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에 힘을 실어 준 여성 예언자, 훌다

2025-12-30     이미영

이 글은 <공동선>(www.comngood.co.kr)에 함께 실렸습니다. - 편집자

교회 지도자로서 여성의 자리

얼마 전 세계 성공회 공동체의 최고 지도자로 여겨지는 영국 캔터베리 대주교에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인 사라 멀럴리 주교가 선출되었다. 성공회는 일찍이 1944년 홍콩에서 첫 여성 사제가 서품된 이래 1988년에는 미국에서 첫 여성 주교도 선임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2001년에 민병옥 사제가 첫 여성 사제로 서품을 받은 이래 여성 20여 명이 사제품을 받았다.

이런 성공회의 흐름과 달리 국내 개신교에서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 합동) 교단이 목사의 자격을 ‘만 29세 이상인 자’에서 ‘만 29세 이상인 남자’로 개정하는 헌법을 최근 통과시켰다. 지난해 총회에서 결의한 ‘여성 강도권(講道權) 부여’를 교회 헌법에 명시하는 과정에서 ‘여성 안수’에 반발하는 이들의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여성에게 강도사 자격을 부여하되 목사 자격은 ‘남자’로 한정하는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교회에서 여성이 맡을 수 있는 지도적 직무를 확대하되 성직 가능성은 차단해 버리는 조처, 현재 가톨릭교회의 상황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가톨릭교회는 유럽과 북미 등 서구 그리스도교에서 여성 성직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자 이에 반대하며 1976년 '여성 교역사제직 불허 선언'을 발표했고, 1994년 교황 교서 '남성에게만 유보된 사제서품에 관하여'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했다. 최근 세계주교시노드에서 여성 부제직을 연구하는 작업이 시작되었지만, 이 논의도 여성을 성직에 참여시킨다는 차원보다는 봉사 직무로서 남성 기혼자에게 허용된 종신부제직을 여성에게 확대하려는 논의일 뿐이라, 어찌 보면 예장 합동의 여성 강도권 허용 수준에도 아직 이르지 못한 셈이다.

교회는 하느님 백성 모두가 함께 각자의 은사를 나누며 사랑의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라는 점에서 굳이 성직자가 아니더라도 여성이 지도자로서 활동할 수 있다고 하지만, 과연 현재의 교회 구조에서 사제나 목사가 아닌 이들이 교회 지도자로서 충분히 지도력을 발휘하고 인정받고 있는지 의문이다. 여성 사제나 여성 목사를 허용하지 않는 교단, 여성 사제나 여성 목사가 있어도 청빙을 꺼리거나 주변부로 밀어내는 교단에서 여성이 발휘할 수 있는 지도력이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요시야 임금의 종교개혁에 힘을 실어 준 여성 예언자 훌다

수천 년 전에는 지금보다 더 여성이 주도적인 지도력을 발휘하기 어렵거나 영향력을 인정받지 못했을 거라는 선입견과 달리, 성경에는 하느님의 뜻을 전하며 큰 영향을 준 여성 인물들이 숨겨진 보물처럼 종종 등장한다. 이스라엘의 왕조 시대에 개혁 군주 요시야 임금이 조언을 청한 여성 예언자 훌다도 그중 하나다.

훌다는 기원전 7세기 남유다 왕국을 다스리던 요시야 임금 시절 발견된 율법서와 관련한 열왕기와 역대기 기록(2열왕 22,14-20; 2역대 34,22-28)에서 짧게 등장한다. 우상숭배를 일삼다가 암살당한 남유다 왕국 아몬 임금의 아들 요시야는 8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지만, 선대 임금들의 악행과 달리 하느님 뜻대로 나라를 다스리고자 애썼다. 그는 방치되었던 예루살렘 성전을 정비하기 위해 힐키야 대사제를 감독으로 삼아 공사를 맡겼는데, 성전 공사 중 율법서가 발견되었다. 신명기로 추정되는 그 율법서의 말씀을 들은 요시야 임금은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실천하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의 현실을 애통해 하며 자기 옷을 찢으며 통곡하였다. 그리고 그 책의 말씀을 두고 하느님께 문의하고자, 힐키야 사제를 비롯한 왕궁의 고위층을 사절단으로 구성해 여성 예언자인 훌다에게 보낸다.

예복 담당관 살룸의 아내이며 예루살렘 신시가지에 살고 있었다고 간략하게 소개된 훌다는, 그 율법서에 기록된 대로 이스라엘 백성의 운명과 요시야 임금 개인에 관한 하느님의 뜻을 전한다. 우상숭배를 하여 하느님을 거스른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재앙이 닥칠 것이지만, 의로운 요시야 임금은 평화로이 무덤에 묻히고 그 재앙을 보지 않으리라는 예언이었다. 요시야 임금은 훌다의 검증을 받은 율법서의 규정을 백성에게 알리고, 그 규정에 따라 실천하기로 주님과 계약을 맺고 종교개혁을 단행한다. 요시야 임금의 종교개혁은 곳곳에 난립한 산당과 우상들, 그 우상을 섬기던 사제들을 몰아내고 예루살렘 성전 하나로 통일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새롭게 발견한 율법서에 따라 주님과 맺은 계약을 실천하고, 특히 파스카 축제를 제대로 지내게 한다. 개혁 군주인 요시야 임금은 이집트 임금 파라오 느코와의 전투에서 전사하였고, 신하들은 요시야의 시신을 예루살렘으로 옮겨 와서 무덤에 묻었다. 요시야 후대의 임금들은 선대의 임금들처럼 다시 악행을 저질렀고, 결국 훌다의 예언처럼 이스라엘 민족은 바빌론에 유배 가고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되는 등 재앙을 겪는다.

훌다는 기원전 7세기 남유다 왕국을 다스리던 요시야 임금 시절 발견된 율법서와 관련해서 열왕기와 역대기에 짧게 등장한다. (그림 생성 = 챗지피티)

여성 예언자에 대한 기대

율법서의 진위를 인정해 주고 하느님의 뜻을 전한 예언자 훌다의 존재는, 요시야 임금이라는 탁월한 지도자와 그가 행한 종교개혁에 가려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성경에 기록된 훌다에 관한 정보도 별로 없거니와, 요시야 임금이 평화롭게 무덤에 묻히리라는 그의 예언도 어찌 보면 절반만 성취된 셈이라 그것이 더 논쟁이 되었으며, 훌다가 등장하는 율법서 발견 순서에서도 열왕기와 역대기의 설명이 달라서 요시야의 종교개혁에서 훌다의 역할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열왕기에서는 요시야의 종교개혁이 율법서를 발견한 이후에 이루어졌다고 보기에 그 율법서의 진위를 인정한 훌다의 역할이 크지만, 역대기에서는 요시야 임금이 종교개혁을 단행한 이후에 율법서를 발견했기에 훌다의 역할은 그저 미래를 예견하는 신탁을 전할 뿐이다.

그러나 요시야 임금 시절 유다 왕국에는 예레미야와 스바니야 예언자가 활동했음에도, 여성 예언자인 훌다에게 중요한 율법서의 진위 확인 및 내용에 관한 의견을 청했다는 사실은 여러모로 수수께끼처럼 여겨진다. 성서학자들은 그 이유를 몇 가지로 추정한다. 우선, 훌다가 왕실과 가까운 관계자였을 거라는 추정이다. 훌다의 남편이 예복 담당관이었기에 왕실과 가까워 쉽게 물어볼 수 있었다는 견해다. 또 다른 추정은 예레미야 예언자와 스바니야 예언자가 본격 활동하던 시기는 훌다 이후의 시기이기에, 성전에서 율법서를 발견할 때 그들은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서 훌다에게 예언을 청했다고 보기도 한다. 탈무드에서는 훌다가 예레미야 예언자의 친척이라서, 임금이 훌다에게 대신 물어보아도 예레미야가 서운해 하지 않았다고 풀이하기도 한다. 여러 연구자가 제기하는 일반적인 추정은 율법서의 내용이 하느님의 진노로 인한 재앙에 관한 것이기에, 남성보다는 여성 예언자가 좀 더 부드럽고 온건하게 예언을 전해 주리라는 기대에서 요시야 임금이 일부러 훌다에게 청했다고 보거나, 주님의 분노를 누그러뜨리는 데 여성 예언자의 간구가 더 효과적이리라고 여겼을 거라는 식의 해석이다.

종교개혁에서 여성의 역할

우머니스트 성서학자 레티나 윔스는 훌다가 요시야 임금의 명을 받은 힐키야 대사제와 궁중의 고위 관료들이 주저 없이 찾아갈 정도로 당시에 이미 상당한 권위를 인정받는 예언자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윔스는 유다의 전승 자료에서 훌다가 예루살렘에서 교육 기관을 운영했다고 하고 성전산 남쪽 벽 ‘훌다의 문’이 있었던 것으로 볼 때, 훌다가 명망 높은 학자였고 그가 운영하던 학교가 그 근처에 있었을 거라고 보았다.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다른 연구자는 바룩에게 의지하던 예레미야 예언자는 글을 몰라서, 발견한 율법서의 진위를 살피는 일은 글을 읽을 수 있는 예언자인 훌다에게 청했을 거라고 보기도 한다.

윔스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받는 요시야 종교개혁의 가장 극적인 순간에 여성 예언자가 등장해서 활약했다는 사실을 두고, 이스라엘에서 절체절명의 순간에 등장하여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이행하던 여성 인물 중 하나로 훌다의 존재와 역할을 평가한다. 신명기 역사서에서는 역사의 전환점에 다다를 때마다 한나(1사무 2,1-2:10), 다윗을 구원한 미칼(1사무 19,8-17), 혼백을 불러 올리는 엔도르의 여인(1사무 28,7-25), 밧세바(1열왕 1,11-31), 여호세바(2열왕 11,1-3) 등을 통해 구원 행위나 심판 선언, 혹은 왕권의 중요한 결정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역대기에는 이런 여성들이 대거 생략되거나 역할이 축소되는 가운데 훌다 역시 신탁을 전하는 수동적 역할로 축소되지만, 열왕기에서 절반만 성취된 것으로 여겨지던 훌다의 예언을 온전하게 만든다. 요시야 임금이 전투 중 전사한 것이 아니라 상처를 입어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숨져 조상들이 묻힌 무덤에 묻혔다는 것이다. 역대기를 기록한 이에게는 예언의 성취를 온전하게 만들고, 요시야 임금의 결단력을 강조하며, 의로운 임금의 안타까운 죽음을 설명할 근거가 더 중요했으리라. 하지만, 열왕기와 마찬가지로 훌다의 예언을 직접 인용함으로써 그가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요,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서의 진위를 판단하고 해석할 수 있는 율법 학자였으며, 그가 전한 예언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고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따르게 하려는 요시야 임금의 종교개혁 작업을 완성하게끔 하는 결정적인 임무를 수행했다는 사실은 역대기에서도 변함없이 확인할 수 있다.

여성의 참여로 온전해질 종교개혁

훌다의 역할은 신탁을 전하는 예언자로서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 말씀의 참됨을 공적으로 확인해 주며 하느님 백성이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교도권(敎導權)을 행사하는 모습으로도 비친다. 교도권은 오늘날 가톨릭교회에서 교황과 주교에게 부여된 권한이다. 흔히 교회에서 여성의 리더십은 겸손한 자세로 희생하며 봉사하는 모습으로 제시되지만, 이러한 자세야말로 하느님 백성을 위해 섬기고 봉사해야 하는 성직자의 직무에 가장 필요하고 적합한 리더십이다. 가장 낮은 자가 되어야 하고,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그리스도의 제자 직무에 합당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여성들이 성직의 직무에 동등하게 참여할 수 없는 현실은 요시야 임금의 종교개혁과 같은 정화의 작업이 오늘의 교회에도 필요한 것이 아닌가 돌아보게 한다. 하느님의 뜻을 올바로 알아듣기 위해 여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던 요시야 임금처럼, 오늘날 교회에서 여성의 성직 참여를 막는 것은 “차별”이라고 외치는 이들의 목소리에 담긴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들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미영

편집위원, 우리신학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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