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것 멈춰야 진짜 삶, '21%파티'로 소비 죄책감 덜자
빠른 소비 패션, 매초 2.6톤 쓰레기 재앙 불러
이 글은 <가톨릭평론> 49호(2025년 가을, 우리신학연구소) '찬미받으소서 살아가기' 꼭지에 실린 글입니다.
환경과 소비 자본주의
2020년 1월, ‘코로나’라는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감염병이 시작될 무렵, 우연히 외신에서 ‘숍스캄’이라는 신조어를 접했다. 스웨덴어로 ‘소비의 창피함'을 뜻하는 이 말은, 필요하지 않거나 과도함에도 새 물건을 사는 데서 느끼는 수치심 혹은 죄책감을 가리킨다. 환경에 대한 우려와 지속 가능한 소비에 대한 욕구가 유럽 젊은이들 사이에 퍼지면서 생겨난 신조어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기사는 설문조사 결과의 비교였다. 우리나라 국민은 ‘코로나’를 전 세계가 가장 시급하고 심각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로 꼽는 반면, 유럽인들은 ‘기후 위기’를 1순위로 인식했다. (코로나 감염병 문제는 3위였다.) 유럽인들은 코로나를 비롯한 수많은 인류의 문제가 결국 ‘기후 위기’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이미 잘 아는 듯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자연을 채굴·채취·착취해서 만든 모든 소비재를 쉽게 사서 소비하고, 자연에 버리는 행위를 부끄러워하라는 뜻으로 ‘숍스캄’이라는 단어가 생겨나고, 지금은 유럽 전역에 퍼져 시장을 위협할 정도로 확산되고 있는 것 아닐까?
사실 ‘소비’는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상품을 팔고 이윤을 극대화하는 기업들은, 소비자가 온 힘을 다해 번 돈을 필요 이상으로, 가끔은 필요와 상관없어도 끊임없이 쓰도록 하기 위해 유행을 만들어 내고, 광고로 소비 욕구를 지속적으로 자극한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지속되는 소비 욕구는 있으나, 충족되는 소비 욕구는 있을 수 없다. 소비자의 욕구가 지속적이고 영구적이어야만 기업은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소비 자본주의’ 사회다. 오늘날 인류가 겪는 기후 위기는 바로 이러한 ‘소비 자본주의’에서 비롯되었다.
빠른 소비 패션 사회
소비 자본주의는 환경을 해치고 기후 위기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계급 사회를 만들어,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를 착취하는 구조를 강화한다. 그 대표적 사례가 2013년 4월 24일 아침 8시 45분경에 일어난 방글라데시 다카 인근 라나 플라자 건물 붕괴 사고다. 의류 봉제 공장들이 입주해 있던 라나 플라자 건물은 부실 시공과 무리한 증축으로 균열이 생겨, 사고 전부터 대피 권고를 내린 상태였다. 그러나 공장주들은 생산 차질 우려와 돈 욕심으로 대피 권고를 무시하며 의류 노동자들에게 작업을 강요했고, 그 결과 노동자들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산재를 당했다. 이날 참사로 1129명이 목숨을 잃고, 약 2500명이 부상을 입었다.
라나 플라자 건물 안 봉제 공장들은 세계적 의류 상표들의 하청 업체들이었다. 오늘날 ‘패스트(빠른 소비) 패션’이라 불리는 옷은 고급 패션 양식을 모방해, 유행에 따라 빠르고 저렴하게 생산된다. 이 기업들은 빠르게 대량 생산해서 최대한 빨리 팔고 다음 유행을 따라 또다시 빠르게 생산함으로써, 소비자들이 매장에서 매일 새 상품을 만나고 소비하게 해 이윤을 극대화한다. 품질이 좋지 않아 몇 번 입고 버릴 수밖에 없으며, 몇 달만 지나면 한물간 유행이 되어 버려 입으면 촌스러워 보이는, 그런 옷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의생활과 환경 문제
또한, 오늘날 패션 산업은 전 세계 제2위 환경 오염 산업으로 꼽힐 정도로 환경 문제를 심각하게 일으키고 있다.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10퍼센트가 패션 산업에서 나오고(8퍼센트인 항공 산업과 해운 산업의 탄소 배출량보다 높다), 전 세계 폐수의 20퍼센트, 해양 미세플라스틱 발생원의 35퍼센트가 패션 산업에서 발생한다. 목화를 재배하기 위해 쓰는 물은, 목화 농장 옆 거대한 호수들을 다 말라 버리게 할 정도다. 또 전 세계 농약의 11퍼센트, 살충제의 25퍼센트가 목화 재배에 사용돼, 목화는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작물’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을 정도다. 이렇게 환경을 파괴하고 인간을 해치는 패션 산업은 아직도 대량 생산되고 대량 소비되어 세계적으로 매초 한 트럭(2.6톤)의 쓰레기 옷들이 소각되고 매립되어 폐기되고 있다.
끝까지 책임지려는 노력, 재사용
패션 산업의 사회적, 환경적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재활용’과 ‘새활용’이 마치 매우 친환경적이고 해결책인 것처럼 소개하고 홍보한다. 재활용은 폐기물을 일정한 공정을 거쳐 다시 원료로 사용해서 새 상품을 만들어 내는 것을 의미한다. 새활용은 버려진 물건에 디자인을 더해 활용 방법을 바꿔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버려진 것들을 사용해서 폐기물을 줄인다는 관점에서는 의미가 있겠지만, 재활용하고 새활용할 때 투입되는 물과 에너지, 노동력 그리고 탄소 배출량 등을 생각하면, 버려진 것들을 다시 자원으로 쓰는 것보다 버리지 않고 폐기물을 줄이는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
실제로 폐기물은 여러 재질이 섞여 있거나 이물질이 묻어 있으면 재활용할 수 없고,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의류만 따지자면, 전 세계 의류 폐기물 중 옷이 재탄생되는 비율은 현재 1퍼센트 미만 수준이다. 그렇다면, 새활용은 어떠한가? 과연 매초 2.6톤의 옷 쓰레기가 버려지는 현실에서 새활용으로 다시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폐기물은 얼마나 될 수 있을까?
재활용과 새활용은 자연에서 가져와 자연에 다시 버리는 선형적 경제에서, 지속 가능한 미래의 순환 경제로 나아가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처럼, 쉽게 만들고 쉽게 사서 쉽게 버리는 문화가 변하지 않는 이상, 어떤 기술이나 디자인도 현재의 폐기물량을 소화해 내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이미 만들어진 제품을 끝까지 오래 책임지는 사회적 문화가 필요하고, 신중한 소비와 폐기로 폐기물 자체를 많이 만들지 않는 문화가 중요하다.
소비 줄이기, 재사용, 오래 쓰기, 고쳐 쓰기 등이 소비자본주의가 야기하는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비자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실질적이면서도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재사용 문화 운동, ‘21% 파티’
사단법인 다시입다연구소가 진행하는 의류 교환 행사 ‘21% 파티’는 ‘재사용’과 고쳐 쓰기 문화를 구축하기 위한 환경 행사다. ‘당신의 옷장 속에 사 놓고 안 입는 옷은 몇 퍼센트나 되나요?’라는 설문에서 평균 응답치인 21%에서 이름을 따온 이 행사는, 멀쩡하지만 안 입는 옷들을 서로 바꿔 입어 순환하고 재사용하는 대안적 소비 운동이다. 2020년 9월, 코로나로 대규모 행사가 거의 금지되다시피 했던 시기에, 20명 남짓한 참가자와 처음 시작했다. 지금은 전국 각지의 모임과 조직에서 100회 넘게 개최할 정도로 인기 있다. 이제는 정부와 지자체 행사에도 초대되는, 명실상부한 전국적 환경 운동으로 자리 잡았다.
중고 의류에 대한 편견과 거부감을 깨고, 취향과 개성을 살려 즐거운 의생활을 추구할 수 있는 의류 교환 파티를 찾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방글라데시 라나 플라자 사고를 기리고, 인권과 환경을 생각하는 의생활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매년 4월 열리는 ‘전국 21% 파티 위크’ 역시 해마다 더 많은 지역에서 열리고, 더 많은 시민이 참여하고 있다. 같은 문제의식과 철학을 공유하는 시민 1,000명이 ‘전국 21% 파티 위크’에서 함께한다고 생각하면, 지속 가능한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보인다.
“나의 화려한 젊은 시절에 입던 이 옷들을 이제는 크기가 맞지 않아 못 입게 돼, 마치 입양 보내는 마음으로 떠나보내지만, 새 주인을 만나 당부의 말도 직접 전하면서 떠나보낼 수 있어 안심이 되고, 이런 기회를 마련해 줘서 고맙다”고 이야기하는 참가자부터, “무엇이든 갖고 싶은 것은 무조건 돈을 줘야 가질 수 있는 줄 알았는데, 돈을 내지 않고도 내가 입던 옷을 내놓고, 갖고 싶은 새로운 옷을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신기하다”고 말하는 초등학생까지, 21% 파티는 ‘깨어 있는 시민’, ‘연대하는 시민’,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존중하는 아름다운 시민’들이 모이는 특별하고 소중한 장이다.
사는 것을 멈추는 순간, 진짜 삶이 시작된다
"디컨슈머"(J. B. 매키넌, 문학동네, 2022)에 나오는 “사는 것을 멈추는 순간, 진짜 삶이 시작된다”라는 말은, 환경 문제를 뒤로하더라도, 우리가 존엄을 지키며 인간답게 살아가려면 소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신 유행 옷을 입고, 최신 휴대폰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장보기를 멈추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소비를 멈추라’는 말은 어쩌면 인간의 욕구를 억제하고 자본주의 체제에 반하는 가혹하고 반체제적인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내가 살아남기 위해 타인을 존중하고,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존중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기후위기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장보기의 즐거움에서 벗어나, 오래 쓰고, 고쳐 쓰고, 나눠 쓰고, 다시 쓰는 즐거움을 알아갈 때, 진정한 나를 만날 수 있고 진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마지막으로, 몇 달 전 선종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 말씀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물건을 쉽게 내버리지 않고 재활용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존엄을 표현하는 사랑의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찬미받으소서' 211항) 주체적인 소비자, 존엄을 표현하는 내가 되어, 지구도 지키는 우리가 되길 바란다.
정주연
사단법인 다시입다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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