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 “주인 노예 남편 아내”, “평신도 혹은 그리스도인”, “헌 옷 추적기”
<주인 노예 남편 아내>, 우일연, 강동혁 옮김, 드롬
엄격한 역사적 고증과 소설적 긴장감을 결합해 크래프트 부부의 이야기에 새 생명을 불어넣은 저자는 “이 이야기는 미국을 넘어선 무언가를 다룬다. 그것은 한국인에게도 공감을 이끌어낼 만한 보편적 주제인 ‘불의에 대항한 투쟁’이다”라고 이야기한다. 2024년 퓰리처상 위원회는 가장 미국적인 주제를 한국계 작가의 시선으로 풀어낸 이 작품을 선정하며 “인종, 계급, 차별을 이용한 풍부하고 놀라운 서사”라고 찬사를 보냈다. 이후 미국의 주요 언론에서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다.
미국 문단에서 ‘노예제’와 ‘남북전쟁’은 지금껏 백인 주류 역사학자나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가들의 성역과 같은 분야였다. 한국계 작가 우일연은 이 견고한 경계를 무너뜨리며, 1848년 조지아주에서 벌어진 크래프트 부부의 탈출 실화에 주목했다. 작가는 피부색, 인종, 계급이라는 미국의 고질적인 문제를 제삼자의 시선에서 냉철한 분석과 문학적 열정으로 다시 비춘다.
저자는 “이 이야기는 이데올로기로 분열된 국가와 민족에 관한 이야기이자, 억압을 벗어나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혐오와 차별이 다시 꿈틀대는 지금, 약 200년 전 자유와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던 두 사람의 사랑과 연대는 우리에게 절실한 물음을 던진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삶과 자유, 그리고 사랑이 함께 숨 쉬는 인간 내면의 가장 밝은 빛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엘렌은 어머니로부터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배웠다. 노예소유자들이 무엇을 훔쳐 가거나 빼앗든 간에, 그녀가 가져온 사랑은 그녀의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엘렌은 혹독한 시련 속에서 자신의 힘을 발견하고, 필요하다면 스스로 길을 만들어갈 수 있음을 배웠다.”(92쪽)
<평신도 혹은 그리스도인>, 자코모 카노비오, 윤정현 옮김, 분도출판사
교계와 평신도는 둘로 갈라진 대립 관계로 여겨졌고, 평신도는 교계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수동적 존재로 이해돼 왔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이전 성찰들을 종합해 교회에서 소외된 채 부차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여겨진 평신도의 품위를 강조하며 평신도 신학을 정리했다. 공의회는 성직자와 평신도로 나뉜 신분 대신 ‘하느님 백성’이라는 공통된 이름을 강조했다. ‘하느님 백성’으로 하나 된 교회는 한 사명을 지니기에 평신도의 세속적 성격이 인정되었고, 그리스도의 사명에 교회와 동등하게 참여하는 것이 평신도의 의무로 드러났다.
하지만 공의회 이후 60여 년이 흐른 현재도 평신도 신학은 오해의 대상이 되곤 한다. 교회 안에서 평신도는 여전히 ‘그 외의 신자들’, 성직자가 아닌 이들, 교계에 속하지 못한 이들로 분류된다. 이처럼 교회의 가르침과 실천 사이에는 괴리감이 생겨나고 있다. 이 책은 이 현실에 의문을 던진다. 우리는 교회의 역사를 다시 돌아보며 평신도의 부르심을 깊이 생각하고 성찰해야 한다.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평신도를 이해하는 일이 곧 교회를 이해하는 일임을 알 수 있다.
평신도는 그리스도인이고, 다른 교회 구성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자리에서 세상이 완성되는 데 기여한다. 따라서 교계에 협력하거나 참여하는 여부가 평신도의 정체성을 규정하지 않는다. 저자는 바로 여기에서 평신도에 대한 성찰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평신도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서술하며, ‘종말’의 관점에서 평신도의 역할을 설명한다. 또한 풍부한 사료를 제시하는 평신도 신학 연구의 귀중한 자료다.
“평신도는 사제 직무자(혹은 수도자)에 비해 세속적 성격으로 규정된 것을 넘어서, 성품성사를 받지 않았을지라도 일상생활의 조건에서 교회의 사명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다. 교회의 사명은 다른 구성원들에게도 그러하듯이, 평신도에게도 타고난 것으로 부여된다. 교회의 사명에 참여하는 바탕은 그리스도교의 입문성사들로 시작된다. 그리고 교회의 사명을 실행하는 방법은 구체적인 가능성과 받은 은사에 따라 다양하다. 따라서 교회의 사명을 위해 조직적 구조에 참여하는 것은 필수적이지 않다. 조직적 구조는 복음을 따라 살아갈 수 있고 또 살아야만 하는 공동생활을 위한 역할만 할 뿐이다.”(404-405쪽)
<헌 옷 추적기>, 박준용, 손고은, 조윤상, 한겨레출판사
집 구석에 입지도 않은 채 쌓여 있는 옷이 많다. 가끔 정리해 해외로, 재활용 가게로, 또는 동네 헌옷 수거함에 넣으면 그 옷이 다시 잘 쓰일 거라고 여기며 마음의 짐을 덜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착각일 수도 있다. 〈한겨레21〉 소속 저자 세 명이 쓴 이 책은 우리 곁을 떠난 옷이 어디로 가게 되는지를 추적해 가며, 의류 수거함 옷들의 ‘알려지지 않은 진실’을 기록한 현장 보고서다. 저자들은 153개 추적기를 옷에 부착해 전국 의류 수거함에 넣고, 네 달 동안 옷들이 어디로 가는지 끝까지 쫓았다.
그 결과는 충격적이다. 추적기가 도착한 곳은 인도의 불법 소각장, 타이의 쓰레기 산, 볼리비아의 황무지였다. 이 책은 선진국의 지나친 소비가 어떻게 개발도상국의 환경을 파괴하고 사람들을 병들게 하는지, 기업의 ‘친환경 홍보’가 얼마나 허울뿐인 말인지, 그리고 이 구조적 문제를 방치하는 정부와 정치권의 무책임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짚는다. 거기에 소비자인 우리의 책임은 없는지를 묻고 답하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이 문제를 똑바로 바라보는 데 있다. 편리함 뒤에 가려진 고통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배우 김석훈은 추천사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기업은 어떤 제품을 만들어야 할지 깊게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의류 산업이 환경 파괴의 주범이라는 사실은 이제 많은 이가 잘 알고 있다. 생태적 회심은 지금 당장 우리의 옷장을 들여다보는 데서 시작할 것이다.
“국내에서도 많은 이가 의류 수거함에 넣은 옷이 그냥 버려지는 게 아니라 재활용될 거라 기대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의류 수거함에 들어간 헌 옷들은 의류 폐기물이 되어 국내 중고의류 수출업체를 통해 동남아와 아프리카로 판매되는데, 이 지역의 의류 폐기물은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러서 상당 부분 재활용되지 못한 채 소각되거나 매립돼 환경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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