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필요한 트리아지

2025-11-25     정형준

‘일의 순서’는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수년 뒤의 결과까지 좌우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순서’가 뒤죽박죽 되면, 급하고 중요한 일을 뒤로 미뤄 하지 못하거나, 때를 놓쳐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경우가 잦다. 우리가 살면서 가장 많이 하는 후회는 ‘그때는 몰랐다’거나, 기회를 잃어 이제는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 ‘일의 순서’가 보건 의료에서 가장 극적으로 작동하는 영역은 단연 응급 상황이다. 긴급한 정도와 중요도를 동시에 판단해, 빠른 치료 계획을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응급 의학에서는 환자의 위급도에 따라 우선순위를 매기는 ‘트리아지’를 가장 앞세운다. 

트리아지

‘트리아지’는 프랑스어 분리, 종류를 뜻하는 'trier'에서 유래했다. 과거 양모나 콩을 선별할 때 쓰이던 단어가, 18세기 전쟁에서 전쟁 사상자를 분류해야 하는 상황을 거치며 환자 분류 단어로 쓰게 됐다. 나폴레옹 시대 외과 의사 도미니크 장 라레는 전쟁터에서 수많은 절단 환자를 치료하면서 의학 기술뿐 아니라 진료 체계도 세우려고 했다. 그 가운데 그가 고안한 치료 단계 분류법이 오늘날의 ‘트리아지’로 자리 잡았고, 8명을 실을 수 있었던 후송 마차는 구급차의 기원이 되었다.

현대 응급 치료에서 트리아지는 환자의 위급도에 따라 색으로 구분된다. 응급실에 가면 병상에 붙은 색 표식만으로도 긴급도를 알 수 있다. 재난을 다룬 드라마를 보면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이 환자를 분류해 빠른 치료 계획을 세우는 장면이라는 점도 이를 보여 준다. 트리아지는 단순한 분류 작업이 아니라 즉시 처치가 필요한 초응급 환자와 빠른 치료를 해야 하는 응급 환자를 가르는 일은 곧 얼마나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직결된다. 병리 진단이나 의술만큼 중요하게 모든 의사가 익혀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분류 자체가 의학적 판단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분류 체계에 불만을 품고 응급실에 하소연하는 환자가 많다. 대기 시간이 길다며 의료진에게 화를 내거나, 여러 편법으로 우선순위를 우회하려는 환자와 보호자들도 의학 드라마에서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욕구보다 일의 순서와 긴급성을 앞세워야 한다는 원칙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다. 이런 사적 요구가 의학적 순서를 어긋나게 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응급 진료 과정과 질서 전반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긴급하지 않은 환자에게 더 많은 자원이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일어나는 ‘응급실 뺑뺑이’ 문제는 이미 대표적인 사회 문제가 되어 버렸다.

한국형 응급환자 분류도구 KTAS. (자료 출처 = KTAS 홈페이지)

선택과 집중

의학에서 ‘일의 순서’를 다루는 개념이 트리아지라면, 현대 경영에서는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선택과 집중’으로 설명한다. 이는 기업 전략에만 머물지 않는다. 학생의 공부 계획, 개인의 자기계발, 운동 계획에까지 확장됐다. 어떻게 보면 삶에서 계속 강제받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다. 

기업과 국가 운영에서 ‘선택과 집중’은 매우 중요하다. 인력, 자본, 자원이 유한하기에 무한 배분할 수 없다는 점에서 ‘선택’은 필수다. 반대로 잘못된 선택은 한 기업은 물론 나라의 미래까지 망가뜨릴 수 있다. '집중'은 선택을 강화하는 전략이다. 다른 기업이나 나라가 집중하지 않은 분야에 우선 도전하면 이후에 큰 보상을 받을 수 있고, 모두가 뛰어든 분야에서는 집중해서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가장 많은 비판은 다양성을 희생시키고, 특정 영역만 강화하게 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응급 상황의 의학적 판단, 즉 트리아지의 중요성처럼 긴박한 문제가 생겼을 때 기업이나 국가가 ‘선택과 집중’보다 다양한 자원을 분산해 쓰기만 한다면, 이는 기업은 사실상 경영을 포기한 것이고, 국가는 방임되고 있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선택과 집중’은 문화의 문제다. 이는 무엇을 결정하고 어떻게 집행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 구조의 문화가 유지된다는 뜻이다. 하던 일을 계속하고, 각자의 역할이 분리되는 것이 아닌 통합하고 결합하는 과정이 바로 이러한 문화다.

‘선택과 집중’의 문화는 기업에서 경영진의 과감한 결단만을 뜻하지 않는다. 다양한 구성원이 민주적 결정 구조 안에서 수많은 분석과 생각을 내고, 이를 한 방향으로 모아내는 과정에서 가능해진다. 국가는 더 그렇다. 한국의 발전을 흔히 지도자의 결정으로 바꾸게 되는 경향이 많지만, 근본적으로는 대중이 벌인 대규모 항쟁과 선거, 사회 운동, 노동조합 등이 각 시대마다 벌인 ‘선택과 집중’에 대한 요구에서 결정된 것이다. 만약 상향식 결정 구조로 귀결되는 문화였다면, 한국의 모습은 현재와 완전히 다를 것이다.

따라서 국가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긴급하고 중요한 문제들을 슬기롭게 빨리 해결하며, 그 결정을 빠르게 집행하는 ‘문화’의 확산이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을 포용하고 숙의를 거쳐 토론과 논쟁으로 결정하지만, 결정이 났다면 집행은 빠르고 집중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친위 쿠데타 세력이 아직도 단죄되지 못한 후과

‘트리아지’나 ‘선택과 집중’의 관점에서 보면, 지금 한국은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쿠데타 시도가 발생한 지 1년이 되어 가지만, 그 핵심 세력에 대한 단죄는 아직 미흡하다. ‘계엄’은 대통령의 통치 행위고, ‘계몽’적이라는 궤변을 ‘표현의 자유’라며 다양성의 일부처럼 포장되고 있는 상황은 민주주의의 기본 질서를 뒤흔든다. 다양성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상대에게 무장력을 동원해 제압할 권리까지 포함하지 않는다.

법원 역시 ‘법리적 공정성’이라는 이름 아래 시간을 끌고 있다. 그러나 공화국의 기반을 위협하는 긴급 사안에서는 공정성의 우선순위가 달라져야 한다. 국가 체제를 흔드는 시도에 대한 단호한 '선택과 집중' 대응이 뒤로 밀릴수록, 지엽적이고 부차적인 문제로 사회 전반의 문화가 바뀔 수 있다.

극우 정치가 확산되는 이유는 불평등, 경쟁 격화, 공적 서비스 붕괴, 교육 체계의 일탈 등등 수없이 많지만, 날뛰게 되는 배경에는 부당한 행위에 대한 포용적 태도에 있다. 폭력을 정당화하는 세력에 충분한 기회를 주는 것은 민주주의의 포용이 아니라, 체제 위협을 방치하는 것이다. 단죄가 늦어질수록 그들은 자신감을 얻어, 조직과 물자를 재정비하며 이후 재기를 도모할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무엇보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이 스스로 극우화하고, 쿠데타 세력을 옹호하거나 상당수가 다시 지도부가 되어 있다. 쿠데타 세력에 대한 명확한 반대가 없었고, 도리어 탄핵을 막는 이들이 당권을 쥐는 데 단호한 대응이 없던 점이 큰 역할을 했다. 단호한 정치적·법적 책임 추궁이 이루어졌다면, 지금의 상황은 분명 달랐을 것이다. ‘선택과 집중’을 하지 못한 사이, 그들은 다른 방식으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따라서 지금 가장 시급한 국가 과제는 경제 성장이나 다른 개혁이나 국제적 위상이 아니다. 헌정 질서를 위협한 시도에 대한 신속하고 집중적인 책임 규명이 우선이다. 당시 경제·사법 기관의 일부 역시 쿠데타에 협력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만큼, 이를 면밀하게 조사·심판하지 않으며 적절한 행정 조치인 양 넘어가 버린다면, 앞으로 쿠데타는 행정, 사법 단계에서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응급 상황에서 초기 긴급 처치만으로 치료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종양을 제거하고, 항암 치료와 반복 검사로 재발을 막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선순위를 무시하고 불만을 제기하는 환자들을 고려하면서 치료할 수 없듯이, 쿠데타 대응도 불만을 받아들이면서 뒤로 미룰 일이 아니다. 이는 트리아지에서 최우선에 있는 과제다.

정형준

재활의학과 전문의,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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