께 오르고 있고, 부동산도 가격 상승이 분명해 보인다. 이제 일해서 버는 돈들의 가치는 떨어지고 있고, 자산가들은 계속 돈을 버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K형 성장은 자산 시장의 팽창으로 더 확대되고 있다. 소득불평등과 자산 불평등이 한국에서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었으나, 이제 ‘평등’이라는 가치가 기회의 평등이란 ‘공정’ 담론으로 축소되고, 투자를 통한 자산 증가는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존중과 칭송의 대상이 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양극화는 더 가속화되고 있다.

1월 21일 이재명 대통령 신년 기자 회견 모습. (사진 출처 = 청와대 누리집)

대만 보고 위안 삼을 상황 아니다

최근 한국은행이 대만의 성장 경로를 'K자형 성장'이라고 부르면서, 대기업, 상층부만 부를 늘려 가는 현상을 분석했다. 구체적으로 "반도체 산업에 치우친 성장과 낮은 노동소득 분배 등 구조적 문제로 대만 경제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대만이 작년 7.8퍼센트의 경제성장율을 기록하며 한국의 1퍼센트와 비교할 수 없는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는 반도체 산업의 특수라는 점을 지적하려고 했던 것 같다. 맞는 말이다. 대만에서도 반도체 산업에서 발생한 이익의 대부분은 일부 대기업에 돌아갔다. 그 결과 노동소득분배율은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노동소득분배율만 가지고 대만이 한국보다 양극화가 심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실제 주요 지표들을 보면 국민들의 체감상 한국이 대만보다 더 살기가 어렵다. 이런 인식 차이는 사회 서비스를 제외하 소득만 다루기 때문에 보이는 착시다. 우선 한국은 가까운 대만, 일본보다 사회 서비스 시장화가 심하다. 의료 서비스를 보더라도 일본, 대만보다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크다. 한국의 직접 의료비 부담은 OECD 최고로 일본, 대만의 3배에 육박한다. 건강보험 보장성이 낮아 가계에서 직접 부담하는 의료비가 높은 만큼 가처분소득은 줄어든다.

교육도 사교육비가 높아서 소득의 상당 부분이 교육비로 빨려 간다. 일본과 대만은 공교육이 한국보다 탄탄하고 사교육비가 한국보다 낮다. 노인 부양비도 한국이 압도적으로 크다. 노인빈곤율 1위인 만큼 부양 가족의 이전 비용은 매우 높을 수밖에 없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이 이렇게 높은 데도 노인들이 살 수 있는 건, 자녀들의 노동 소득이 현금으로 이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다 드러나지 않고 있다.

다시 말해 한국의 주력 노동 세대는 노인 부양 비용, 자녀 교육비, 직접 의료비를 모두 자신의 소득 안에서 내고 있다. 여기다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 연금의 소득대체율이 낮아, 이 노동 인구의 노후도 팍팍해질 것이 예정돼 있다.

물론 소득이 높고 민영 보험이나 민영 연금에 가입한 고소득층은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다. 각종 사회 서비스가 현물 형태가 아니라 시장 상품으로 되어 있는 구조에서, 한국의 K자형 체계는 반도체 특수를 누리고 있는 대만보다 국민들의 체감 타격이 더 크다. 부자들은 민간 의료·연금·교육 서비스로 어려움이 없지만, 노동자 서민들의 삶은 더 빠듯해지는 현실은 한국이 더 심각하다.

과거 이재명 대통령이 말한 기본소득론이나 기본 사회 구상이 실현될 수 있는지, 효율적인지는 차치하더라도 소위 ‘기본’이란 주거, 교육, 의료, 소득처럼 국민의 삶을 떠받치는 최소한의 조건은 국가가 책임진다는 개념이다. 그런데 최근 강조되는 주식 투자와 자산 형성 중심의 정책 방향은 이런 문제의식과는 정반대의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최소한 금융과 산업 발전을 논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사회 복지를 늘리는 노력이 병행돼야 할 것이다.

주가 지수 5000을 바라보는 대다수 노동자 서민은 그것이 자신의 삶에 도움이 될지 묻고 있다. 당장은 적은 돈으로 금융 소득을 얻어 만족하는 월급 생활자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결국 소득, 자산 그리고 사회 서비스 전반의 격차는 더 심한 사회적 양극화를 부추길 것이다. 한국의 미래는 주가 부양이나 대기업의 생존에 있지 않다. 기본적인 사회 서비스의 공공성을 확대하는 것이 미래를 대비하는 기초가 된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신년 기자 회견에서 ‘복지’ 언급이 거의 없고 성장에만 집중한 것은 K자형 성장을 부추길 우려가 크다. 노선 변화가 시급하다. 분배를 성장의 걸림돌로만 보면, 양극화를 막을 수 없다.

정형준

재활의학과 전문의,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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