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조그만 학회에서
한국에서의 무리한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집에 와서 며칠을 앓았다. 시차를 핑계로 한 사나흘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은 나의 맘을 무시하며, 새벽 세 시 반에 공항에 나왔다. 하늘에는 아직 별도 있고 달도 있는 시간, 이 시간을 뒤로하며 인디애나폴리스를 향했다. 이번 학회는 새로운 수도원 운동(New Monasticism)에 관한 연구를 서로 나누는 모임인데,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한 명, 영국에서 세 명, 그리고 나까지 합쳐서 아홉 명은 미국 각지에서 왔다. 나만 가톨릭 수도 공동체 사람이고, 나머지는 모두 성공회와 개신교 공동체 사람들이었다. 복음적 가치를 따라 적극적으로 살고 싶은 평신도들의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었는데, 거의 공통적으로 자연 친화적인 삶을 모색하고 있었다.
이 모임의 특이한 점은, 보통 학회처럼 호텔에서 모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내가 영국에서 온 피트,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조이와 만나, 두 시간 정도를 운전해서 찾아온 곳은 1870년대에 유럽에서 이민 온 한 가족이 8대에 걸쳐 꾸려 온 농장이었는데, 이 농장은 흙을 가까이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방문할 수 있게 여러 군데 헛간을 꾸며서 머물 수 있게 해 놓았다. 뿐만 아니라 학회 중 하루는, 우리들도 노동을 했다. 우리는 땡볕에서 베리를 수확했고, 몇 사람들은 높이 자란 잡목들을 제거했다. 그리고 밤에는 늦게까지 어떻게 하는 것이 과연 복음적인 공동체인가에 대해 열심히 토론했다.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사람과 사람과의 만남인데, 처음에는 오히려 몹시 어색했다.
또 이 학회가 다른 점은, 소그룹으로 각자의 논문을 발표하기 전에 자기가 살아온 생의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경청하는 점이었다. 어디서 태어나서 무슨 일을 했고, 어떻게 공동체를 만들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나누어 주었다. 모두 솔직하게 자기 삶의 서사들을 담담하게 나누어 주었다. 선교사의 아들로, 아프리카에서 나고 자라 미국으로 돌아와서 힘들었다던 이야기도 특이했고, 늘 아버지를 그리워하던 소년이 결국 고아들에게 운동을 가르치며 그들의 아버지가 되어 주는 이야기도 무척 아름다웠다. 우리는 서로의 삶에 대해 질문을 하기도 하고, 또 느낀 점을 들려주었다.
나도 내 이야기를 했는데, 여성들이 자기의 목소리를 찾게 되는 공동체를 꿈꾼다는 구절에서, 한 사람이 성녀 글라라가 생각난다는 이야기를 했다. 내 삶에 가장 중요한 성녀를 떠올려 준 그가 너무 고마웠다. 그는 개신교면서도, 자기 삶을 이끌어 주는 성인을 만난다는 것은 참 복된 일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들의 논문 발표를 들으면서, 새 수도원 운동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그저 연구를 한 나의 입장은 그들과 거리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각자 자기가 투신한 공동체를 잘 자라게 하기 위해 기도하고, 연구하고, 서로 함께 의견들을 나누고 있었다. 이 새 수도원 운동은 수도원의 생활을 세상으로 가져오는 운동으로 주로 평신도 공동체이며, 젠 베르데 혹은 에디지오 공동체 같은 가톨릭 평신도 공동체와 개신교 공동체가 주를 이룬다.
토머스 머튼은 1968년 자기가 죽기 전에 한 트라피스트 수도자들과 분도회 수도자들에게 한 방콕에서의 연설에서, 수도생활을 하고 싶은 충동에 대해 이야기했다. “공동체를 만들고 복음에 투신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을 것이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수도원 건물이 없어지고, 수도회라는 조직이 없어진다면, 수도자는 과연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하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면서. 어쩌면, 나는 이 열정적인 사람들 안에서 수도생활을 하고 싶은 충동을 발견한 것일지도 모른다.
밤이 되어도 날씨는 더웠지만, 우리들은 어둠 속에서도 불을 밝히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우리가 이야기하는 가운데로 반딧불들이 반짝였다. 사실 나는 아직 반딧불을 직접 본 적이 없다. 생전 처음, 반딧불을 보고 어쩔 줄 모르고 좋아하다가, 농장에서 하는 학회라니 얼마나 낭만적인가 생각했다. 함께 기도하고, 또 함께 식사를 나누면서 보낸 이 주간이 분명 좋은 추억으로 오래 내 맘에 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일에는 농장 주인인 에릭의 가정 교회를 방문했다. 큰 창문으로 초원이 펼쳐진 이 집에는 동네사람들 서른 명쯤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렸다. 경건한 옷을 입은 얌전한 여자아이들과 천진하게 미소 지으면서 수줍게 인사를 하는 소년들을 보면서, 어릴 때 참 재미있게 보았던 미국 드라마 '초원의 집'이 생각났다. 진정성 있는 경건함은 기품이 있어 보인다. 나랑 친해진 이 학회의 도우미는 대학교 삼학년 엘리야였는데, “너 여자친구 이 교회에 있냐”는 나의 질문에, 내 귀에 대고, “이거 비밀인데, 내가 좋아하는 애는 저 애”라고 알려 주었다. 경건한 모임 가운데서도 서로 좋아하는 이가 있다는 게 왠지 반갑고 안심이 된다.
미국의 정신을 간직한 진실한 기독교인을 만나고 나니, 그들의 경건함을 닮고 싶다. 그리고 나도 내가 시작한 여성 영성 공동체가 서로가 서로를 경청하는, 그리고 영적으로 깊어지는 공동체가 되기를, 이 주간 내가 만난 그들처럼, 절절하게 기도하기로 한다.
박정은 수녀
홀리네임즈 대학 명예교수. 글로벌 교육가/학습자. 지구화되는 세상에서 만나는 주제들, 가난, 이주, 난민, 여성, 그리고 영성에 대해 관심한다. 우리말과 영어로 글을 쓰고, 최근에 "상처받은 인간다움에게: 나, 너 그리고 우리의 인문학"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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