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배송이 불필요해지는 2026년
날이 차다. 겨울이니 당연한데, 작년보다 눈은 덜 내린다. 아직은 그런데, 며칠 전 조금 내렸다. 날이 차도 포장도로의 눈은 바로 녹았지만, 1센티미터 정도 쌓인 보행자 도로는 밤새 얼어붙었다. 상점에서 염화 칼슘을 흩뿌렸건만 미끄러웠다.
눈 내리고 바람이 거셌다. 춥더라도 바람이 없으면 견디겠는데, 냉기가 파고들면 몸이 으슬으슬하다. 오리털이 두툼한 외투는 냉기를 막지만 강한 바람에 역부족이다. 목도리를 몇 겹 두르면 온기를 유지하지만, 불편하다. 신호 없는 교차로를 건널 때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다. 그럴 때 구내식당이 없는 직장인은 음식을 주문할 텐데, 찬바람을 안고 달리는 오토바이는 얼마나 추울까? 녹은 눈이 얼어붙은 이면도로는 지옥이겠지.
눈으로 하얗게 덮인 도시는 잠시 아름답지만, 그때뿐이다. 여지없이 지저분해지고, 자동차와 보행자는 조심해야 한다. 만 보 걷기로 밑창 반질반질한 운동화는 미끄럽다. 조심해도 넘어지기 일쑨데, 골목을 누벼야 하는 오토바이는 오죽할까? 국물 지켜 주는 랩이 라이더까지 보살피는 건 아니니, 눈 덮인 도시에서 배달이 더뎌도 양해해야 한다. 내 아이이거나 아이의 친구일 수 있는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미국 회사 쿠팡이 소비자의 분통을 자초한다. 3,300만 개 이상의 개인 정보를 유출해 놓고 누출이라며 책임을 회피하려던 운영진의 태도가 연속 불을 지른다. 과도한 노동으로 숨진 시간제 노동자의 업무 태도를 왜곡하며 비하한 대기업의 의도가 드러나면서, 감정이 고조된 소비자들의 탈퇴가 이어지지만 쿠팡은 적반하장이다. 온라인 시장의 독점 자본이 된 쿠팡에 엉겁결에 구속된 소비자는 ‘탈팡’ 이외의 대응을 찾지 못하는데, 미 의회를 움직이는 쿠팡은 탄탄한 자금력을 믿는지, 요지부동이다.
어렵게 탈팡에 성공한 이는 일상이 불편하다고 토로한다. 작은 물건 하나라도 손쉽게 주문해 금방 받았고, 반품도 쉬웠는데, 대안이 어렵다는 거다. 급한 마음에 승용차로 가까운 양판점을 찾아가도 원하는 상품이 없다는데, 쿠팡이 없을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았나? 필요한 물건을 통신으로 사고파는 세상은 오래전이 아니다. 물건과 상인을 바라보지 않고 거래하는 이른바 ‘전자 상거래’는 어색했는데, 어느새 통신과 화면에 신뢰를 맡기고 말았고 이제 후유증을 앓는다. 하지만 시작이다.
까다로운 고객의 취향을 온라인으로 맞추는 거래는 사실 신뢰와 거리가 멀다. 필요해 보이는 물건을 제때 배달하는 거래에서 소비자는 놓치는 공간이 넓다. 착취에 가까운 노동만이 아니다. 넘치는 물건을 분류, 포장, 배송하는 노동은 소비자의 시야에 보이지 않지만, 노동자의 눈물도 느낄 수 없다. 물류센터와 골목에서 노동자는 정당한 보수를 받을 것으로 지레짐작하면서 실상은 외면하고 싶겠지.
의지와 관계없이 실직하거나 매장을 처분한 청장년은 돈벌이가 다급하다. 특별한 지식이나 기술을 원하지 않는 쿠팡 같은 기업은 궁여지책을 해결해 준다. 직업을 찾을 때까지 시간제를 감수하는 이는 초과 수당에 솔깃해진다. 몸이 허락하는 순간까지 참고 무리하며 과도한 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며칠 빠지면 다른 이가 빈자리를 채울 것이니, 기계의 방식과 속도에 몸과 마음을 바쳐야 한다.
기계가 만들어 내는 물건은 넘친다. 물건은 넘칠수록 디자인이 요란할수록 소비자의 마음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더욱 변덕스러워진 소비자는 충동적으로 물건을 사들이고 쉽게 버린다. <물건 이야기>(김영사, 2017)에서 애니 레너드는 사 놓고 6개월 이상 버리지 않는 물건은 1퍼센트도 못 된다고 미국 소비 풍조를 고발했는데, 전자 상거래에 중독된 우리는 어떨까? 물건을 넘치게 만들어 도소매에 넘기고, 폐기하는 데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비할까? 얼마나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할까? 얼마나 많은 자원을 소비, 폐기하면서 생태계를 파괴할까? 보이지 않는 것은 노동자의 눈물만이 아니다. 기후 위기와 생태 위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소비자도 철저히 외면되고 파국으로 치닫는 미래 세대는 안중에 없다.
옷은 어머니가 만들었고, 고쳐서 입다 물려주었다. 이웃이 정성스레 만든 장신구, 도구, 선물은 버리지 못했다. 마음이 담겼으므로. 쿠팡이 우리를 속상하게 만들기 불과 두 세대 전까지, 동네에서 우리는 의식주를 나누며 해결했다. 마음을 나누고 눈을 마주하는 과정에 누구도 소외되지 않았다. 불평과 불만도 끼어들지 않아 반품이 없었다. 그 시절로 당장 돌아갈 수 없지만, 노력할 수 있다. 소비자와 갈등을 일으킨 쿠팡 같은 전자 상거래만이 아니다. 통신사마다 해킹 사태가 발생했지만, 해킹은 무섭게 갈등을 키울 것이다. 기계를 신뢰할수록 갈등은 커지고 이웃과 관계는 멀어진다. 미래 세대의 파국은 가까워질 것이다.
무시무시한 갈등이 국제 사회에 퍼져 나가는 2026년이 시작되었다. 우리라도 이참에 택배를 줄일 수 있다. 필요한 물건의 목록을 만들자. 기회를 만들어 다정한 이웃과 잘 아는 상점으로 찾아가 구하면, 가게 주인과 친해질 수 있다. 그는 필요한 물건을 준비할 테고, 우리는 새벽 배송을 참을 수 있다. 택배 지옥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노동자도 저항해 보자. 행동하면 바뀐다. 기계가 만든 방식, 기계를 설계하는 자본이 강요하는 세상에 저항하는 거다. 어떠면 파국을 막는 행동이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젊은 남녀를 보았다. 연인인지 신혼부부인지 묻지 않았지만, 수레에 잔뜩 올린 온갖 물건을 분류하며 일을 나누는 모습이 다정해 보여서 가볍게 인사를 전했더니 방긋 웃는다. 힘이 덜 들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이해를 바탕으로 서로 위안이 되고 내일을 함께 꾸려 가지 않을까? 그들이 행복한 2026년이면 좋겠다.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ㆍ환경연구소 소장ㆍ60+기후행동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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