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는 보조자 아닌 공동 책임자" 평협 설문 결과 발표

함께 넘어서야 할 '사제 중심주의'와 '평신도 수동성' 시노달리타스 실현 열쇠는 '경청'과 '체계적 양성'

2025-11-11     경동현 기자

지난 8일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회장 안재홍 베다, 담당 사제 김연범 안토니오)는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평신도, 한국 교회의 시노달리타스를 묻다’ 설문조사 결과 발표회를 열었다.

이번 발표회는 한국평협 평신도사도직연구소가 주관했으며, 지난 8월 일반 신자 2,964명과 본당 사목위원 및 평협 임원 1,90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평신도 용어 인식과 시노달리타스 실현’ 전국 조사 결과를 공유하는 자리였다.

설문 결과, 평신도들은 여전히 스스로를 ‘사제의 보조자’로 인식하는 현실과 ‘교회의 공동 책임자’가 되고자 하는 열망 사이에서 큰 간극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신도들이 주체적 역할을 희망하고 있지만, 이러한 변화가 실제로 뿌리내리기까지는 많은 구조적, 문화적 장벽이 있다는 점도 확인됐다.

발제 뒤에 이어진 토론에서는 시노달리타스가 사제 중심의 구조적 한계와 평신도의 수동적 의식이라는 두 가지 장벽을 동시에 넘어야 하는 과제임을 재확인했다. 이를 위해 사제는 권위를 내려놓고 '경청'과 '협력'의 리더십을 실천하며, 평신도는 '손님' 의식에서 벗어나 '체계적인 양성'을 통해 '공동 책임자'로 성장하는 '상호 회심'의 여정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평신도’ 용어에 대한 인식과 ‘시노달리타스’ 실현을 위한 전국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경동현 연구실장(우리신학연구소, 평신도사도직연구소). (사진 제공 = 한국평단협)

열망은 ‘공동 책임자’, 현실은 ‘보조자’

제1부 발제는 경동현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실장(안드레아)이 맡아 설문조사의 주요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평신도들은 현재 자신들의 위치를 ‘사제의 사목을 돕는 봉사자(보조자)’(일반 신자 30.7%) 또는 ‘협력자’(32.6%)로 인식하는 경향이 높았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서는 ‘교회의 공동 책임자’가 되고 싶다는 응답이 25.8%로, 현재 인식 수준(17.2%)보다 크게 높았다. 이는 평신도들이 수동적 역할을 넘어, 주체적으로 교회 사명에 동참하고자 한다는 의지를 반영한다. 이러한 변화를 실현하기 위한 가장 시급한 과제로 10명 중 9명 이상(일반 신자 85.9%, 사목위원 93.6%)이 ‘신앙 및 리더십 교육’을 꼽았다.

평신도의 현재 위상과 미래의 역할에 대한 일반 신자와 사목위원 응답 결과. 도표 위의 2개는 미래의 평신도 위상에 대한 응답, 아래 2개는 현재의 평신도 위상에 대한 응답. (자료 제공 = 한국 평단협)

‘평신도’ 용어에 대한 인식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용어 변경이 필요하다는 응답(약 30%)은 2006년 조사(평신도 응답자의 61.2%, 전문가 응답자의 55%)에 비해 오히려 크게 줄었다.

경 실장은 이를 “오랜 시간 관용어처럼 사용해 온 ‘익숙함’ 때문으로 볼 수도 있지만, 용어를 바꾼다고 평신도 위상이 달라질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적 입장이 반영된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평신도’를 대체할 표현으로는 성직자와 구분하는 위계적 용어보다 모든 하느님 백성을 아우르는 ‘교우’나 ‘신자’를 선호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과거 조사에서도 이와 유사한 결과가 나타났다.

왼쪽 도표는 ‘평신도’라는 말을 들었을 때 받는 느낌에 대한 응답. 오른쪽은 '평신도 용어 변경이 필요한가'에 대한 응답. (자료 제공 = 한국 평단협)
'평신도'를 대체할 용어로 무엇을 선호하는가에 대한 응답 결과. (자료 제공 = 한국 평단협)

시노달리타스(함께 걷기)에 대한 인지도는 사목위원(71.7%)이 일반 신자(45.8%)보다 월등히 높았다. 교구별로도 차이가 컸다. 이는 시노드 정신이 아직 교회 전체에 널리 확산되지 않고, 교구 평협 임원과 본당 사목위원 등 일부 핵심 집단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시노달리타스 실현에 대한 진단에서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크게 드러났다. 시노달리타스의 핵심 요소인 ‘경청’, ‘공동 식별’, ‘공동 책임’의 중요도는 매우 높게 인식됐지만, 실제 수행 수준은 이에 미치지 못했다. 중요도와 수행도를 교차 분석한 결과, ‘경청하는 태도’가 가장 시급하게 개선되어야 할 과제로 지목됐다.

‘시노달리타스’를 들어 본 경험에 대해 사목위원과 일반 신자, 일반 신자 중에서도 본당 활동 참여 정도에 따른 A-E 집단(매우 적극적 A, 비교적 적극적 B, 주일 미사 정도만 참여 C, 주일 미사도 자주 거르는 D, 거의 쉬는 신자 E) 그리고 교구별로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자료 제공 = 한국 평단협)
'시노달리타스'의 4가지 구성 요소(경청하려는 태도, 소임에 능동적 참여 태도, 복음에 비추어 함께 식별하고 결정하는 과정, 결정한 일에 함께 책임지려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 요소들이 본당에서 얼마나 잘 수행되는지를 5점 척도로 응답한 결과로 중요도와 수행도를 교차 분석한 결과. '경청하려는 태도'가 최우선 집중 개선해야 할 영역으로 나타났다. (자료 제공 = 한국 평단협)

고질적인 성직주의와 권위주의적 문화가 시노달리타스 실현의 가장 큰 걸림돌로 꼽혔다. 특히 ‘사제와 평신도의 상호 존중 관계’에 대해 사목위원(4.09점)과 일반 신자(3.54점)의 인식 차이가 컸다. ‘중요 결정에 동등하게 참여한다’는 항목도 점수가 낮았다.

이는 평신도 참여 확대와 공동 책임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으로 ‘사제 쇄신과 의식 변화’(사목위원 36.1%)가 높게 나온 결과와도 맞물린다. 또한 교구 차원의 운영이 본당보다 더 폐쇄적이고 재정 투명성도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되면서, 상층부의 구조적 쇄신이 시급함을 시사했다.

사제는 '권위' 내려놓고, 평신도는 '손님 의식' 벗어야

종합 토론에서는 토론자 4명이 발제에 응답하며 한국 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다각도로 짚었다. 토론자들은 발제 내용에 깊이 공감하며, 시노달리타스의 실현이 사제와 평신도 양측의 '상호 회심'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데 목소리를 모았다.

토론자들이 설문조사 결과 분석에 대한 의견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제공 = 한국평단협)

엄재중 연구원(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은 일반 신자 10명 중 4명(36.6%)이 '시노달리타스'라는 용어 자체를 들어 보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앞으로의 여정이 쉽지 않음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그는 "사제의 쇄신과 책임성을 요청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설문에서 나타난 '공동체 의식 함양' 과제는 신자들 편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가는 자세, 즉 '손님 의식'을 벗어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이번 설문이 교회의 '투명성, 책무성(설명 책임), 평가'의 제도화와 '사회적 예언'의 측면까지 나아가지 못한 점을 아쉬워했다.

조은나 씨(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는 발제에서 드러난 '여성 리더십의 불균형'과 '압도적인 교육 요구' 사이의 관계를 '구조적 역설'로 분석했다. 그는 "사목회장 등 상위 직책은 남성(74.2%)이 압도적인 반면, 실무 중심의 총구역 등은 여성(72.2%)이 대다수"라며, "여성은 실질적 봉사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의사 결정의 장에서는 배제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참여의 문이 닫힌 구조" 속에서 여성과 평신도들이 유일하게 허락된 성장 통로로 '교육'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육이 실제 권한 이양이나 구조 변화로 이어지지 못할 때, 오히려 '배우지만 결정하지 못하는' 참여의 한계를 고착화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날 발표회에 참여한 토론자들.(왼쪽부터) 김남욱 교육부장, 조은나 씨, 최영균 신부, 엄재중 연구원. (사진 제공 = 한국평단협)

이에 대해 김남욱 교육부장(광주평협)은 평신도의 '공동 책임자' 열망과 '체계적 교육'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광주 신창동 성당의 시노달리타스 실천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사목회의에서 사제는 뒤쪽에 앉아 경청하고, 회의 주재는 총무가 맡는다. '하느님 백성의 대화'를 통해 모은 의견으로 사목 계획을 세운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방식은 '경청'과 '공동 식별'이 사목자의 의지에 따라 현장에서 구현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례다. 또한 그는 평신도 리더십 교육이 '섬김 지도력'(서번트 리더십)과 '영적 분별력' 등 구체적 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제언했다.

최영균 신부(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장)는 위계적 문화의 근원을 '평신도'라는 용어 자체에서 찾았다. 그는 "'평신도'는 일본 제국 시대의 산물로, 권위주의적 계급 구분을 함의한다"며, "정체성을 담는 그릇인 용어부터 '신자'나 '교우' 등으로 바꾸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목회장단의 남성 중심성을 "젠더적 성직주의"라고 비판하며, 시노달리타스의 핵심인 '분권'이 사제와 평신도의 양자 구도를 넘어, 교회 안에 퍼져 있는 다양한 형태의 권위주의를 성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평단협은 이번 발표회 결과를 반영해 설문조사 결과 보고서를 연말까지 제작해 각 교구에 배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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