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회의 여걸, ‘강완숙’, ‘최정숙’을 아시나요
시대의 질곡과 낮은 곳에 임했던 초대 교회를 재현하는 여성신학
‘대화를 위한 여성신학’ 네 번째 강좌가 지난 15일 예수회센터에서 열렸다. 지난주 마리아 상에 대한 해방과 연대의 재현을 살펴본 데 이어, 이번 주 강영옥 교수(온라인신학원 프란치스코센터)는 ‘한국 여성들이 꿈꾸는 천주교회’를 강의했다.
1부에서는 ‘한국 여성과 가톨릭 교회의 만남’을 주제로 한국 근현대 100년 속의 교회를 시기별로 고찰한 뒤, 2부에서 ‘가톨릭 교회와 페미니즘의 만남’을 주제로 여성신학의 관점에서 본 새로운 교회 공동체를 제안했다.
조선 천주교회의 초대 회장, 강완숙 골롬바
강영옥 교수는 초창기 가톨릭교회를 1784년 천주교 전래에서 시작해, 박해기를 거쳐 개항과 개화기까지(1910년)로 시대 구분하였다. 그는 “이 시기 한국 교회에선 유교와 가톨릭 사상이 충돌해 남성 중심 가부장제 사회에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조선 여성의 주체적 삶과 신앙이 시작되었다”며, “1876년 개항 이후부터 1910년 한일 합방 직전까지 프랑스 선교사들의 활약으로 한반도에 제도 교회가 탄생하고, 여자 수도회가 설립돼 여성 교육이 시작되었다. 이 당시 교회와 수도회들은 프랑스 교회 전통을 따라 정교 분리 선교가 이루어졌다”고 전했다.
이 시기 여성들은 가부장제 질서 속에서도 스스로 삶을 성찰하며 신앙을 실천하고 남성 중심 유교 질서에 저항했다. 조선의 천주교 신자 황사영이 신유박해를 상세히 기록해 북경 주교에게 전달한 밀서, '황사영 백서'(1801)를 보면, 당시 신자 중 2/3가 여성이었다는 기록이 이를 방증한다.
가톨릭은 여성에게 인격적 존재로서의 가치를 부여했고, 이는 ‘남녀칠세부동석’과 같은 유교 질서를 해체하는 강력한 사상이 되었다. 특히 강완숙 골롬바는 조선 초대 교회의 1대 여성 회장을 맡아 주문모 신부를 5년간 보필하고, 동정녀들을 모아 "취회(聚會)"를 결성하여 교리 교육과 덕행을 실천하여 선교사를 파견하는 등 눈부신 활약을 보였다.
샤를 달레가 쓴 '한국천주교회사'를 보면 그에 대한 기록이 상세히 나온다. “강완숙 골롬바는 힘차고 슬기롭게 모든 일을 권고하고, 모든 일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비록 남자들 중에 열심한 교우가 많았으나, 모두가 기꺼이 그의 교화를 받고, (....) 그의 의견을 따랐다. (....) 그러므로 그 시대에 천주교가 이룩한 진전의 대부분을 그에게 돌리는 것이 마땅하다. 주문모 신부가 오기 전 조선의 천주교인은 약 4천 명이었는데, 몇 해 후엔 1만 명에 달했다.”
초대 조선 천주교회 여성들은 가톨릭 신앙에 힘입어 남녀평등 사상과 일부일처제를 믿었고, 다수가 동정녀로 남아 사회 활동과 선교에 힘썼다. 신유박해 당시 천주교 탄압의 실상을 보여 준 중요한 역사 자료 '사학징의'를 보면 이를 뒷받침하는 기록이 나온다. “이들은 사회적 비난을 피하면서 동정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과부라 칭하기도 하고 허위로 누구의 아내라 칭하기도 하였다.” 강 교수는 “이 당시 허 생원이 많았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허위의 가짜 남편이라 허씨 성을 붙였던 것"이라며, "당시 가톨릭에 입교한 많은 젊은 여성들은 완전한 삶을 지향하여 동정 생활을 원했으며, 박해기에는 동정으로 살다가 순교하는 것을 복락으로 여겼다"고 역사적 행간을 짚었다.
개화기, 수녀회의 등장과 여성 교육의 시작
1876년 이후 개화기에 접어들며 프랑스 선교사 중심의 제도 교회가 본격적으로 뿌리내렸다. 한국 최초의 수도회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1888)는 여성 수도자들이 사회 안에서 활동하며 교육과 의료, 사회사업을 전개할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이들은 가부장적 전통을 넘어서 독립적 여성상을 제시했고, “결혼하지 않고 하느님께 봉헌된 삶”은 곧 여성 주체성의 새로운 상징이 되었다.
구한말 개화기에 뮈텔 주교를 중심으로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프랑스 선교사들은 1880년부터 교세 확장에 주력했다. 각 지방에 본당(성당)을 건설하고 박해를 피해 흩어졌던 교우들을 모았다. 이 시기 “평신도 여성들은 가톨릭교회 안에서 근대적 남녀평등 의식을 갖고 유교적 가부장제를 벗어나는 긍정적 측면도 있었지만, 교계 제도에 의해 성별 역할 분담, 활동 영역 제한 등 부정적 측면도 있었다”고 강교수는 설명했다.
일제강점기의 천주교회 - 주교가 친일에 앞장서다
일제 시기, 가톨릭교회 선교사들은 선교 활동에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 일제에 협력하고 독립운동을 저지했다. 강 교수는 특히 “안중근이 가톨릭 신자로 공식 선언된 것은 김수환 추기경 때로, 그 이전까지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암살자로 가톨릭은 기록해 왔다”고 비판했다. 김수환 추기경은 1993년 안중근 토마스를 기리는 첫 공식 추모 미사를 집전하여 그의 독립운동 정신과 신앙심을 추앙했다.
가톨릭교회의 시대 인식을 당시 외국인 선교사들을 통해 보면, 뮈텔 주교는 “조선은 일본인들의 지도 아래 발전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서울교구연보II, 58쪽, 1908)라고 발언했고, 사르즈뵈프 대구가톨릭신학교 교장 신부는 “너희들이 왜 이러느냐.... 너희의 사명은 따로 있다. 독립운동은 너희들이 하지 않아도 잘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이들은 프랑스 정교 분리 전통에 따라 일제 식민지하에서 고통받는 민족 모순을 외면하고 일제의 한국 침략을 묵인하고 독립운동을 반대했다”고 비판했다.
유관순의 감방 동기 '최정숙 베아트리체'
일제 시기 한국 여성에게 새로운 물결이 전해지며, 여성들은 남녀평등 의식을 갖고 근대 교육을 받고 자유연애를 하며 사회 참여 운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이 시기 한국 여성 운동은 서구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 성차별뿐만 아니라 민족 차별까지 받는 이중적인 억압 구조 아래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개신교 여성 활동가들의 독립운동은 많았던 반면, 가톨릭 여성들은 참여가 저조했다. 이는 한국 천주교회의 정교 분리 전통에 따른 정치 외면과 현실 참여 거부를 권장하며, 친일을 용인하고 독립운동을 비판한 데 기인한다. 일제 식민지 시기에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여성 독립운동가의 숫자는 개신교가 172명으로 압도적으로 많고, 천주교는 8명에 그쳤다.
강 교수는 그 8명 가운데 한 명인 최정숙 베아트리체를 소개했다. 가톨릭 평신도 여성인 최정숙 베아트리체(1902-77)는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 의사였다. “구국 독립운동과 교육 계몽, 의료 구빈에 나선 여성 선각자이자 가톨릭 평신도로서 신앙을 실천하고, '프란치스코3회'에 입회(1940)해 평생 동정으로 살면서 주님께 삶을 헌신하기로 결심하고 평생을 봉사했다”고 강 교수는 설파했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79소녀대를 결성, 독립운동에 압장섰다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다. “고문으로 몸이 많이 상해 죽을 위기에 처했으나, 진명여고 교장이 몸값을 지불하고 감옥에서 빼내었다. 이때 서대문형무소에 같이 투옥되었던 유관순 열사는 그곳에서 끝내 숨지고 말았다”고 강 교수는 말한다.
이후 최정숙은 교사가 되어 교육 운동에 앞장서다,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1939-43, 현 고려대 의대, 2회 졸업)에서 의학 수련을 하고, 이듬해 정화의원을 설립해 의료 봉사에 나섰다. 1964년 초대 제주 교육감을 지내고, 퇴임 후 1977년 75살을 끝으로 영면에 들었다.
현재 '최정숙을 기리는 모임'(최기모.com)이 설립(2014)돼 다양한 선행을 실천하고 있다. 아프리카 부룬디에 최정숙 여고를 설립하고, 이들을 제주도로 초대해 교육 연수를 진행하고 있다.
강 교수는 “초대 교회에서부터 일제 식민지 선각자로서 활동한 천주교 평신도 여성들은 사회의 리더로서 인간 존엄성, 애정훈도, 경천애인, 선한 영향력 등을 실천했다”고 정리했다.
1962년 바티칸공의회와 ‘그리스도의 몸’, 그리고 페미니즘
2부에서 강 교수는 ‘가톨릭 교회와 페미니즘의 만남’을 다루며 천주교의 세계 동향과 변천을 살피고, 교회와 페미니즘이 연대해야 하는 필연성을 제시했다.
“과거 교회는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의 계층적 피라미드 구조였다. 이 속에서 평신도는 최하층으로 상층에 ‘pray, pay, obey’(기도, 헌금, 순종)의 의무만을 지녔다. 그러나 사회가 복잡 다단한 형태로 발전하고 있는데, 과거 농경 사회에서 통용되었던 이러한 구조는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강 교수는 논파했다. 그는 “인공지능(AI)을 비롯하여 제3, 제4의 물결이 밀려오는 현실에 교회는 어떤 응답을 내놓고 있는가? 여성에게 강요되는 순종과 겸손의 미덕(?)을 언제까지 반복하고 있을 것인가”라고 질타하며, “교회의 자기복음화(쇄신), 나아가 세계 복음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교회는 기존 피라미드 구조가 아닌 원형의 그물망 구조로 변화해야 한다. 성직자가가 일방적으로 설교(monologue)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소통하는 대화(Dialogue)가 이루어지고, 이를 통해 함께 실천하고 세상으로 나아가 소외된 이들과 연대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강교수는 주장했다.
1962년 바티칸공의회 이후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재정립되었다. 교회를 통해 신도들은 친교를 나누고 예수와 일치되는 삶을 살아간다. 본 강좌 교재인 조민아 교수의 "대화를 위한 여성신학" 7장은 '예수의 몸'을 설명하는 데 할애되었다.
“가부장적 신학 전통은 원죄의 책임을 여성에게 돌리고 여성의 몸과 성을 죄악시하며 위험한 존재로 규정해 왔다. 남성은 정신-영혼-능동적 존재로, 여성은 물질-육체-수동적 존재로 간주하여, 여성은 하느님의 형상을 온전하게 지니지 못한 존재로 낙인찍었다. 그러나 가톨릭교회의 성체 속에 현존하는 ‘그리스도의 몸’은 역사 안으로 들어온 인간 예수의 몸, 유한성과 욕망, 감정을 갖고 관계 속에서 살아간 ‘몸’이다. 그렇기에 그리스도교 신앙은 몸과 영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기보다 몸으로 살아온 삶을 고백해야 한다. (....) 불완전한 우리의 몸이 사람됨의 근거라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서로 기대고 의지하며 관계성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즉 인간 조건의 부족함과 유한성은 단순히 극복해야 할 무엇이 아니라 공동체의 존재 근거다. 이는 교회 공동체들이 교회 밖 세상을 행해 열려 있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조민아, "대화를 위한 여성신학", 139-141쪽)
강영옥 교수는 강의의 결론을 내리며, “교회는 모든 인류를 향해 열려 있는 공동체로, 서로를 인격적 존재로 이해하고 대해야 한다. 여성과 남성, 성소수자와 이성애자, 장애인과 비장애인, 이주민과 선주민 모두가 하느님의 제자다. 외적 교회에서 내적 교회로, 제도 교회에서 카리스마(은총) 교회로, 제도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몸’ 교회로 자기복음화(쇄신)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2000년대 이후 새롭게 등장한 페미니즘은 모성에 대한 기존의 전통적 개념과 생물학적 결정론을 뛰어넘어 새로운 담론을 제시하여, 소외되고 그늘진 이들과 함께하는 교회와 궤를 같이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페미니즘의 공동체성과 수평적 사고, 돌봄, 평화, 생명, 생태 이슈들은 모성의 사회적 속성들과 잘 어우러지며 이는 여성 리더십의 원천이 된다. 급변하는 현대 사회의 도전 앞에 선 가톨릭교회는 이를 쇄신의 원동력으로 삼아 새로운 복음을 열어 가야 한다. 사회적 모성 리더십을 발휘하는 여성 리더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질의응답 시간엔 강의에 대한 깊은 감명과 감사를 표하는 이들이 많았다.
"친일을 빗겨 가는 애매모호한 강의들만 듣다가 오늘 확실히 알게 되어 감사하다. 최정숙 베아트리체에 대한 조명이 필요하다. 우리도 서로 힘을 받아 앞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오늘 수업은 정말 광명이다."
"교회가 사회 문제에 개입하고 표현하는 방식은 너무 도태되어 있다. 자모회 어머니들과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같이 보고 느낀 쇼킹함을 잊을 수가 없다. 하나같이 ‘우리 아들 불쌍해서 어떡해’를 외치는 어머니들 속에서 좌절감이 들었다."
줌으로 연결된 부산의 평신도 여성은 “가톨릭에도 여명이 비치는 듯 하다. 신앙인으로서 한국적 페미니즘을 어떻게 방향을 잡고 나아가야 하는지 고민하다가 이 강의를 듣고 확실히 알게 되었다. 여성들이 가톨릭 내에서 겪는 억압적 분위기들과 지방이어서 더 소외되는 속에서 정립된 신학을 접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십여 년 전에 개신교로 갔는데, 이제 다시 가톨릭으로 돌아와야겠다.” 등의 해방감을 토로하는 감상이 쏟아졌다.
강 교수는 "하느님나라를 향한 꿈은 평등과 자유를 이루는 꿈이자, 사랑과 섬김과 나눔을 실현하는 꿈이다. 지금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 사회적 모성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고 결론지었다.
여성신학 입문 강좌 '대화를 위한 여성신학'은 총 6강의로 매주 화요일 예수회센터에서 열린다. 다음 주 화요일(7.22)엔 제5강 '생태영성과 여성'을 유정원 교수(서강대학교)가 진행한다. 줌을 통해 온라인으로도 실시간 참여할 수 있다.
문의) 02-2672-8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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