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복수의 카타르시스, 그 뒤에 남는 것

'모범 택시', '모범 시민', '더 글로리', '비질란테', '국민사형투표'

2025-12-30     김지환

죽지 말고 복수하세요!

한국 드라마는 한국인의 욕망 구조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곤 한다. 요즘 한국인이 어디에 많은 관심을 갖고, 무얼 갈망하는지 드라마를 읽어 가면 얼추 보인다. 가령 학폭 관련 드라마가 많이 제작되고 큰 반향을 불러오지만, 해외에서는 그다지 인기가 많은 편이 아니라고 한다. 한국 드라마는 현실에서는 요원한 가진 것 없이 억눌리는 사람들의 복수를 대행해 준다. 실제 삶에서 요원하게 느껴지는 많은 문제가 드라마에서는 통쾌하게 해결되는데, 갑질을 처절하게 응징하고, 정의는 비교적 바로잡힌다. 재벌도 권력자도 충분한 처벌을 받는다. ‘사필귀정’과 ‘권선징악’, 드라마에서 사적 복수는 유행처럼 자리 잡았다. 사적 복수를 다룬 콘텐츠에 열광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국가가 범죄자에게 내리는 공적 형벌이 피해자가 입은 고통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 보일 때, 사람들은 분노한다.

‘모범택시’는 대표적인 사적 복수 드라마로 많은 인기를 끌며, 최근 시즌 3이 방영 중이다. 택시회사로 위장한 복수 대행사를 운영하는 장성철은 억울한 사연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이렇게 외친다. “죽지 말고 복수하세요!” 베일에 싸인 택시회사 ‘무지개 운수’와 택시 기사 김도기가 법적으로 구제받지 못한 억울한 피해자들의 복수를 대행해 주는데, 실제 사회 문제를 배경으로 한 일화가 많아 몰입도가 높다. 주된 복수 방식은 되돌려 주기다. 시즌 1에서는 학폭 피해자가 있는 학교에 가서 일진을 제압하기도 하고, 김도기를 추적하던 검사는 마침내 모범택시로 복수를 대행한다. 자기 욕망에만 충실할 뿐 타인의 고통이나 심지어 생명은 안중에도 없는 악한은 정말로 부지런하다. 그들에게 고통받은 힘 없는 이들은 법에 호소하지만, 법은 그들의 편이 아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 내려놓기 직전에 ‘무지개 운수’를 찾아가 복수를 단행한다. 장성철과 김도기를 비롯한 무지개 운수의 구성원은 다 비참한 사연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다. 만약 너무도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 법은 멀리 있고 어찌하지 못할 때, 무지개 운수에서 복수를 대행해 준다고 하면 어떠한 선택을 할까?

드라마 속 ‘무지개 운수’는 복수를 대행해 준다. 복수를 마친 뒤 “운행을 종료합니다”라고 보고한다. 김도기를 쫓던 강하나 검사도 결국은 공조를 하며 복수를 의뢰한다. (장면 출처 = ‘모범택시’ 시즌 1)

사적 복수는 국가 역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피어오른다

토마스 홉스의 저작 <리바이어던>(1651)은 현대 국가가 왜 폭력을 독점해야 하는지, 왜 개인이 직접 보복하는 ‘사적 복수’가 금지되는지를 철학적으로 정당화한 가장 중요한 고전이다. 홉스는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상태를 ‘자연 상태’로 불렀는데, 인간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무제한의 자유를 가지며 누군가 자신을 공격할지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선제 공격을 하거나 당한 만큼 갚아 주는 방식을 택하고 만다. 그렇게 무질서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펼쳐진다. 이런 무력 행사를 포기하고, 이를 한 거대한 권력체에 몰아주기로 합의하는 ‘사회 계약’을 맺는다. 이렇게 국가가 탄생하는데, 국가는 구성원에게 위임받은 권력을 바탕으로 ‘합법적 폭력’을 독점한다. 리바이어던은 성경에 등장하는 거대한 바다 괴물의 이름으로, 사회 계약으로 탄생한 압도적 힘을 가진 국가를 상징한다. 리바이어던(국가)은 구성원에게 위임받은 권력으로 폭력을 독점하기에, 오직 국가만이 법에 근거해 누군가를 처벌하거나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사형 집행이다.

시민들은 국가에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는 대가로 무력을 포기하기로 계약을 맺기에, 사적 복수는 국가와의 계약을 어기는 행위가 된다. 국가는 시민이 입은 피해를 법적 절차로 공정하게 처벌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많은 경우 국가가 공정하게 작동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마르크스는 국가를 ‘부르주아 집행 위원회’라고 말하며, 유산 계급이 무산 계급을 억압하는 특정 계급의 도구로 인식했다. 리바이어던 머리 위에 올라탄 지배 계급은 힘 없는 이 또는 억압에 저항하는 이들에게 엄청난 폭력을 행사한다. 한국에서 벌어진 국가 폭력도 그러하지 않았는가.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는 이유는 제도적 절차적 형식적 민주주의를 넘어, 국가가 공정하고 정의롭게 온전히 작동하게 위해서다. 국가 역할의 부재는 사적 복수에 대한 관심과 열망을 키워 가는 자양분이 될 것이다.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의 표지. (표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오른쪽 뺨을 맞으면 왼쪽 뺨을 내주라고, 그전에

국가의 공정성에 의문을 품는 대표적 사례는 법의 집행이다. 2만 원어치 식료품을 훔친 노숙인이 상습 절도(특가법)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는데, 수백억 원대를 횡령하거나 배임을 저지른 기업인이 ‘징역 3년, 집행 유예 5년’을 받아 실형을 면하는 사례가 있었다. 이런 경우는 지금도 비일비재하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자조 섞인 말을 내뱉으면서, 알게 모르게 그것을 내면화하고 만다.

가난한 사람들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자신을 방어하기가 어렵다. 운이 좋아 무료 변론을 받을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법률 서비스(변호사)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최근 학폭 문제와 관련해 법률 시장이 커졌다고 하는데, 일반 민사 사건보다도 수임료가 훨씬 높다고 한다. 그러한 법률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 부유층이겠는가, 서민이겠는가. 없이 사는 사람에게 법의 보호는 요원하기만 하며, 법이라는 것이 칼날이 되어 돌아올 공산만 크다. 드라마를 통해 드러나는 사적 복수의 갈망은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지금도 사적 복수와 관련해 많은 사람이 기억할 만한 영화는 미국 영화 ‘모범시민’(2009)일 것이다. 사법 체계에 절망한 주인공이 스스로 심판자가 되어 펼치는 처절하고 치밀한 복수극이다. 주인공 클라이드의 집에 괴한이 들이닥쳐 아내와 딸이 처참하게 살해당한다. 붙잡힌 범인들은 담당 검사와 사법 거래로 곧 풀려난다. 이제 클라이드의 인생에서 복수만 남아 있으며, 그것이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가 된다. 그는 분노하며 범인들과 그들을 보호한 정부를 향해 복수를 시작한다. 클라이드가 가족을 죽인 범죄자로 지목되자, 그는 순순히 유죄를 인정하고 감옥에 들어가 그 안에서 치밀하고 거침없이 복수를 이어 가는데, 인정사정없다. 이것을 본 지인은 정말 통쾌하다고 했다.

복수를 감행하는 클라이드. 이 영화의 제목이 역설적이다. (장면 출처 = ‘모범시민’)

‘더 글로리’(2023)는 앞서 말한 학교 폭력 생존자의 치밀하고 처절한 복수극이다. 학교 폭력으로 영혼까지 파괴되어 학교를 떠난 주인공이 가해자들과 방관자들에게 인생을 건 복수를 감행한다. 부와 권력으로 법망을 피한 이들을 향해 직접 설계한 복수를 펼치는 과정이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기득권 세력과 그에 기생하는 연대와 그에 맞서는 복수의 연대는 다소 계급 투쟁의 성격을 갖는다. 이 드라마의 기득권 연대에는 종교와 공모하고 있음을 은연중에 내비치고 있다. 일부 경찰을 비롯한 몇몇 세력은 살짝 방관하거나 눈을 감으면서 복수의 연대에 동참하기도 한다.

‘더 글로리’에서 복수는 조금 더 의미심장하다. 복수의 주체와 대상이 서로 집단적이다. (장면 출처 = ‘더 글로리’)

‘비질란테’(2023)는 낮에는 경찰대 학생, 밤에는 법망에서 벗어난 악인들을 처단하는 ‘자경단원(비질란테)’의 이야기다. 어머니를 잔혹하게 살해한 범인이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것을 보고 사적 복수를 결심한 주인공 경찰대생은 밤마다 심판자로 변신한다. 그는 ‘법의 구멍을 메우는 것이 정의’라는 신념으로 악인을 처단해 간다. 미래에 법을 집행해야 하는 경찰대생이 스스로 심판자가 되어 복수를 하는 모습은 여러모로 역설적이다.

낮에는 경찰대생, 밤에는 심판자로 변신한다. (장면 출처 = ‘비질란테’)

‘국민사형투표’(2023)는 악질 범죄자를 대상으로 국민사형투표를 진행하고, 찬성표가 반을 넘으면 사형을 집행하는 정체 미상의 심판자 ‘개탈’을 추적한다.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 솜방망이 처벌을 받은 악질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개탈’이 익명으로 투표를 진행한다. 국민들은 문자 메시지 등으로 투표에 참여하며, 찬성률에 따라 사형이 집행된다. 사법 불신과 사적 제재에 대한 찬반 논쟁을 드라마 안에서도 극명하게 보여 주는데, 특히 국가가 독점한 개인의 생사 여탈권인 사형 제도를 놓고 벌이는 사적 복수는 의미심장하다.

국가의 독점적 폭력 행사의 최정점인 사형 집행이 사적 제재로 전환된다. (장면 출처 = '국민사형투표')

사적 복수를 대놓고 지지하기는 그렇지만, 드라마에 감정 이입을 하며 흠뻑 빠져들다가 통쾌감을 느낄 때마다 어쩌면 나는 살짝 내심 그것에 동조하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사적 복수를 한 복수자의 그 끔찍하고 흉측한 죄질 때문에 적극 지지까지는 아니더라도 동정 여론이 강한 경우도 많다. 결국엔 카타르시스만 느끼다가 빠져나오지만, 마음 한편은 복잡해진다. '모범택시' 속 대사처럼 “죽지 말고 복수하세요”라는 말이 정말 지금 누군가에게는 마지막 희망일지도 모른다는 사실 때문이다.

사적 복수 드라마를 놓고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거나 심지어 왼 뺨을 맞으면 오른 뺨을 내밀라는 식의 교과서적 뻔한 논평을 본 적이 있다. 드라마 속 복수가 실제로 가능하기도 어렵고, 또 그렇게 된다면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은 맞다. ‘모범택시’만 보더라도, 지략과 재력 등 누군가의 도움이 아니라면, 복수할 수 있겠는가 싶다. 특히 상대가 막대한 부와 권력을 갖고 있다면 더더욱. 한편 사적 복수 드라마는 사회 곳곳의 약한 고리를 돌아보게 해 주는 효과는 있다고 본다. 곳곳에서 자행되는 온갖 참상을 적나라하게 비춰 줄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드라마가 대리 만족에 그치지 않고, 공적 감시의 역할에 한몫해 주기를 바란다.

김지환(파블로)

마포에서 나서 한강과 와우산 자락의 기운을 받으며 살아왔다. 역사를 공부했고 그중에서도 라틴 아메리카 역사를 한참 재미있게 공부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이 지역 이야기는 가슴을 뜨겁게 한다. 여전히, 좋은 책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s://www.catholic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