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만으로 환대받는 '청년공간 모락모락'을 꿈꾸다

[인터뷰] 한국CLC 신광식 지기

2025-06-23     경동현 기자

서울 금천구 시흥대로에는 청년들이 ‘존재 자체로 존중받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꾸려진 식당이 있다. 바로 한국CLC(Christian Life Community)가 운영 책임을 맡은 ‘청년공간 모락모락’이다. 지난 2년간 이곳을 찾은 이들은 값싸고 따뜻한 김치찌개 한 끼를 넘어, 고립감과 불안 속에서도 서로를 지지하며 함께하는 소중함을 배워 갔다.

'모락모락'은 한국CLC가 선의의 사람들과 함께 설립한 사회복지법인 사랑의 힘이 주도해 만든 청년 주말 식당이다. 금천구와 인근 지역의 1인 가구 청년, 이주 청년, 취업 준비생, 비정규직 등이 주로 찾는다. 3000원에 제공하는 집밥 같은 백반 외에도, 월 1회 집밥 클래스와 반상회, 다양한 소모임을 열며, '누구나 올 수 있고, 아무 조건 없이 쉬다 갈 수 있는’ 공간을 지향한다.

6월 7일 '청년공간 모락모락' 2주년을 맞아 함께한 이들, (사진 제공 = 청년공간 모락모락)

지난 14일, “이곳에서만큼은 조건 없이 나로 있어도 된다”는 경험을 청년들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신광식 공간지기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밥 한 끼에서 시작되는 환대”

그는 2년 전 처음 문 열던 날을 이렇게 기억한다.

“첫 손님이 30대 중반의 공공 근로 청년들이었어요. 아직 문 열기 전이었는데, 아침도 못 먹고 일을 하다, 3000원 김치찌개집 홍보물을 보고 왔다고 하더군요. 밥 먹으며 ‘너무 고맙다’고 인사하고 돌아가는데, 이 공간이 정말 필요하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어요.”

모락모락을 찾는 1인 가구 청년들은 "주말이 더 외롭고 우울하지만, 적어도 이곳에서는 집밥 먹으며 잠깐이라도 마음을 놓을 수 있다"고 말한다.

단골이 생기고, 청년들과 안부를 주고받으며 자연스레 관계가 맺어졌다. 신 지기는 이 환대의 경험이 “평생을 살아갈 힘이 되듯, 언젠가 이곳의 청년들이 다시 누군가를 환대하는 사람이 되길” 바랐다.

14일, 이야기 나누고 있는 신광식 공간지기. ©경동현 기자

“식사, 그리고 관계의 시작”

'모락모락'은 청년들의 참여와 자발성도 존중한다. 대표 프로그램 ‘집밥 클래스’에선 요리 실습과 식사를 함께하며 대화를 나눈다. “처음엔 참가자로 오던 청년들이, 이후 칵테일 클래스 등 직접 프로그램을 제안하거나 주도하기도 합니다.”

한 달에 한 번 반상회도 연다. “딱히 주제를 정하지 않고, 같이 밥 먹고 각자의 생활 이야기를 하죠. 특히, 소극적이거나 돌봄이 필요한 청년들도 ‘식당’이라는 낮은 진입 장벽 덕분에 쉽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청년들끼리의 신뢰와 소통에는 시간과 배려가 필요하다. 배경, 성향이 워낙 다양하다 보니 서로 어울리고 신뢰를 쌓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는 집밥 클래스에서 함께 만두 빚던 날, 청년들 각자에게 만두에 대한 여러 기억이 있었다며, 이같이 공통의 기억을 매개로 조금씩 서로의 벽을 허물고 있다고 말했다.

“청년 문제, 환대에서 시작해야”

신광식 지기는 ‘모락모락’과 기존 청년 지원 공간들과의 차별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많은 청년지원센터나 복지관 프로그램은 주거, 취업, 심리 등 현안 접근에 초점이 많아요. 하지만 성격이나 형편상 다가가기 어려워하는 청년들도 있는 것 같아요. ‘모락모락’은 그 반대로, 아무 부담 없이 식사로 시작해서, 머물다 가면서 관계를 맺는 ‘환대의 집’이 되고 싶었어요.”

실제로 자원 활동가들은 “청년을 환대하러 왔다가, 오히려 그 순수함과 진솔함에 내가 더 배우고 치유받는다”고 고백하곤 한다. 청년들이 환대받는 모습을 보며, 스스로도 더 열린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게 되고, ‘나의 작은 정성이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자긍심을 느낀다. “이런 경험을 통해 청년만이 아니라, 이들을 맞는 자원 활동가들도 어느새 더 환대하는 사람이 되어 갑니다.”

'청년공간 모락모락'의 차림표. ©경동현 기자

“공동체, 그리고 세상 속의 교회”

‘모락모락’은 단순한 복지 식당이 아니라, ‘세상 속의 교회’라는 한국CLC 공동체의 사도직 실험이기도 하다. 신광식 지기는 “신앙, 비신앙을 막론하고, 이곳에선 모두가 존재로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하길 바랍니다. 금천구는 저소득층과 이주민, 한국CLC의 희망학교 졸업생들이 함께 어우러진 동네입니다”라고 말한다.

희망학교는 지역 내 저소득 청소년을 위한 방과후 교육과 돌봄 프로그램으로 출발했다. 이곳에서 자란 청소년들은 성인이 되면 자연스럽게 모락모락을 찾거나 운영에 참여하는 등, ‘삶의 이음선’ 역할을 하게 된다. 실제로 현재 모락모락 청년 담당자 중에는 희망학교 졸업생도 있다. 과거에 받은 돌봄이 ‘동료 청년 환대’로 이어지며, 한 사람의 성장 과정을 통해 공동체 전체가 세대와 역할의 경계를 넘어 함께 성숙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자선을 넘어선 돌봄과 환대, 연대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교회적 실험이자 지역 공동체 표본이란 의미를 갖는다.

'모락모락' 한 편에 자원 재순환과 물건 교환 및 구입을 위해 마련한 당근코너. ©경동현 기자

“운영 고민과 더 넓은 환대를 위해”

현재 ‘모락모락’은 후원자와 자원 활동가의 참여로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신 지기는 “2년 동안 쌀을 사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라면서, “오히려 고민은, 50-60대 자원 활동가와 청년 사이의 세대 연결, 더 나아가 지역에 더 많은 청년 공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청년들이 원하는 소모임, 문화 체험도 경청하며 조금씩 확장해 가고 있다. “청년이 주체가 되는 작은 모임을 더 만들어 가고 싶어요. 무엇보다 이곳이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사회적 공신력, 브랜딩(인식 형성)도 중요한 과제죠.”

그는 무엇보다 "이곳에서의 좋은 기억이 청년들에게 남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사랑받았던 기억, 그게 결국 삶을 버티게 하더라고요. 모락모락이 세대와 세대가 음식으로 공감하고, 새로운 환대의 문화를 만들어 가는 곳이 되길 바랍니다.”

'청년공간 모락모락'을 다녀간 청년들이 남긴 지지와 응원 글들. ©경동현 기자

“청년사목, 신자만이 아니라 모든 청년 위한 환대”

다가올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를 앞두고, 신광식 씨는 청년 환대의 집 지기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렇게 덧붙였다. 

“청년사목이 청년 신자로만 너무 좁게 이해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청년 신자들을 위해서 뭘 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안타까워요. 청년사목은 청년 신자만이 아니라 지역 모든 청년의 고립, 경제, 존재 문제에 응답하는 일입니다. 청년들이 환대를 먼저 경험해야 그 안에서 신앙의 열매도 생겨나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세계청년대회가 청년 신자들만 대상으로 하는 행사이기보다 청년 전체에게 위로를 전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응원하는 자리이면 좋겠고, 이러한 것들을 교회가 선언하는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그런 열매로 지역마다 이런 ‘환대의 집’이 한 곳씩 꼭 생겨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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