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능 오염수엔 민감, 핵무기엔 둔감... 제주시민 안전 위한 조례 시급

”이미 들어온 핵 위협, 조례로 최소한의 방어선 구축해야“

2025-12-15     경동현 기자

”일본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에는 온 도민이 들고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 코앞인 강정 해군기지에 핵 추진 잠수함이 드나드는 현실에는 왜 침묵하고 있을까요?"

'세계 평화의 섬' 제주가 실질적인 평화 지대로 거듭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12일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소회의실에서는 '제주비핵지대 조례 왜 필요한가?'를 주제로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이번 토론회는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정민구 의원이 주최하고, 제주비핵지대를 위한 평화선언 준비모임과 천주교를 포함한 도내외 시민사회단체가 함께했다. 동북아 지역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는 가운데, 제주의 미래와 도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서 '비핵지대 조례'가 왜 필요한지를 공론화하는 자리였다.

행사에 앞서 강우일 주교는 격려사에서 평화를 바라는 신앙인과 제주 시민들에게 비핵지대 선언을 위한 제언을 전했다.

12월 12일,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소회의실에서에서 열린 '제주비핵지대 조례 왜 필요한가' 토론회에 참여한 발표자와 토론자. (사진 제공 = 신강협)
토론회 격려사를 하는 강우일 주교. (사진 제공 = 신강협)

"핵 잠수함은 먼 나라 이야기? 우리 삶 위협하는 현실“

조성윤 전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난해한 안보 이론 대신, 도민들이 생활 속에서 직접 느낄 수 있는 삶의 모순을 짚으며 발제를 시작했다. 그는 지난 10월 말 경주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등에서 언급된 '핵 추진 잠수함' 도입 논의가 제주 도민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핵무기나 핵 잠수함을 나와 상관없는 먼 이야기로 여기지만, 만약 한국이 핵 잠수함을 갖게 된다면 가장 먼저 배치될 곳은 제주 강정 해군기지가 될 것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제주의 '이중적인 현실 인식'을 꼬집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당시에는 수산업 종사자는 물론 일반 시민까지 나서 강하게 반대했지만, 정작 강정 기지에 미군 핵 추진 잠수함(미시시피함, 아나폴리스함 등)과 핵 항공모함이 수시로 드나들며 정비를 하고, 오물을 배출하는 상황에는 무감각하다는 것이다.

그는 "핵 발전소 사고나 오염수 문제보다 훨씬 더 치명적인 것이 바로 핵무기"라며, "핵무기가 사용되는 순간 우리의 삶은 돌이킬 수 없는 파괴를 맞게 되지만, 우리는 학교 교육이나 언론을 통해 이러한 위험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 판단을 미루고 있다"고 진단했다.

'제주비핵지대 조례의 필요성과 그 의미'를 발표하는 조성윤 교수. (사진 제공 = 신강협)

"평화는 위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주민 스스로 결정해야"

조 교수는 과거 정부가 주도했던 '한반도 비핵화 선언(1991)'이 쉽게 무너지고, 남북 관계가 다시 얼어붙은 이유를 '시민 지지 기반의 부재'에서 찾았다. 정부 간 약속은 정권이 바뀌면 휴지 조각이 될 수 있지만, 시민들이 밑바닥에서부터 핵의 위험을 깨닫고 요구하는 평화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요코스카의 사례를 들며, "핵 피해를 겪은 일본 시민들은 미군 기지에 핵 항공모함이 들어올 때마다 그 위험을 알리는 활동을 끈질기게 이어 오고 있다"며, "이제 제주도민들도 내 삶의 터전에 핵무기가 들어오는지 감시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결론으로 '제주비핵지대 조례'가 상징을 넘어, 주민 주권를 실현하는 과정이라고 짚었다. 그는 "송악산 공군기지 반대에서 강정 해군기지 반대, 최근 제2공항 반대에 이르기까지 주민의 뜻을 모아 저항해 온 역사처럼, 이제는 핵 문제에도 도민이 정책 결정의 주체가 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세계는 이미 비핵지대로 가고 있다“

지정 토론에서는 전문가와 활동가 4명이 참여해 '비핵지대 조례'가 필요한 이유를 국제 정세, 현장 증언, 타 지역 사례, 법적 과제 등 여러 갈래에서 살펴봤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비핵지대화의 세계적 흐름과 한반도의 상황'을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이미 라틴아메리카, 남태평양을 비롯한 전 세계 6개 지역이 비핵지대 조약을 맺고 있다"며, 이는 결코 불가능한 꿈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현실적으로 '북한 비핵화'나 '한반도 비핵화'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그 공백을 메울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 바로 '군비 통제와 비핵지대'"라며, 국제적으로 합의된 비핵지대 개념을 통해 한반도 평화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핵지대화의 세계적 흐름과 한반도의 상황'을 주제로 토론하고 있는 정욱식 대표. (사진 제공 = 신강협)

"강정, 핵을 마주한 일상... 조례는 최소한의 저항"

강정마을 현장의 목소리도 생생하게 전달됐다.

최성희 강정 평화 활동가는 '제주 해군기지 반대운동과 비핵조례' 토론에서 2016년 기지 완공 이후 미 핵잠수함과 핵 항공모함이 수시로 드나드는 상황을 짚었다.

그는 "방진복을 입은 승조원들이 정체 불명의 액체와 폐기물을 내리는 모습을 목격했지만, 도정이나 국가 기관 그 누구도 책임 있는 답변을 주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조례가 상위 법이나 군사 작전을 막는 데 한계가 있을지라도, 핵무기와 핵물질을 거부하겠다는 제주도민의 의지를 표명하는 최소한의 저항 수단으로서 조례 제정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24년 10월 10일 미핵잠지원함 프랭크 케이블(AS-40)의 제주해군기지 입항을 규탄하는 강정평화지킴이들. (사진 제공 = 수산)

"핵발전소 16기 밀집 울산, 시민이 이끈 탈핵"

탈핵 운동의 최전선인 울산의 사례도 공유됐다. 배성희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 집행위원장은 "울산은 반경 30킬로미터 안에 핵발전소 16기가 모여 있는, 세계 최대의 핵 위험 지역"이라며, "후쿠시마 사고 이후 시민들이 직접 나서서 신고리 5, 6호기 백지화 운동과 주민 투표를 이끌어 냈다"고 설명했다.

배 위원장은 울산에서의 치열한 경험을 전하며, 핵발전소와 핵무기는 모두 시민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하나로 연결된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제주의 비핵지대 운동에도 연대 의사를 밝혔다.

'부울경 핵발전소와 탈핵운동'을 주제로 토론하는 배성희 집행위원장. (사진 제공 = 신강협)

“구속력 있는 비핵 조례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김순애 탈핵·기후위기제주행동 실행위원장은 '제주탈핵운동과 비핵지대 조례'를 주제로, 제주가 안고 있는 제도적 과제를 짚었다.

김 위원장은 "제주는 이미 2012년 '세계적 탈핵도시 선언'을 통해 '핵무기로부터 자유로운 평화의 섬'을 선언했고, 2019년에는 에너지 기본 조례에 유해한 에너지 생산 시설을 지양한다는 내용을 담았다"고 환기했다. 이어 "최근 정부가 소형 모듈 원자로(SMR) 등 신규 원전 확대를 시사하는 상황에서,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핵 시설 설치와 핵무기 반입을 금지하는 구속력 있는 조례 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제주탈핵운동과 비핵지대 조례'를 주제로 토론하는 김순애 실행위원장. (사진 제공 = 신강협)
[인터뷰] 신강협 활동가, "평화는 권리다, 제주는 비핵지대로 가야 한다"

이번 토론회 좌장을 맡은 (사)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신강협 상임활동가를 만나 ‘비핵지대 조례’ 토론회의 의미와 향후 조례 제정 전망을 들어봤다.

이번 토론회를 기획하고, 좌장을 맡은 (사)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의 신강협 상임활동가. (사진 제공 = 신강협)

이번 토론회가 강정 해군기지 투쟁 이후 잠시 주춤했던 평화 운동에 다시 불을 붙이는 시도로 보인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

- 인권 운동을 계속해 오면서 자연스럽게 '평화권'에 관심을 갖게 됐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 할 구체적 권리라는 인식 때문이다. 이 권리를 어떻게 실현할까 고민하다가, 지역 사회 운동의 원로인 조성윤 교수, 임문철 신부, 김종민 4.3평화재단 이사장 등을 먼저 찾아뵙고 뜻을 모았다. 이후 강우일 주교까지 합류하면서 약 3년 전부터 '제주 비핵지대 선언을 위한 준비 모임'을 꾸리게 됐다.

왜 하필 '조례'인가?

- 평화라는 말은 너무 포괄적이고 때로는 추상적으로 들린다. 평화권을 실현하려면 정확한 목표가 필요한데, 그 지점이 바로 '비핵지대'였다. 도의회에 있는 정민구 의원과 논의하며, 선언에 그치지 않고 조례라는 구체적인 제도로 만들어 보자고 의기투합했다. 1차 토론회에서는 평화 정세 전반을 다뤘고, 2차는 시민사회의 입장을 담았다. 이번 3차는 조례가 왜 필요한지,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는지 도민들에게 알리는 단계다.

제주가 처한 상황을 '최전선'이라고 표현했다. 어떤 의미인가?

-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거세지면, 제주는 단순한 후방의 섬이 아니라 병참 기지이자 발진 기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대만 해협 등에서 분쟁이 벌어지면 제주는 오키나와처럼 상대국의 핵심 타격 대상이 된다는 뜻이다. 휴전선 인근은 군사적 대치 중이라도 오히려 전면전이 쉽게 일어나지 않지만, 제주는 전쟁에 직접 휘말릴 위험이 크다. 제2공항 역시 군사 공항으로 바뀌어 전략 폭격기의 거점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여전하다.

조례 제정을 위한 앞으로의 계획은?

- 최근 국제 정세가 복잡해지면서 당장 연말에 조례를 상정하기보다는, 도민들의 공감대를 넓히는 숨 고르기가 필요하다. 내년 6월 지방 선거 이후, 새 도의회가 꾸려지는 하반기쯤 함께 본격 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정욱식 대표의 제안처럼 국제적으로 합의된 '비핵지대' 개념을 명확히 정리해 조례안을 다듬어 갈 생각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독자들과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무장 평화론'의 신화를 조금이라도 바꿔 나갔으면 한다. 강한 무력을 가져야만 평화가 지켜진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평화는 무력이 아니라 평화적인 대화로만 가능하다는 것이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제주가 '무장된 평화'가 아닌 진정한 '비무장 평화'의 섬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지지와 연대를 부탁드린다.

토론회 마치고 발표자와 토론자 관계자들이 다 함께. (사진 제공 = 신강협)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s://www.catholic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