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 신화’ 뒤 숨겨진 구조적 착취

고용허가제의 불편한 진실

2025-08-14     손인서

고용허가제 아래 가려진 인권 유린의 실태

지난 7월 23일, 한 시민 단체가 충격적인 동영상을 공개했다. 올해 2월 26일 전남 나주의 한 벽돌 공장에서 촬영한 이 영상에는 고용허가제로 고용된 스리랑카 출신 이주 노동자가 포장용 랩으로 벽돌더미에 묶여 있는 모습이 담겼다. 지게차가 노동자와 벽돌더미를 함께 들어 올리는 동안, 주변 노동자들은 이를 촬영하거나 조롱하듯 웃고 있었다. 이 충격적인 장면은 삽시간에 인터넷과 언론을 통해 확산되었고, 바로 다음 날 이재명 대통령까지 나서서 "소수자 약자에 대한 용납할 수 없는 폭력이자 명백한 인권 유린"이라 규정하며, 관계 부처의 적극 대응을 지시했다.

사건 발생 일주일 뒤인 7월 29일, 전국이주인권단체들은 공동 성명을 내고, 이번 사건의 근본 원인으로 고용허가제의 '사업장 변경 제한' 규정을 지목하며 즉각 철폐를 요구했다. 고용허가제는 내국인 고용이 어려운 비전문직 혹은 단순 기능 직종에 외국인 노동자를 유치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노동자의 책임이 아닌 이유로 계속 근무하기 어려운 경우에 한해 정부에 사업장 변경을 신청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마저도 최초 고용 기간(3년) 내 3회, 연장 기간(1년 10개월) 내 2회로 제한되며, 해당 사유는 본인이 직접 입증해야 한다. 더욱이 3개월 이내 재취업에 실패하면 출국해야 하며, 사업장 변경은 이후 취업 기간 연장(‘재입국 취업 제한의 특례’) 신청에 불이익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제약 때문에 이주 노동자가 사업장 변경을 선택하기란 매우 어렵다. 반대로, 고용주는 이를 악용하여 임금 체불, 부당 대우, 폭언, 폭행, 착취를 반복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정부 이민 정책의 기조: 한시적 이주의 딜레마

이주인권단체들은 고용허가제가 제정된 지난 20년간 제도 폐지, 혹은 적어도 사업장 변경 금지 조항 폐지를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그러나 정부는 일부 세부 조항만 수정했을 뿐, 전면 폐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부의 공식 입장은 고용허가제가 매우 성공적인 정책이라는 것이다. 2024년 고용허가제 20주년 기념 백서에서 당시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고용허가제가 "국가 간 인력 활용의 대표적인 제도로 자리 잡았고, ILO(2010년), UN(2011년), OECD(2019년), 세계은행(2023년) 등 국제적으로도 성공적인 이주 노동 정책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자화자찬했다. 헌법재판소 또한 지난 10년간 두 차례에 걸쳐 사업장 변경 금지 조항에 합헌 결정을 내리며 정부와 뜻을 같이했다. 이주인권단체와 완전히 상반되는 정부의 이러한 입장은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 여기에는 법의 틀을 넘어선 더 넓은 맥락이 있다.

(그림 생성 = 챗지피티)

정부의 정책 기조는 이민 정책의 관점에서 '차별적 배제 정책' 또는 '한시적 이주 정책'으로 불린다. 이는 이주민(혹은 이주 노동자)에게 한정된 기간의 체류만 허용하고, 정착을 완전히 배제하는 제도다. 우리는 흔히 한국의 이민 정책이 궁극적으로 (혹은 선별을 거쳐) 외국인의 정착과 귀화를 허용하는 제도라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내국인과 혈연관계로 맺어진 이주민(결혼 이주민과 재외 동포)을 제외하면, 정부의 이민법은 '한시적 이주'가 원칙이며 정착과 귀화가 예외적이다.

한시적 이주 정책은 자국의 노동력 부족을 외국 인력으로 일시 대체하는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1942년부터 1964년까지 시행된 미국의 브라세로 프로그램과 1955년부터 1973년까지 시행된 독일의 손님노동자 프로그램이 대표적 예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자국 내 노동력 부족을 일시적으로 보충하기 위해 시행되었다. 이 정책은 인력이 부족한 사업체의 수요에 맞춰 노동자를 도입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이주 노동자는 원칙적으로 특정 업체를 위해 입국하는 셈이 된다. 따라서 사업장 변경 금지는 한시적 이주제가 유지되기 위한 핵심 조항이 된다. 아울러 사업장 변경과 같은 이주 노동자 통제는 한시적 이주 제도의 목적인 내국인 노동자 보호와 이주 노동자의 이탈 및 정주화 방지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지속 불가능한 한시적 이주 정책의 한계

결국, 사업장 변경 금지 원칙과 같은 고용허가제의 '비인권적' 요소는 사실 한시적 이주 정책을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항에 가깝다. 왜냐하면 한시적 이주 정책 자체가 본질적으로 모순이기 때문이다. 브라세로 프로그램과 손님노동자 프로그램 등 외국의 한시적 이주 정책을 연구한 학자들에 따르면, 이 정책들은 지속될 수 없다. 이주 노동자의 완벽한 순환 교대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업주나 이주 노동자는 장기 체류를 선호하기 마련이다. 이주 노동자의 순환을 유지하고 정착을 막기 위해서는 강력한 법적 규제가 뒤따라야 하지만, 이는 착취나 인권 침해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브라세로 프로그램과 손님노동자 프로그램은 지속될 수 없었다. 그리고 종료 뒤에는 결국 이주민 증가로 이어졌다.

적어도 한시적 이주 정책이 지속 가능하려면 제한적으로나마 영주권 접근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국내 이민 정책은 이주 노동자에게 보편적인 영주권 접근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 인구소멸 지역 거주와 취직을 조건으로 하거나 특정 업종에 한정하여 장기 체류 신청 기회를 제공하는 도구적인 방안을 고수한다. 그리고 재입국 제한을 완화하면서도 영주 신청 기회는 주지 않는 '영구적 한시 이주'와 같은 기형적 조항으로 한시적 이주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본질적인 해결책이 아닐뿐더러, 또 다른 인권 침해와 착취를 낳을 소지가 다분하다.

외국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한시적 이주 정책은 지속 가능하지도 않고, 이주민 수를 한정시켜 주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이주 노동자를 착취하고 차별하기 쉬운 제도로 변질되기 쉽다. 제한적으로 시행되어야 함에도 우리 정부는 규모 확대에만 몰두해 왔다. 게다가 미등록 이주 노동자 증가를 방임하고, 재외 동포의 단순 노무직 활용을 확대하면서 교묘하게 정책의 단점을 보완해 왔다. 결국, 정부의 기형적 이민 정책 기조가 이주 노동자의 차별과 착취를 조장했다. 고용허가제의 세부 조항의 개정만으로는 이주 노동자의 인권 침해를 막을 수 없는 이유다. 이제 총체적으로 이민 정책을 재고할 때가 왔다.

손인서

비정규직 박사 노동자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 소속. 미국 듀크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주민과 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의 불평등과 차별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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