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서 아일랜드까지, 평화를 향한 세 시선

[2025 가톨릭한반도평화포럼 4] 이은형 신부, 김지우, 이서현 인터뷰

2025-07-31     정현진 기자

하나. 이은형 신부(의정부교구,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소장)
“평화는 한 길로 규정될 수 없습니다”

이은형 신부는 한국 교회에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활동, 사목에 참여한 1세대라 할 수 있다. 오랜 시간 관련 사목에 관심을 기울여 온 그는 오래전 러시아에서 사목하던 중 만난 북한 출신 벌목 노동자와의 인연을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다. 얼마 전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장을 겸임한 그는 의욕적으로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 신부에게 가톨릭한반도평화포럼과 코리밀라 프로그램의 경험은 어떠했는지, 또 한국 사회와 교회에 어떤 영감을 줄 수 있는지 물었다.

이은형 신부는 특히 젊은이들을 위한 평화 교육을 고민하면서, 이번 포럼에서 이전과 조금 다른 방법과 방향을 모색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평화의 길이 하나로 규정되고 더 좁아지며 단순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평화를 향해 걸어가는 과정, 그리고 더 넓어지는 형태로 나아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장 이은형 신부. 이 신부는 이번 포럼에서 청년 프로그램의 필요를 더 많이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아래는 이은형 신부와 나눈 질문과 대답 전문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 청년들 못지않게 열심히 참여하시는 것을 봤습니다. 프로그램을 통해 어떤 생각을 하게 되셨는지, 신부님의 경험을 나눠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은형 신부 : 프로그램에 의미도 있지만 아일랜드라는 지역과 공간 자체가 주는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한반도의 분단과 차이가 있어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담을 쌓고, 그 담을 높이는 과정, 그런 속에서 사는 상황들은 남북 간 또는 남한 안에서 보이지 않는 담을 쌓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 갈등과 분열이 있지만, 그것을 풀어 나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보게 된 것도 굉장히 좋았습니다. 코리밀라에 와서는 여러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대화를 나누고, 아픔과 생각을 공유한다는 것이 상당히 좋았어요. 다만 영어권 사람들이 주로 모여 있어서, 언어 장벽이 있었다는 것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지금여기> : 민족 화해, 통일 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해 오셨는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것은 어떤 부분인가요?

이은형 신부 : 초기에는 북한과 직접 만나거나, 대화 또 종교적 교류에 방점을 두고 일해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갖는 특수한 상황 안에서 교류, 만남, 지원은 한계가 분명히 있더라고요. 북한도 그들이 갖는 나름의 상황이 있고, 남한도 정치에 영향을 너무 많이 받고요. 사실 남북 문제뿐 아니라 우리 남한 안에서 ‘남남 갈등’, 세대 갈등 문제도 굉장히 커지고 있잖아요. 그래서 우리 안에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고, 평화 교육, 분단 현실을 제대로 알리기 위한 교육에 많이 집중했습니다.

가톨릭교회 안에서는 ‘평화 사도 양성’이라는 이름으로 그런 교육을 해 왔는데, 그건 조금 일반적인 교육이었어요. 젊은 세대의 참여가 적은 것도 아쉬웠습니다. 또 다른 방법으로 ‘평화의 길’이라는 도보 순례 프로그램도 열었지만, 여전히 젊은이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아쉬웠어요. 이번 포럼에 참여한 청년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실 굉장히 놀랐습니다.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고민과 생각이 깊다는 것을 느꼈고, 향후 젊은이 양성을 위해서는 더 새롭게 길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여기> : 저 역시 참여하면서 대화와 만남의 힘이 정말 크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는데요.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소장도 맡으셨는데, 말씀하신 평화 교육 등 앞으로 해 나갈 일에 대한 구상을 조금 구체적으로 나눠 주세요.

이은형 신부 : 오기 전부터 연구소에서 내내 이야기한 것이 청년 교육이었어요. 그리고 여기에 와서 그걸 빨리 구체적으로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의정부교구에 청년센터가 지역별로 두 군데 있는데, 그 센터를 활용해서 청년들을 위한 일종의 ‘평화 아카데미’를 3개월이나 6개월 정도 기간을 두고 진행하는 것, 그리고 프로그램을 마무리하면서 이번처럼 아일랜드 연수를 한 번 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해외 프로그램에서 배울 것이 분명히 있고, 교회가 더 다른 연대의 장을 만나는 것도 필요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한국의 상황이나 맥락과 다른 점, 언어 문제도 고려해야겠죠. 하지만 우리가 한반도 또는 남한 중심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생각이 좀 갇히는 것도 있고, 좁아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평화라는 가치를 가지고 함께 연대하며 평화를 향한 길들을 찾아 나서면서, 보다 새로운 눈으로 새롭게 평화 운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생겨요.

<지금여기> : 모든 이가 각자 평화의 주체가 되어야 하지만, 특히 평화의 길은 교회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교회 안에서 민족 화해, 평화를 위해 일하고 고민하는 이들이 많은데요. 그 외에 더 많은 이를 초대하는 차원에서 메시지를 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은형 신부 : 평화를 향한 길은 신앙을 가진 우리가 당연히 가야 할 길이고, 신앙인이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평화라는 가치를 어떤 목적으로 삼아 움직이면, 입체적이고 구체적이며, 생동감 있어야 할 ‘평화’가 너무 평평하고 단순해질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해 봅니다.

지난번 서울대교구 심포지엄에서 “평화를 교육하면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겠다”는 표현이 나왔는데요. 그건 아무리 평화를 지향해도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딱 하나로 규정하고, 그쪽으로 몰아가는 경우를 경계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평화는 반드시 가야 할 길이지만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끊임없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나라를 이야기하면서 하느님은 “너희 가운데 이미 시작되고 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말씀하시잖아요. 평화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우리 안에서 분명히 시작됐고 가야 할 길인데, 아직은 완성되지 않은, 어쩌면 인간 사회 안에서 완전한 완성에 이를 수 없을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끊임없이 가야 할 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아가면서 평화가 훨씬 넓게 펼쳐지면 좋겠습니다.

2025 가톨릭한반도평화포럼 일정 내내 봉사를 든든히 해낸 김지우 씨. (사진 제공 = 가톨릭한반도평화포럼 참가팀) 

둘. 트리니티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청년 김지우 씨
한국과 아일랜드 사이에서, 평화를 배우다

이번 가톨릭한반도평화포럼에 참여한 김지우 씨는 일정 전반을 안내하고 지원한 김동진 교수의 아들이기도 하다. 코리밀라 공동체 역시 아버지를 따라 어릴적부터 다닌 기억이 있다.

그는 현재 트리니티 대학에서 정치학, 경제학, 철학, 사회학을 함께 공부하면서, 학내 소피아 학회(Society for International Affairs, 국제정치학회) 활동을 통해 세계 여러 나라의 쟁점과 관계 문제를 다양한 관점에서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학부생 400여 명이 참여하는 이 학회에서는 여러 나라의 관련 학자, 교수들, 그리고 각국 대사, 법조계 교수들도 초청해 이야기를 듣고 나눈다.

이러한 활동은 다양한 분야를 여러 관점에서 바라보는 데 도움 줄 뿐 아니라,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그러한 가치와 관점들이 어떻게 선순환하고 작용할 수 있는지를 배우고 성장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김지우 씨는 “어떤 사안이나 쟁점에 대해 한 정치적 입장이 아니라, 되도록 모든 입장을 함께 들여다보고, 그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고 노력한다”면서, “예를 들어 어떤 국가의 입장에 대해 해당 국가 외교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데, 학생들은 그것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런 입장이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분쟁과 갈등’이라는 핵심어가 겹치는 한국 사회와 북아일랜드에서 살아온 그는 평화와 갈등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 물었다.

“경험한 것들이 있지요. 대학에 오기 전에 북아일랜드에서 살면서 개신교와 가톨릭 학생들이 함께 다니는 ‘통합 학교’를 다녔어요. 그리고 그 학교에서는 종교 과목을 필수로 들어야 하는데, 어느날 선생님이 아일랜드 국기와 북아일랜드의 얼스터 기를 가지고 나와서, 학생들에게 원하는 쪽을 선택하라고 했어요. 순간 아이들이 엄청 조용해졌어요. 왜냐하면 누가 어느 쪽인지 다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저는 어디에 속해야 하나, 어느 쪽도 아닌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사람을 어느 한쪽으로 한정시키는 느낌이 들었어요. 국적이나 종교는 정체성의 일부지만 전부가 아니고, 학생들도 결국에는 다 친하게 지냈거든요. 그때부터 각자 자기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과 입장들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김지우 씨는 “계속 공부하고 싶다. 본 것들을 더 이해하고 싶고, 더 많이 보고, 그렇게 공부한 것을 나누는 삶을 살면 너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 삶을 위해서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성”이라고 여긴다는 그는, “학과 공부나 학회를 통해서 다루는 것들은 어쩔 수 없이 갈등에 대한 것이 많고, 그런 갈등이 현실이라거나 안보 문제로 보게 되는 것 같다”면서, “갈등과 싸움도 결국 서로가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그런 길을 찾고, 보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코리밀라의 시간 속에서 "갈등에 마주할 용기"를 배웠다는 이서현 씨. ⓒ정현진 기자 

셋. 코리밀라에서 유일한 한국인 봉사자, 청년 이서현 씨(한예종 영상원)
다른 공동체에서 얻은 마주할 용기

코리밀라에 도착한 가톨릭한반도평화포럼 참가자들을 맞아준 봉사자 10여 명 가운데, 유일한 한국인은 이서현 씨였다.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3학년을 다니다가, 올해 초 봉사 활동을 시작해 7개월째를 보내고 있다. 연말이면 한국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그가 처음 세계 각국의 친구들과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순례를 다닌 경험은 10대 초반 ‘어린이어깨동무’를 통해서다. 그때 그가 참가자들과 나눈 주제 중 하나는 한국의 ‘여순 사건’이었고, 그 경험이 상당히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시의적절하게” 글로벌청년평화포럼을 경험했고, "시의적절하게" 코리밀라 자원봉사 모집을 접했다. 타국에서 1년여 동안 자원봉사를 하겠다는 결심은 쉽지 않았지만, 영화를 전공하는 데에 다양한 경험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결정을 도왔다. 또 북아일랜드가 가진 역사와 한국의 역사가 공명하는 지점에서도 많은 관심이 생겼다.

“이렇게 허드렛일을 많이 하게 될 줄 몰랐어요”라며 웃던 그는, 지내는 동안 봉사자들 덕분에 불편함이 전혀 없었다는 말에 더욱 환하게 웃었다. 그는 “작은 일들이 공동체를 유지하는 큰 힘”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봉사자로 지내면서 얻은 것은 한국보다 여유 있는 생활과 편안한 마음도 있지만, “한국에서는 잘 할 수 없었던, 진짜 마음을 터놓고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것, 진짜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바라보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 돌아갔을 때 좀 더 관용적인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평화’와 ‘희망’을 말하는 곳이지만 어려움도 있었을 터. 그는 언어 장벽도 있었지만, 다양한 국적, 나이, 경험을 가진 이들이 모인 봉사자들 사이에서 미묘한 장벽을 느꼈다고 했다. 무엇보다 서로 다른 문화 속에서 체득한 인권에 대한 관점이 그랬다. 개인적으로 그런 장벽에 부딪힌 경험을 하고 나서 그는 “처음에는 상대방의 행동에 난감하고 갈등도 있었지만, 그 친구가 스스로 고쳐 나가려고 무척 애를 썼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마음을 열게 됐고, 뭔가 실수한 사람을 주변에서 제거하려는 행태가 맞지 않을 수 있구나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이서현 씨는 “상대방과 맞지 않는 경우, 무언가 실수했을 때, 말하지 않고 묻어 두고 넘어가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말을 해야 할까 갈등을 하는데, 결국 말을 하는 것이 맞았다”면서,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갈등을 두려워하는 것인데, 오히려 직면하고 갈등이 있더라도 조금씩 나아질 수 있는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용기를 배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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