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는 만남과 질문, 상상에서 이뤄진다”

[2025 가톨릭한반도평화포럼- 마지막] 김동진 교수 인터뷰

2025-08-01     정현진 기자

평화학과 북한학을 공부하고 현재 한신대학교 평화문화연구원, 아일랜드 트리니티 대학 겸임 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김동진 교수. 그는 강주석 신부(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전 소장)와 인연으로 이번 가톨릭한반도평화포럼 준비와 진행에 참여했고, 특히 코리밀라의 유일한 한국인 구성원으로서 코리밀라 프로그램을 적극 제안하기도 했다.

포럼 일정 동안 김 교수는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현장을 안내하고, 코리밀라 공동체 프로그램에도 함께 참여했다. 그와 시간을 보내며, 평화에 대한 그의 진심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가 바라보는 평화는 어떤 모습인지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장기화된 갈등들 앞에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지도력의 강인함이 아니라 변화가 필요하다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한편으로는 갈등, 분열,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드는 어려운 문제들을 명확하고 현실적으로 파악하면서도, 인간 공동체로서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번 가톨릭한반도평화포럼을 함께 준비하고 참여한 김동진 교수. (사진 제공 = 가톨릭한반도평화포럼 참가팀)

트랜스 로컬 : 성찰과 질문, 상상을 위한 지역 간 만남

평화 협정을 맺었지만, 여전히 갈등을 겪고 있는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두 역사 현장을 안내하면서 그는 “평화 협정을 이루었기 때문이라기보다, 오히려 분쟁을 겪은 지역이기 때문에 배울 수 있다”고 했다.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지역의 ‘분쟁’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김동진 교수는 자신이 연구하는 “트랜스 로컬”이라는 개념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분단이든 여러 사회 분열로 인한 분쟁이든, 어떤 종류의 폭력적 경험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것을 극복하고 싶어 하고, 많은 이가 극복하고자 노력합니다. 국제 기구가 특정 지역을 지원하거나 협력하는 방식과는 달리, 각 지역의 사람들은 자기 사회를 어떻게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반도가 최우선 관심 지역이고, 한반도의 분쟁과 전쟁을 어떻게 끝낼 것인가가 과제인 사람입니다. 아일랜드의 분쟁, 분단과 평화 문제에서, 그 사회에서 벌어지는 유사한 인간관계, 사회 현상들을 보게 되면서, 저는 한반도 상황을 더 명확하게 이해하게 됐습니다.”

그가 다른 사회의 분쟁을 보며, 오히려 자신이 속한 사회의 갈등과 분쟁을 더 깊이 이해하면서 얻게 된 것은, 조금 다른 시선뿐 아니라 “갈등 해결 방법과 더 나은 사회에 대한 상상력”이었다.

일례로, 아일랜드는 평화 협정 과정에서 헌법을 개정했다. 상대방을 인정하기 위한 개정이었다. 김동진 교수는 그 상황에 한반도를 대입하면서, 남북 간 평화 협정을 맺는다면 똑같이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일종의 지침이 아니라, “종전 선언 이후 평화 협정을 맺는다면,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떤 의미이며, 헌법상 어떻게 반영되어야 할 것인가”를 ‘질문’하고 ‘상상’하게 됐다고 말했다.

아일랜드의 정치인 존흄이 말한, “아일랜드의 통일은 영토의 통일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통일”을 한반도에 적용한다면, 남한 입장에서 북한 주민은 어느 나라 국민이 될 것인가, 재일 조선족의 국적은 무엇이 될 것인가도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게 아일랜드는 한반도에 시사점이나 가르침을 주는 곳이 아니라, 아일랜드 사례를 통해 질문이 생겼을 때, 한반도에서는 어떤 식으로 답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성찰의 공간’이었다.

그런 맥락에서 그가 주로 연구하는 ‘트랜스 로컬’은 다른 지역의 사람들과 교류하고 만나는 것이며, 힘을 가진 유엔과 같은 국제 단체가 아니라, 각 지역에 더 많은 만남과 교류, 연대의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번 포럼에서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어린이어깨동부, 코리밀라, 각 지역 사람들이 함께 만났다는 것도 “새로운 생각을 위한 공간이 마련된 일”이었다.

적이 있어야만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한국 사회
스스로의 안보 위해 상자에 갇힌 이들, 만남 통해 다른 경험 필요해

김동진 교수는 이야기 초점을 한국 사회로 가져왔다. 비상 계엄 뒤 새 정부가 들어선 지금, 한국 사회는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상상력보다는 여전히 폐쇄적이고, 상대방은 물론, 내부 간에도 정치적 차이가 보이면 ‘적’으로 ‘낙인’ 찍기가 더 쉬운 상황에서 평화를 이루는 과정은 남북 간만의 문제는 아니다.

“소위 말하는 인간관계, 주류 담론에 있어서 내가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에 대한 ‘안보’, 물리적 안보뿐 아니라 정체성, 존재론적 안보 문제가 있어요. 그것을 안전하게 지키려면 어떤 ‘상자’ 안에 있는 것이 제일 안전하죠. 그래서 그런 현상들이 더 극단으로 치닫는 것 같아요. 그 상자를 견고하게 지키기 위해 가장 쉽게 쓰는 방법은 ‘우리가 누구다’라고 말하기보다 상대를 통해서 내가 누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나 혼자서, 내가 스스로 설 수 있는 게 아니라 항상 적을 통해서 내가 누군지를 아는 거죠. 상당히 유혹적인 안보 심리입니다.”

김 교수는 “하지만 그런 이들도 다른 지역에 가서 그곳 사람들의 삶, 고민, 분쟁 모습을 통해 같은 현실을 보게 되면, 그 뒤에 다시 자기 공간으로 돌아왔을 때 인식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른 지역의 삶을 만난다는 것은 자신의 안보를 위해 상자 속으로 들어가 있던 사람도 그런 유혹에 굴복하지 않고, ‘나는 그냥 나’일 수 있는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느 지역에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서, “나는 더 큰 공동체의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적을 상정해야 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는 나대로 살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려는 각 지역의 사람들을 연결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전 세계 어디에나 있고, 함께 모일 수 있으며, 연대할 공간이 되고, 보편적인 무언가를 제공해 주는 공간”으로서 가톨릭교회의 역할을 제시했다.

벨파스트 시청의 '성찰의 방'. 평화 협정 뒤 모든 역사 기록이 담겨 있는 시청 공간 중, 이 성찰의 방에서 김동진 교수는 많은 영감과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평화 교육, 모든 존재가 그 자체로 괜찮은 문화 확산하기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에는 다양한 평화 교육의 장이 펼쳐지고 있고, 코리밀라 공동체 역시 그 가운데 하나다. 연대와 만남, 대화, 성찰을 배우는 더없이 좋은 공간이지만, 사실 대중적이고 보편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곳은 아니다. 평화학과 코리밀라의 경험에서 생각하는, 각 지역에서 일상으로 이뤄져야 할 ‘평화 교육’에 대한 김동진 교수의 생각을 물었다.

“평화 교육은 사실 상당히 위험한 것으로 인식될 수 있습니다.”

그는 미래 세대,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평화 교육은 분명히 다양한 기회를 줄 수 있지만, 현재 한국 사회의 구조상 평화 교육의 결과로 현재 사회의 위계와 지배 질서에 도전하는 모습에 기성세대와 지배 권력들이 위협받는다고 생각할 것이라 말했다.

“공교육은 기본적으로 더 바른 시민, 민주 시민을 위한 교육이며, 사회 질서에 잘 복무할 수 있는 시민을 양성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평화 교육은 스스로 생각하고, 자기가 속한 상자에 속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을 키워 내는 교육이다 보니, 공교육의 방향과 잘 맞지 않을 수 있죠. 그래서 자꾸 평화라는 말이 밀려나고, 통일, 인권이라는 말에서도 밀려나고 있어요.”

김동진 교수는 “평화 교육이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어린이였던 순간, 그냥 행복하고, 웃고, 작은 것에서도 좋았던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라며, “나도 어린이들이 어린이일 수 있도록 받아 주고, 나도 어린이일 수 있는 것, 그렇게 나의 사회와 가정을 현재의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게 하고, 해체해 볼 수 있는 것이 평화 교육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너와 내가 달라도 같이 좋았던 경험들을 계속 공유하고 영위하는 것”이 평화 교육이라는 그는, “그래서 평화 교육 확산은 정책적이거나 어떤 교과 과정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가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는 문화를 퍼뜨리는 것이며, 그것은 때론 국가와 가부장, 종교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가 오래 천착하고, 또 나아가는 방향성으로서 평화학, 그가 상상하는 그 길에 대해 물었다.

김동진 교수는 평화를 도모하고 구축하기 위한 각계의 몫이 절실하지만, 자신이 학계에 있는 이유는 “세상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보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식은 권력”이라는 그는 현재 학계가 서구의 구조, 시각, 개념화에 잠식돼 있고, 그런 사고가 보편화되면서 각 지역의 전통적 사고와 삶이 끼워 맞춰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평화학이 중요한 것은 그렇게 왜곡된 시각에서 벗어난 다른 상상력을 제공하는 것이며, 그것이 또한 나의 역할이라고 여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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