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함과 사랑받음과 사랑,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과 인간

2025-12-22     이찬수

지난 글에 살펴본 예수와 신의 ‘동일 본질’(homoousia) 및 ‘삼위일체’의 개념은 인간과 신의 관계에 대해 여러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논쟁을 비교적 쉬운 언어로 정리해 종식시키고, 오늘의 신학 언어의 토대를 놓은 사상가가 아우구스티누스다.

마니교 신자였던 아우구스티누스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북아프리카의 타가스테(오늘의 알제리)에서 태어난 뒤 주로 히포에서 활동했다. 젊은 시절에는 전형적인 선·악 이원론 종교인 마니교에 심취했다. 마니교는 페르시아(사산제국)의 예언자 마니(216?-276?)가 창시한 종교였다. 마니는 조로아스터, 예수, 붓다의 가르침을 완성하고 통합한 예언자로 자처했고, 세계를 빛/선/영혼과 어둠/악/물질의 원리가 대립하며 갈등하는 현장으로 보았다. 영혼이 육체의 속박에서 벗어나 본래의 빛의 세계로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금욕주의와 고행을 추구했다. 마니로부터 시작된 이 종교는 로마 제국은 물론 한때 중국에까지 퍼졌다가 14세기 이후 사실상 소멸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9년여 마니교도로 살았지만, 마니교의 이원론은 그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 그러다가 플로티누스의 철학을 만나면서 선과 악의 관계를 정립할 수 있었다. 일자(一者, to hen)로부터 정신, 영혼, 물질이 유출되었다고 보는 플로티누스 철학을 통해 악을 선과 대립하는 상태가 아닌 ‘선의 결핍’으로 이해하면서, 대립적 이원론을 넘어서게 되었다.(https://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4584 참조) 이러한 지적 여정에 그리스도교인이던 어머니 모니카의 영향이 더해지면서 30세 되던 해 그리스도교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 뒤에도 이원론적 경향은 어느 정도 지속되었다. 인간의 내부는 선과 악이라는 상이한 감정들이 투쟁하는 현장이고, 역사도 ‘신의 나라’와 ‘땅의 나라’ 간 갈등의 과정으로 보았다. 영혼과 육체의 관계도 일정 부분 이원론적으로 이해했다. 그렇지만 단순한 병렬적이고 대립적인 이원론은 아니었다. 확실한 지식의 가능성에 기반해 둘 다를 긍정하는 이원론이었다. 지성이 감정보다 우월하되, 감정에도 윤리적 가치가 있다고 보는 식이었다.

‘나는 존재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발견

당시 변화하는 세계에서의 경험적 지식으로는 확실한 지식을 확보할 수 없다는 회의주의자들이 있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들에 대해 한편에서는 동의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그에 반박하며 확실한 지식의 근거를 제시했다. 설령 우리의 경험적 지식은 의심스럽다고 해도 그렇게 의심하는 자신은 의심할 수 없다는 논리에서였다. 그는 회의주의자들에 대해 이렇게 답변했다: “내가 속고 있다면 나는 존재한다.”(Si fallor sum. <신국론> 제11권 26장) “내가 정말 의심한다면 나는 존재한다.”(Si enim dubito sum. <참된 종교에 관하여> 제39권 73장)

만일 내가 무언가(가령 감각)에 의해 속는다고 해도 그것은 속임을 당하는 무엇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논리를 폈다. 회의주의자들이 제기한 지식의 불확실성 혹은 오류 가능성을 도리어 오류를 일으키는 그 무언가가 있다는 증거로 전환시킨 것이다. ‘오류가 존재를 증명한다’는 역설, ‘의심하는 나는 확실히 존재한다’는 논리로 인간 내면에서 확실한 진리의 가능성을 찾았다. 근대 철학의 문을 연 철학자로 알려진 데카르트의 ‘방법론적 의심’(“나는 의심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보다 무려 1,200년 이상이나 앞선 독창적 방법론이었다.

사랑함과 사랑받음과 사랑, 인간 정신의 삼위일체적 구조

이런 식으로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 안에서 어떤 견고한 지점을 보았다. 감각이나 외부 세계보다 내적 성찰에 기반한 순수한 논리적 형식을 중시했다. 그것을 신적 세계의 확실성을 보증하는 근거로 삼았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Imago Dei)대로 창조되었다’는 창세기를 인용하며 인간 정신 안에서 신의 ‘흔적’(vestigia)을 찾았고, ‘진리가 인간의 내면에 거한다’고 보았으며, 인간의 지적 정신(Mens)의 작동 방식을 당시 논쟁거리였던 삼위일체론과 연결지었다.

정신이 자기 자신을 간직하고 있는 상태가 ‘기억’(Memoria)이고, 정신이 자기 자신을 인식하는 활동이 ‘지성’(Intelligentia)이며, 정신이 자기 자신을 긍정해 기억과 지성을 결합시키는 힘이 ‘의지’(Voluntas)라고 보는 식이었다. 그리고 기억과 지성을 결합시키는 동력은 사랑이라고 보았다. 무엇을 선택하는 행위, 즉 의지는 그렇게 선택하는 것에 기울어 있다는 증거이고, 그 기울어 있음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의지와 사랑을 동일시하다시피 했다. 그렇게 ‘기억’하고, ‘알고’(지성), 이 둘을 결합‘하는’(의지/사랑) 이 셋은 서로가 서로 안에 거하는, 사실상 한 정신(Mens)의 세 양태라고 해석했다.

기억의 정점이 바로 신으로서, 신을 기억한다는 것은 신을 아는 것이고 그 아는 것과 하나 되는 것, 즉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기억을 성부로, 지성을 성자로, 의지/사랑을 성령의 관계로 설명했다. 이들 셋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관계 속에서만 구별될 뿐, 그 관계 자체는 하나라는 논리다. 삼위일체를 ‘사랑하는 자’(Amans, 성부), ‘사랑받는 자’(Amatus, 성자), ‘사랑 바로 그것’(Amor, 성령)의 관계로 보았다. 신의 본질을 사랑의 관계 혹은 관계적 사랑에서 찾았던 것이다.

'삼위일체', 안드레이 루블료프, 15세기 초. 왼쪽부터 성부, 성자, 성령으로 보기도 한다. (그림 출처 = ko.wikipedia.org)

성령은 어디서 나오나, 상이한 삼위일체론

이런 구조는 ‘성령’의 성격과 자리에 대한 이해를 넓혔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랑’이 ‘사랑하는 자’와 ‘사랑받는 자’의 관계에서 나오듯, 성령은 성부와 성자 모두에게서 나온다고 보았다. 이른바 필리오케(filioque), 즉 성령은 성부로부터는 물론 ‘아들(fili, son)로부터(o, from)도(que, and)’ 나온다고 봄으로써, 삼위일체를 인간 정신(Mens)의 구조를 중심으로 해석했다. 이런 해석에 영향을 받으며 라틴어를 사용하는 서방 교회(로마)에서는 삼위일체론과 성령론이 확립되었다. ‘성부’(聖父)와 ‘성자’(聖子)를 한편에서는 구분하면서도 상호 관계성 속에서 이들 모두에게서 ‘성’(聖)이라는 동일성을 보았다.

그러나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동방 교회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애당초 그리스어로 기록된 '니케아 신경'의 ‘동일 본질(homoousia)’에서의 그 ‘본질(ousia)’을 성부(聖父)에게 우선 적용했다. 성령은 ‘성부로부터, 성자를 통해’ 나온다면서, 성부 중심적 사유를 견지했다. 성령의 일차적 출처는 성부라는 것이었다. 만일 그리스어 ‘우시아(ousia, 본질)’를 성부와 성자에게 동시에 적용하면, 성부의 우시아(ousia, 본질)가 둘로 나뉘는 것처럼 상상되었기에, 성부의 ‘우시아’의 단일성을 충실히 유지하려면 우선 성부로부터 나온 성령이 성자를 거쳐 작용한다고 보아야 했던 것이다. 그런 식으로 삼위일체에 대한 서방(로마) 교회와 동방(그리스) 교회의 이해는 달라졌고, 두 교회가 교리적으로 분열되는 계기가 되었다.(https://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4663 참조)

‘자유 의지’와 ‘예정’이라는 모순의 조화

아우구스티누스가 삼위일체론을 확립하게 된 기초에는 인간 정신(Mens)의 확실성이 있었다. 그가 확보한 인간 정신의 확실성은 ‘자유 의지’ 개념으로 이어졌다.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같은 옛 철학자들은 무엇이 선인지 이성으로 정확히 알면 그 선을 행한다고 생각했다. 일종의 주지주의(Intellectualism)이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 인간은 무엇이 선인지 이성으로는 알지만, 알면서도 행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리고 그 무언가를 알려면 그것을 알려는 의지가 선행되어야 한다. 무엇이 옳은가를 아는 것(이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그 앎을 선택해서 앎과 하나가 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앎과 앎의 대상을 연결시켜 하나로 만드는 동력, 지성이 어떤 것을 인식하도록 묶어 주는 힘이 의지다. 그리고 그 묶어줌은 곧 사랑이다. ‘사랑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종의 의지주의(Voluntarism)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의지는 강제가 아니라 자유다. 자유이기에 선을 택할 수도 있고 악을 택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인간은 종종 선을 알려고 하지도 않고, 설령 안다고 해도 선을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의지의 ‘오용’이며, 따라서 악의 문제는 신이 아닌 인간이 책임이 된다. ‘죄’도 몰라서 짓는 것이 아니라, 의지가 물욕과 같은 낮은 단계의 선을 택하는 데서 생기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의식하면서 그는 만년으로 갈수록 악의 현실과 의지의 한계를 더 많이 느꼈다. 그러면서 오늘까지 회자되고 있는 ‘원죄론’을 전개했다. 인간의 의지에는 한계가 있어서 죄악된 선택을 할 때가 많고 스스로를 구원하기도 힘들기에, 만물의 근원인 신의 은총으로 의지의 치료를 받고 이성의 기능을 회복해, 지복을 누릴 수 있는 이들도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이것은 ‘예정론’으로 이어졌다. 시간을 세속적 시간(과거, 현재, 미래의 구분)과 세속을 넘어서는 초월적 시간(영원한 현재)으로 구분했다. 신은 세속적 시간을 초월해 존재한다는 점에서 세속적 시간 안에 사는 인간의 행위를 미리 알고 있으며, 따라서 인간의 구원은 신에 의해 예정되어 있다는 예정론을 펼쳤다. ‘예정’이라지만 그것은 절대 현재라는 신의 시간에서 이루어지는 일이기에 세속적 시간 안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는 인간의 의지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내일 아침 해가 뜬다는 것을 안다고 해서 내일 아침 해가 뜨도록 하는 것이 아니듯이, 신이 인간의 나약한 선택을 안다고 해서 실제로 죄를 짓도록 내모는 것은 아니다. 신의 은총으로 나약한 의지를 치유하여 진정으로 자유롭게 선을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다. 점술가가 점치듯이 미래를 예견하는 그런 예정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런 예정론은 후대에 종교개혁가인 장 칼뱅의 이중 예정론으로 이어졌다.

서양 철학의 근간, 신과 인간의 연결과 긴장

그리스도교가 로마의 국가가 된 이래 철학은 신학적이기도 했고, 신학은 철학적이기도 했다. 이런 학문의 대표자가 아우구스티누스다. 그는 신과 인간의 관계라는 종교적 사실을 합리적으로 해명하고자 했다.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눈에 보이는 특수한 현상과 그 현상을 가능하게 해 주는 보편 원리의 관계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보편과 특수는 서로 긴장하며 서양 철학을 견인해 온 개념 쌍이다.

고대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보편도 특수 안에 존재하기에, 보편과 특수는 독립적이지 않다. 이 보편과 특수 개념은 신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한 신학적 토론으로 나타나곤 했다. 인간이 신을 믿는다거나 인식하는 행위가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물음에 인간이 신을 인식할 수 있는 선험적 근거가 인간 안에 이미 갖추어져 있다는 식으로 답변되곤 했다. 인간이 인간 밖의 세계에 대해 인식한다는 것은 그 밖의 세계와 애당초 연결되어 있다는 식이었다. 이런 식으로 서양식 이원론은 역설적이게도 오랜 세월 토론 과정을 거치면서 일원론적 성향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원론적 치열함의 긍정적 효과

상대적으로 일원론적 성향이 강한 동양 철학, 가령 중생과 부처의 동일성, 하늘(天)과 인간(人)의 합일(天人合一), 인내천(人乃天) 등을 말하는 동양적 사상 전통은 신과 인간의 관계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그에 비해 서양 철학은 신과 인간의 이원론적 세계관 속에서 이들을 연결지으려는 오랜 시도가 철학을 더 치열하게 만들었고, 그 치열함이 전체 사상계의 모델처럼 확립되어 왔다. 예수 안에 신성과 인성이 동등하게 갖추어져 있다거나, 예수가 신과 ‘동일한 본질’을 지닌다는 교리적 천명 등은 육체를 지닌 인간과 보편적이고 초월적 신이 어떤 관계를 맺는지 등과 관련한 다양한 논의를 낳았다. 그리고 신과 인간의 관계는 이데아와 현상계를 위시해서 현상 세계와 물 자체(칸트), 절대 정신에 의한 ‘절대지’로의 변증법적 전개(헤겔) 등 대체로 비슷한 구도 속에서 다양하게 변주되며, 서양의 사상사를 흥미진진하게 전개시킨 근간이다. 이것은 서양 사상사에서 종교, 특히 그리스도교의 문제를 잘 살펴야 하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찬수
서강대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강남대 교수,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보훈교육연구원장 등을 지냈다. 신학, 불교학, 철학을 중심으로 이십여 년 종교학을, 십수 년 평화학을 강의하고 연구했으며, 아시아종교평화학회를 창립해 부회장으로 봉사하면서, 가톨릭대에서 평화학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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