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 살아남기 3
작년 가을 문득 ‘아무리 혁신적인 기술이 나와도 인간이 변치 않고 계속해 온 일이 무엇일까?’가 궁금해졌다. 이 궁금증은 이런 일을 찾으면 세상없는 기술이 나와도 살아남을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바로 인공지능(AI) 구글 제미나이 3.0(유료)과 협업을 시작했다.
우선 AI에게 이런 주제를 다루는 학문 분야를 물었다. 그랬더니 고고학, 인류학, 동물 행태학, 기술사(역사)에서 다룬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나는 이어 이 분야들에서 나온 2023년 이후의 최신 연구 결과를 찾아 요지를 정리하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AI는 분야별로 개요에 가까운 정보와 공개된 논문 몇 개, 인터넷에서 학습한 자료들을 기초로 결과물을 출력해 주었다. 나는 출처와 내용을 확인하고 나서, 내가 얻고 싶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게 목차를 구성하고 자료 찾기, 결과 정리, 각주 작성, 문체 작성 등 세세한 지침을 담아 명령문을 작성했다. 명령을 넣었더니 비교적 쓸 만한 결과물을 내주었다. 나는 이 결과물 가운데서 AI가 인용한 논문, 자료의 출처와 원문을 확인하고 서술한 내용이 사실인지 검증한 다음, 내 방식으로 재배열하고 서술도 달리해 이 원고를 만들었다.
이렇게 작업 과정을 설명한 이유는 현재 전문가들이 AI와 협업하는 방법을 알려 주기 위해서다. 아직 인문학, 사회과학 영역에서는 AI가 만족할 만한 수준의 결과를 내지 못해, 이렇게 ‘인지 외주화(cognitive outsourcing)’를 줄여 ‘인지 부채(debt)’를 쌓지 않는 방법을 쓰는 게 필수적이다. 나는 인문학,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상당 기간 이러한 방식의 협업이 이어질 것이라 전망한다. AI가 놀라운 기술인 것은 분명하지만 인간이 하던 모든 일을 대체하진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평가하면 현재 AI의 결과물은 분야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100점 만점에 70-80점 수준이다. 그래서 나머지 부족한 20-30점을 마저 채우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그러면서도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우린 한두 분야에서만 80점 이상인데, AI는 모든 분야에서 80점에 가까운 지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AI는 이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종합하고 정리하는 능력이 있다.
사실 좋은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는 연구자의 지적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AI가 나왔으니 이젠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큰 오산이다. 학습 방법은 바뀌지만 이제껏 인류가 전승해 온 지식 관리법은 사라지는 게 아니다. AI를 잘 사용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정보 더미(빅데이터)’에서 원하는 정보를 필요에 따라 추출하고, 이를 검증하여 필요한 정보를 추가로 요구하고, 다시 검증하고 원하는 방식으로 재배열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는 어떤 방식으로든 터득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능력을 갖춘 이들에게 AI는 증강 효과를 선물로 준다. 몇 사람 몫을 하게 해 준다. 그래서 AI를 거부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잘 알고 잘 쓰면 된다.
기술 변곡점과 인간 신체성의 관계
인류사는 기술의 변곡점을 따라 인간 신체성의 기능과 역할을 끊임없이 재구성해 온 역사다. 신석기 혁명, 산업 혁명, 그리고 현재의 인공지능 혁명은 인간의 생존 방식과 노동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세 가지 주요 전환점이었다. 각 시대의 기술 발전은 인간의 육체적 부담을 덜어 주는 순기능이 있었으나, 다른 한편으론 특정 신체 기능의 쇠퇴를 유발하거나 그 기능의 사회적 가치를 재정의하는 상쇄 작용을 불러왔다. AI 기술 도입은 인간의 인지 노동까지 대체하는 수준에 이르러, 인간이 끝까지 자기 몸을 활용해 수행해야 하는 영역, 즉 대체 불가능한 행위 영역이 어디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신기술 도입에 따라 달라진 인간의 신체 기능
신석기 혁명은 약 12,000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현 지질 시대인 홀로세가 시작되면서 일어났다. 이 농업 혁명은 수렵 채집 생활에서 벗어나 농경 생산에 의존하는 정착 생활로 극적인 전환을 가져온 인류사에서 가장 중요한 성취 중 하나였다. 그러나 고고학적 증거와 초기 농경 중심지에서 발굴된 인골에 대한 골격 분석 결과에 따르면, 이러한 전환은 전반적으로 인간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난다.
신석기 혁명은 인류가 농업으로 식량 확보의 안정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지만 신체에 가해지는 물리적 스트레스를 변화시키고 건강을 악화시키는 ‘기술 진화의 비선형적 비용’을 발생시켰다. 이 전환은 음식을 씹는 기능과 관련된 두개(頭蓋) 안면 구조 변화, 구강 건강 악화, 병원체와 인수 공통 감염병 확산, 그리고 영양 결핍과 신체 전반의 스트레스 증가와 관련된 여러 질병을 유발하였다. 이는 인류가 생존 효율을 높이는 기술을 채택하며 이득을 얻었음에도, 집약적 농업 활동이 요구하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육체 활동이 골격 구조에 새로운 형태의 부담을 주어, 영양 다양성을 감소시켰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이는 기술 발전이 인간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긍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지만, 신체의 특정 기능을 최적화하기보다 퇴화시키거나 새로운 종류의 신체적 고통을 일으키는 상쇄 작용을 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
산업 혁명과 숙련의 재구성
18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유럽과 미국에서 진행된 산업 혁명은 기계화, 자동화, 표준화, 시간 측정을 도입함으로써 노동의 본질을 크게 바꿔 놓았다. 전통적 견해는 이러한 기술 발전이 노동자의 수공업 기술, 즉 장인의 노하우가 점진적으로 축소되거나 완전히 대체되리라는 것이었다. 특히 애덤 스미스는 근대 제조업 발전과 분업화로 노동자가 자신의 이해력이나 발명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잃고 궁극적으로 ‘인간이 둔하고 무지하게’ 될 위험을 경고하였다.
그러나 그의 경고와 달리 인간의 숙련노동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변형되었고 변화에 놀라운 적응력을 보였다. 특정 기술은 산업 환경에 맞춰 변화하며 ‘예술의 규칙’에 대한 존중과 윤리적 차원을 지속적으로 간직하는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반면 ‘노동의 추상화와 신체적 고립’ 현상도 나타났다. 19세기 초 프랑스 학자 빌레르메는 기술 변화가 신체 기능을 직접 제한하기보다, 기능 수행의 물리적 맥락과 목적의식을 박탈해 신체 기능을 퇴화하게 만드는 메커니즘이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AI 시대에 인간이 인지 노동을 외주화하면서 자기 주체성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는, 산업 시대에 노동이 신체적 경험과 거리가 있는 추상화 과정을 거쳤던 역사적 사례와 같은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대근육에서 미세 조작으로 신체 조작 방법의 이동
산업 혁명 이전 농업 사회에서 인간의 삶은 생존에 필수인 것을 자급자족하는 데 중점이 있었다. 이에 가족 전체가 농사, 목축, 양털 깎기, 실잣기, 옷 만들기 등 대규모 육체노동에 참여해야 했다. 이 노동은 주로 대근육을 사용하는 활동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산업화하고 노동의 중심이 공장과 사무실로 이동하면서 인간 신체 이용은 미세하고 정적인 조작, 그리고 디지털 인터페이스를 활용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정보화 이후에는 사회 전반의 환경이 대근육 활동 중심에서 벗어나 미세하고 정적인 디지털 인터페이스 활용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처럼 기술 발전은 인간의 신체 활동 양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편해 왔다.
AI 기술 도입으로 달라질 인간의 신체 기능
AI 기술 도입은 인간의 육체적 능력뿐 아니라 인지적, 정서적 능력에까지 광범위하고 깊은 변화를 초래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향후 10년 동안 AI 채택이 인간의 고유한 능력과 행동에 ‘깊고 의미 있는’ 또는 ‘근본적이고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전망한다.
이러한 변화는 긍정적 영역과 부정적 영역에서 동시에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호기심, 학습 능력, 의사 결정 및 문제 해결, 그리고 혁신적 사고와 창의성 등 일부 영역에서는 AI가 인간 역량을 보완하여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더 중요한 측면은 인간의 본질과 관련된 영역에서 나타나는 잠재적 위축이다. 전문가들은 사회·정서 지능, 복잡한 개념에 대한 깊은 사고 능력, 공감 능력과 도덕적 판단, 자기 주체성, 그리고 정신적 삶의 질 등에서 주로 부정적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 예측한다. AI가 단순 계산이나 정보 처리를 넘어 인간의 맥락적 판단과 정서 조절까지 간접적으로 관여하는 ‘인지적 외주화’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농경이 신체의 육체적 비효율성을 낳았듯이, AI는 인간의 ‘깊이 사고하는 습관’을 상실하게 만들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인간이 언어를 배우는 과정이 공유된 세계에서 신체화된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을 고려할 때, 신체화되지 않은 계산적 개체인 대규모 언어 모델(LLM)에 대한 의존 증가는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을 변형시킬 수 있다. 인간이 AI에게 인지 노동을 외주하면서, 역설적으로 관계 맺기, 윤리 기준 설정, 그리고 메타 인지 같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능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는 기술 발전이 인간에게 제공하는 편의만큼이나 그에 상응하거나 그 이상의 대가를 치르게 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새로운 형태의 협력적 숙련으로의 전환
전문가들은 AI가 인간 기능을 완전히 대체하기보다, 인간과 AI 간 새로운 형태의 ‘기술 동반 관계’(Skill Partnership)을 창출해 고유한 인간 역량에 대한 수요를 높이는 ‘기술 혁명’을 촉발할 것으로 전망한다.
맥킨지 보고서(미국 및 선진국 대상)에 따르면, 회계와 코딩같이 고도로 전문화, 자동화가 가능한 기술은 큰 변화에 직면하지만, 협상과 코칭 같은 대인 관계 기술은 변화가 가장 적을 것이라 전망한다. 이는 AI 시대에 가장 가치 있는 인간의 자산이 공감, 윤리적 의사 결정, 관계 맺기, 갈등 해결 등 기계가 모방하기 어려운 ‘고유하게 인간적인’ 능력들로 이동할 것임을 의미한다.
같은 맥락에서 AI가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판단 과제를 효율적으로 처리함에 따라, 시장 가치는 기계가 모방하기 어려운 주관적, 정서적, 윤리적 영역으로 이동하며, 이로 인해 신체화된 감정과 사회적 맥락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정동 노동’의 가치가 극적으로 증가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산업 혁명이 단순 육체노동의 가치를 하락시켰듯이, AI 혁명은 단순 인지 노동의 가치를 하락시키고, 타인과의 연결, 윤리적 주체성을 신체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의 중요성을 더 중요하게 만들 것이다.
가상 환경에서 신체 구현
기술은 인간 신체의 역할을 단순히 축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원격 현존(telepresence) 및 햅틱(haptic) 인터페이스를 통해 인간의 신체 구현을 가상 환경과 원격 물리적 환경으로까지 확장하고 있다. 신체 구현은 인간 지능의 중요한 요소로 간주되며 기술 발전에도 이 중요성이 계속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햅틱 인터페이스는 사용자의 동작을 인식하고 적절한 촉각 이미지(tactual images)를 표시함으로써, 가상 환경이나 원격 시스템과의 수동적 상호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다. 여기에는 키보드, 마우스 같은 단순한 형태에서부터 장갑, 외골격 장치 등 복잡한 형태에 이르기까지 힘, 진동, 동작을 적용해 사용자가 가상 객체를 만지거나 제어하는 경험을 만들어 낸다.
인간의 손은 환경을 감지하고 동시에 작동할 수 있는 유일한 시스템인 햅틱 시스템의 핵심 기관이다. 로봇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인간의 손 움직임은 물리적 환경이나 가상 환경에 있는 로봇이나 아바타를 통해 ‘프락시(대리, 중개) 형태’로 투사될 뿐, 손을 사용하는 행위 자체가 사라지진 않는다. 즉, 인간이 손을 통해 모터 동작 명령을 전달하고 피드백을 수신하는 핵심 매개체 역할은 기술에 의해 대체되지 않고 매개되어 확장되는 양상을 보이리라는 것이다.
박문수
가톨릭 신학자이자 평화학 연구자
우리신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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