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영이라는 신기루에서 벗어나는 2026년

2025-11-17     박병상

에이펙(APEC,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이 성황리에 폐막했다고 한다. 성공한 걸까? 개최를 희망했던 인천은 그 시간을 시무룩하게 보냈는데, 서울 아닌 지방 도시에서 에이펙을 개최한 경주가 천년 고도라는 사실을 세계에 알렸고,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특별한 관심을 받은 건 에이펙과 관계없었다. 트럼프가 일으킨 무역 갈등이 첨예화된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 정상이 만난 상황이 두드러졌는데, 박물관 관람객이 부쩍 늘었고 황남빵이 무섭게 팔려 나갔다는 것 말고, 개최국은 어떤 주목을 받았을까?

시민에게 홍보하면서 2조 5천억을 강조한 인천시의 예측과 달리, 이번 에이펙으로 정부는 7조 원을 경제 효과로 내세웠는데, 당장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의 국외 반출 반대 의사와 별도로, 엔비디아 대표 젠슨 황이 약속한 그래픽 처리 장치(GPU) 26만 장이 입고되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모두 도착해 장착되면 우리나라는 제3의 인공지능(AI) 강국 면모를 명실상부하게 만천하에 드러낼 것인가?

계엄과 탄핵, 그리고 새 정부로 불안한 가운데 혼란스럽게 거듭난 2025년이 어느새 저물어 간다. 올여름은 견뎌 내기 어려울 정도로 더웠다. 가을도 전에 없는 기상 이변을 기록했는데, 면역력이 더 떨어질 2026년은 어떻게 열릴까? 기후학자마다 “올여름이 가장 시원할 것”으로 예상했으니 두려워도 각오하는데, 우리 사회의 관심사는 혹독해질 기후 위기보다 지방 선거에 휩쓸리며 시끄러울 가능성이 크다. 벌써 지방 선거 바람이 분다. 혼탁하다. 윤곽이 명확하지 않아도 언론은 유력한 후보로 평가되는 인사와 그들의 입을 주목하는데, 우리 언론은 지역 유권자의 생각에 무심한 유력 인사의 자세를 문제 삼지 않는다.

내년 예산은 사상 최초로 700조 원을 넘었다. 인공지능 분야에 많은 투자가 이어질 것이 확실하다. 덕분에 우리나라는 향후 100년 이상 번영할 것이라는데, 불안하다. 삐딱한 걸까? 기후 위기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시방, 사려 깊은가? 막대한 에너지와 물을 공급해야 가능한 인공지능은 누구의 번영에 이바지할 것인가? 이미 지나치게 번영한 일부 기득권이 아니라면 그 혜택에서 거리가 멀다는 주장은 외면해도 좋을까? 에너지 과소비가 빚은 온실가스로 돌이킬 수 없는 파국에 휩쓸릴 것으로 추측하는 미래 세대는 100년 이후의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데, 덩달아 기뻐해야 하나?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는 어떤 상황에 내몰릴 것인가?

10월 31일,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엔비디아의 젠슨 황 대표가 만나 아시아대평양 지역의 인공지능 수도로 도약할 대한민국의 미래를 함께 논의했다. (왼쪽부터) 네이버 이해진 의장, SK 최태원 회장, 엔베디아 젠슨 황 대표, 이재명 대통령,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 현대차 정의선 회장. (사진 출처 = 대통령실) 

핵 추진 잠수함이 우리 바다와 국토를 강력하게 방어할 것이라는데 이견을 달기 어렵다. 소음 없는 잠수함이 기존 디젤보다 빠르고 무기 성능이 빼어날 것이라는데 이견을 달 수준이 아니지만, 그러므로 평화가 깃들 것으로 장담할 수 없다. 일찍이 저명한 평화학자 요한 갈퉁은 전쟁 억지력으로 평화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견해를 거부했다. 전쟁이 벌어지지 않을 상황이 평화라고 주장했다. 무기가 평화를 장담하는 건 아니라는 의미다. 핵 추진 항공 모함과 잠수함을 다른 국가를 압도할 정도로 보유한 미국처럼 호전적인 국가가 없지 않은가. 위기는 전쟁보다 균형을 잃는 기후와 생태계에서 비롯된 가능성이 큰 현실이다. 기후 위기 시대의 평화를 찾아야 한다. 무슨 준비에 나서야 할까?

계엄과 탄핵 소용돌이에서 안정을 찾아가는 우리 사회는 2026년의 민주주의는 다르게 열어야 한다. 내란 세력의 준동을 완전히 잠재우지 못한 상황에서 실용을 앞세우는 현 정부를 어느 정도 이해한다. 흐트러진 민주주의를 바로 세울 것으로 믿지만, 2026년 이후의 민주주의는 달라야 한다. 기후 위기가 빚는 갈등이 우리뿐 아니라 세계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특히 미래 세대가 감당해야 하는 파국을 막아야 한다. 해마다 심각해지는 기후 위기 시대에 우리 정책의 절박한 기준은 미래 세대의 생존을 염두에 두는 민주주의 정책일 텐데, 그를 위한 정책을 고민하는 흔적이 현 정부에 보이지 않는다.

에너지 소비 없는 번영은 상상할 수 없는데, 인공지능은 어떤 2026년 선도하려 할까? 번영을 지향하는 정책으로 기후 위기는 전혀 극복할 수 없다. 2025년이 저물어 간다. 2026년이 암담하지 않으려면 위기를 심화시키는 관행에서 과감하게 벗어나야 한다. 2025년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정책을 열어야 한다. 신기루에 취하지 않은 민중, 자식 키우는 시민은 외친다. 예수는 “귀가 있는 자는 들어라!”라고 말했다는데, 2026년을 맞을 정권, 선거 이후 등장할 지방 정권은 신기루 같은 번영보다 미래 세대의 안녕을 먼저 생각해야만 한다. 그러려면, 다른 생각에 귀를 열어야 한다.

민중과 고난의 행군을 멈추지 않았기에 험난한 민주주의 길을 힘겹게 열어 놓은 현 정부의 귀는 열려 있다고 믿는다. 다른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는 정부이기에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2025년에 실용을 앞세웠더라도 2026년은 달라야 한다. 번영보다 흔쾌한 경제 후퇴, 실용보다 행복한 불편함일 텐데. 불안하다. 2026년이 다가오는데, 정치인과 유권자 다수가 번영과 발전에 마음이 빼앗긴다. 2026년에 바통 넘기기 전에 절박하지만 공허한 발언을 다시 꺼낸다. 제발 신기루에 벗어나자고.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ㆍ환경연구소 소장ㆍ60+기후행동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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