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과 도시민의 첫 연대, '남태령'은 지금부터 넘어야
함께 투쟁한 이들과 나눈 '농업의 재맥락화' 이야기
지난해 12월과 올해 3월, 5월 ‘전봉준 투쟁단’의 상경 투쟁은 농민이 트랙터를 타고 서울 경계를 처음 넘은 사건이었다. 경찰차 벽에 막혀 늘 농민만이 고립돼 있던 자리에서 시민들이 함께하고, 수많은 소수자와 변두리의 이야기를 주고받은 그날들은 ‘남태령’, ‘남태령 대첩’이라고 불리는 역사가 됐다.
'처음' 일어나고, 겪은 일들이 숱하게 많았던 그 현장은 한편으로는 승리와 연대의 기억이다. 하지만 당시 저 남쪽에서부터 아스팔트 위를 굴려 온 트랙터에 실린 것은 양곡관리법과 농업4법, 이른바 농민헌법과 농민의 삶, 존엄이었다.
함께 외쳤던 “윤석열 탄핵”을 이뤄 내고 새 정부가 들어선 지금, ‘남태령 대첩’은 무엇을 남겼으며, 우리는 과연 남태령을 넘었을까. 농민과 연대한 시민들이 함께 넘은 것은 무엇이었고, 여전히 남태령에 머물러 있는 것은 무엇인지 되묻는 자리가 마련됐다.
17일, 서울 종로구 향린교회에서 열린 '우리는 남태령을 넘었는가, 농업의 재맥락화' 대화 마당에는 그날 현장에 있었던 농민들과 연대한 시민, 취재 기자, 농민단체 회원이 함께했다. 이야기에 앞서 발제는 농촌사회학자 정은정 씨가 맡았다.
“남태령을 넘지 못했다”
‘물대포’만 남은 백남기처럼 ‘트랙터’만 남기지 않기 위해서
정은정 씨는 40여 년 전의 ‘소몰이 투쟁’이 트랙터 투쟁이 됐고, 농민이 생업 수단인 트랙터를 끌고 온다는 것은 생존을 걸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용도에 맞지 않는 아스팔트 위 운행으로 마모되는 바퀴나 기름값 등의 비용 문제뿐 아니라, 운전하는 사람의 몸, 수많은 조력자들의 노력, 폭력과 구속의 위험까지 감수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2016년 백남기 농민의 죽음과 박근혜 국정농단에 따른 탄핵 정국이 맞물린 당시에 처음 등장한 트랙터는 시민들의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2024년 탄핵 정국에 농민들은 다시 트랙터 시동을 걸었다. 이번엔 처음으로 농민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자리에서 수많은 시민을 만났다.
“트랙터와 응원봉이라는 강한 상징들이 마주쳐 주요한 성과를 냈지만, 남태령을 넘고자 했던 이유, 시민들이 응원봉을 들고 와 함께 밤을 지새웠던 이유와 목표를 다시 점검해야 합니다. 그날의 남태령은 동지섣달 꽃을 본 듯 반갑기도, 놀랍기도 한 기적이었지만 그 뿌리를 상하지 않게 잘 가꾸고 돌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정은정 씨는 이번 ‘남태령 투쟁’이 2016년 트랙터 투쟁과 달랐던 점은 연대의 폭과 깊이라면서, 특히 청년과 여성의 참여가 도드라져 주목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농민들이 트랙터를 끌고 온 이유가 희미해질 수 있다면서, "발언과 실천 사이엔 간극이 벌어질 수밖에 없고, 시간이 지날수록 남태령이라는 장소, 트랙터, 응원봉이라는 형상만 떠다닐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윤석열 정부의 1호 거부권 대상이자 트랙터 투쟁의 시작이었던 ‘양곡관리법’을 필두로 한 ‘농업민생 4법’은, 탄핵 정국에서도 쌍특검와 헌법재판관 임명을 얻어내기 위한 민주당의 불모에 가까웠다고 지적했다. 그는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동안 번번이 거부됐던 농업 4법이 어떻게 실현될지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며, "이 관심을 이어 가고 평가할 농민운동계의 실천 지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남태령 대첩’이 거둬들여야 할 것은 법과 제도, 정치 영역에만 있을까. 정은정 씨는 농민들이 연대한 시민들에 대한 고마움을 보답하는 방식과 그 자리에서 여성 농민이 주변화되고 소외된 상황을 꼬집어 말했다.
그는 "미안하다는 말, 농민 현실을 증언하는 말, 그리고 '사랑한다'는 고백이 오고가는 자리에서 응원봉을 든 딸들은 환영받았지만, 호미를 든 동료 여성 농민들의 위치는 어디인가 되물을 수밖에 없다"며, "다수의 여성 참가자들이 요구한 ‘성평등’ 문제에 천천히 배우겠으니 기다려 달라는 남성 농민 운동의 약속을 지켜 나가는 과정을 보고해야 할 무거운 의무가 남았다. 그날의 응원봉은 응원인 동시에 농민 운동에 대한 청구서로 남았다"고 덧붙였다.
트랙터에서 호미의 시간으로
남태령 투쟁은 더, 충분히 숙성시켜야 한다
그는 농기계 발전 역사에서 여성들은 그 어떤 지역과 체제에서도 소외되었다며, "농업에서 여성들의 역할은 기본적으로 맨손과 호미와 같은 작은 도구를 쓰는 일로 평가절하돼 왔다. 아직도 농업에는 강고한 젠더 시스템(성별 체계)이 작동하며, 농촌 문화에는 가부장주의가 온존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농업, 농민 문제를 함께 대응하기 위해, 농민들의 고령화, 지역 소멸, 정책 부재와 같은 여러 한계에도 지속적인 만남과 공부, 연대의 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은정 씨는 "남태령의 큰 감동에도 농업 사안 자체는 매우 복잡하고 딱히 희망적이지도 않다"면서도, "그러나 이 문제를 같이 끌어올려 준 경험이 바로 남태령이었다. 시민들과 손을 잡고, 농업과 농민 문제를 삶과 사회의 중심 주체로 올려 놓을 때, 농민 운동이 준비하고 있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 준비의 시작이 오늘이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남태령, 우리가 서로에게 새긴 권리의 이름"
발제 뒤에는 남태령에서 함께했던 여러 시민과 농민 당사자들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연대 시민이었던 이재현 씨는 당시 남태령에서 누구도 계획하지 못했던 연대의 장과 급조된 트랙터 무대 위에서 울린 목소리들이 "단순히 의제들이 ‘섞인' 데 그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모순과 억압이 어떻게 서로 연결돼 있고, 그렇기에 서로를 규정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고 말했다.
학생 운동을 통해 먹거리와 밥상의 의미를 다시 보고, 조리 노동자와 연대한 경험을 이야기한 그는 "상호의존의 감각을 느끼고 나누는 자리가 많아질수록, ‘응원봉 연대’가 더 장기적이고 지속되며, 서로의 간극을 좁힐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러면서도 "먹거리를 생산하는 다양한 노동에 부여되는 숭고함이라는 이미지가 시혜나 대상화로 흘러가지 않도록 경계하며, 연대의 자세를 가다듬는 일 역시 중요하다"고 말했다.
올해 초, <경향신문> 신년 기획으로 농촌, 농업, 농민 문제를 다룬 박채연 기자는 연재 기사를 쓰기 위해 농촌에서 ‘한 달 살이’를 한 경험과 의미를 나눴다.
그는 농촌에 다가갈수록 자신이 뼛속까지 도시인이며, 농촌 생활과 농민의 삶을 한 번도 구체적으로 상상해 본 적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두지마을에서의 한 달과 남태령에서 도시 청년과 농촌 청년, 어르신들이 서로 마주하며 존재를 알고 배운 이 경험은, 그의 삶의 방식과 소비 태도를 바꾸게 했다.
그는 "도시인이 농촌에 대해 ‘어떻게 작아질 것인가’, ‘어떻게 없어질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지 않는다면, '지방 소멸'이라는 말은 무책임한 단어로 내팽개쳐질 것"이라며, "남태령 대첩이 남태령과 응원봉이라는 단어로만 떠돌지 않게 하려면, 서로의 존재를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서로를 계속 배우는 ‘귀찮은’ 과정이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는 "농민들은 남태령에서 시민들과 함께 식량 주권과 농민 권리 실현을 통한 농정 대개혁을 촉구했지만, 그 여정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직시해야 한다"면서, "다시 만난 농민과 시민이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해 객관적 상황을 생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더 많은 다층적 연결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우리 모두에게는 느슨하지만 때로는 단단히 뭉칠 수 있는 연결망이 절실하다. 비록 떨어져 있어도 서로의 상황과 입장, 고민을 명확히 알아가면서, 아주 가끔이라도 만나 친분을 쌓아 가며, 그 과정에서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농식품부에는 여성이 없고, 여성가족부에는 농업이 없다”
신지연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 사무총장는 여성 농민의 현실과 식량 주권을 향한 여성 농민의 꿈을 역설했다.
노동 집약적으로 분화된 영농 형태에서 대부분의 노동은 여성 농민의 몫이다. 가사와 육아까지 책임지며, 생산자가 아니라 부수적 노동력으로 인식되는 여성 농민. 여성 농민의 무급 노동으로 유지되는 지역 사회.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유령 같은 여성 농민.
신 사무총장은 스스로 ‘여성 농민’이라고 이름 지은 이들이 1989년 전국여성농민회를 창립하면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고, 삶의 모순을 주체적인 힘으로 해결하기 위해 외세에 의존한 농업 구조와 반민주적 사회 구조를 바꾸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토종 씨앗을 지키고, 신자유주의 개방 농정에 맞서 대안을 만들며, 지역 공동체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생산자로 모습을 드러낸 여성 농민의 모든 활동과 노력은 '식량 주권'을 향해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실천이다. 그는 “여성 농민에게 윤석열 파면 이후의 사회 대개혁은 곧 식량 주권 실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트랙터를 모는 여성 농민의 모습으로는 생산 수단을 갖지 못한 여성 농민의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호미로 농사짓는 여성 농민의 존재를 그대로 봐 달라”고 제안했다. 이어 “여성 농민들이 어떻게 귀농, 귀촌하는 청년 여성들에게 든든한 기댈 언덕이 될 것인지, 농민과 소수자는 어떻게 만날 것인지, 도시 청년을 위해 여성 농민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신지연 사무총장은 남태령 이후, 전여농이 청년여성농민위원회를 준비하고 있으며, 농업에 관심 있는 모두와 함께할 방법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의 연대는 남태령이라는 공간을 넘어, 서로의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바람을 나누었다.
권혁주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은 "남태령 투쟁은 농민들만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기본 생각"이라며, “남태령 싸움은 어느날 갑자기 벌어진 것이 아니라, 수십 년간 이어져 온 농민들의 역사가 쌓여 분출된 것으로 이해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당연히 아름답고 소중한, 처음 보는 광경을 목격했기에 잘 기억하고 담아야겠지만, 자칫 소영웅주의에 빠진 무용담이나 쉬운 이야깃거리로 전락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경계해야 한다”며,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확장하고 지속할 것인가. 농민들의 이야기를 제발 들어달라는 입장에서, 이제는 농민이 어떻게 이야기를 들을 것인가를 생각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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