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가 되어 버린 한국 의료
위약과 과잉 소비 유도하는 개인 병원의 묶음 치료
현대 사회의 과소비와 쓰레기 문제
현대 사회는 과소비 사회다. 저소득 국가에서는 여전히 굶주림, 주거 부족 등 기본적 생활조차 유지되지 못하는 끔찍한 상황인 반면, 산업선진국에서는 과도한 소비가 쓰레기가 넘쳐난다. 일부 선진국에서 재사용 목적을 내세워 저개발국에 공급한 의류와 물자는 종종 쓰레기섬으로 전락한다. 즉, 부자 나라가 가난한 나라에 쓰레기를 수출하는 셈이다.
주요 산업 국가에서는 이미 비만과 과체중을 핵심 건강 문제로 거론한 지 오래다. 고열량 식품과 가공식품이 과잉 공급되고, 교통수단과 자동화로 인한 운동 부족으로 일어난 사회적 문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비만 약도 날로 발전하고 있다. '위고비'로 대표되는 글루카곤 유사 펩티드(GLP-1) 제제 같은 체중 줄이는 고가 약물이 광범하게 팔리고 있고, 결국 과소비의 부작용을 또 다른 소비로 해결하고 있는 셈이다. ‘병주고 약주고’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런 쓰레기를 만드는 소비 행태는 삶에 긍정적 영향을 주지 못할뿐더러, 수많은 포장재, 택배, 광고와 옷, 전자제품 등 쓰레기로 이제는 한계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의료 부분에서는 이런 악순환이 없을까?
과잉 진단, 과잉 검진, 과잉 진료
과거 과잉 진단과 과잉 진료는, 이익보다 손해가 큰데도 시행되거나 경계선에 있는 특정 질환을 과도하게 처치, 처방하는 경우를 뜻했다. 대표적 사례가 2010년 초 한국에서 드러난 갑상샘암 과다 진단이다. 당시 실제 검진 효과나 이익이 크지 않은 모든 연령의 환자를 대상으로 갑상선 초음파를 실시했고, 발견된 작은 결절조차 조직 검사를 받았다. 특정 크기 이하의 결절은 추적 관찰을 하거나, 조직 검사 생략을 권고하는 지침이 쉽게 무시돼서 수많은 갑상샘암이 진단됐다.
진단 의사들은 "악성 종양이니 빨리 진단해서 제거하는 게 옳다"는 단순한 주장을 반복했다. "암을 놓쳐 적정한 치료를 못하면 누가 책임지냐"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진단과 수술을 많이 했음에도 갑상샘암 사망률은 미세하게 올라갔다. 즉 이미 사망에 이를 단계의 환자를 예방적으로 진단하지는 못했고, 조기 수술로 인해 갑상선 호르몬제를 복용해야 하는 환자만 늘어났다. 결국 세계적 의학 학술지인 <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NEJM)에는 한국의 갑상샘암 유행이 건강 검진 과잉 때문이라는 논문이 실렸다.
과다 진단을 부정하던 의사들의 논리는, 현대 의학이 할 수 있는 모든 검사를 시행해 암세포를 잡아내야 한다는 무한 검진 옹호론까지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건강 검진에 모든 시간을 투입하거나, 의료 자원을 무한히 배분할 수도 없다는 점이다. 건강검진은 제한된 자원으로 최대 효과를 내야 하며, 이는 역학 연구와 인구집단 검진 결과로 입증돼야 한다. 몇몇 사람의 주관적 결론으로 항목이 확대될 수는 없다. 이런 과잉 진단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도 반복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에 학문적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흔히 볼 수 있는 과잉진료 사례로는 2010년 전후 추간판 탈출증 환자에 대해 추적 관찰 없이 시행된 척추 수술이 있다. 수술 후 또 다른 척추 수술 후유증이 드러나면서 사회적 논란이 일었고, 논란이 커지면서 일부 의사들은 비수술 치료 권장을 홍보했다. 척추수술학회에서도 문제를 공론화하며 지침을 만들고, 과잉 진료의 문제는 상당수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나 이러한 과잉 진료가 나타나는 근본 원인인, 민간 의료기관 중심의 영리 체계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쓰레기 의료'의 등장
과잉 진단과 과잉 진료를 넘어, 사실상 쓰레기만 양산하는 의료가 범람하고 있다. 이를 ‘거짓 의료’ 혹은 ‘쓰레기 의료’라 부를 수 있으며, 역학적 논쟁이나 학문적 논의의 가치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최근 한 발가락 골절 환자가 발급받은 진료 내역 세부서를 보여 준 적이 있다. 발가락 골절 치료를 위한 고정 재료와 단순 처치, 영상 검사 외에 부위를 알 수 없는 신경차단술(통증 주사) 세 부위와 증식 치료(통증 치료 주사)가 포함돼, 약 35만 원이 청구됐다. 아무리 생각해도 발가락 골절 때문에 신경 차단이나 증식 치료를 했다고 볼 수 없어, 허리나 다른 부분이 아픈지 물었다. 환자는 의사가 발가락 통증이 허리에서 올 수도 있다고 해서, 발가락에 증식 치료를 했다는 믿을 수 없는 답변을 들었다.
골절 부위에 특정 주사를 맞으면 뼈가 빨리 붙는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통증 완화를 위한 신경차단술을 시행한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환자의 상태와 치료 계획은 의사 주관의 영역이므로, 나는 환자에게 골절 치료가 될 때까지 최대한 움직이지 말고, 적절한 영양 섭취와 수면을 취하라는 상식적인 조언을 했다. 하지만 환자는 그 의원을 계속 다니며 주사 치료를 받았다. 나는 믿을 만한 가까운 정형외과 병원을 소개해 의견을 들어 보게 했는데, 그 병원에서도 주사 치료는 필요 없으며 뼈가 잘 붙을 때까지 안정 가료를 권고했다. 그럼에도 환자는 계속 주사 치료를 받기 위해 원래 의원을 찾아갔다.
이 경험을 통해,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선택에도 환자가 근거 없는 치료를 지속하는 이유와, 이를 그대로 시행하는 일부 의사의 행위가 현대 사회의 쓰레기 의료와 맞닿아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 이 문제로 주변 의사들과 소통해 보니 유사 사례를 경험한 동료가 많았고, 한 선배 의사의 자녀도 동네 의원에서 비슷한 주사 치료를 받아 항의한 이야기도 들었다. 또한 병원 직원도 자신의 병원의 적정 진료를 믿지 못하고, 용하다는 동네 의원에서 비슷한 주사 치료를 세트로 받았다고 한다.
이처럼 쓰레기 의료는 의사 한 사람의 일탈이나 강박 문제가 아니라, 이미 새로운 일상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묶음 주사 치료와 묶음 비급여 치료는 의과대학이나 수련 병원이 아니라, 개원 관련 상담사들이 설계해 주는 것이라고 한다. 영리적 운영 방법으로 의학적 범위를 고려해, 애매한 경우까지 포함해서 계산하고 알려 주는 업체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담사들이 한국 의료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과소비 쓰레기 의료에서 벗어나기
결국 이런 쓰레기 의료 체계를 설계해 주는 상담 업체는 승승장구하고, 이들과 연합한 임대업자는 병원 개업의 부지를 제공하며 이익을 얻는다. 의료기기 회사와 제약 업체는 장비와 약품을 공급하며, 이렇게 '쓰레기 의료 공생체'가 만들어진다. 문제는 이런 의료가 대부분 환자의 반발보다는 만족도를 높인다는 점이다. 주사를 맞고 검사를 받아야만 안심하는 일종의 위약 효과일 수도 있다. 그런데 위약 효과가 있다 하더라도, 안전하다는 이유로 불필요한 주사와 약물, 검사를 받는 게 과연 정상인지는 모르겠다.
불필요한 주사 치료를 통해 마음의 안식과 만족을 얻는다는 것은, 필요 없는 물건을 대규모로 사고 버리면서 만족하는 기형적 소비 행태와 닮았다. 물론 이런 쓰레기 의료의 근본 문제는 환자가 아니라, 의료 공급자의 도덕적 해이에 있다. 이는 현대 산업 사회에서 일회용품을 과다 생산하고, 빠른 소비 의류를 제작하며, 해마다 교체 불가능한 전자제품을 쏟아내 새로운 소비를 유도하는 기업들과 다를 바 없다. 영양주사, 신경차단술, 초음파 검사를 기본값처럼 반복되는 과잉 치료는 의료 행위를 '일회용'으로 전락시키는 과정이다.
이제 한국 의료는 의료 전문가들의 양심과 동료 평가로 통제되는 수준을 넘어선 듯하다. 시장 경쟁 속에서 새로운 의료 행태를 만들어 내는 수많은 쓰레기 의료가 이를 입증한다. 따라서 쓰레기를 양산하는 현대 산업 사회에서 특단의 조치는 '현명한 소비자 만들기'가 아니라, 강력한 공급 통제다. 마찬가지로 한국 의료의 쓰레기 양산 현실은 결국 전면적인 의료 공급 개혁을 촉발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 시점까지 수많은 환자가 쓰레기 의료에 노출된다는 점이 맘이 쓰라리다.
환자 입장에서는, 의료 접근성이나 경제적 편의를 이유로 건강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른 쓰레기 양산 소비 문화와 마찬가지로, 꼭 필요한 것인지, 꼭 병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인지 자문해 보기 바란다. 스스로를 의료 소비의 무한 반복에 빠뜨리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쓰레기 의료를 방치하지 않기 위해, 대부분 선진국은 건강보험이나 국영 의료 체계를 통해 보건 의료를 운영한다. 아직 낮은 보장 수준과 비급여 제도를 방임한 국가와 역대 정부들도 이 문제 해결을 미룬 주범이다. 따라서 이제 이재명 정부는 ‘필수 의료’를 빙자한 의료 고도화에 몰두할 것이 아니라, 쓰레기 의료를 없앨 최소한의 공적 통제 수단부터 강구해야 한다. 이는 지역 의료와 필수 의료 서비스 부족과도 맞닿아 있는 문제고, 지역 필수 의료가 해결되기 전에는 전 국민이 쓰레기 의료에 중독될 위험이 있다. 임상 현장의 상황은 이미 녹록하지 않다.
정형준
재활의학과 전문의,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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