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도덕·감정 호소 넘어 새로운 언어 필요”

서울대교구 민화위 한반도평화나눔포럼 3

2025-11-20     정현진 기자

14일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와 평화나눔연구소가 '평화의 장인과 가톨릭 공동체'를 주제로 2025 한반도평화나눔포럼을 열었다.

다양한 연구 방식으로 ‘평화’에 대해 다각도로 탐색하는 자리였다.  '화해와 평화 증진을 위한 가톨릭교회의 역할과 과제', ‘한반도 평화와 화해를 위한 청년들의 역할과 과제’라는 주제에 이어 마지막 세 번째 세션에서는 '한반도 갈등 해소와 평화를 위한 교회 구성원들의 실천적 과제'를 다뤘다.

두 사제가 살아가는 평화, 사목 현장에서 끊임없이 길 찾다
갈등과 분열 경험, 평화 실천의 큰 한계

세 번째 순서의 첫 발표는 '두 사제 이야기-가톨릭 사제의 삶 속 평화 이야기에 대한 내러티브 탐구'였다. 연구자들은 두 사제의 서사를 통해 개인의 삶 속에서 평화 가치가 어떻게 구현되고 실현되는지를 살폈다.

손서정 연구소장(평화나눔연구소 연구위원/삶을 살리는 평화교육 연구소장), 정수용 신부(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부위원장), 남경우 씨(평화나눔연구소 연구위원)가 참여한 이 연구는 “평화의 이해는 어떠한 삶의 이야기를 통해 구성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연구진은 인성, 영성, 지성 그리고 사목 현장에서 평화의 가치를 드러내고 살아내야 할 사제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답을 찾아봤다.

프란치스코 신부와 미카엘 신부가 들려준 생애사에는, 이들이 사제가 되기 이전부터 어떤 삶의 서사 안에서 평화를 체험하고, 무엇을 평화라고 여기게 됐는지가 드러난다.

프란치스코 신부는 따뜻한 가정에서 자라면서 가족 공동체에서 느낀 안정과 평화를 친구와 교회, 자연으로 확장해 나갔다. 그는 자신이 누린 안정과 평화의 바깥에 있는 소외된 아이들을 보게 된다. 사목 과정에서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 장애인과 그들의 부모, 한부모 가정, 독거 노인 등을 만난 그는, 평화를 “자신에게 보내진 이들과 가족 같은 공동체를 이루고, 함께 행복한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으로 이해했다. 나아가 “평화롭고 이상적인 공동체는 한 사람의 실천만이 아니라 함께하는 신자들과 소외된 이들 모두가 평화의 주체가 돼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외할머니 댁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미카엘 신부는 온전히 사랑받는 존재로서 성장했으나, 부모님의 집으로 돌아온 뒤 결핍과 가난을 경험하게 된다. 그에게 풍요롭게 남아 있던 단 한 가지는 친구, 그리고 기도의 힘이었다. 사제가 된 이후 그가 강박적으로 이어 간 일상은 '매일의 성찰'이었다.

미카엘 신부에게 평화란 “인간의 기본 권리가 충족된 당연한 일상 속에서 친밀한 관계를 맺는 과정”이다. 따라서 이러한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누구도 걸려 넘어지지 않는 안정된 환경을 마련하고, 갈등 상황을 줄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연구자들은 “사제들의 실천과 활동은 성향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지만, 그리스도라는 이상과 자신의 현실 사이를 끊임없이 성찰하고 고민하는 양상은 비슷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들은 자신의 인성을 점검하고, 영성을 구체화하며, 지성을 함양하고, 봉사하며 사목하는 통합의 과정을 지속적으로 반복해 나가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이들은 사제들이 개인적 경험과 성향을 넘어, 근원적으로 사랑으로 일치하는 교회 공동체를 이루는 역할에 최우선 가치를 두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사제들은 정의와 평화를 근원에 두지만, 현실의 본당(성당) 공동체 안에서는 이념과 정치적 주제에 걸려 넘어지는 이들이 너무 많았다. 쉽게 분열되는 경험을 너무 자주하기 때문에, 개인 사제로서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범위가 넓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연구자들은 “가톨릭교회와 그리스도의 지체인 사제는 모두 지속적으로 깨어날 필요가 있다"며, "지역 교구는 구태의연한 사목 체계와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쇄신해, 각 교구의 문화와 특성, 시대의 요구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사제와 신자들을 지속적으로 양성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14일 열린 한반도평화나눔포럼 세 번째 순서는 '한반도 갈등 해소와 평화를 위한 교회 구성원들의 실천적 과제'를 주제로 진행됐다. ⓒ정현진 기자

세대별 통일 인식, 점차 부정적으로
민족 재결합, 감정이 아닌 ‘이민 문제’로 인식
교회 언어, 현실
·구조적 관점 반영해야

두 번째 발표는 '한국인의 통일의식 변화와 교회의 역할'을 주제로 조용신 연구위원(평화나눔연구소 연구위원/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북한경제연구실)이 맡았다.

조 연구위원은 통일에 대한 인식이 점차 부정적, 비현실적인 것으로 변하고 있는 현상, 특히 세대 간 인식 차이와 젊은 세대에서 부정적 인식이 두드러지는 문제의식에서 연구를 출발했다.

그는 부정적으로 변화하는 통일 의식과 세대 간 차이는, 분단 이후 통일 추진의 주요 논리였던 ‘민족의 재결합 담론’의 유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흐름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북한 주민에 대한 인식 역시 일반 사회의 ‘이민 문제’와 유사한 형태로 변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젊은 세대가 지금은 통일을 부정적으로 보더라도, 나이가 들면 긍정적으로 보게 될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분석한 결과, 현재 젊은 세대의 통일 인식은 어리기 때문이 아니라 그 세대가 가진 고유한 특성으로, 시간이 흘러도 긍정적으로 바뀔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인은 북한 주민을 같은 민족으로 느끼는 정서와 동시에 경제, 사회적 부담을 줄 수 있는 타자로 보는 양가적 태도를 갖고 있다”며, “과거에는 통일을 민족의 재결합으로 보는 정서적 접근이 가능했다면, 이제는 두 사회의 결합을 이민, 다문화 통합으로 이해하는 인식이 강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 연구위원은 이러한 변화가 가톨릭교회의 민족화해 관련 활동에 던지는 시사점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교회가 오랫동안 말해 온 평화, 화해, 용서, 통일의 가치는 젊은 세대에게 ‘당연하지만 현실과 거리가 있는 말’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민족적 정서보다 현실적, 구조적 관점이 중요한 시대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교회나 관련 기관은 젊은 세대와 소통할 때, 어떤 언어와 메시지가 실제로 의미 있게 전달될지 고민해야 한다”면서, “단순히 통일은 옳다는 도덕적, 감정적 호소를 넘어서, 통일이 어떤 미래를 만들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는지, 그리고 통일이 젊은 세대가 가진 문제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 새롭게 설계할 시점”이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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