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은 줄이고 협력 키우는 방법, '학부모회'에 길이 있다

2026-01-16     이윤경

현재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갈등과 불신 문화에서 학교도 예외는 아니다. 예전부터 지속됐던 공교육에 대한 불신, 학부모와 교사 간 갈등은 지금 최고조에 달한 듯하다.

2020년 코로나19로 인한 관계의 단절부터 윤석열 정부의 혐오와 갈라치기, 그리고 서이초 사건을 거쳐 온 지난 5년 동안 학교는 결국 학부모를 내쫓고 교문을 걸어 잠갔다. 학생·학부모·교직원의 공동체 문화와 학교 자치는 실현 불가능한 희망 사항이 되어 가고, 그 자리를 경쟁과 불신, 분쟁이 채우고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원인을 제대로 분석하고 현 상태를 정확히 진단하지 않으면 실효성 있는 대안이 나올 수 없다. 갈등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교육부나 교육청이 내세우는 학부모 정책은 단지 학부모에 국한된 대책이 아닌 우리 교육 전체를 좌우할 핵심 과제라는 전제하에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어떤 교육 정책도 학부모를 배제하고서는 한 발짝도 전진하기 어렵다.

10년 전으로 퇴보한 학부모 정책

우리나라 교육 정책에서 학부모들은 항상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다. 불법찬조금 신고센터를 운영하고, 학교운영위원회 참여를 법제화하며, 학부모회 조례를 제정한 모든 역사 속에 학부모가 중심에 있었다. 교원 노조와 학부모 단체의 역사가 37년으로 동일하다는 사실이 말해 주듯, 교육을 바꿔 온 현장에 교사와 학부모는 늘 함께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학교의 상황은 최소 10년 이상 후퇴했다. 2023년 서이초 사건 이후 시행된 교권 보호 관련 법과 민원 대응 시스템은 학부모회를 무력화시켰고, 그간 학부모들의 활동과 성과를 백지로 만들었다. 교육부와 교육청에 학부모 정책 부서나 학부모지원센터가 설치되어 있긴 하지만, 요즘 학부모들은 그 존재조차 모른다. 학부모지원센터 홈페이지에 아무리 많은 학부모 교육 자료를 올리고 정책 홍보 영상을 게시해도, 조회수를 보면 도달률이 너무 낮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학부모회는 예전처럼 학교장의 의지나 담당 교사의 지원에 따라 좌우되는 조직으로 퇴보했다.

학부모회를 공적 기구로 활성화

학부모회가 학교의 공적 기구로서 학부모들을 대표한다면 사적인 민원은 줄어들 수 있다. 학부모들 스스로 자정 능력과 집단 지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학부모회가 학교와 발맞춰 건강하게 운영되는 학교 공동체 사례는 생각보다 많다.

학부모 민원을 줄이기 위한 학부모회 활성화 방안을 제안해 보면,

첫째, 공공 가정통신문 앱을 운영하는 것이다. 학교마다 제각각 사용 중인 가정통신문 앱을 교육부나 전국학부모지원센터에서 공공 시스템으로 단일화해 전국의 학부모가 동일한 앱을 사용해야 한다. 군대의 '더캠프' 앱은 입대일부터 제대일까지 자녀의 훈련소, 자대 배치, 식단, 월급, 진급일 등을 알려 주고 편지도 쓸 수 있다. 학교도 이처럼 공공 앱을 운영하고 학교별로 공지 사항과 급식 정보를 올리고, 결석계나 체험 학습 신청서 등 학부모가 제출할 서류를 직접 등록하게 한다면 교사의 업무도 훨씬 줄어들 것이다. 상급 학교에 진학해도 자녀의 기록을 조회할 수 있고, 나이스(NEIS)보다 훨씬 접근성도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

둘째, 학부모회 등록 시스템과 개인정보 제공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 공공 가정통신문 앱에 가입하면 자녀 학교 학부모회에 자동으로 등록되도록 해야 한다. 학부모회 조례에 따라 학부모는 학생의 입학과 동시에 자녀 학교 학부모회의 회원이 된다. 그러므로 별도의 동의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학부모회가 활성화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회원들의 연락처를 몰라 소통이 어렵기 때문이다. 학교장이나 교사들은 학부모가 모이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며 모임 구성에 비협조적인데, 이는 오히려 단순 질의까지 학교에 직접 문의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공공 가정통신문 앱이 개발되기 전에라도 올해 3월에는 학교에서 개인정보 제공 동의를 받을 때 '학부모회 항목'을 추가하도록 강제해, 학부모회에 회원들의 정보를 제공하길 바란다.

셋째, 학부모회에 걸맞은 공적 지원과 소통 창구를 마련해야 한다. 학부모회는 교직원회, 학생회와 동일한 공적 기구다. 선출된 임원의 연락처를 홈페이지나 앱에 공개하고, '학부모회 전용 업무폰'을 제공해야 한다. 매년 회장이 바뀌어도 번호를 승계해 대표 번호로 활용한다면 학년 초마다 발생하는 교육청과 학부모회 간의 소통 공백 기간을 줄일 수 있다.

넷째, 교육부와 교육청이 운영하는 ‘학부모 정책 모니터단’은 별도로 공모하는 것이 아니라 각 학교 학부모회장들이 당연직으로 활동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폭넓은 현장 의견 수렴뿐만 아니라 학부모회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임원들에게 책임감과 효능감을 부여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림 생성 = 챗지피티)

학부모를 조직의 구성원으로 인정

학부모를 진정한 교육의 주체로 인정한다면, 교육 당국은 정책과 일정을 다른 구성원과 똑같이 투명하게 공유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학부모가 '알아도 괜찮은' 수준의 정보만 선별적으로 제공되고 있다.

또한, 학부모를 대상화하고 계도하려는 인식도 개선해야 한다. 요즘 학부모들은 문화센터나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자녀 교육 강의를 넘어, 학교생활과 직결된 법령, 제도, 교육 정책, 학교 폭력, 교권 침해 등 실질적인 정보를 원한다. 이런 정보를 학교나 교육청에서 알려 주지 않으면 학부모들은 사교육 기관이나 맘카페 등을 통해 왜곡된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학부모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한곳에 모아 검색어로 바로 찾을 수 있는 '학부모 지원 포털 사이트' 운영과, 자녀 학년별, 학부모회 활동 경력별 등 세분화·전문화된 학부모 교육이 절실하다. 조직 구성원의 직무 능력 향상 차원에서 고민해 보면 해답이 나올 것이다.

‘민원 방지법’이 아닌 ‘공동체 회복’으로

지금은 어느 때보다 학교 구성원 간의 공동체 회복이 절실한 때다. 입장 차이로 갈등이 심해질수록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동료들 간의 협력을 확장해야 한다. 학부모의 공적 영역을 강화해 사적 영역을 위축시켜야 한다. 개인이 전화하면 민원이 되지만, 학부모회가 학교장과의 간담회에서 공식적으로 전달하면 의견이 된다.

학부모 정책은 학교를 위기에서 살려 내기 위한 필수 과제다. 악성 민원 방지법을 만드는 것보다 학부모회를 ‘공공성을 지향하는 건강한 공동체’로 세우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다. 사법화가 초래하는 각자도생으로는 절대 갈등을 줄일 수 없다. 학생도 교사도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학교를 위해 구성원 모두가 손을 맞잡고 초대형 안전띠를 만들어야 한다.

(2025년 12월 5일에 열린 한국학부모학회 학술대회 토론문을 정리한 글입니다.)

이윤경

사교육 기업에서 홍보 업무를 담당하다 2011년 여성단체 상근 활동가로 취업한 후 마을공동체 살리기, 차별 반대, 교육개혁 운동 등 활동가의 삶을 살고 있다. 소비자를 설득하는 마케터에서 활동가, 상담가, 조직가로 지나온 시간 속에 언제나 ‘진심’을 다했던 경험들이 자랑이자 자산이다. 공저로 "대한민국 교육트렌드 2024", "한국 교육의 오늘을 읽다", "학교, 회복을 담다", "체벌 거부 선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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