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자 - 하느님 백성의 필수 구성원
한국 수도회의 현실
교구 신부로 살아가고 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수도회에서 강의와 피정 동행을 할 때가 심심찮게 있다. 수도회와 수도자들에 대한 경외와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다. 단순 비교의 대상이 될 수는 없지만, 교구 사제로 사는 것보다 수도자로 사는 일이 훨씬 더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안다.
한국 수도회가 쇠퇴와 소멸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고령화와 수도 성소의 급격한 감소는 수도회 쇠락의 직접적 요인이다. 수도회를 방문할 때마다 직접 피부로 절감한다. 지난 세기의 그 활발했던 분위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노년의 공동체라고 해서 다 어둡고 우울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분명 새로운 세대가 유입되지 못하는 공동체는 활력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수도자들 스스로 느끼고 고백하고 있다. 머지않은 시기에 한국 수도회가 유럽 수도회의 전철을 밟아갈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서 말이다.
한 시절, 한국 수도회는 아시아 출신 수도 성소의 발굴과 유입을 통해 수도회의 자생과 성장을 위해 애써 보았지만, 그것 역시 대안이 되지 못하고 실패의 여정을 밟아 가고 있다. 대부분의 수도자들이 이제 미래를 희망하지 못하고 그저 잘 소멸하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약간 자조적으로 말한다. 수도자로 성실하게 살아왔고 또 잘 늙어 가면서 사라진다면 성령께서 새로운 방식으로 수도의 삶을 다시 싹 틔우지 않겠는가 하는 희망을 노래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라는 성경 말씀이 어쩌면 이 시대 수도회 현실에 대한 역설적 희망의 노래인 것 같다.
정체성의 위기
개별적이고 이기적인 주체의 시대에 수도 생활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수도자의 정체성과 사명을 이 시대의 맥락에서 어떻게 재해석하고 재구축할 수 있는지. 오늘날 수도회와 수도자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정직한 답을 찾아야 한다. 수도 생활의 의미, 정체성과 사명에 관한 질문과 답을 찾는 모색은 단순히 수도회와 수도자들의 개별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교회 공동체 전체가 노력해야 한다. 수도자는 하느님 백성의 필수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로 구성된다. 수도자의 약화와 부재는 교회 공동체 핵심의 소실과 붕괴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관상 수도회가 아닌 사도직 수도 생활은 기도와 영성과 서원의 삶, 공동체 구성, 사도직 사명이라는 세 요소로 구성된다. 내적 봉헌, 공동체적 봉헌, 사회적 봉헌의 삶을 사는 것이 수도자의 정체성과 사명이다. 그런데 오늘날 이 세 요소 모두 저마다 위기에 봉착하고 있다. 한 요소가 약화될 때 다른 두 요소에 의해 보완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수도자가 사도직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내적 충만함과 공동체적 삶을 통해 다시 사도직 사명을 수행할 힘을 얻어야 한다. 하지만 오늘의 수도 생활에서 세 요소가 다 위기에 처해 있어서 회복의 탄력성을 얻기가 무척 힘들다.
수도 생활의 힘듦과 어려움은 무엇보다 지나치게 분주한 일상의 구조에서 발생한다. 수도자의 일과를 분석해 보면, 너무 빡빡하고 여유의 시간이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모든 일이 공동체적으로 작동해서 개별의 시간을 잘 갖지 못한다. 기도와 영성 생활은 사실 개별적 여유와 자유에서 시작된다. 공동체 기도도 중요하지만, 영적 성숙을 위해서는 홀로 내면으로 침잠할 개별적 쉼과 기도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요청된다. 그런데 수도자의 일상은 공동생활과 사도직의 시간으로 하루가 다 채워진다. 또한 기도와 영성 생활이 쉼과 성찰의 시간으로 작동되지 않고 그저 의무적이고 규범적인 방식으로 수행되는 경우가 많다.
수도 생활의 정점은 공동체적 삶에 있다. 역사적인 측면에서 보면, 교회 공동체가 가정에서 본당(성당)의 형태로 변해갈 때 공동체성을 다시 확보하기 위해 수도회가 시작되었다. 수도회의 발생학적 기원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공동체성 증거에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이기적이고 개별적인 주체로 살아가는 오늘의 상황에서 공동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질서와 순명을 통한 공동체적 이상(理想)은 오늘의 구체적 현실에서 거의 작동되지 않는다. 몸으로 생활을 함께하는 단순한 생활 공동체는 불가능한 시대다. 가치와 이념, 목적과 지향을 공유하고 사명을 수행하기 위한 느슨한 연대의 공동체만 가능한 시대다. 주체적 개인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함께 살아가는 방식과 규범을 새로 발견해야 한다. 공동체적 삶이 부담이나 억압의 굴레로 작동되지 않고 진정한 기쁨의 원천이 되기 위해서는, 공동체를 살아 내는 방식과 공동체성은 새롭게 재해석되어야 하고 재구성되어야 한다.
수도자가 수도자인 것은 서원을 했고, 수도복을 입고, 수도 공동체에 소속되어 살아가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수도의 삶, 수행의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수도자인 것이다. 수도자의 진정한 정체성은 살아가는 방식을 통해 드러나는 정체성이다. 삶의 자세와 태도를 통해 표현하는 정체성이다. 존재적 정체성이 아니라 수행적 정체성이다. 존재(being)와 행위(doing)라는 단순한 이분법적 구분이 아니다. 수행적 정체성이란 신념, 자세와 태도, 살아가는 방식을 통해 표현하는 정체성이다. 수도자의 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진행되고 성취된다는 의미다.
오늘의 수도회와 수도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구체적 상황과 현실들을 고려하지 않고 수도회와 수도자들에게 단순히 관상과 공동체의 회복이라는 과제만을 강조하고 요청하는 것은, 현실의 수도회와 수도자들을 더 절망으로 몰아가는 일이다.
사도직 사명의 위기
솔직하게 말하면, 오늘날 수도자의 사도직 수행이 보람과 의미보다는 무기력과 탈진 상태로 이끄는 경우가 많다. 사도직 직무에 지친 수도자들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수도자의 역할과 일이 교회와 세상 안에서 점점 줄어든다. 한 시절 수도회들은 학교, 병원, 사회 복지 등의 전문적 영역으로 사도직을 확장했다. 하지만 전문적 영역의 세속화와 공공 복지 시스템 확장 등의 외부적 환경 변화와 성소 감소로 인한 사도직 인력 부족이라는 내부적 요인 때문에 다양한 사도직 수행이 어려워졌다. 전통적인 본당 사도직 역시 여러 요인 때문에 활기를 잃어 가고 있고, 해외 선교가 사도직 확장의 유일한 탈출구가 되고 있는 현실이다.
시대의 변화 속에서 사도직 사명의 위기가 도래하는 현실에서 교회는 수도자의 정체성과 사명을 기도와 영성의 관상 생활과 공동체성 증거라는 두 축으로 축소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복음화 사명 수행을 위한 사도직을 활성화하고 새롭게 개척하지 않는다면 수도 생활의 위기는 가속화될 것이다. 기도와 영성 생활, 공동체성은 언제나 복음화 사명 수행과 긴밀하게 연결되어야 한다. 수도 생활의 세 축은 항상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한국 수도회는 환경과 생태, 정의와 평화에 대한 사회적 예언자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또한 재속회와 세속봉헌회를 통해 평신도와 함께하는 수도회를 향한 지평을 확장하고 있다. 신앙 교육과 양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한국 본당의 현실에서 재속회와 세속봉헌회는 신앙 교육과 양성의 중요 공간이 되고 있다. 어쩌면 다음 시대의 수도회는 재속회와 세속봉헌회의 형태로 지속될지도 모르겠다.
수도자의 사도직 사명의 개발과 확장을 위해서는 개별 수도회와 수도회 연합 차원에서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전체 교회 차원에서의 관심과 대응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수도회의 쇠퇴와 수도자의 부재는 하느님 백성 필수 구성원의 소멸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교회 공동체 전체가 깨닫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본당이라는 사도직의 현장
본당은 신앙생활과 사목과 사도직의 구체적이고 핵심적인 현장이다. 본당에서 하느님 백성은 함께 하느님을 찬미하고, 신앙과 영성의 교육과 양성이 이루어지며, 복음화 사명 수행의 토대가 형성된다. 본당은 무엇보다 공동체다. 본당은 하느님 백성인 사제, 수도자, 평신도가 함께 공동체를 이루며 복음화 사명 수행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자리다.
본당에서 수도자들의 역할이 줄어들고 점점 수도자들이 철수하는 현실이다. 본당에서 전통적으로 수도자들이 했던 역할을 평신도들이 대체할 수 있다고 해서, 수도자들을 본당에서 배제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본당 공동체는 하느님 백성 구성원 모두가 서로를 배우며 성장하는 장소여야 한다. 본당 공동체는 단순히 사제가 관리하는 기관도 아니고, 사제와 평신도가 운영하는 조직도 아니다. 하느님 백성이 시노달리타스(함께 걷기)적으로 저마다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복음화 사명을 함께 수행하는 장소다.
본당에서 수도자들의 사도직 사명 수행이 고유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신자들의 신앙 교육과 영성 양성의 사도직이, 본당에서 가난한 이들과 약자들에 대한 돌봄의 사도직이 수도자들에게 특화될 수 있도록 전 교회 차원에서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수도자의 문제는 단순히 수도자의 문제만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 모두의 문제다.
정희완 신부
안동교구 사제. 가톨릭문화와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을 전공했다. 대구가톨릭대학교에서 오래 강의했고, 지금은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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