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순결과 순종의 어머니상을 넘어

'정상 가정' 강박에서 벗어나 해방과 연대의 마리아 쓰기

2025-07-14     정선 기자

‘대화를 위한 여성신학’ 3강이 지난 8일 예수회센터에서 진행됐다. 이날 발제를 맡은 정다빈(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연구원은 '그 여성 마리아: 마리아 재현과 새로운 마리아'를 주제로 전통적 마리아 상을 해체하고, 저항과 해방 그리고 연대의 상징으로서 마리아 읽기를 제안했다. 

8일 '대화를 위한 여성신학' 세 번째 강의를 맡은 정다빈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연구원. ©정선 기자

동정녀 마리아, 예수의 어머니, 순결과 모성의 상징, 순종과 기도의 모범.... 교회 전통 안에서 익숙한 마리아에 대한 상들이다. 그러나 이런 전통적 성모상은 시대와 문화와 역사를 담아 다양한 문화권에서 새롭게 재현되고 있다. 

정다빈 연구원은 전통적 마리아 이미지 전복의 시발점으로 엘리자베스 존슨(1941년 생, 미국 포담대학교 신학과 명예교수, 수녀)의 저서, "트룰리 아워 시스터"(Truly Our Sister)를 소개했다. 이 책에서 존슨은 성모 마리아를 우리와 동일한 자매의 입장에서 바라볼 것을 주장한다. 즉, “성모 마리아를 단순히 신성한 존재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고통을 나누는 존재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정 연구원은 설명했다.

엘리자베스 존슨, "트룰리 아워 시스터"(Truly Our Sister), Continuum International Publishing Group, 2003. 

세계 각국의 민속 의상을 입은 마리아

마리아상은 문화와 관습에 맞춰 새롭게 재현되고 있다. 흑인, 라틴, 아시안, 인디오 등, 다양한 문화권에서 토착화한 마리아의 모습은 각 문화적 배경과 식민 역사를 담아 마리아 재현의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에서는 한복을 입은 ‘평화의 모후’ 성모상이 곳곳에 세워졌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아즈텍 문명과 가톨릭 신심이 결합해 형상화되었다. 1531년 멕시코에 발현한 과달루페 성모는 아즈텍 문명의 여신 토난친과 가톨릭의 성모 신심이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신앙적 표현이었다. 

특히, 과달루페의 성모는 이후 원주민의 수호자이자 민중 운동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오늘날 미국 내 라틴계 이주민 권리 운동에서도 과달루페 성모는 문화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아이콘으로 쓰인다.

멕시코시티 과달루페 성모 성당 내부에 설치된 모자이크(조각무늬 그림) 작품. 1531년 멕시코시티 북부 테페약 산에서 발현된 성모를 형상화했다. 1999년 교종 요한 바오로 2세는 과달루페의 성모를 “아메리카 대룩의 수호자, 라틴 아메리카의 여제, 복중 태아의 수호성인”으로 선언했다. 프랑스의 루르드, 포르투칼의 파티마와 더불어 가톨릭 세계 3대 성모 발현 성지로 꼽힌다. (사진 제공 = 정다빈)
다양한 문화권에서 토착화된 모습으로 나타나는 마리아상. (사진 제공 = 정다빈)

지배의 도구이자 저항의 깃발이 된 마리아

마리아는 지배 세력의 종교를 더 쉽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문화적 저항의 상징으로 기능하기도 했다. ‘쳉스토호바의 검은 성모’는 식민주의 종식과 민족 해방 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마리아는 억압받는 민족의 고난과 투쟁을 상징하는 새로운 표상으로 떠올랐다. 폴란드 수호성인으로 추앙받는 쳉스토호바의 성모는 폴란드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 되었고, 1980년대 폴란드 가톨릭교회는 민주화 운동의 거점 구실을 했다. 바웬사는 이 배지를 늘 달고 다니며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다. 

'쳉스토호바의 검은 성모', 쳉스토호바 야스나고라 수도원. (사진 제공 = 정다빈) 
소수자 연대를 비롯 민주화 운동의 깃발이 된 마리아. (사진 제공 = 정다빈)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억압적 정치 상황 속에서 등장한 해방신학이 마리아를 민중의 고난과 투쟁을 노래하는 존재로 소환했다. 성서 속 ‘마니피캇’(마리아의 노래)은 이러한 해방의 메시지를 뒷받침하는 구절로 재조명된다.

이상적 여성상인가, 억압의 도구인가

우리에게 익숙한 마리아는 ‘순결한 어머니, 순종적인 여인, 헌신적인 성모’로, 교회 전통 안에서 이상적 여성상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이는 “현실의 여성들에게 완벽한 모성과 순결을 강요하여 ‘마리아처럼 되지 못한 여성’, ‘마리아가 될 수 없는 여성’이라는 억압 기제로 작용하여 여성 혐오를 정당화”한다고 정 연구원은 설명했다.

그는 케이트 맨의 "다운 걸: 여성혐오의 논리"을 소개하며, “여성 혐오는 단순히 모든 여성을 향하지 않는다. 이상적 여성상에서 벗어난 여성이 혐오의 대상이 된다”고 구분하며, “마리아는 ‘도달할 수 없는 모범’으로 평범한 여성을 배제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고 비판했다.

케이트 맨, 서정아 역, "다운 걸: 여성혐오의 논리", 글항아리, 2023. (표지 출처 = 글항아리)

여성신학의 눈으로 바라본 마리아 - 해방과 대안 공동체

이러한 비판 의식을 통해, 여성신학은 마리아를 재해석하고 새로운 마리아를 제안한다.

“마리아는 이제 억압받는 여성을 닮은 존재로 돌아온다. ‘출산하는 마리아’, ‘가난한 미혼모로서의 마리아’, ‘난민으로서의 마리아’ 등은 신성화된 성모가 아닌, 역사적 현실 속 고난받는 여성으로 그려진다”고 정 연구원은 소개했다. 이는 남성 중심의 교회 구조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평등한 신앙 공동체에 대한 상상으로 연결된다.

오스트리아 조형예술가 에스더 슈트라우스가 2024년에 오스트리아 린츠 성당에 설치한 성모상, ‘즉위’. 작가가 재현한 마리아상은 예수를 출산하는 마리아로, 기존의 아름답고 매끈한 마리아상과 달리 고통에 신음하는 거친 모습이다. 발표 직후 뜨거운 신성 모독 논란이 빚어졌고, 설치 하루만에 괴한에 의해 머리가 잘려 성당에서 철거되었다. (사진 출처 = 오스트리아 린츠 성모마리아 성당 홈페이지)

여성신학은 마리아를 이상적 존재 안에 가둬 현실의 여성을 억압하는 기제로 이용되지 않도록, 교회와 신앙의 권력 구조를 넘어서는 해방의 상징으로 읽어 낸다. "이는 정상 가정·성가정이라는 혈연 중심 가족 제도를 넘어, 더 다양한 삶과 공동체의 가능성을 여는 신학적 실천으로 이어진다"고 정 연구원은 결론을 맺었다. 

질의 응답 시간엔 온오프라인 참여자들 모두가 참여하여 한 시간가량 질문과 대답이 오고 갔다. 현장에 참여한 수강생들은 교회 안에서 겪은 다양한 억압의 경험들을 쏟아 냈다. 특히 ‘동정’과 ‘순결’을 강조하는 모순된 마리아 상을 젊은 여성들이 공통으로 짚었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 수사는 “다양한 모습의 가족을 비정상으로 만들어 버리는 ‘정상 가족’ 개념은 단어 자체부터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다빈 발제자가 수강생들과 대화하고 있다. 이날 현장에 참석한 모든 참여자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꺼내 현장을 달구었다. ©정선 기자

조민아 교수는 “다양한 형태의 대안 가족을 받아들이는 억압 없는 교회, 열린 사회를 향해 가는 길에서 마리아는 계속 다양한 모습으로 재현될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신성을 보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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