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상학적인, 너무나 형이상학적인: 일체·삼위 개념의 탄생
예수의 정체성 변화
역사적 인물 예수가 신의 수준으로 격상되는 과정에 교회 안에서는 예수의 본질을 둘러싸고 상이한 논쟁들이 있어 왔다. 핵심은 예수의 신성이 어느 정도를 의미하는가의 문제였다. 이런 상황에서 콘스탄티누스는 로마 제국의 사상적 통일을 위해 일신론에 기반한 그리스도교가 유용하다고 생각했다. 그리스도교를 제국의 정신적 통일을 위한 수단으로 삼으려 한 것이다. 그리스도교에 예수 그리스도를 둘러싼 신학적 갈등이 있는 것은 로마 제국을 위해서도 좋을 게 없었다. 콘스탄티누스는 325년 니케아(지금의 튀르키예 이즈니크)에서 이른바 ‘니케아 공의회’를 소집했다. 공의회에 모인 주교들은 여러 결정을 했다. '니케아 신경'을 채택했고, 교회법(주교 임명 절차, 성직자 규율, 교구 관할권 등)을 제정했으며, 부활절 날짜(유대인의 유월절과 연계하지 않고, 춘분 후 첫 보름달이 지난 첫째 일요일)를 확정했다.
이 가운데 중요한 것은 '니케아 신경'의 채택이다. 여기에는 그동안의 신앙적, 교리적 논쟁을 종식시키면서, 예수가 신과 ‘동일한 본질’(호모우시아homoousia)을 지녔고, 예수는 신과 같다는 교리적 선언을 담았다. 그리고 예수와 신의 본질을 구분한 아리우스의 주장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교회에서 파문했다. 다음은 '니케아 신경' 전문이다.
'니케아 신경'
우리는 전능하신 한 분 하느님 아버지를 믿습니다. 그분은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의 창조주이십니다. 그리고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분은 하느님의 아들, 아버지에게서 나신 독생자시고, 곧 아버지의 본질(οὐσίας)에서 나셨습니다. 하느님에게서 나신 하느님이시며, 빛에서 나신 빛이시며, 참 하느님에게서 나신 참 하느님이시며, 나셨으되 창조되지 않으셨으며, ‘아버지와 동일 본질’이십니다(ὁμοούσιον τῷ Πατρί), 그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생겨났으니,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 모두입니다. 그분은 우리 인간들을 위하여, 그리고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내려오셨고, 성육신하셨고, 인간이 되셨으며, 고난받으셨고, 그리고 사흘째 되는 날 부활하셨으며, 하늘로 올라가셨고,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을 믿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존재하지 않은 때가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나시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그리고 ‘비존재에서 생겨났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또는 ‘다른 실체나 본질에서(ἑτέρας ὑποστάσεως ἢ οὐσίας)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또는 ‘창조되었다’고, ‘변할 수 있다’고, 또는 ‘달라질 수 있다’고 하느님의 아들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을, 이들을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가 파문합니다.1)
형이상학적인, 너무나 형이상학적인
이때 '니케아 신경'에 쓰인 ‘우시아’(ousia, 본질), ‘히포스타시스’(hypostasis, 실체)라는 용어의 개념과 의미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예수가 아버지라고 불렀던 신과 아들 예수의 관계를 명확하게 설정하기 위해 신학자들은 ‘동일 본질’(homoousia)이라는 형이상학적 언어를 선택했다.
물론 예수는 철학자도 형이상학자도 아니었다. 딱딱하고 추상적인 언어로 말한 적도 없다. 신을 아버지라고 불렀고, 그 아들로서의 삶을 철저하게 살았을 뿐이다. 예수의 제자들은 그 예수에게서 신의 모습을 보았다. 전에 없던 새로운 진리를 읽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는 어떤 논리적 규명이 필요했다. 예수가 보여 준 진리가 정말 진리이려면 예수도 진리여야 했기 때문이다. 예수가 말과 행동으로 보여 준 신이 정말 신이라면, 논리적으로 예수도 신이어야 했고, 또 신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논리를 제자의 제자의 그 제자들이 당대의 형이상학적 언어를 사용해 제시하고 의미를 규명하려 했던 것이다. ‘예수를 보면 하느님이 보인다’는 ‘신앙적’ 사실을 신과 예수의 ‘본질이 동일하다’는 철학적 개념을 이용해 표현한 것이다.
물론 '니케아 신경'에서 말하는 ‘본질이 동일하다’ 혹은 ‘동일 본질’이라는 용어는 너무 추상적이어서 당시에도 쉽게 납득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었다. 플라톤의 이데아와 현상계 중에 ‘이데아’에 가깝고,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과 질료 중에 ‘형상’에 가까운 개념이었다. ‘본질’(ousia)은 물론 ‘실체’(hypostasis)의 개념도 육체적 존재의 구체성보다는 그 구체성을 구체성 되게 해 주는, 추상적이면서도 근본적인 것이었다. 땀 흘리고 설교하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아픔에 공감하고 병자를 치유하고, 함께 먹으며 대화하던 예수, 밤새 기도하고 사막을 걷고, 죄인을 양산하는 종교 권력의 현실에 분노하고, 급기야 십자가에서 고통스럽게 죽어 가던 역사적 예수의 인간미는 담을 수 없는 말이었다. 아니, 한마디 안에 모든 것을 담으려다 모든 것을 추상화해 버린 셈이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니케아 신경'에서 사용한 신과 예수의 ‘동일 본질’이라는 말, 그리고 아리우스를 파문하며 썼던 예수와 신의 ‘동일 실체’ 개념은 당대 여러 사상가들의 해석을 가치면서 이른바 ‘한 실체, 세 위격’[삼위일체三位一體]이라는 그리스도교의 대표적 교리로 거듭나게 되었다.
‘일체·삼위’ 개념의 탄생
'니케아 신경'에서 사용한 그리스어 히포스타시스(hypostasis)는 의미상으로는 ‘아래에(hypo) 서 있는 것(stasis)’, 즉 ‘가장 토대적인 것’이었다. 그런 의미의 ‘실체’였다. 우시아(ousia)도 그와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었고 혼용되기도 했다. '니케아 신경'에서 아리우스를 파문하면서 우시아와 히포스타시스를 한 문장 안에 병렬적으로 사용한 것이 그 증거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리스어를 라틴어로 번역하는 과정에, 특히 제국 내 서방 교회에서 ‘본질’, ‘실체’의 개념을 둘러싸고 혼란이 일어났다.
로마 제국 초기에는 그리스어가 중요했다. 알렉산드로스가 광대한 로마 제국을 건설한 이후 그리스어(코이네 그리스어)가 광범위하게 사용되었고, 특히 철학자 등 식자층은 그리스어로 저술 활동을 했다. 무엇보다 신약 성경이 그리스어로 기록되었기에 당대의 철학적 신학자들은 그리스어를 중요하게 여겼다. 물론 일반 민중에게는 라틴어가 익숙했고, 행정, 법률, 군대 등에서도 라틴어를 두루 썼으니, 로마 제국의 서쪽에서는 라틴어와 그리스어가 사실상 공용어였던 셈이다.
그러다가 2세기 후반 북아프리카 출신의 탁월한 교부 테르툴리아누스(160-225)는 라틴어로 저술하기 시작했고, 4세기 초 로마 제국 내 서방 교회에서는 라틴어가 공식적 전례 언어로 자리 잡았다. 성경도 히에로니무스가 라틴어로 번역했다. 이것이 오늘까지도 전 세계 가톨릭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이른바 ‘불가타역’이다. 이런 식으로 서방 교회에서는 라틴어가 대세가 되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과 초기 교부들이 사용했고, '니케아 신경'의 언어이기도 했던 그리스어를 라틴어로 번역하는 과정에 개념적 혼란이 생겼다. 가령 그리스어 히포스타시스hypostasis(hypo/아래에 stasis/서 있는 것. 혹은 밑에 있는 것)는 라틴어 수브스탄티아substantia(sub/아래에 stantia/서 있는 것)에 대응하는 낱말이지만, 그 뉘앙스는 달랐다. 수브스탄티아는 존재와 사물의 기저에 있는 것, 그런 의미의 ‘실체’이기는 하지만, 대체로 개별 존재의 실체를 의미했다. 이를 예수와 신에게 같이 적용하면 둘이 분리되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니케아 신경'이 선포되던 시절에는 우시아(ousia, 본질)와 히포스타시스(hypostasis, 실체)가 혼용되기도 했다.
그러던 때 동방 교회의 바실레이우스(330-379),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329-390) 등의 교부들은 우시아를 단일 실체로, 히포스타시스를 개별 실체로 나누어 이해하며 해석하기 시작했다. 라틴어로 저술하던 서방 교회의 테르툴리아누스(160-220)는 우시아를 수브스탄티아substantia로, 히포스타시스를 페르소나persona로 표기했다.
이런 과정에서 ‘삼위일체’ 이론적 토대가 다져졌다. 비록 라틴어 페르소나에는 개별 실체의 의미가 들어 있었지만, 이것을 다시 단일 수브스탄티아로 묶으면서 예수(성자)와 신(성부)의 일치와 구분을 교묘히 살릴 수 있었고, 나중에 성령 개념도 이 일치와 구분 도식에 포함하면서, 성부, 성자, 성령의 단일성과 개별성을 동시에 살릴 수 있는 논리를 확보한 것이다.
이로부터 ‘우나 수브스탄티아una substantia’(한 실체), ‘트레스 페르소네tres personae’(세 위격)의 개념과 용법이 형성되었다. '니케아 신경'이 채택되던 당시에는 혼용되기도 하던 우시아ousia와 히포스타시스hypostasis가 라틴어로 표기되는 과정에 점차 개념들이 구분되고, 그에 대응하는 라틴어 개념도 형성되면서 이른바 ‘una substantia’(一體), ‘tres personae’(三位)라는 의미의 삼위일체 도식이 자리 잡아 갔던 것이다. 막대한 학문적 영향력으로 이 개념을 확정한 대표적인 사상가가 아우구스티누스였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 알아보겠다.
주 1) 마지막 문장, 즉 “‘그분이 존재하지 않은 때가 있었다’ ~ 교회가 파문합니다”는 긴 문장은 ‘성자가 존재하지 않은 때가 있었다’고 주장한 아리우스에 대한 비판이다. 아리우스가 성자를 피조물의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잘못된 주장을 한다고 보고서, 그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파문하기 위해 추가된 내용이다. 그러다가 아리우스를 둘러싼 논쟁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때 이 문장을 삭제한 뒤,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을 확정했다. 오늘날 교회에서 고백하는 '니케아 신경'은 325년의 원문이 아니라, 381년 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성령에 대한 구체적 고백까지 포함하는 내용을 담은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이다. 이 인용문은 그리스어 원문을 인공지능으로 번역한 뒤 영어와 비교하며 보완했다.)

이찬수
서강대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강남대 교수,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보훈교육연구원장 등을 지냈다. 신학, 불교학, 철학을 중심으로 이십여 년 종교학을, 십수 년 평화학을 강의하고 연구했으며, 아시아종교평화학회를 창립해 부회장으로 봉사하면서, 가톨릭대에서 평화학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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